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광복회의 비전과 친일찬양금지법 제정에 대해 듣다

인터뷰 MC노·방학진 기획실장 | 정리 김혜영 선임연구원

이번 인터뷰는 6월 2일 연구소 5층 스튜디오에서 김원웅 광복회장과 가진,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5 제9화 “친일찬양금지법 제정을 추진하겠다”를 요약 정리하였다. 인터뷰 전문은 유튜브와 팟빵에서 ‘내역사 김원웅 광복회장’으로 검색하면 들을 수 있다.- 편집자

● MC노 2019년 21대 광복회장으로 취임하신 김원웅 광복회장님을 모셨습니다. 지난 1년간의 광복회 사업과 앞으로 광복회 비전을 들어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 김원웅 작년 6월 1일에 취임을 했으니까 딱 1년 됐습니다. 광복회는 독립유공자 후손 중 한명만 회원 자격이 주어집니다. 저 같은 경우도 7남매 중에 장남으로 저는 광복회원이지만 동생들은 광복회원이 아니고 독립유공자 유족이라고 부릅니다. 현재 약 8,100명이 광복회원으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 MC노 그렇군요. 광복회에서 주로 하는 사업들은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 김원웅 광복회는 민족정기를 선양하는 사업, 그리고 분단을 극복하기 위한 사업 등을 하도록 정관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 MC노 김원웅 광복회장님에 대해서는 방학진 기획실장님이 소개해주세요.
● 방학진 많은 분들이 광복회장 김원웅보다는 정치인 김원웅으로 기억하고 있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이 분의 숨겨진 이력 중에 하나는 부모님 두 분 모두 독립운동가십니다. 이런 분들을 우리는 ‘성골’이라고 하죠.(웃음)
● MC노 그러면 부모님 두 분은 어떤 분들입니까?
● 방학진 아버님은 김근수 선생님이시고 어머님은 전월선 여사님이십니다. 아버님은 1935년 중국 난징에서 의열단 활동을 하셨고, 광복군 총사령부에 가담하여 선전 및 정보수집 활동을 하셨습니다. 어머님은 16세인 1939년에 중국 귀주에서 조선의용대에 입대하였고 이후에 광복군에 가담하여 활동하셨습니다. 부부 광복군, 부부 독립운동가의 자손이십니다. 그래서 김원웅 회장님의 고향이 중국 충칭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와도 여러 일화들이 있는데요. 김근수지사님이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 추도사를 연구소 2대 이사장이셨던 조문기 선생님께서 하셨습니다. 생전에 조문기 선생님도 본인이 추도사를 한 집안의 아들이 국회의원이 되어 친일진상규명법을 제정하니까 큰 보람이었다고 여러 번 말씀하신 기억이 납니다.

● MC노 부모님과 관련해서 덧붙이실 이야기가 있을까요?
● 김원웅 저희 어머니는 의열단 후신인 조선의용대에 열여섯의 나이에 가입해서 스물한 살때 저희 아버지를 만나서 결혼하셨어요. 당시에는 두 분이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아버지 활동지역은 북쪽이고. 어머니는 남쪽 계림(桂林)이니까 서로 몰랐죠.
● MC노 그런데 어떻게 인연이 닿아서 결혼하셨어요?
● 김원웅 김원봉 선생과 김구 선생이 합작해 조선의용대가 한국광복군으로 합류했을 때 거기서 만난 거죠. 김구 선생님이 두 분의 결혼을 주선해서 제가 1944년에 태어난 겁니다.
● MC노 부모님 두 분의 만남이 어떻게 보면 독립운동사와 맥을 같이 하는 거네요. 두 세력이 만나면서 두 분이 만나신 거니까요.
● 김원웅 제가 독립기념관에 있는 자료를 보다 보니까 임시정부가 중국 국민당 정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는데 쌀도 배급했더라고요. 1인당 쌀 두 말씩 지급한다는 표시로 이름 옆에 쌀미(米)자 쓰고 이두(二斗)라고 쓰여 있어요. 당시 제 화명(華名 : 중국 이름)이 왕원웅, 아버지는 왕석(王碩)이라고 되어 있더군요.
● MC노 광복회장 취임 전에 국회의원 김원웅으로서 친일청산활동에도 많은 역할을 하셨죠?
● 방학진 그렇습니다. 14대, 16대, 17대까지 3선 국회의원을 역임하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참여정부 시절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과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국고로 환수하는 특별법이 제정되는데 이 두 가지 법 제정에 관여하셨습니다. 이는 반민특위 이후 국가 차원의 친일청산 활동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 MC노 이 당시에 법안 제정 과정에서 기억나시는 일이 있습니까?
● 김원웅 제가 1992년도에 마흔일곱 살 때 초선 국회의원이 됐어요. 그 당시에 이완용 후손이 재산을 찾아가겠다면서 재판을 하는데 법적으로 그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법을 만들기로 하고 민족정통성회복특별법을 만들었습니다. 법안 제정을 주도한 사람은 법률가인 장기욱을 포함해 제정구, 장영달, 이철, 유인태, 저 이렇게 참여했는데 법안을 만들려고 국회의원들의 서명을 받다가 놀랐어요. 국회의원 중에서 친일파 후손이 너무 많은 겁니다. 지금 실명을 밝힐 수는 없지만 ‘자신은 선대 때문에 서명을 못한다’고 합니다. 당시에 독립유공자 후손은 저와 이종찬 의원 단 둘밖에 없더라고요. 국회의원 중에 친일파 후손들은 많은데 말입니다. 그때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우리 사회 기득권층에 얼마나 많은 친일반민족세력이 있는가 하고.
● MC노 소수일거라고는 생각했지만 딱 두 분밖에 없었다는 건 충격적이네요.
● 방학진 두 명이라도 있는 게 어딥니까. 그 당시가 기억이 나요. 1992년도인데 우리 연구소가 당시에는 반민족문제연구소였을 때인데 저는 대학생 자원봉사자로 그 당시에 말씀하신 민족정통성회복특별법 기사를 열심히 스크랩했던 기억이 납니다. 탑골공원에서 서명운동도 하고.
● MC노 광복회장으로 취임하신 지 1년이 되신 거잖아요. 1년 동안 광복회가 많이 달라졌다고요?
● 방학진 개인적으로는 광복회가 정권교체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광복회가 1965년에 만들어졌는데 어떻게 보면 박정희가 만든 관변어용단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 MC노 그렇지만 출범 당시에도 독립지사 후손 분들의 단체 아닙니까?
● 방학진 예. 그렇습니다. 그러나 1965년 한일협정에 대해서 국민적 저항과 친일정권이라는 비판을 무마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의도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제대로 광복회가 활동했으면 괜찮은데 국민들 눈높이에 맞지는 않았었습니다. 회장님이 오시면서 바뀐 것이 많은데요. 예를 들어서 현재 달고 계신 배지가 광복회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말해 줍니다. 배지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 김원웅 하나는 세월호 희생자 부모님이 만들어주신 배지, 5·18 40주년 배지 그리고 광복회 배지입니다.
● 방학진 이전 광복회장님들은 언론에 나오는 게 일 년에 두 번쯤 됩니다. 삼일절과 광복절 기념식. 그런데 김원웅 회장님은 5·18은 기본이고 봉하마을 참배도 다녀오시고. TV조선과 채널A 재승인 취소요구, 윤봉길 의사 손녀가 미래한국당 비례대표가 된 것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하셨습니다. 그 다음에 남북정상간 응원 메시지도 남기셨고, 류석춘과 이영훈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전의 광복회장님들이 전혀 하시지 않았던 사이다 행보와 발언을 보여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올해가 5·18 40주년인데 5·18민주묘지에서 광복회의 과오에 대해서 반성하시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 MC노 5·18과 관련해서 광복회가 사과해야 될 일이 어떤 건가요?
● 김원웅 광복회는 매월 광복회보를 발행합니다. 5·18 당시 광복회보에는 광주항쟁을 소요사태라고 했고 소요사태를 진압한 전두환의 리더십에 대해서 칭송한 글이 있습니다.

● MC노 1980년 광복회보에?
● 김원웅 예. 그것도 문제가 있고 최근 사례로는 박근혜 정부 때 보훈처가 ‘임을 위한 행진곡’에 대해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노래라고 하면서 제창하지 못하게 했죠. 그때도 광복회는 다른 보훈단체들과 함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면 각종 행사에 보이콧하겠다고 언론에 발표했었습니다.
● MC노 그 당시 광복회의 입장이 그랬습니까?
● 김원웅 제가 회장으로 취임한 후 알아보니 광복회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관련해 논의한 적도 없고 언론보도를 보고 알았답니다. 그렇지만 침묵했죠. 거짓 발표에 대해서 본인들의 입장이 아니라고 말하지 못한 거예요. 이런 점들이 미안했습니다.
● MC노 김원웅 회장님이 작년 6월 취임사를 보면 ‘민족민주진영의 맏형이 되는 광복회가 되겠다. 친일청산으로 대한민국을 애국의 대상이 되는 나라로 만들고 싶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동안의 활동들은 취임사를 구현하겠다는 활동이신 거죠?
● 김원웅 그렇습니다.
● MC노 TV조선과 채널A 재승인 취소요구는 어떤 문제의식에서 하신 겁니까?
● 김원웅 TV조선과 채널A에 대해서 줄곧 조사했어요. 패널이 한 얘기긴 하지만 〈반일종족주의〉를 쓴 이영훈 교수에 대해서 학계에서 존경받는 분이라고 홍보하고 강제징용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잘못된 판결이라고 이야기해요. 또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강제성이 없고 자발적으로 갔다는 이야기도 하고요. 친일을 비호하는 등의 이런 발언에 대해서 광복회에서는 용납할 수 없고 이런 방송이 계속된다는 것은 국가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존재하면 안 되는 방송입니다. 저 혼자 한 것은 아니고 광복회원들의 의사를 듣고, 찬성하신 분들의 실명을 밝히고 방송통신위원회에 의견서로 제출했습니다.
● MC노 김원웅 회장님 취임하시면서 광복회가 역동적인 이미지로 바뀌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그동안 제가 가지고 있던 광복회는 박제화된 이미지가 있었는데 지금은 역동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느낌이에요. 용산구 청파동에 식민지역사박물관이 생기고 오늘 처음 오신 건데 느낌이 어떠셨어요?
● 김원웅 저는 민족문제연구소가 처음 생길 때 연구소 이사였습니다. 처음부터 관심이 많았고, 잘 되기를 바랐고요. 그동안 연구소가 한국역사의 물길을 제대로 잡는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사회를 각성하게 만들고 결집하게 만들었고요. 그렇기 때문에 힘을 보태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보태서 같이 하자. 그래서 저희들이 중요한 이슈가 있을 때 광복회 직원들이 연구소에 문의도 하고, 협의도 하고 있습니다.
● MC노 오늘 가장 중요한 주제인데 친일찬양금지법 제정과 관련된 얘기입니다. 광복회가 이번 21대 국회의원 지역구 출마자 전원에게 친일찬양금지법 제정에 관한 찬반의사를 물었습니다. 지역구 국회의원 당선자 253명 가운데 2/3가 넘는 190명이 찬성의사를 밝혔고 광복회는 친일찬양은 물론이고 5·18민주화운동 왜곡을 형사 처벌할 수 있는 역사왜곡금지법의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히셨습니다. 이것과 관
련해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 김원웅 유럽은 나치찬양을 하면 처벌받습니다. 그것에 준하는 법을 제정하겠다는 것이며 결과적으
로 일단 청신호가 켜졌는데 역사왜곡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5·18과 묶어서 하던지 별도로 하던지 검토할 계획입니다.
● 방학진 190명이라고 한다면 소위 이야기하는 민주진보진영뿐만 아니라 미래통합당까지도 찬성한 거죠.
● 김원웅 미래통합당 당선자 중에 55%가 찬성했습니다. 국회가 정식으로 출범하면 원내 의석이 있는 당에게 당론으로 채택해 달라는 공문을 보낼 계획입니다.
● MC노 올해 2020년은 봉오동과 청산리전투 100주년, 한국광복군 창설 80주년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광복회에서는 어떤 일들을 계획 중이신가요?
● 김원웅 6월 6일이 현충일이지만 광복회에서는 민족정기가 짓밟힌 날로 정했습니다. 친일경찰이 반민특위를 습격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친일경찰들이 모의하고 반민특위 요원들을 감금했던 곳이 서울중부경찰서입니다. 그 중부경찰서 앞에서 우리가 인간 띠 잇기 행사를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경찰이 국가공권력을 가지고 역사적인 범죄를 저지른 것에 대해서 사과하라고 요구할 계획입니다.
● MC노 경찰 얘기를 했습니다만 사회 모든 분야에서 역사를 바로 세우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지적해주셨는데 어떤 내용입니까?

 

● 김원웅 우리나라에서 보수라는 분들은 일본 천황을 지키고 해방 후에는 친일반민족세력들의 기득권을 지켜온 가짜 보수입니다. 우리는 보수와 진보의 구도가 아니라 민족과 반 민족의 구도다. 인류애와 반인류애의 구도다. 그런 관점에서 시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해방 후 75년 동안 사회모순의 핵심은 친일 미청산에 있습니다. 모든 갈등이 거기서부터 나옵니다. 친일을 청산하지 못하면서 친일세력을 기득권에 앉혀놓고 단결하라고 하면 일제의 내선일체와 뭐가 다릅니까. 국민통합이 불가능한 거죠. 국민통합을 위해서라도 친일청산을 이루어야 하며 그것은 미래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