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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국어사전의 해설을 빌려보자면 자고로 사람이라면 살아생전에 훌륭한 일을 하여 후세에 빛나는 이름을 남겨야 한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옛말이라 그런 것인지.. 단어 구성이 참 폭력적이지만.. 그 말에 좀 덧붙이고 싶습니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만 남기지 않습니다. 유산도 남기죠.


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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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遺産), 죽은 사람이 남겨 놓은 재산을 뜻하는 이 단어에는 한 가지 또 다른 뜻이 있습니다. 앞 세대가 물려준 사물이나 문화도 우리는 유산이라고 지칭합니다.


유네스코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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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있는데요. 교육·과학·문화의 보급 및 교류를 통하여 국가 간의 협력 증진을 목적으로 설립된 국제연합 전문기구 유네스코는 미래 세대에 전달할만한 인류 보편적인 가치가 있는 자연이나 문화들은 세계유산으로서 지정하여 보전/관리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창덕궁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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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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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찾아보는 일,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조선시대 500년 역사의 숨결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서울은 특히나 더 그렇고 말이죠. 대표적으로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위패를 모시던 사당인 종묘, 왕이 상주하던 공간인 창덕궁 등이 있지요.


태릉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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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11대 임금인 중종의 제2계비 문정왕후 윤 씨의 무덤인 태릉도 역사성을 인정받은 대표적인 서울의 세계유산 중 하나입니다. 태릉과 같은 조선시대의 무덤들은 입지 선정 과정에서 풍수지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기에 왕가의 무덤인 태릉의 경우 그 자연성이나 임상이 굉장히 양호한데요. 그래서였을까요? 태릉과 강릉의 일대는 서울 외곽을 지키는 도심의 허파, 그린벨트로서 지정되어 존재해 왔습니다.


서울시 그린벨트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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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의 환경을 보전하기 위한 최소한의 그린 인프라이자, 도심지역의 무분별한 확장을 방지하는 초록 띠 그린벨트는 토지의 용도변경이나 건축물의 신축, 증축이 금지되는 등 원칙적으로 개발이 제한되는 구역이지만 역사적으로 정부의 주택 공급 정책에 의해 지속적으로 해제/개발되어 온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민중의 소리

그린벨트를 둘러싼 개발 위협은 세계유산 태릉, 강릉과 인접한 태릉의 그린벨트도 피해 갈 수는 없었습니다. 지난 8월 4일 정부가 발표한 수도권 집값 안정을 위한 부동산 대책에서 태릉 그린벨트에 주택 1만 세대를 공급하는 안을 발표한 것입니다.


태릉 골프장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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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태릉 그린벨트는 골프장으로 운용되던 공간이기에 개발해도 상관없는 곳이라고 합니다. 특권층을 위한 시설을 폐지하고 모두를 위한 공공 주택이 들어서는 것이 맞는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린벨트는 도심 환경을 보전하기 위한 최소한의 그린 인프라임과 동시에 도심의 무분별한 확장을 방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설령 훼손되어 녹지로서 보전가치가 높지 않은 지역이라고 해도 논이나 밭, 설령 대지 상태라 하여도 그린벨트는 그 공간적인 개념 만으로 보전가치가 차고 넘치는 지역입니다.


©강원도민일보

심지어 2019년 말을 기준으로는 수도권 인구가 비수도권 인구를 추월한 상태입니다. 전 국토의 11.8%에 불과한 수도권 땅에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살아가는 오늘날 우리나라의 기이한 모습의 저변에는 과도할 정도의 중앙집권체제가 깔려있습니다. 한정된 땅과 자원과는 달리 끝이 없는 욕심은 수도권을 무한하게 팽창시키고 싶어 합니다. 이를 증명하듯 도심 기반 시설의 60%는 수도권에 집중적으로 투입되고 있으며 과도한 확장을 방지하기 위한 그린벨트를 해제하자는 목소리는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습니다.


불어난 한강 물에 떠밀려왔던 잉어와 메기가 다시 한강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 뉴스 1

2018년의 말도 안 되게 뜨거웠던 폭염, 2019년의 비상식적으로 잦던 태풍, 그리고 1년 중 가장 더운 시기라는 말이 무색하게 40여 일간 지속되고 있는 2020년의 장마까지. 지구가 우리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기후는 앞으로도 변할 것이고, 변화하는 기후로 인한 재난은, 그 피해는 걷잡을 수없이 커질 것이라고 말입니다.


©연합뉴스

이런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녹지와 숲이지 50개의 집이 켜켜이 쌓여져 한 치 앞의 경관도 볼 수 없을 도심의 주거 환경이 아닙니다. 부족한 녹지를 확충할 기회를 저버린 채 도심 속에서 녹지로 역할하던 그린벨트를 깔아뭉개고 들어설 공공 주택도 아닙니다. 기후 위기로 맞이하게 된 급격한 재난들에 대응하기 위해 재난으로부터 안전하지 못한 주거환경들을 개선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노력이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오마이뉴스 이태경 기자

더 이상 공급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언제 공동화와 기후로 인한 재난이 찾아올지 모를 상황에서 공급 위주의 정책만을 고수하는 현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문제에 대응할 방점을 제대로 잡지도 못한 채 일부 지지층만을 위해 잘못된 정책을 고수한 잘못된 사례로서 기억될 것입니다.


©서울환경운동연합

또 지난 1일에는 노원역 롯데백화점 앞 광장에서 태릉 그린벨트의 해제를 규탄하는 시민들이 모여 함께 목소리를 내기도 했습니다.


©서울환경운동연합

서울환경연합도 도심 속 소중한 최소한의 그린 인프라를 보전하기 위한 주민들과 연대하여 발언하기도 하였습니다. 앞으로도 서울환경연합은 서울의 허파이자 수도권 초집중을 막기 위한 최후의 방벽, 그린벨트를 지키기 위해 지역의 주민들과 함께 다양한 목소리를 내어 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