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주리고 있는 겨울 철새들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로 먹이공급이 중단된 낙동강 중류 최대의 철새도래지 해평습지로 향한 날은 설 연휴가 시작되기 직전인 지난 129일이었습니다. 일명 배고픈 철새 구하기 긴급 프로젝트에 대구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나선 것입니다. 어른 3명에 중학생 2명으로 구성된 철새 구호팀은 그래서 긴급히 길을 나섰습니다.

 

까닭은 전북에서 처음 AI 사태가 발발한 지난 17일부터 구미시와 대구지방환경청 등에서 그동안 철새 도래기마다 낙동강 해평습지에서 해오던 철새 먹이나누기 행사를 전면 중단한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해평습지의 철새들이 졸졸 굶주리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지요. 이것은 이번 AI 사태 발발의 원인을 철새들로 보고 전북뿐 아니라 전국의 모든 철새도래지의 접근을 차단한 정부 당국의 조처 때문이었습니다.


낙동강 해평습지를 찾은 큰고니 무리

낙동강 해평습지를 찾은 쇠기러기 무리.


그래서 이미 지난해 겨울 4대강사업으로 칠곡보로 막힌 낙동강이 꽝꽝 얼어버렸고 이로 인해 아사직전에 빠진 고니들(강 속의 수초뿌리 등을 먹고 사는 고니들은 꽝꽝 언 강에서 더 이상 먹이활동을 할 수 없게 되었고, 꽝꽝 언 빙판 위에서 웅크린 채 계속해서 잠만 자고 있었다)을 위한 긴급 구호활동을 벌인 바 있는 대구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은 올 겨울에도 해평습지를 찾는 겨울철새들을 위한 긴급 구호활동에 나서게 된 것입니다.

 

사실 월동을 위해 한반도로 날아드는 겨울 철새들의 겨울나기는 참 힘이 듭니다. 가뜩이나 먹이가 부족한 겨울철에 낙동강 주변 들판에서 낙곡 등을 주로 먹고 사는 철새들에게 최근에는 그 낙곡조차도 돌아가고 있지를 않습니다. 축산업자들이 소 먹이용으로 흰 비닐로 볏짚을 둘둘 말아가버리기 때문에 철새들이 먹을 낙곡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 소 사육용 여물로 쓰기 위해 말아놓은 볏짚 ⓒ주용기

 

이처럼 한반도를 찾는 겨울 손님들인 겨울철새들이 굶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민간 차원에서부터 철새들 먹이나누기 활동이 시작되었고, 급기야 철새도래지 주변 지자체나 지방환경청에서도 나서서 수 해 전부터 이 활동에 동참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먹이나누기의 중단이 철새들의 이동을 더욱 부추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당국에서는 이번 AI 사태를 발생시킨 주범으로 철새들을 지목하고, 철새도래지의 접근을 차단하면서 해마다 해오던 철새 먹이나누기 행사마저 중단시킨 것입니다. 철새들이 이번 바아러스의 진원지이니, 그 철새들에 다가가는 것 자체를 차단하겠다며 이번 AI 사태가 발발한 전북뿐 아닌 전국의 모든 철새도래지로의 접근을 차단했고, 그것은 아직도 AI가 발생하지 않은 경북에 위치한 이곳 해평습지에서의 먹이나누기 활동마저 중단케 한 것이지요.


▲ 전북 고창의 동림저수지 근처에 설치된 출입금지 간판. 이처럼 전국의 모든 철새도래지로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다 ⓒ주용기

 

그런데 이와 같은 먹이나누기 활동의 전면적 중단은 오히려 철새들의 이동을 가속화시키면서 AI의 확산을 더욱 부추길 뿐이라는 것이 환경단체와 조류 전문가들의 판단입니다. 철새들도 먹어야 겨울을 나고 먹이가 너무 부족한 상황에서 그동안 해오던 먹이나누기 활동마저 중단해버리면 철새들이 갈 곳은 민가와 가금류 농장 주변이고, 그로 인해 원인이 정확히 무엇이 됐던 AI는 더욱 확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지난 128일 환경운동연합과 조류 전문가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이런 사실을 적극 알렸고, 환경부에서도 이를 받아들여 제한적인 먹이나누기 활동을 허용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대구환경운동연합에서도 철새 구호팀이 긴급 결성했고, 우리는 칠곡군의 낙동강변에 자리잡고 있는 모 정미소에서 나락을 300킬로그램 가량을 구매해 차에 싣고 구미시 해평면에 자리잡고 있는 철새도래지 해평습지로 향했던 것입니다.

 

낙동강 해평습지에서의 먹이나누기

 

오전 11시 반 경에 도착한 해평습지엔 강 가운데를 중심으로 쇠기러기와 고니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자주 보아오던 해평의 철새들이지만, 지난 17일부터 10일이 넘게 굶주림에 시달렸다고 생각하니 녀석들의 모습이 퍽 안쓰러워 보이기도 합니다.

 

그 모습을 보고 긴급히 먹이를 나누려 낙동강변으로 나아가려 하니 구미시 관계자들이 우리를 제지하고 나섭니다. 정부에서는 아직 AI 확산을 우려해 철새도래지 접근을 차단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안내에, 환경부에서 제한적 먹이나누기 활동을 허용했다는 공방 후, 그렇다면 철저한 방역조처를 이행한 후 현장에 접근할 수 있다는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방제복과 마스크, 장갑에 비닐봉지로 발싸개까지 한 후에 강변을 향할 수 있었습니다.

 


방제복까지 착용하고 먹이나누기를 하고 있는 대구환경운동연합 회원들


AI의 주범이 철새라고 확실히 밝혀진 것도 아니고, 아직 경북에서는 AI가 나타난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약간은 짜증이 일기도 했지만, 그들과 맞설 이유는 없다는 판단 하에 우리 일행은 방제 물품으로 몸을 완전히 감싼 다음 소독약으로 차량 소독까지 한 후에야 강변으로 나서서 차량에 싣고 온 볍씨를 강변에 고루고루 뿌려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낙동강 해평습지 강변 두 곳에서 300킬로그램 가량의 볍씨를 철새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특히 구미보 아래 감천의 역행침식으로 새로 조성된 모래톱에는 오리와 두루미의 발자국들이 가득해 이곳이 철새들의 보금자리임을 쉽게 할 수 있었고, 이곳은 이미 구미시에서 먹이나누기 활동을 해오던 곳으로, 이곳에 한톨의 볍씨도 남아있지 않은 모습으로 이곳 철새들의 굶주림 상태 또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반복되는 AI, 과연 살처분만이 능사인가

 

지난 117일 전북 고창에서 시작됐다는 조류인플루엔자(AI)가 전남을 거쳐 충청과 경기도, 경남으로까지 확대되는 모양새입니다. 그로 인해 현재까지 조류인플루엔자에 감염되었거나 감염이 의심된 106농가의 닭과 오리 250여만 마리가 살처분되었고, 추가로 25만여 마리가 추가로 살처분될 계획이라고 합니다.

 

막대한 농가 피해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막대한 농가피해를 안기고 있는 조류인플루엔자의 원인을 정부당국에서는 철새들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철새들이 조류인플엔자에 감염이 되어 그 감염균을 이동하면서 전국으로 퍼트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부당국의 주장처럼 자연계를 마음껏 돌아다니는 철새들이 정말 이번 AI 사태의 숙주라면 정말 큰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철새들이 인간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어 한곳에 가만히 있는 것도 아니고 주변 농가로의 이동을 스스로 차단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 철새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이동하고 머물고 먹이활동을 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정부당국의 진단처럼 철새들이 이번 조류인플루엔자 사태의 원인일까요? 그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견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환경부도 동참하고 있는 동아시아-대양주 철새 이동로 협력기구라는 국제기구에서는 저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는 자연계의 철새들에게서 자연 발생하기도 하지만, 이번에 국내에 발발한 H5N8형의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는 철새들에게서 발생한 적이 없다는 성명까지 내놓으면서 한국의 철새들을 중심으로 하는 방역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낙동강 해평습지의 쇠기러기 무리


낙동강 해평습지를 찾은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인 재두루미 가족

그리고 국내 조류 학자들도 만약 전북 고창의 가창오리에게서 발생한 조류인플루엔자가 이번사태의 원인이라면 지난 10월 말 이미 도래한 가창오리가 AI 최대 잠복기 21일 거쳐 폐사한 시점은 국내 발발 시점(117)보다 훨씬 이전이라야 한다는 사실과 집단적인 떼죽음 사태가 동반되었어야 한다는 사실로 이번 AI 사태의 진원지는 철새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조류학자들의 주장처럼 철새들은 떼죽음에 이르지 않았고, 그 죽음은 아직 미미한 수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와는 완전히 대조적으로 국내 가금류는 벌써 250만 마리가 살처분당했습니다. 멀쩡히 살아있던 닭과 오리를 AI가 확산될 조짐이 있다는 판단 하에 무차별적으로 살처분된 것입니다.

 

반복되는 AI를 막는 길은 공장식 축산의 중단에서부터

 

왜 그런 것일까요? 그렇지요. 공장식으로 대량 생산하고 있는 국내 닭과 오리의 사육 환경이 너무나 열악하기 때문입니다. 조금의 움직일 곳도 허용치 않는 밀식 사육 환경은 질병을 양산하고 그로 인해 항생제 투입은 빈번하게 될 것이고, 새로운 병균에 대한 내성을 잃어버린 이들 닭과 오리는 약간의 새로운 질병에도 죽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겠지요.

 

이와는 반대로 이른바 친환경 사육방식으로 길러지는닭과 오리는 이러한 AI 사태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한 방식으로 길러지는 닭과 오리는 상대적으로 질병에 대한 내성이 길러지기 때문이겠지요.

 

그렇습니다. 수백만 마리의 떼죽음 사태는 우리 인간에 의해서 자행되고 있을 뿐입니다. 그들이 죽을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놓고는 AI 확산을 막는다고 그들을 무차별적으로 살처분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이번 겨울엔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는 설 연휴조차 반갑지 않은 사태에까지 직면했습니다.

 

언제까지 이런 일을 되풀이 해야만 할까요? 철새들의 먹이공급을 차단하는 것만이, 농장의 닭과 오리를 무차별적으로 살처분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AI를 막기 위한 근본적인 처방을 해야 할 시점입니다.

 

공장식 축산에서 생산되는 닭과 오리가 아닌, 이른바 친환경 축산으로 길러지는사육 방식으로의 과감한 전환만이 반복되는 AI 사태를 막는 급선무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근본적인 전환이야말로 그동안 영문도 모르고 죽어가는 저 수많은 생명들을 위한 우리 인간들의 최소한의 도리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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