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지난달 29일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문제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진보 진영의 주요 활동에 북한의 대남혁명론이 스며들었다”며 그 예로 ‘매향리 미군 폭격장 반대운동’(2000년), ‘효순이 미선이 사건’(2002년),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운동’(2005~2006년), ‘한미FTA 반대운동’(2006~2007년), ‘광우병위험 미국산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2008년), ‘이명박 정권에 대한 반대운동’(2008~2009년), ‘제주 해군기지 이전 반대운동’(2011년) 등을 든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법무부는 ‘총선의 야권연대(2012년)’까지도 “북한의 대남혁명론에 따라 ‘의회투쟁’과 ‘대중투쟁’을 유기적으로 병행한 것”이라고 규정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는 정권의 실정에 맞서 벌어지는 각종 국민적 저항 전체를 사실상 북한의 지령에 따른 ‘종북’행위로 간주해 통합진보당 뿐 아니라 전체 진보적 운동과 민주주의 운동 자체를 위축, 말살시켜버리겠다는 파쇼적 폭거이자, 이 땅의 역사를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 시대, ‘마녀 사냥의 시대’로 되돌리겠다는 대국민 선전포고라 할 수 있다.
이런 어이없는 의견서를 제출하면서 스스로도 부끄러웠는지, 법무부 TF의 관계자는 “진보 진영 전체에 대한 비난으로 비치지 않도록 공개변론에서 취지를 설명하겠다”고 한다. 이는 일단 ‘종북’이라 낙인을 찍어놓고, “전체를 낙인찍은 건 아니다”라는 식으로 빠져나가려는 말장난이자, 법 집행을 빌미로 한 비열한 언어테러다. 한심하기 짝이 없다. 일베나 어버이연합 등 상식을 벗어난 극우세력들의 수준 낮은 ‘종북 타령’이 이제는 버젓이 정부의 공식 입장이 된 것이 아닌가!
우리 사회에 민족의 자주와 민주주의, 민중의 생존과 평화통일을 위한 운동이 존재하는 것은 북한이 지령했기 때문이 아니라, 미국이 이 땅에 군대를 주둔시키면서 이 나라의 정치, 군사, 경제를 사실상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며, 우리 정부가 미국에 사대굴욕 외교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실례들이 바로 법무부가 언급했던 주요 운동들이 아니겠는가! 우리 국민 누구나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자고 주장하고 실천할 권리가 헌법에 보장돼 있으며, 통합진보당은 이러한 국민의 지향을 대표하고 선거를 통해 국회의원을 배출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이미 인정받았다. 또한 소위 ‘내란음모’ 재판의 1심은 물론 2심에서도 북한과 연계됐다는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었음이 이미 확인된 바 있다.
사실이 이러할진대, 통합진보당이 북한의 지령에 따라 그런 운동을 했으며, 따라서 해산시켜야 한다는 엄청난 주장을 하려면 그에 합당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법무부는 무슨 근거를 내놓았는가? 기껏 실체도 불분명한 ‘왕재산’ 지령, ‘한국민족민주전선’, ‘반제민족민주전선’ 등의 입장 발표와 주요 대중투쟁에 통합진보당이 참여했다는 것 뿐이며, 핵심적으로 있어야 할 ‘북한의 지령이 통합진보당의 결정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한 근거는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다.
북한이 우리 사회의 주요한 문제들에 대해 대부분 입장을 밝힌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수준의 근거로 통합진보당을 ‘종북’으로 모는 것은 마치 80년대 북한이 “전두환 독재 물러가라”고 했다 해서 6월 항쟁을 ‘종북’으로 규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자국 국민이 선거로 선출한 의원을 보유하고 합법적 정당 활동을 하고 있는 공당에게 합당한 근거도 없이 ‘종북’ 혐의를 씌우고 해산을 시키려 시도하는 박근혜 정권, 이를 위해 정권의 실정에 반대하는 모든 투쟁을 ‘종북’으로 간주하려는 법무부의 파쇼적 폭거를 강력히 규탄하며, 즉시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 시도를 중단하고, 관련 TF를 해체할 것을 요구한다.
2014년 9월 11일
한국진보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