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와 민족주의

전 세계가 코로나 창궐로 혼이 쏙 빠져 허둥대는 이 때, 때 아닌 민족주의(nationalism)가 고개를 들고 있다. 코로나라는 창이 걸어 온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방패를 만들며 민족주의가 득세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마스크와 방호복 등 개인보호장구(PPE)의 수출 금지에서부터 백신과 치료약을 개발하는 데까지 전 세계의 국가가 자국민의 우선 보호라는 미명하에 또 다른 방패막이 전쟁이 시작됐다.

뉴욕타임스는 이를 두고 국경을 초월해 창궐하는 신종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세계 경제 강국의 지도자들이 국제적 협력은 뒤로 물리고, “염치없이 민족주의적 원칙에 사로잡혀 있다”고 꼬집었다.(“A New Front for Nationalism: The Global Battle Against a Virus,” New York Times, April. 10, 2020). 삶과 죽음의 갈림길 앞에서는 강대국이 그동안 입에 달고 살았던 국제적 공조나 세계화 이런 것은 뒷전으로 물리는 것이 당연지사인 듯 보인다.

그런데 코로나 창궐과 관련해 최근에 대두하는 민족주의에 하등 개의치 않고 무대포로 행보하는 것이 있다. 바로 글로벌 제약회사이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그것은 민족주의와 세계화를 교묘히 자기 편의대로만 악용해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악질 제국이다. 오늘은 이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약값을 둘러싼 오래된 논쟁

그 이야기 이전에 먼저, 약값을 둘러싼 오래된 논쟁을 살펴보자. 여기엔 두 가지 핵심주장들이 존재한다. 하나는 제약회사가 약값을 마음대로 올리지 못 하도록 규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나 이번 코로나 사태와 관련해서 온 국민, 나아가 세계인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 앞에서 약과 백신을 개발한 국가나 제약회사가 그것을 통해 폭리를 취하거나 심지어 그것들을 무기로 삼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철저한 시장자유주의의 철학을 기반으로 한 입장이다. 약값은 그것을 개발한 제약회사에 맡겨야 시장이 제대로 돌아가게 되며 그것이 곧 국민 건강을 증진하는 데 보탬이 된다는 입장이다. 간단히 말해서, 신종 코로나와 같은 새로운 질병이 나타날 때 치유할 약을 개발하는 회사에 인센티브를 주지 않는다면 누가 신약 개발을 하겠느냐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결국 애먼 시민들만 피해를 보게 되니, 혁신을 위해선 확실한 보상이 필요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약값을 시장에 완전히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양자 중 어떤 것이 맞을까? 그 이야기는 맨 뒤로 미루기로 하고, 코로나 전쟁에서 방패를 개발하고 있는 제약회사 이야기부터 해보자.(Daniel Hemel and Lisa Larrimore Ouellette, “Pharmaceutical Profits and Public Health Are Not Incompatible,” New York Times, April 8, 2020).

 

희귀약품(orphan drug): 길리어드 사이언스의 렘데시비르

주지하다시피, 현재 시점에서 신종 코로나 백신이나 치료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각국이 발등에 불이 떨어져 신약을 개발 중에 있다. 뉴욕타임스 보도로는 백신은 약 50개가 초기 개발 단계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4월 10일자). 는 20개 이상으로 보도한다.(“Coronavirus: Are we getting closer to a vaccine or drug?,” BBC News, April 2, 2020). 약의 경우, 에이즈(HIV) 치료제 등을 포함해 3개의 약품이 주목을 받고 있는데, 그 중 하나인 길리어드 사이언스(Gilead Sciences)의 렘데시비르(remdesivir)가 단연코 선두다. 렘데시비르는 4월 3째 주 코로나환자들을 상대로 한 임상실험결과 획기적인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Report: Covid-19 patients recovering quickly after getting experimental drug remdesivir,” CNN, April 17, 2020).

그런데 길리어드의 행보가 매우 고약하다.

길리어드의 렘데시비르는 원래 에볼라(Ebola) 치료제 목적으로 개발됐지만 이제는 바이러스성 질환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사용할 약으로 노선을 바꿨다. 에볼라가 서아프리카에 국한된 터라 수익을 크게 못 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 신종코로나 치료제로 공인을 받느냐 아니냐의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그런데 신종코로나 치료제로는 아직 정식 승인도 받기 전인 지난 3월 23일 길리어드는 렘데시비르를 신종코로나 잠정 치료제로서 희귀약품(orphan drug)지정을 미국식품의약국(FDA)에 요청했다. 신종코로나가 미국 전역을 휩쓸며 공포감을 조성하기 시작할 때를 틈타서 재빠르게 말이다. 그리고 희귀약품 지정을 받았다.

희귀약품 지정은 원래 유병환자 수가 20만 명 미만의 희귀병에 한 해 그 약을 개발한 제약회사의 투자비용을 보장해 주기 위해 만든 제도로 그렇지 않은 약에 비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약값이 고가이다. 그리고 이미 에볼라 치료용으로 받은 특허(2035년까지)와는 별도로 신종코로나 잠정 치료제로서도 특허를 2027년까지 받았다. 다른 회사들이 더 싼 가격으로 복제 약을 만들어낼 수 있는 방법을 이중으로, 마치 블록체인처럼 완전히 차단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다가 아니다. 희귀약품으로 지정될 경우 오는 특혜는 더 있다. 임상비용의 25%에 달하는 비용을 세금 공제를 받을 수 있다. 그것은 대략적으로 4천만 달러(약 486억 원) 정도가 될 것으로 추산된다. 이것은 누가 봐도 아무 죄 없는 국민들이 신종코로나로 죽어나가는 이 때, 이것을 십분 이용해 뱃속을 채우려는 제약회사 길리어드의 발 빠른 행보인 것이 분명하다.

아니나 다를까 이것을 두고 거센 비판이 일었다. 샌더스는 길리아드의 희귀약품 지정 신청이 “완전히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 일갈했다(왜 이런 일에는 샌더스만 나서나? 왜 그런지는 뒤에 나온다). 소비자권리 단체인 공중시민(Public Citizen)을 필두로 한 50개의 시민단체도 “전대미문의 치명적인 신종코로나 창궐을 틈타 부당한 폭리를 취하려 법의 허점을 악용한 길리어드”라며 맹렬히 비난 했다. 결국 이런 반발이 일자 길리어드는 희귀약품 지정 신청을 슬며시 철회했다.(뉴욕타임스, 4월 8일자). 필자가 FDA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실제로 길리어드는 희귀약품 지정을 신청해 지정받았고, 그 후 철회한 것이 확인되었다. 그렇다면 비록 신청 철회는 되었지만 이런 특혜가 어떻게 이렇게도 신속하게 이루어졌는가를 따져 봐야 한다. 비록 진단검사키트 부족으로 검사를 못해 감염자의 숫자가 잡히지 않았지만 길리어드가 신청을 할 때는 코로나가 이미 광범위하게 미국 전역에 퍼진 뒤였는데 어찌 이것을 알고도 20만 명 미만의 희귀병 약으로 지정을 받을 수 있단 말인가? 하긴 희귀하긴 하다. 처음(novel) 생긴 병이니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처음 생긴 괴질이지 감염숫자는 미국에서만도 이미 20만 명을 훨씬 넘길 것이 분명한 데 희귀약품 지정을 해서 막대한 수익을 올릴 수 있게 특혜를 준단 말인가. 거기다 세제혜택까지 덤으로.

도대체 무슨 일이 트럼프 행정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렘데시비르의 코로나 바이러스 치료 희귀약품 신청, 지명, 철회를 보여주는 미국 식품의약국의 사이트 캡처 https://www.accessdata.fda.gov/scripts/opdlisting/oopd/listResult.cfm>

 

약값 내리겠다고 공약한 트럼프

지난 회에서 필자는 트럼프가 대통령 공약으로, 그리고 되고 나서 일성이 “제조업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한 했지만, 전혀 지켜지지 않았음을 지적했다. 그런데 약값 인하 공약 또한 마찬가지다. 천정부지로 오르는 미국의 약값 하락과 안정은 미국이 당면한 큰 숙제다. 제약회사가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볼모로 국민들의 호주머니를 탈탈 털어갈 뿐만 아니라 노인 및 사회약자들의 약값을 보조하는 국가의 재정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2016년 대통령후보자로서 유권자들에게 지나치게 높은 미국의 약값을 반드시 내리겠다고 약속했다.(“Trump draws ire after retreat on drug prices pledge,” The Hill, Nov. 24, 2019). “[정부가 제약회사와] 약값 협상에 들어가면, 우리는 마치 미치광이처럼 협상에 임할 것이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반드시 약값을 떨어트리겠다는 각오를 다진 것이다.

미국의 약값이 어느 정도나 비싸면 이런 소리가 나왔을까? 한 가지 예를 보자. ‘톡소프라즈마증’(toxoplasmosis)이라는 기생충 감염병이 있다. 임신 중 감염되면 유산은 물론 태아에 치명적인 병이다. 이것의 치료제로 개발된 지 67년 된 다라프림(Daraprim)이란 약제가 있다. 그런데 2015년 1알에 13.5 달러(약 1만6천 원) 하던 약이 하룻밤 새 750 달러(92만 원)로 껑충 뛰었다. 무려 50배가 넘게 가격이 오른 것이다. 말이 안 되지만 이 약이 꼭 필요한 희귀병 환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사서 먹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국민과 환자를 볼모로 약값을 자신들 마음대로 고무줄처럼 늘일 수 있는 곳이 바로 제약회사다. 이런 일에 정부는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마냥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있었다.(“Drug Goes From $13.50 a Tablet to $750, Overnight,” New York Times, Sept. 20, 2015). 그래서 지금도 다라프림의 가격은 떨어지지 않은 채 아직 그대로다.

천정부지로 솟아오르는 약값에 대한 국민들의 원성이 드높아지자 더는 방치하지 말자고 민주당에서 약값 하락을 도모하는 법안(이하, H.R. 3)이 상정되었을 때(진심은 아니다. 이에 대해서 뒤에 밝히겠다), 트럼프는 야당의 법안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열광적으로 지지의사를 표명했다. 2019년 9월 19일 트럼프가 띄운 트위터를 봐도 대번에 알 수 있다. “나[트럼프] 때문에 거의 50년 만에 처음으로 약값이 진정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으로 불충분하다. 국회가 도와줘야 한다. 현재 공화당과 민주당의 법안이 다 올라와 있다. 난 두 개 다 좋다. 우리 한 번 잘해서 약값을 내려 보자!”


H.R.3법안에 흥분해 “나[트럼프] 때문에 거의 50년 만에 처음으로 약값이 진정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으로 불충분하다. 국회가 도와줘야 한다. 현재 공화당과 민주당의 법안이 다 올라와있다. 난 두 개 다 좋다. 우리 한 번 잘해서 약값을 내려 보자!”라고 쓴 트럼프. 그러나 한 달 뒤 그의 태도는 180도 돌변했다.

 

180도 돌변한 트럼프

그랬던 트럼프가 한 달이 채 되지도 않아 돌변했다. 그것도 180도로. 이 “노인들에게 안 좋을 것”이라면서, 국회서 통과되더라도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난데없는 오리발을 내밀었다.(“How Trump and the Democrats Parted Ways on Lowering Drug Prices,” Politico, Dec. 11, 2019). 얼핏만 들어도 약값 인하와 노인들에게 해가 되는 것은 전혀 연동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거꾸로가 말이 된다면 모를까. 약값 인하가 벌이가 없는 대부분의 노인들에게 득이 되면 됐지 해가 될 게 뭐 있나. 그런데 트럼프가 저런 말을 하는 것은 순전히 다른 셈법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의 수족 중 하나인 백악관의 보건정책 고문인 조 그로건(Joe Grogan)의 말을 들어보면 그 셈법이 보인다. 그는 “이 가장 혁신적인 의약품에 대한 가격을 관료들이 정하게 해서 결국 제약회사들이 사업을 접을 것이 분명하다”며 법안에 반대했다.(“Grogan and Philipson: We can lower drug prices and spur medical innovation. Pelosi’s H.R. 3 is not the answer,” Fox Business News, Dec. 6, 2019). 또 다른 수족인 주무부서 보건복지부 장관 알렉스 아자르(Alex Azar)도 트럼프가 돌변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의 셈법은 얼핏 보면 아무런 저의가 없이 깔끔해 보일 수 있다. 의약품의 가격이 낮아질 경우, 제약회사들이 신약개발에 등한시 할 것이고 그것은 곧 질병을 달고 사는 노인층에 직접적인 타격이 갈 것이라는 뜻으로 들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거기엔 과연 다른 저의는 없는 것일까?

 

핵겨울로 협박한 제약회사들

저것은 누가 봐도 제약회사 측의 속셈과 맥을 같이 한다. 실제로 제약업계의 최대 로비스트업체인 (the Pharmaceutical Researchers and Manufacturers of America: 이하 PhRMA) 수장인 스티브 우블(Steve Ubl)은 그 법안이 제약업계를 “파괴할” 것이며, 그로 인해 제약업계엔 “핵겨울”(nuclear winter)이 도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PhRMA CEO warns Pelosi bill to lower drug prices would be ‘devastating’ for industry,” The Hill, Oct. 10, 2019). 그 법안이 고작해야 제약업체가 천정부지로 올린 250개의 약에 대해 정부가 최고 가격에 한도를 정하는 협상을 하겠다는 법안인데 그걸 가지고 일개 로비스트가 제약회사의 대파괴와 그것을 핵겨울에 빗대어 위협을 하다니. 가히 간이 배 밖으로 나왔다. 미 의회예산국(C.B.O.)도 핵겨울은커녕 법안의 효과는 미미할 것으로 내다봤다. 향후 10년간 제약회사서 내놓는 약의 숫자가 고작 8~15개 정도 줄어들고 노인들을 위한 의료복지프로그램인 메디케어로 지출되는 정부예산이 2023~2029년 사이 7년 동안에 3,450억 달러(약 420조 원) 줄어들 것이라는 추정을 들면서 그 법안 효과의 과장을 경계했다.(“PhRMA says Pelosi bill will trigger ‘nuclear winter,’ CBO projects $345B savings,” S&P Global, Oct. 14, 2019). 그런데 이들을 이렇게 대담하게 키운 것이 바로 미국 정치권이다.(필자의 『부자는 어떻게 가난을 만드는가』참조).

 

타락한 정치와 로비과거 20년간 대정치권으로 흘러들어간 돈은 573백억 원

한 마디로 이런 제약회사들의 간이 배 밖으로 나온 행보를 보인 데에는 다 믿는 구석이 있어서다. 바로 입법기관과 정치권에 대한 기름칠을 대대적으로 해 놓아서다. 미국에는 저런 기름칠이, 즉 로비가 법으로 허용되어있다. 제약업 관련 매체인 에 따르면, 1999년부터 2018년도까지 20년 동안 제약회사의 대정치권 로비는 그 어느 업계보다 대대적이었다. 그것은 물경 47억 달러(5조7천3백억 원)라는 수치가 증명해 준다. 그런데 50개 주 및 연방에서 치러지는 각종 선거에 들어간 로비비용 13억 달러(1조5천8백억 원)는 포함 안 된 것이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아래 표는 PhRMA가 4억2천2백만 달러(5,142억 원), 화이저 2억1천9백만 달러(2,668억 원)[선거운동에 지불한 정치후원금 명목 2,300만 달러(280억 원)은 별도]의 로비자금을 대정치권에 과거 20년 동안 뿌렸던 수치이다.(Pfizer, Amgen, Lilly spent most to lobby Congress, study finds, BiopharmaDive, March 4, 2020; Olivier J. Wouters, March 3, 2020).


1999년~2018년도까지 제약회사의 로비비용 지출 현황: 단위는 백만 달러

이렇게 로비에 쓴 돈이 엄청나게 많으니 제약회사들이 ‘핵겨울’ 운운하며 큰소리를 땅땅 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돈이 그냥 쓰고 버리는 돈인가? 아니다 쓴 것 이상의 이득이 생기니 하는 것이다. 일단 돈으로 구워삶은 정치권 작자들이 자신들의 편이라는 것을 아는데 거칠게 무엇이 있겠는가. 그러니 마음대로 구는 것이다. 기름칠한 정치권에는 여야, 즉 민주당과 공화당을 가릴 필요가 없다. 모두 돈을 먹었고 모두 썩었으니 말이다. 일명 펠로시 법안이라고 불리는 법안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하원의장인 민주당의 펠로시(Nancy Pelosi)는 안 받았겠는가? 천만에 말씀. 2008년 이후부터 2018년까지 10년 동안 선거기간 중 펠로시가 제약회사로 받은 돈은 총 230만 달러(280억 원)에 이른다. 그 외 민주당의 법안관련 2, 3인자에게 흘러간 돈도 1백만 달러(12억 원)가 넘는다.(“The top 3 House Democrat leaders have pocketed millions from pharma,” FiercePharma, Nov. 29, 2018). 펠로시가 2019년 전반기에 받은 돈은 12,500달러(1500만 원)이다.(“Pharma cash donations target ‘vulnerable’ lawmakers as industry tries to defend itself,” USAToday, Aug. 26, 2019).

이것을 두고 약값 인하 운동을 벌이고 있는 요르게(Margarida Jorge)는 “제약회사 입장에서 볼 때, 그들의 이익에 반하는 구조적 변경 시도가 있을 때 돈으로 그것을 막을 수만 있다면 그것은 최상의 시나리오다. 그런 맥락에서 약값 인하의 열쇠를 쥐고 있는 공화당 상원의원 맥코넬 같은 이에게 돈을 처바르는 것은 일견 이해가 가기도 한다”고 이야기 한다.(Bloomberg Law, Dec. 31, 2019). 제약회사 입장에서 자신들의 이익추구를 위해 돈을 기부하는 것은 합리적 행위라는 말이다. 그것도 법이 허용하고 있는데 왜 안 하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아무리 미국 법이 허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도 그 정치기부금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것은 바로 “눈먼 돈”(dark money)이라는 사실이다.(USAToday, Aug. 26, 2019). 그것은 뇌물의 다름 아니다. 정치기부금이라고 당의정을 발랐을 뿐 본질은 정경유착의 기름칠이다. 그리고 그런 눈먼 돈을 버젓이 떳떳하게 주고받는 것을 법으로 허용하게 만든 것도 바로 정경유착의 결과다.

 

민주당의 약값인하 법안 발의조차도 쇼, ,

그러니 무조건 제약회사편만 들던 공화당은 아예 논외로 치고, 법안을 발의한 민주당의 행보도 그 저의를 파악해야 한다. 그게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것은 그저 국민들에게 “우리 지금 이렇게 너희의 약값을 위해 애쓰고 있다. 알아줘!”하는 일종의 생색내기 쇼에 불과하다. 진짜로 약값을 인하해서 서민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국가 재정에 보탬이 되기 위해 하는 제스처가 절대로 아니라는 말씀이다. 그리고 그런 생색내기에 덧붙여, 그들이 노리는 속셈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제약회사에게 건네는 메시지다. “내가 돈이 더 필요한데 말이야. 뭐 좀 더 없나? 요새 내 호주머니가 비었어”하는 손짓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것을 두고, 선거운동정화를 위한 초당적 법센터(the Nonpartisan Campaign Legal Center)의 브렌단 피셔(Brendan Fischer)는 이런 로비에 들어가는 돈을 “샤워 머니(쏟아 붓는 돈: shower money)”라 부르면서, “민주당과 공화당 의원들이 제약회사의 약값에 대해 어떤 행동을 취할라치면, 제약회사는 의원들에게 접근해 그들을 움직일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샤워머니라고 여긴다”고 일갈한다.(FiercePharma, Nov. 29, 2018). 는 가 일종의 패스트트랙을 타더라도 여러 난관이 있어 실제로 법안이 통과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펠로시가 감안하고 저런 가식적인 행보를 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거기다 처음엔 환영일색이던 트럼프까지 거부의사를 밝히고 있으니 펠로시야 말로 꿩 먹고 알 먹는 재미를 쏠쏠히 보고 있는 것이다.(“How Trump and the Democrats Parted Ways on Lowering Drug Prices,” Politico, Dec. 11, 2019).

그런데 필자는 트럼프의 취임초기와 작년 약값 인하에 적극적이었던 것에는 일말의 진정성이 있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트럼프는 원래부터 직업 정치인이 아니었고 공화당에서도 외부자였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과거 수십 년 간 벌어졌던 제약회사와 정치인들 간의 부당한 거래의 적폐로부터 빗겨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제약회사가 약값을 턱없이 올리고 국민과 국가 재정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것이 터무니없다고 진정으로 생각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해서 이미 제약회사들로부터 두둑이 호주머니를 채운 공화당의원들의 결사반대를 무릅쓰고 약값 인하를 하려고 했던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런데 그랬던 그가 도대체 왜 갑자기 태도를 바꾼 것인가? 거기엔 그럴만한 속사정이 있다.

 

트럼프의 패착: 회전문인사

이제 와서 패착이라고 하면 트럼프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그의 애초의 의도를 선의로 생각해서 평가해 볼 때 그의 태도 변화는 패착의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 어떤 패착을 썼을까? 늘 그렇듯 인사다. “인사가 만사”라는 것은 동서양을 가릴 것이 없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는 두 명의 수족을 부렸다. 앞에서 언급한 보건정책 고문인 조 그로건과 보건복지부 장관 알렉스 아자르이다.

나는 트럼프가 약값을 낮출 것이라 말하면서 이들을 기용하는 것을 보고 “그러면 그렇지 하고” 약값 인하는 물 건너갔음을 직감했다. 왜 그랬을까? 그들의 신분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로건은 길리어드 사이언스의 로비스트였고(“He Raised Drug Prices at Eli Lilly. Can He Lower Them for the U.S.?” New York Times, Nov. 26, 2017), 아자르도 엘리 릴리의 로비스트였다.(Fox Business News, Dec. 6, 2019; New York Times, Nov. 26, 2017). 둘 다 전직이 거대 글로벌 제약회사의 로비스트! 기가 막힌다. 민간 제약회사의, 그것도 그들을 위해 돈을 들고 대정치권인사들을 만나 로비스트로 활약했던 이들이 대국 미국의 백악관과 내각에 들어가 공직을, 그것도 중직을 맡았다니.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그런데 이런 일은 이제 관행이 되어버렸다시피 해서 미국에선 일도 아닌 게 되어 버렸다. 이것을 ‘회전문 인사’(revolving door)라고 한다. 미국의 ‘회전문인사’란 인물이 부족해 관직에 쓴 사람을 또 갖다 쓰는 우리네 것을 말함이 아니고, 그 처음이 어디가 됐든 한 사람이 정부기관과 민간기업을 돌고 도는 인사를 말한다. 이런 이들을 옆에 두고 나랏일이랍시고 하고 있으니 트럼프의 진정성이 훼손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트럼프는 원래 선거공약으로 로비스트들을 백악관 및 주요 공직에 얼씬도 못하게 할뿐만 아니라, 관직에 있던 이들이 퇴임 후 로비스트로 활동하는 것을 금지하겠다고 선언했었다.(“Trump puts five-year lobbying ban on his political appointees,” Reuters, Jan. 29, 2017). 그랬었는데 그것부터 지켜지지 않았으니 일말의 진정성 있던 일조차 훼손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 수밖에. 그러니 이런 것을 보며 필자는 약값 인하는 애초부터 글러먹었다 하고 일찌감치 단정했던 것이다.


“엘리 릴리를 위해 약값을 올렸던 알렉스 아자르가 과연 미국을 위해 약값을 내릴 수 있을까?”란 제목의 뉴욕타임스 기사. 트럼프의 약값 인하 공약은 제약회사를 위해 일했던 로비스트를 보건복지부 장관에 기용함으로써 물거품이 돼버렸다.

 

규제포획: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를 맡겨라

이렇게 “내가 언제 그랬냐”면서 트럼프가 말을 싹 바꾸어 로비스트들을 고용하면서 약값인하는 이미 틀어질 운명이었다. 그리고 정책고문 그로건과 아자르의 입을 통해 펠로시 법안은 벼랑 끝에 몰렸다. 그들은 제약계의 혁신을 자극하면서도 동시에 약값을 내릴 수 있는 방안이 분명히 있다면서 펠로시 법안을 반대했다.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인 말도 안 되는 게임에서 그런 게 어디 있겠는가? 현실적으로 그것은 미국에선 불가능하다. 불가능한 것을 그럴싸하게 이야기 한 것일 뿐 속내는 절대로 안 된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민주당의 펠로시도 이럴 줄 알고 이미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겉으로만 국민을 위하는 척 쇼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코로나 사태를 틈타 잽싸게 트럼프 행정부에서 길리아드의 렘데시비르가 희귀약품으로 지정해 특혜를 주려했던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길리어드의 로비스트가 백악관의 정책고문으로 턱하니 앉아있고, 게다가 코로나 대응 팀에 일원으로 참여하고 있는데 그 정도 일이야 쉬운 죽 먹기 아니겠는가.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를 맡긴 격이니 안 그럴 수밖에. 이런 것을 경제학자 조지 스티글러(George Stigler, 1971; 1975)는 “규제포획”(regulatory capture)라고 불렀다. 쉽게 이야기해서 그것은 자기 사람을 규제권을 갖고 있는 요직에 꽂아 규칙을 만들고 자신에게 유리하게 모든 것이 굴러가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 미국은 규제포획의 천국이다. 이것을 여실히 증명하는 것이 바로 미국에서 관행처럼 여기는 “회전문인사”이다. 도덕적 타락과 범죄도 인이 박이면 당연시 여기게 된다. 그것에 대해 거의 이젠 아무도 뭐라 토하나 달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민간회사와 공직을 돌고 도는 사람이 과연 누구를 위해 일하겠는가? 정부와 국민을 위해서? 천만에 말씀. 결코 아니다. 자신을 돈방석 위에 앉혀주는 민간기업을 위해 일한다. 이런 자들을 정부의 고관대작을 시키는 이상 미국이 제대로 돌아갈 턱이 없다. 혹여라도 기대하지 마시라.

그런데 이런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필자조차 이번 글을 쓰면서 또 한 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수밖에 없었다. 또야? 하고 되되면서 말이다.


트럼프의 보건정책고문 조 그로건(Joe Grogan), 그로건은 제약회사 길리어드의 로비스트로 있다가 백악관에 입성해 코로나사태가 터진 후 급조된 코로나 대응 팀에 합류했다.

 

타미플루와 렘데시비르, 그 절묘한 기시감

왜 그랬을까? 렘데시비르와 관련해 일종의 기시감 같은 게 언뜻 들어서다. 왜 그런가 했다. 곰곰이 생각을 정리해 보니 필자가 2011년 책(김광기, 『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을 내면서 길리어드 관련 이야길 한 적이 불현듯 머리를 스쳤다. 다시 확인해 보니 그 때와 이야기가 묘하게 중첩돼서 그런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우리에게도 익히 알려진 신종 인플루엔자(신종플루)와 그 치료제인 타미플루(Tamiflu상품명: 오셀타미비르Oseltamivir일반명)가 다름 아닌 길리어드사 제품이다. 그런데 타미플루도 항바이러스제로 1996년 개발되어 1999년 허가가 떨어졌다가 2005년 조류독감(bird flu)이 유행하자 치료제로 인정되어 첫 대박을, 그 후 2009년과 2010년 유행했던 신종플루 치료제로도 사용되어 두 번째 대박을 친다. 길리어드는 판매권을 스위스의 로슈(Roche)로 넘기고 지금은 로열티 10%를 받고 있다. 어쨌든 길리어드에게 타미플루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이다.

그런데 타미플루가 개발되던 시점인 1997년부터 2001년까지 길리아드 제약회사의 회장이 누구였는지 아는가? 바로 부시정권에서 국방부장관을 했던 럼스펠드(Donald Rumsfeld)다. 애초에 정부관리에서 시작했다가 제약회사 사장으로 그리고 다시 관리로 돌고 도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회전문인사의 화신 같은 존재인 럼스펠드는 길리어드의 주식을 상당량 갖고 있고 신약이 치료제로 공인되면서 덩달아 돈방석에 앉았다. 그리고 길리어드의 이사진에는 럼스펠드 외에도 또 다른 전직 관료들이 포진해 있다.(“Rumsfeld’s growing stake in Tamiflu,” CNNMoney, Oct. 31, 2005).

조류독감과 신종플루가 난데없이 세계적으로 유행하자 타미플루라는 신약이 그 신종괴질의 치료제로 전 세계적으로 팔려서 엄청난 수익을 냈다. 그렇지만 뭐니 뭐니 해도 타미플루의 최대판매처는 미국 정부였다. 2005년 현재에만 미 국방부가 5,800만 달러(약 707억 원)치를 구입했고, 당시 의회도 수십억 달러의 구입을 고려하고 있다고 은 보도했었다. 2005년 타미플루 판매로 로슈가 걷어 들인 돈은 무려 10억 달러(1조2천2백억 원)였고 그것은 조류독감이 유행하기 전인 그 전해의 2억5천8백만 달러(약 3,143억 원)에 비하면 대박도 그런 대박이 없었다. 물론 이 때 럼스펠드의 자산도 급상승한다. 타미플루의 세계 최대 구매처가 미국 국방부인 것이 사실인 이상 누가 봐도 의심이 들 것이다. 국방장관이었던 사람의 입김이 들어가지 않았겠는가? 또 그 자는 누구인가? 국방장관이전엔 타미플루를 만든 회사의 대표였다. 그러나 그 질문에 럼스펠드는 완벽한 오리발로 관련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길리어드의 타미플루와 이제 곧 승인 떨어져 상용화될 것으로 보이는 렘데시비르를 함께 놓고 보면 왜 이렇게 엇비슷한지 모르겠다. 두 개 다 항바이러스제로 개발된 신약이며, 애초에 목표로 한 것 말고 듣도 보도 못한 신종 질병들이 나와서 약의 새로운 사용처가 되고 도약의 기틀을 마련한다. 그리고 회사는 천문학적인 수익을 거머쥔다. 또한 회사의 조력자들이 정부요직에 들어가 회사의 이익을 위해 불철주야 애쓰고 있다. 그 조력자들은 모두 이전 길리어드라는 제약회사와 깊은 관련이 있다.

 

트럼프의 음모론 제기

여기까지는 명확히 나와 있는 사실들의 나열이다. 그런데 이런 명백히 드러난 사실들만 놓고 보아도 석연치 않은 구석이 꽤 있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다음의 의구심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어떻게 듣도 보도 못한 병들이 난데없이 ‘신종’이란 이름을 달고 계속해서 발생하는가? 그것도 제약회사에서 개발하는 약들이 나올 때 쯤 시간 간격을 두고서. 다른 것을 목적으로 치료제를 개발했다고 하지만 후에 그 ‘신종’이란 이름을 달고 나오는 병들에 우연히도 딱 들어맞는 치료제라면 그렇게 완벽한 우연이 과연 가능한가? 마치 신종 질병을 염두에 두고 개발이라도 한 듯이? 그것도 같은 회사에서 두 번씩이나? 그 정도의 예측력이라면 제약회사는 지금이라도 돗자리를 까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그 엄청난 신기를 가지고 더 큰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 조금만 더 나가면 마치 음모론으로 비칠 것 같아 멈추고 싶지만, 기왕 말이 나온 김에 조금만 더 진도를 빼보도록 한다.

사실 음모론은 트럼프의 국방부가 먼저 제기했다. 중국 우한의 실험실에서 코로나가 만들어져 유출됐다는 떠도는 소문을 국방부가 먼저 거론하고 트럼프가 거든 것이다(“Trump is playing a deadly game in deflecting Covid-19 blame to China,” The Guardian, April 19, 2020; “Trump fans flames of Chinese lab coronavirus theory during daily briefing,” The Guardian, April 16, 2020). 그런데 나는 철저히 드러난 사실들만 가지고 합리적 추론을 해보고자 한다. 트럼프는 코로나 대응을 잘 하지 못한 것으로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 마디로 코로나에 대응할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었다는 비난이다. 그러나 나는 준비를 과연 못한 것인지, 아니면 아예 안 한 것인지 묻고 싶다.

그렇게 묻고 싶은 것은 백악관 피터 나바로(Peter Navarro) 백악관 무역정책국장이 올해 1월 말 이미 신종코로나가 미국에 대규모 인명 피해와 수조 달러의 경제 손실을 초래할 것이라는 경고를 트럼프에게 한 메모가 나와서다(“Trade Adviser Warned White House in January of Risks of a Pandemic,” New York Times, April 6, 2020). 이 소식은 우리나라에도 번역돼 전해졌다. 그러나 신종 괴질의 대유행에 대해서는 이미 작년 가을 백악관 경제정책실의 경제학자들이 대통령에게 경고를 했었던 것은 전해지지 않아 다들 모르고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작년 9월 백악관에 있던 브랜다이스 대학(Brandeis Univ.)의 경제학과 셔비나(Anna Scherbina)교수가 바이러스성 대유행이 미국에 발발할 경우 50만 명의 사망자와 3조8천억 달러(약 4,640조 원)의 경제적 손실이 올 것이라고 연구보고서를 작성해 트럼프에게 제출했다(“White House Economists Warned in 2019 a Pandemic Could Devastate America,” New York Times, March 31, 2020).

이런 보고서를 받았으면서, 그래서 만일의 닥칠 괴질의 대유행이 얼마나 엄청난 파괴를 불러올 지를 트럼프가 잘 알고 있으면서, 그동안 주먹구구식으로 대응을 해 왔단 말인가? 의심이 가지 않는가? 왜냐하면 그런 대응은 이미 여러 차례 경고를 받은 대통령이 실제로 신종 괴질의 창궐이 코앞에 닥친 상황에서 보일 행보와는 전혀 맞지 않아서다.

그러나 트럼프의 행보는 우왕좌왕 갈팡질팡, 한 마디로 적극적 대처가 아닌 미적거리는 식이었다. 그러는 동안 미국은 아비규환의 도가니가 되어 버렸다. 그러니 묻고 싶은 것이다. 준비를 못한 것인가? 아니면 안 한 것인가?

혹시나 길리어드의 하수인인 트럼프의 보건 담당 수족들이 부린 농간은 아니었을까? 길리어드의 렘데시비르를 희귀약품으로 지정하기 위해 시간을 벌어주려 미적거린 것은 아닐까?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론 그 미적거림으로 인해 은밀히 코로나가 창궐하는 것을 방치하면서? 그리곤 트럼프에겐 코로나 창궐에 대항할 “게임체인저”(game changer: 상황전개를 완전히 바꿔 놓는 것)로서 렘데시비르를 선전하게 하고서?(“Trump Announces Potential ‘game changer’ on Drugs to Treat Novel Coronavirus, but FDA Says More Study is Needed,” ABCNews, March 19, 2020). 트럼프가 약에 대해 무엇을 아는 게 있다고 길리어드의 렘데시비르를 게임체인저로 언론에 나와 소개하며 의기양양할 수 있었을까? 나는 그 뒤에 길리어드의 하수인들인 그로건과 아자르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찌됐든 길리어드의 렘데시비르는 신종코로나 치료제로 승인받고 상용화하기 위해 패스트 트랙을 타게 된다. 많은 단계들을 건너뛰면서, 속성으로. 엄청난 특혜가 아닐 수 없다. 아직 완전한 승인을 받지는 않았지만 그러는 와중 길리어드의 주식은 한 없이 뛰었고 누군가는 돈 방석에 앉았을 것이다.(“Gilead stock surges, market rallies behind COVID-19 treatment remdesivir,” CBSNews, April 17, 2020).

그러면 트럼프로서는 무엇을 얻는 것일까? 많은 사람이 괴질에 걸리고 살려 달라 아우성 칠 때 “짠!” 하고 나타나는 헐리우드의 주연 캐릭터들처럼 문제해결사로, 영웅처럼 보이기 위함은 아니었는지. 그저 사실에 기반 한 나의 합리적 추정이다. 그렇다면 정체불명의 괴질들은 도대체 어디서 연유한 것일까? 그게 어디서 처음 발생했느냐가 중요한가? 아니면 어떻게 발생하게 되었는가가 중요할까? 나는 후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것에 대해선 트럼프와 그의 수족들이 말하지 않았는가. 실험실에서 만들어져 유출되었다고. 하지만 이제 정말 여기서 멈추어야겠다. 더는 못 나가겠다. 단 이것 하나만은 짚고 넘어가자. 이런 일에 막대한 이익을 보는 자에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 말이다. 이렇게 많은 인명이 죽어나가는 이 때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자신들의 배를 불리는 이들. 나는 그들을 제국이라 칭한다. 그런 이들이 무슨 짓인들 하지 못할까.

 

세계화냐 민족주의냐?

이제 맨 처음의 질문제기로 돌아가 보자. 세계적으로 신종 괴질이 창궐하는 상황에서 그것에 대한 방어책으로 등장하는 신약개발과 백신개발이 세계화의 기조에 조응해야 하는가 혹은 민족주의에 발맞추어야 하는가를 묻는 것은 우문이다. 왜냐하면 이것을 개발하는 담당자인 제약회사는 그 어느 쪽도 아닌 두 개 모두를 자신들의 이익 실현을 위해 악용하는 제국이기에 그렇다. 글로벌 제약회사는 국경을 초월해 전 세계적으로 자신이 개발한 약을 팔아 잇속을 채우는 데에만 몰두한다. 다른 것에는 일절 관심이 없다. 오직 이윤창출, 그것도 막대한 이윤창출이다. 그래서 그들의 눈에는 자국민의 피맺힌 절규, 절망, 고통 이런 것은 결코 들어올 자리가 없다. 오히려 그것들을 십분 활용해 배를 채웠으면 채웠지 거기에 잠시라도 한눈을 팔 겨를이 없다.

이런 제국들에게 민족주의의 애국심이나 세계화의 협조와 관용과 같은 것들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것이다. 그들의 피도 눈물도 없는 잔인한 제국질에 죽어 나가고 고통 받는 것은 일반 국민들, 특히 어떠한 의료서비스에서도 소외된 서민들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답은 한 가지다. 그들의 거품 문 듯한 광적인 탐욕질에 단단히 재갈을 물리는 것이다. 규제다. 그렇다. 그들이 분명 적은 아니다. 그러나 알량한 지식을 가지고 실험실에서 만들어낸 약으로 터무니없는 폭리를 취하는 것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그것을 뒤에서 물심양면으로 돕는 사람과 나라 보다 자신이 속했던 기업을 위해 일 하는 관리들을 정부요직에서 내쫓아야 한다. 어떻게 약값을 제약회사가 맘대로 정하게 한단 말인가. 약이란 상품은 없어도 그만 있어도 그만인 그런 단순한 소비재가 아니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물품이기에 그것은 비록 공공재는 아니지만 그 성격을 띤다. 그러니 순전히 제약회사의 재량에만 맡기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그것도 악질적 글로벌 제약회사들인 제국들에게 말이다. 그러나 어느 누구 국민 편 들어 주는 사람 없는 미국에서 그것은 실로 요원한 일. 답답한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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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기 경북대 교수의 연재 ‘인사이드 아메리카’는 에 동시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