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2020년 다섯 번째 희망편지를 드립니다.
5·18 민주화 운동은 40년 전 6월 민주항쟁과 촛불 항쟁을 거쳐 한국 민주주의의 터전이었고, 세계적으로도 민주화 운동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5·1 8 민주화 운동 당시 주먹밥을 나눠 먹고, 부상자를 살리기 위해 헌혈하는 등 인간적 유대와 연대, 그리고 타인을 위한 헌신이 넘치던 ‘대동정신’은 코로나19를 겪고 있는 작금의 시대를 되돌아보게 합니다.
우리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사회적 거리 두기’를 감내할 수밖에 없습니다. 감염병은 누구에게나 위협이 되지만, 경제 침체는 불안정한 고용노동자, 영세자영업자와 같은 취약계층에게 훨씬 큰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K-방역’의 성취가 자랑스럽지만, 코로나19의 보이지 않는 사회적 비용은 취약 계층에게 부담을 지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과 함께하는 대동 정신이 필요합니다.
현재 위기에 대응하는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이명박 정부의 위기 대응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1% 수준이었지만 문재인 정부의 대응은 대략 금융 지원을 포함해 223조 원으로 GDP의 11.7% 수준에 이릅니다. 최초로 전 국민 재난기본소득이 지급되고 있습니다. 사회적 우정을 키우는 대동정신을 정부가 실천하려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취약 계층이 코로나19의 난관을 넘어서기란 역부족입니다. 자영업자 대상으로 최대 3,000만 원 1.5% 저리 대출, 이자 납부 기간 연장, 공공기관 건물 임대료 인하 등이 추진되고 있지만, 여전히 사각지대가 존재합니다. 일자리 대책도 한계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일자리 안정자금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영세사업주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도입된 탓에 고용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절반에 가까운 국민에게는 유효한 대책이 아닙니다.
고용보험 가입을 전제한 고용안정지원금도 비슷한 실정입니다. 정부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영세자영업자, 무급휴직 노동자 등 특수고용노동자에게 별도의 대책을 만들어 월 최대 50만 원을 16만 명에게 지원한다고 하지만 특수고용직 노동자의 규모 220만 명에 비하면 턱 없이 부족합니다.
그나마 경제 살리기에 집중한다면서 기업을 살리기 위한 지원에는 180조 원을 계획하고 있지만 민생과 기업의 고용 유지 지원은 49조 원에 불과합니다. 당장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만들기 어렵지만, 취약 계층에게 사회적 부담이 가중되는 현실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뒤따라야 합니다.
먼저 ‘실업부조’를 새롭게 상상해야 합니다. 현재 일자리 불안과 관련해 국민취업지원제도와 전국민고용보험을 도입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습니다. ‘국민취업지원제도’는 기존 ‘취업성공패키지’와 ‘청년구직활동지원제도’를 통합한 형태입니다.
그러나 근로빈곤층에 대한 소득 지원은 미미하고, 직업 훈련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원 대상에서 빠진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전국민고용보험은 당장 도입하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고용보험이 제조업 및 정규직 중심이라 고용형태노동자나 영세 자영업자를 보호하기엔 근본적으로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국형 실업부조’의 길을 새롭게 만들어야 합니다. 사회 보험의 틀이 아닌 새로운 방향과 모습을 상상해야 합니다. 보험 기금에 관한 기여와 고용 여부와 관계없이 저소득실업자에게 소득이 지급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구직자만 위한 게 아니라 비정규직, 영세자영업자와 같은 불안정한 노동자까지 포괄하는 제도로 만들어야 합니다.
상상력의 빈곤은 관료 중심으로 코로나19 이후의 세계를 그리고 있는 탓이 큽니다. 우리는 경제 관료 중심의 ‘비상경제회의’를 넘어서야 합니다. 경제 대책과 사회 정책을 균형 있게 논의하고, 시민사회가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비상사회경제회의’로 거듭나야 합니다. 정책의 수요자이자 주권자인 시민이 정책을 만드는 데 마음껏 상상을 펼칠 수 있어야 합니다.
‘국민주권 시대’를 선언한 문재인 정부가 실천해야 할 숙제입니다. 이러한 실천이 있어야 5·18 민주화 운동 정신을 계승하고 대동정신을 실천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거룩한 일상을 지키며 늘 평안하시길 빕니다.
희망제작소 소장
김제선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