[서평]

용서받지 못할 자, ‘밀정’

민족문제연구소 상임이사 조세열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던 2019년 자주독립과 민주공화주의의 새 장을 연 역사적 사변을 기념하는 열기가 한 해 내내 지속되었다. 학계는 물론 문화예술계와 언론계에서도 다방면에 걸쳐 새로운 관점의 수많은 성과를 내놓았다.

이 중에서도 특히 주목을 받았던 노작이 KBS 탐사보도부가 제작 방영한 〈밀정〉 2부작 다큐멘터리였다.

제작팀은 1년 여간 ‘독립운동의 보이지 않는 적’ 밀정을 추적했다. 8개월간 일본 외무성과 방위성의 기밀문서, 헌정자료실에 보관된 각종 서신, 중국 당국이 생산한 공문서 등 5만 장을 입수해 분석했다. 그 결과 일제강점기 밀정 혐의자 895명을 특정했다. 여기에는 우리 모두가 깜짝 놀랄 수밖에 없는 상상조차 힘든 인물들이 다수 포함되었다.

〈밀정〉 2부작은 새롭게 찾아낸 밀정 혐의자 가운데 현재 독립유공자로 분류되어 있는 사람들을 집중 추적해 그들의 이상행적을 고발했다. 안중근 의사의 동지 중 한 명이었던 우덕순, 김좌진 장군의 최측근 참모 이정, 상해임시정부에 참여했던 김규흥, 의열단원으로 활동했던 김재영 등이 그들이었다. 제작팀은 새롭게 찾아낸 밀정 관계 자료들을 학계 전문가들을 통해 검증하여 공신력을 확보했다. 이와 함께 역사 다큐멘터리의 전형성을 탈피해 감각적인 영상과 음악으로 완성도를 높여, 이른바 2040 젊은 시청자들에게도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밀정이라는 생소하고도 무거운 소재를 대중적으로 이해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학계에서도 그동안 연구자들의 심층 탐구가 부족했던 밀정이라는 주제를 공영방송이 본격적으로 문제 제기한 데 대해 높이 평가하였다.

전문가를 방불케 하는 방대한 사료조사와 치밀한 검증, 여기에 추적보도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보겠다는 열정이 결합해 근래 보기 힘들었던 수작을 탄생시켰다. 탐사저널리즘의 전범을 개척한 제작진에 각계는 ‘임종국상’을 비롯한 무려 10여개가 넘는 상을 수여함으로써 이들의 노고에 응답하였다.


▲ 지은이: 이재석, 이세중, 강민아 외 |출판사: 지식너머 |값 16,000원 |260쪽 |신국판(142×220mm) |ISBN 9791165791667

충격적인 내용으로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던 다큐멘터리 〈밀정〉이 1년간의 준비를 거쳐 책으로 거듭났다. 다큐멘터리와 마찬가지로 이 책은 대중적인 역사 읽기를 지향하고 있다. 취재 이면의 비화가 흥미로우면서도 정교한 추적과정이 끝까지 긴장감을 놓지 않게 한다.

밀정! 이들은 단순한 매국노나 부역자가 아니었다. 항일 대오 속에 잠입해 독립운동을 내부로부터 파탄시키려 한 가장 악질적인 민족반역자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최일선에서 보위하고 있던 경무국에까지 밀정이 침투하고 있었으며, 구성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실시간으로 일제에 보고되는 형편이었다. 책을 읽노라면 독립투사들의 ‘동가숙 서가식’하는 신산한 삶이 저절로 떠오를 수밖에 없게 된다.

책에는 〈밀정〉 2부작뿐만 아니라, 제작진이 발굴하여 ‘KBS 뉴스9’ 톱뉴스로 보도해 3·1운동의 숨은 주역들을 집중 조명한 〈조선총독부가 작성한 3·1운동 계보도〉 취재기와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경주 최부잣집’에서 발굴된 사료를 분석하여 경주 지역 국채보상운동과 백산무역주식회사의 대한민국임시정부 독립운동 자금 지원을 심층 보도한 사례 등 지난 한 해 KBS 탐사보도부의 빛나는 활약상도 소개하고 있다.

무릇 역사에는 빛과 그늘이 있기 마련이다. 감추고 싶은 치부일수도 있지만 밀정이라는 ‘어둠의 자식’들이 있었기에 독립투사들의 헌신은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이 책이 그동안 은폐되어 왔던 오욕의 역사를 백일하에 드러내는 한편으로, 일제의 간교한 분열 책동 속에서도 끝까지 신념을 굽히지 않았던 대다수 독립투사들을 다시 기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더불어 밀정들이 해방 이후 어떻게 변신해 갔는지 밝히는 후속작업도 기대해 본다.


[책소개]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한 2019년, 한 편의 탐사보도가 언론과 학계를 술렁이게 만들었다. 바로 KBS 탐사보도부의 다큐멘터리 〈밀정〉이다. 2부작으로 구성된 이 프로그램은 그간 학계에서조차 제대로 다루지 못했던 항일운동의 가장 어두운 지점, ‘밀정(密偵)’의 실체를 규명했고, 같은 해 친일청산과 관련해 가장 권위 있는 상이라고 할 〈임종국상〉을 비롯해 〈한국기자상〉 〈방송기자대상〉 등 10여 개의 관련 상을 수상하며 탐사보도의 한 획을 그었다.

하지만 이러한 환호의 저변에는 ‘밀정’이란 단어가 가진 어두운 무게가 자리한다. 밀정은 단순히 동족을 배신한 ‘괘씸한 사람들’이 아니다. 일제의 피라미드식 지휘체계 맨 아랫단에서 실핏줄처럼 곳곳에 뻗어나가 작동하며 일제국주의에 생명을 불어넣었던 존재들이다. 이들의 암약 속에 거사는 실패하고 독립운동가들은 체포되었으며 독립군은 절명의 위기에 처했다. ‘일본군 100명보다 밀정 하나가 더 무섭다.’ 독립운동 진영 내부에서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던 이 말은 그들이 얼마나 치명적일 수 있는지 짧고 명쾌하게 설명해준다.

일본외무성과 방위성의 자료실에 보관된 기밀보고서와 각종 서신, 중국 당국이 생산한 공문서 등 〈밀정〉 취재진이 입수한 5만 장의 문서들에 남겨진 밀고의 기록들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100주년을 넘긴 지금도 우리가 미처 다 헤아리지 못한 임시정부 초창기 멤버들의 사진, 3ㆍ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들의 계보도(밀정에 의해 작성되어 일제의 수배명단으로 쓰였을 이 체계적이고 상세한 명단에는 각계의 항일운동 핵심인물과 그 관계도는 물론 아직도 우리가 찾지 못한 숨은 영웅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다)도 이번 밀정 추적을 통해 발견되었다. 또, 안중근의 동지, 김좌진의 측근, 김구의 부하 등 그 손길이 미치는 범위 또한 실로 두려울 정도다.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밀정은 20여 명, 취재를 통해 밝혀진 밀정 혐의자는 895명
기억해야 할 역사에 대한 기록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밀정은 친일파와 다르다. 대외적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활동했으며 지금까지 어느 정도 역사적 평가가 이루어진 친일파들과 달리 암약했던 밀정들은 그들이 항일운동에 미친 그 치명적인 여파에도 불구하고 해방과 더불어 거의 아무런 청산의 과정 없이 역사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친일인명사전》에 기록된 밀정은 20여 명. 하지만 KBS 탐사보도부가 취재를 통해 추적한 밀정 혐의자는 895에 달한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얼마나 많은 독립을 향한 염원이 동지의 얼굴을 한, 혹은 자신이 지켜야 할 민족의 얼굴을 한 밀정들의 손으로 일제에 넘겨졌는가.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들이 남긴 배신의 기록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는 독립운동의 숨은 주역들이다.

다큐멘터리 〈밀정〉이 그 역사의 아이러니 속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들을 발굴해내는 작업이었다고 한다면 이 책은 그 발굴의 기록이다. 제한된 방송시간에 미처 담지 못했던 자세한 자료 분석, 역사적 사건의 전후 맥락, 생생한 취재 과정과 적들의 기록으로부터 우리 내부의 적을 추적해야 했던 기자들의 소회가 더해져 있어 단순한 문자화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책의 차례

1장 축제의 시간에 돌아본 우리의 그늘
2장 임시정부의 얼굴 누가 빼돌렸나
3장 항일운동의 또 다른 서술자 밀정
4장 안중근의 동지, 그가 걸어간 다른 길
5장 김좌진 최측근이 밀고한 배신의 기록
6장 얼굴 없는 밀정이 기록한 만주벌 호랑이
7장 김원봉을 밀고한 부하, 그에게 수여된 건국훈장
8장 임시정부의 비자금줄 경주 최부잣집
9장 식민지 권력자가 내린 지령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파괴하라
10장 김구를 잡아라, 특종공작에 동원된 밀정들
11장 3·1운동 계보도, 휘발된 사람들을 찾아서
12장 해방과 동시에 사라진 이름 밀정

이 책의 저자

이재석
197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5년 KBS 보도본부에 입사, <군 댓글공작 최초 실명 폭로>, <국정원 4대강 반대 민간인 불법 사찰> 등 다양한 주제의 탐사보도를 해왔다. 다수의 특종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박정희, 독도를 덮다》(2016)가 있다.

이세중
2014년 KBS 보도본부에 입사해 주로 사회부와 탐사보도부에서 취재했다. <삼성물산 국가 상대 100억 사기 의혹>, <교도소 독방 거래> 등 다수의 고발 보도를 선보였다. <밀정 2부작>으로 <한국기자상> 등을 수상했다.

강민아
1990년생. 2014년 KBS <시사기획 창> 취재작가로 방송계에 발을 들였다. EBS 다큐프라임 <대학입시의 진실 6부작>(삼성언론상)에 참여했다.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 를 제작했다. TBS 제작본부 PD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