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정의 편지]

코로나19 위기를 통해 본
기후위기 대응의 교훈


고재경(환경정의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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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우리의 일상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강력한 전파력을 가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짧은 시간에 전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가 확진자가 천만 명을 넘어섰고, 최근의 심상치 않은 확산 조짐은 재유행 공포를 키우고 있다. 세계는 이제 코로나 이전인 BC(Before Corona)와 코로나 이후인 AC(After Corona)로 구분된다고 할 만큼 코로나19가 몰고 온 변화는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을 –4.9%로 전망하였는데, 이는 4월에 발표한 –3.0%보다 1.9% 포인트가 내려간 수치이다. 우리나라도 –2.1%의 성장률이 예상되고 있다. 중국에서 시작된 바이러스가 실물경기에 영향을 미치며 지구적 경제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세계 각국이 코로나19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미국 해양대기청(NOAA)은 올해가 기상관측 이래 가장 무더운 한 해가 될 확률이 75%에 이른다고 밝혔다. 코로나19 여파로 일상생활과 경제활동이 멈추며 잠시 대기가 깨끗해지고 온실가스 배출량은 줄어들었으나 기후변화 영향은 계속되고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기억에서 잊혀진 호주 산불은 작년 9월에 시작해 한반도 면적의 85%에 해당하는 1,860만 헥타르의 숲을 태우며 5달 넘게 지속되었다. 산불로 인해 죽은 동물 수도 약 12억 마리에 이른다. 홍수, 가뭄, 폭염 등 이상기후 영향으로 지구촌 곳곳이 몸살을 앓는 것이다. 인류가 직면한 긴박한 위험 상황을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이제는 ‘기후변화’가 아닌 ‘기후위기’라는 용어가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코로나19와 기후변화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둘 다 인간 활동이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점에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원인은 박쥐가 아니라 야생동물 거래, 육식 소비, 무분별한 개발과 서식처 파괴로 인간과 야생동물, 인간과 가축 사이에 접촉기회가 늘어나 동물한테만 있던 질병이 인간에게로 옮겨온 것이다. 이것을 인수공통감염병이라고 하는데, 사스, 메르스, 조류인플루엔자가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기후변화 영향으로 기온이 상승하고 강우 패턴이 바뀌고 습도가 상승하면 감염병 발생과 전파에 유리한 조건이 만들어져 코로나19와 같은 대유행은 앞으로 우리가 자주 접하게 될 뉴노멀이 될 것이다. 과학자들은 지구온난화로 영구동토층이 녹아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유출될 위험을 제기한다. 코로나19와 기후위기 모두 산업혁명 이후 지속되어 온 성장 패러다임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코로나19 위기와 기후위기는 매우 닮아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와 기후변화 영향은 국경을 가리지 않으며,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지구적 차원의 협력과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위기 발생에 대한 과학적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한 안이한 대처가 사태를 악화시켰다. 박쥐와 같은 야생동물로부터 신종 바이러스가 대유행할 가능성에 대해서 그동안 과학자들이 여러 차례 경고를 보냈지만 이에 대한 준비에 소홀하였다. 기후위기 대응도 마찬가지이다. 각국이 제출한 온실가스 감축목표는 파리협정에 의한 지구 기온상승 억제 목표인 2℃에 훨씬 못 미쳐 이대로라면 21세기 말 3.2℃까지 상승할 전망이다. 무엇보다 코로나19는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시스템의 임계점을 넘어서는 물리적 쇼크가 가져올 경제ㆍ사회시스템의 취약성과 파국적 결과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으며, 이는 기후위기의 시험대이기도 하다. 과학자들은 기후위기가 예상했던 것보다 빠르게 진행되어 지구가 회복할 수 없는 ‘티핑 포인트‘에 와 있으며, 기후의 도미노 효과가 생태계, 사회, 경제시스템을 무너뜨려 지구상 많은 곳이 인간거주가 불가능한 지역으로 바뀔 수 있다고 경고한다. 더욱이 기후위기는 코로나19보다 인간의 삶과 문명에 훨씬 직접적이고 거대한 충격을 주어 인류의 생존이 위험에 처할지도 모른다.

코로나19 위기와 기후위기에서 우리가 가장 눈여겨봐야 할 공통점은 바로 불평등 문제이다. 위기는 사회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드러낸다. 독일의 사회학자인 울리히 벡은 ’빈곤은 위계적이지만 스모그는 민주적이다‘라고 하며 21세기를 위험사회로 정의하였다. 위험은 국경이나 계층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무차별하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하지만 위험에 대처하는 능력은 불평등하고 차별적이다. 코로나19로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사람은 생계의 위협이나 열악한 거주환경과 업무환경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불가능한 빈곤층, 노인, 장애인 등 취약계층 집단 거주시설, 일용직·비정규직 노동자, 외국인 노동자들이었다. 미국 시카고와 미시간주에서는 흑인 코로나 19 사망자 비율이 흑인 인구 비중보다 2배~3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인구가 밀집된 인도 델리 빈민 슬럼가의 경우 봉쇄조치로 인해 손 씻을 물은커녕 먹을 물이 부족하였으며 사회적 거리두기도 사치에 불과하다. 코로나19로 인해 식량 생산과 유통, 소비망이 붕괴되면서 식량위기 우려가 현실화되어 올해 세계 기아 인구는 2억 6,5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그 피해 역시 저개발국에 집중될 전망이다.

기후위기는 기후부정의를 촉발한다. 온실가스 배출 책임은 에너지·자원을 많이 소비하는 고소득층, 선진국이 절대적으로 많지만 피해는 취약계층, 저개발국에 집중되는 것이다. 지구온난화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GDP 격차는 25% 벌어져 불평등이 심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1995년 발생한 시카고 폭염에 대해 ‘사회적 부검’을 실시한 에릭 클라이넨버그 뉴욕대 교수에 따르면 폭염 사망자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빈곤과 사회적 고립이었다. 부유층 거주 지역보다는 폭력범죄율이 높고 빈민층이 주로 사는 우범지역에서 폭염 피해자가 더 많았으며, 독거노인의 사망 비율이 높았다. 기후위기는 자연재난이 아니라 사회적 재난인 것이다. 기록적인 폭염이 발생했던 2018년 국내 온열질환자 중 육체노동자, 무직 등 취약계층 비중이 각각 28.7%, 20.5%를 차지하였다. 이상기후로 인한 건강 피해는 노약자, 저소득 계층에 더 심각하게 발생한다. 또한 도시가스가 공급되지 않는 농촌 지역과 저소득층은 상대적으로 비싼 에너지를 사용하며, 구도심 반지하주택이 밀집된 곳과 같이 주거환경이 열악한 곳에서 침수 피해가 더 크게 나타나는 것이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각국 정부는 전시에 준하는 강력한 조치를 취하고 있고 시민들도 생활양식을 바꾸며 이동 제한, 자가격리 등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이는 기후위기 대응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우리나라가 코로나19 방역 모범국가로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의 하나는 메르스 사태를 겪으며 방역체계를 구축하고 국민건강보험이라는 공공 안전망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메르스 학습효과가 코로나19 위기 해결에 도움을 주었듯이 코로나19의 교훈을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공공의료 시스템과 같은 정부의 공공투자, 정부의 강력한 조치와 자원 동원, 위기에 대한 선제적 대응, 시민들의 자발적 행동과 협력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중요한 교훈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후변화 취약계층 건강보호를 위한 사회안전망 등 커뮤니티와 개인의 회복력을 높일 수 있는 인프라를 강화해 나가야 한다.

※ 고재경외(2020). “코로나19,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마지막 기회”, 이슈&진단 No. 412, 경기연구원의 일부 내용을 발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