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서택효삼랑’에서 명명 … 민족문제연구소 진주지회, 명칭 변경 요구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의 승리를 위해 침략전쟁에 적극 가담했던 인물의 이름을 딴 저수지가 있어 명칭을 바꾸어야 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경남 사천시 용현면에 있는 ‘서택저수지’다. 민족문제연구소 경남진주지회(대표 강호광)는 29일 이 저수지를 관리하고 있는 한국농어촌공사 사천지사에 “서택저수지 명칭 변경”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이 단체는 “올해는 해방 75주년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 주위에 청산되지 못한 식민지 시기의 잔재가 치욕스럽게 존재하고 있다”며 “그 가운데 하나가 서택저수지다. 저수지 명칭을 바꾸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 단체에 따르면 ‘서택’저수지는 일본인 서택효삼랑(西澤孝三郞, 니시자와 고자부로)’에서 따온 것이다.
저수지는 일제의 식량 증산과 관련해 만들어졌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일본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산업자본이 비약적으로 성장하면서 농업 생산력이 급격히 떨어졌고, 특히 1918년 발생한 쌀 파동은 조선에서 산미증식계획을 수립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조선에서 산미증식계획은 1920년부터 1935년까지 장기 계획으로 수립되었던 것이다. 1923년 3월, ‘조선공유수면매립령’이 공포되어 조선 곳곳에서 연안을 매립하여 농토도 변경하는 공사가 진행되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이 계획에 따라 1928년 일본인 서택효삼랑은 사천 용현면 장송에서 신촌리까지 900m의 방조제를 축조하고, 1935년 12월 31만 7568평의 농지 조성을 완료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조선총독부 (1935년)와 (1935년), (1937년), 사천시의 (2003년), 국사편찬위원회의 등에 기록되어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서택효삼랑은 농지의 상류에 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저수지를 축조하였고, 저수지의 이름을 ‘서택저수지’로 명명하였다”며 “이 명칭은 해방 75주년이 되는 현제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이 단체는 “일제의 침략전쟁이 한창일 때 ‘서택’은 일본군의 승리를 위해 침략전쟁에 적극 가담했던 자”라며 “이러한 서택의 행적을 볼 때 아직까지 저수지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시민과 우리 민족 전체를 욕보이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서택저수지를 우리의 정서에 맞는 이름으로 변경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했다.
이들은 “저수지가 위치한 지역은 선 태종까지 세곡을 운반했던 ‘통양창(通陽倉)’이 있었던 곳으로, 이 지역에선 아직까지 ‘통양’이란 지명이 남아 있다. ‘통양저수지’로 명칭 변경도 조심스럽게 권유해 본다”고 했다.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