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ption id="attachment_206651" align="aligncenter" width="500"] ▲ 故 박길래님. 경향신문 DB[/caption]
4월 29일은 서울 상봉동 삼표 연탄공장 인근에 살다가 진폐증으로 숨진 박길래 선생의 20주기입니다.
박길래 선생은 정부가 최초로 인정한 공해병 환자였습니다.
공해병 환자로 인정받기까지 그녀는 투사의 삶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박길래 선생은 다섯 걸음만 걸어도 숨이 차오르는 상태에서도 공해의 무서움을 알리기 위해 거리에 섰습니다.
가난과 고독, 질병의 고통과 외로움 속에서 다시는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나와서는 안 된다는 신념으로 강연을 다녔습니다.
강연 중에 숨이 가빠 의식을 잃을 뻔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일본까지 건너가 공해병의 살아 있는 증인으로서 그 위험성을 증언했습니다.
우리는 1980년대부터 환경운동의 홀씨를 세상에 뿌린 박길래 선생을 ‘검은 민들레’라고 부르며 그녀의 뜻을 기립니다.
[caption id="attachment_206652" align="aligncenter" width="300"] ▲故 문승식님[/caption]
또 한 명의 환경운동가를 추모합니다.
지난 27일 문승식 전 환경산업기술원 환경산업지원단장께서 영면하셨습니다.
그는 우리나라 저탄소 생활 실천 제도 마련의 산증인입니다.
그는 20~30대 공해추방운동연합 활동가로서 1990년 안면도 핵폐기장 반대항쟁의 주역이었습니다.
안면도에 핵폐기물처분장 건설 계획 소식이 알려지자 그는 가장 먼저 달려가 지역 주민과 함께 안면도의 천혜의 자연을 지키고자 투쟁했습니다.
‘제2의 광주항쟁’이라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반핵운동을 이어간 이들은 결국 핵폐기장 계획을 백지화시켰습니다.
문승식 전 본부장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핵풍』이라는 환경소설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문승식 전 본부장은 친환경상품진흥원과 환경산업기술원 등에서 활동하면서 「녹색 제품 구매촉진에 관한 법률」 제정을 이끌었고, 그린카드 제도를 도입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그는 환경운동이 추구하던 방향을 실생활에서 법률과 제도로 구현되도록 앞장선 자랑스러운 환경운동가였습니다.
박길래 선생과 문승식 전 본부장은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검은 민들레와 『핵풍』의 뜻은 이어질 것입니다.
그들이 원하는 세상은 환경피해가 없는 정의로운 세상이자 핵 위험이 없는 안전한 지구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뜻을 이어받아 녹색 전환을 이루고자 합니다.
다시 한 번 검은 민들레 박길래 선생과 『핵풍』의 저자인 환경운동가 문승식 선생의 영면을 기원합니다.
※ 글 : 이철재 (에코큐레이터, 환경운동연합 정책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