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이하 중집)가 총선 다음 날인 4월 16일, 노동자연대와의 연대 중단을 결정했다. 이것은 절차와 내용 모두 문제가 많고, 정당성이 전혀 없는 결정이다. 첨예한 비판을 삼가지 않아 온 좌파단체를 권력 우위를 이용해 찍어 누르고 배척을 선동하기로 한 민주노총 중집의 결정에 유감을 표명한다.
1. 절차의 비민주성과 불공정성
이 결정은 완전히 불공정하고 비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이뤄졌다. 연대 중단이라는 중요한 안건을 처리하면서도 민주노총 중집은 노동자연대 측에 소명 기회 한 번 주지 않았다. 노동자연대 측을 출석시키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회의 안건지에 노동자연대 측의 입장서도 첨부하지 않았다.
민주노총 중집 회의에는 상임집행위원회(이하 상집)의 TF가 작성한 입장서만이 제출됐다. 그러나 이 TF는 구성부터 공정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연대 중단 여부를 둘러싼 상집 내부의 이견 때문에 구성됐음에도 이 TF에는 연대 중단에 이견 있는 측은 포함되지 않았다. 반면, 전면적 연대 중단을 요구한 민주노총 여성위원회(이하 여성위) 측이 두 명이나 참여했다. 이런 일은 상식에도 위배되는 일이었다. 이렇게 구성된 TF는 노동자연대 측의 해명을 한 번도 청취하지 않았고, 그저 ‘답정너’ 식 결론을 내놓았다.
민주노총 집행부의 핵심은 노동자연대 측이 민주노총(여성위)의 요구를 100퍼센트 수용하지 않으면 전면적 연대 단절만이 있을 뿐이라는 최후통첩적 태도를 취해 왔다. 노동자연대는 대승적인 견지에서 일부 양보 조처를 내놓았었다. 하지만 TF는 여성위의 요구를 100퍼센트 수용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일축했다. 노동착취자들인 정부·사용자들과는 양보와 타협 가능성을 열어 두며 대화를 제의한 민주노총이 같은 좌파 노동단체에 대해서는 연대 단절을 결정하다니, 이런 이중 잣대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소규모 단체에 대해 오만무례하게 행동하며 이래라저래라 하는 갑질도 마찬가지이다.
2. 결정의 근거도 문제적
민주노총 중집은 ‘2차가해’를 연대 중단의 사유로 들었다. 그러나 도그마가 된 ‘피해자 중심주의’와 ‘2차가해’ 개념은 진보·노동운동 안에서 이견과 논란이 큰 쟁점이다. 특히, 그 적용 과정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분란은 곳곳에서 상처와 분열을 낳고 있다. 민주노총 산하조직들도 마찬가지이다. 민주노총 중집은 우리 단체를 본보기 희생 제물 삼아 이런 갈등을 종식시킬 수 있다고 보는 것일까?
민주노총 여성위는 이런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만이 옳다는 독선적 태도로 노동자연대를 재단하고 단죄해 왔다. 민주노총(중집) 성명은 노동자연대 측이 “피해자의 진술[을] 부정”하는 등의 2차가해를 했다고 한다. 그러면, “노동자연대는 데이트 강간과 가정 폭력을 용인한다”는 피해호소인(A)의 거짓 비방을 반박하고 사실관계를 바로잡으면 안 되는가? 피해를 호소하는 여성(J) 측에게 “공동 진상조사(위원회)”를 제안한 것이 피해자의 진술을 부정하는 2차가해 행위인가?
이미 진보·노동운동 안에는 피해자 중심주의를 내세워 피해호소인 진술에 대한 사실 확인과 상대 측 해명, 피해 여부의 조사까지 2차가해로 모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가 상당히 있다. 그리고 2차가해 개념과 그 적용이 합리적 문제 제기에 재갈을 물리는 함구령과 협박의 수단이 됐다는 우려도 많다. 민주노총 중집이 이런 신중한 우려를 고려하지 않고 성폭력 사건 처리 과정과 2차가해에 대한 이견을 연대 중단의 사유로 삼은 것은 오만한 독선이다.
심지어 민주노총 집행부는 노동자연대를 재단하고 단죄하기 전에 스스로 어떤 사실관계 조사도 하지 않았다. 피해호소인 진술에 대한 사실 확인도 없고, 노동자연대 측 반박에 대한 사실 확인도 없이, 민주노총 집행부는 진상을 안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책임 있는 사실관계 조사도 하지 않은 채 일방의 말만 듣고 다른 단체를 재단하고 단죄하는 것은 독단이다.
민주노총 중집의 연대 중단 결정은 민주집중주의 단체에 대한 급진 페미니즘의 개인주의적 편견과 혐오도 받아들이고 있다. 민주노총(중집) 성명은 아무 근거도 없이 노동자연대가 “대의를 위해 성폭력을 수단으로 동원”한 것처럼 주장했다. 어떻게 해서라도 목적만 이루면 된다는 무자비한 폭군 남성을 상기시키는 듯이 말이다.
그러나 노동자연대가 여성과 성소수자 해방 문제를 소홀히 하는 단체가 아님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민주노총이 이런 문제에 아직 개명되기도 전부터 노동자연대는 역사유물론과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여성과 성소수자 차별을 폭로하고 해방을 지지해 왔다. 단체 내부적으로도 엄격한 성관련 규율과 면밀한 절차(분쟁위원회 사건 처리 절차) 규정을 통해 성비위 문제를 적절하게 처리하려 애써 왔다.
민주노총(중집) 성명은 연대 중단 결정에 대해 노동운동과 페미니즘 운동이 분리되지 않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자 책무를 다하겠다는 의미라고 정당화했다. 그러나 민주노총 중집은 타 단체를 재단하고 단죄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다. 스스로 잘하면 된다. 민주노총의 규정(피해자 중심주의와 2차가해에 근거했다는)만이 옳다는 독선에 따라 스스로 타 단체에 대한 혐오와 배척을 조장하는 행위는 분열과 더한층의 파편화를 촉진할 뿐이다. 더구나 노동 ‘조합’이 노동계급 분열을 부추기는 것은 안 될 말이다.
3. 결정이 보호해 주는 이해관계
민주노총 중집의 연대 중단 결정은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5월 여성위가 결정한 연대 단절의 범위를 확대한 것이다. 당시 민주노총 여성위는 최미진 〈노동자 연대〉 신문 기자의 책 《성폭력 2차가해와 피해자 중심주의 논쟁》(이하 《논쟁》)의 한 대목을 문제 삼아 연대 단절을 결정했다. 《논쟁》이 민주노총의 특정 성폭력 혐의 진상조사 과정을 피해자 중심주의의 부작용 사례로 들었다는 것이 이유였다.
《논쟁》은 피해자 중심주의의 이해할 만한 원래 취지뿐 아니라 그 곡해와 부작용도 살펴보며 대안을 제안하는 내용인데, 이런 내용을 서술하는 과정에서 2015년 강아무 전 민주노총 울산본부장 성폭력 혐의 사건 진상조사 과정을 사례의 하나로 들었다. 당시 민주노총은 강아무의 사과문(성폭력 혐의 중 강간도 인정)을 공개 게재하면서 사건을 마무리했지만, 2016년 법정에서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나면서 그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의 사과문(강간 인정 부분)이 ‘피해자가 원하는 대로 작성하라’는 당시 총연맹 여성위 담당자의 종용에 의한 것이었다는 증언(사건 당시 울산본부 여성위원장 정아무의 증언)과 문자 메시지 증거가 법정에서 인정됐기 때문이다. 《논쟁》은 민주노총 여성위의 자술 종용 문제를 다루면서, 조심스럽고 면밀해야 할 진상조사를 단지 피해호소인의 주장으로 대체하는 방식의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 여성위는 노동자연대 측의 주장대로라면 “성폭력 피해자를 ‘진정한 성폭력 피해자’와 ‘주관적 성폭력 피해자’로 구분”하게 된다고 비판했다. 비판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여성위는 다음과 같이 결정했다. “이는 민주노총 규정이 정의하고 있는 피해자에 대한 ‘2차가해’에 해당하므로 (…) 연대를 중단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민주노총 여성위가 노동자연대 측의 문제 제기에 피해자 중심주의와 2차가해 무기를 들이댄 것은 진상조사 과정(강간 인정 자술 종용)의 잘못을 덮고 책임 논란을 모면하려고 관심을 딴 데로 돌리는 것이었다. 실제로 민주노총 여성위가 전광석화처럼 노동자연대와의 연대 단절을 결정하자 애초 진상조사 과정에 대한 《논쟁》의 문제 제기는 덮이고 2차가해 문제로 쟁점이 바뀌었다. 이런 부정직하고 치졸한 방식은 또한 아무도 민주노총의 성폭력사건 진상조사 과정에 대해 문제 제기하지 못하도록 입막음하는 효과를 냈다.
이처럼 2017년 민주노총 여성위가 연대 단절을 결정한 근거 자체가 정당하지 않았다. 제기된 문제를 공론화하고 개선을 추구하면 됐을 텐데, 그보다는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토론을 회피하며 오히려 노동자연대에 책임을 전가한 것이다. 그런데도 이번에 민주노총 중집은 토론과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는 노동자연대 측의 제안을 거부하고 또다시 비민주적이고 행정주의적인 조치를 반복한 것이다.
4. 노동자연대는 진실을 타협하지 않는다
노동자연대는 민주노총 여성위와 집행부가 우리가 하지 않은 부도덕한 행위에 대해 사과하라고 연대 단절을 무기로 겁박하는 것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우리는 당장의 편의와 실용주의적 계산을 앞세워 진실을 희생시킬 의사가 없다. 민주노총이 스스로 조사해 보지도 않은 문제를 갖고 우리에게 양심에 반하는 태도를 취하라고 압박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한 행동이다.
민주노총 집행부의 핵심은 피해호소인이 제기하면 진실이 무엇이든 관계없이 무조건 사과부터 하는 것이 민주노총의 성인지 관점에 부합한다고 노동자연대 측에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관행은 부당하게도 억울한 속죄양을 만들어 낼 뿐 아니라, 성폭력 사건을 희화화시킨다는 문제점도 있다. 진실은 중요하지 않고 빨리 사과하고 끝내는 게 상책이라는 분위기가 운동 내에 파다해진 것이다.
무조건 사과 강요는 민주노총이 ‘2008년 김00 성폭력사건’ 이후 그런 사태의 재연을 방지하기 위해 도입한 특단의 대책이었을 수 있다. 이미지 훼손을 최소화하는 조속한 수습 방식으로 민주노총 집행부에게는 여전히 실용적일지도 모른다. 설사 그렇다 해도 진실과 정의와는 거리가 멀다. 게다가 민주노총이 자신의 절차나 관행을 다른 단체에 강제하거나, 그것을 따르지 않을 때 제재를 가하는 것은 민주노총이 월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부당한 압력이다.
연대는 기본입장과 지향이 같은 사람들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상호 차이를 인정하면서 매우 제한된 공통점에 기초해서 함께 행동할 수 있고, 그래야 한다. 성폭력 관련 쟁점을 놓고 이견이 있다 해서 노동, 각종 차별 문제, 평화 등 다른 쟁점에서도 연대가 불가능한 것은 결코 아니다. 이견이 있으면 연대할 수 없다거나, 연대하고 싶다면 사상부터 바꾸라는 태도로는 가뜩이나 조각난 운동을 더욱 조각낼 뿐이다. 이 점에서도 민주노총 중집의 연대 중단 결정은 정당성이 없다.
민주노총 중집의 결정은 매우 제한된 특정 문제로 자신과 견해를 달리하는 집단을 그 문제 외의 다른 모든 문제들과 관련된 운동에서도 배척하겠다는 것으로, 권력을 오·남용하는 일이고 따라서 억압이다. 민주노총은 많은 연대체에서 목돈 대는 위치에 있다. 그런 민주노총이 연대체에서 누구를 배척하라고 요구할 때 어떤 단체가 압력으로 느끼지 않겠는가. 민주노총 집행부는 조합원들이 부여한 노동조합 기구의 권력을 이렇게 오·남용해서는 안 된다.
아마도 일부 중집 성원들은 사회적 대화 추진의 걸림돌 구실을 앞장서 해 온 노동자연대를 고립시키겠다는 나름의 계산에서 연대 중단을 지지했을 것이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경사노위 불참 이후 탄력을 잃었던 새로운 사회적 대화 추진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느 때보다 심각한 경제 위기가 엄습하고 있고, 이에 맞서 노동자들이 조건을 지키려면 노동계급 연대와 대중 투쟁이 절실한 상황이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민주노총 중집의 결정은 연대를 과소평가하는 메시지를 전하고, 노동운동의 분열을 더욱 부추기는 자충수일 뿐이다. 또, 민주노총 중집이 이번 결정을 통해 성평등과 성인지 감수성을 대내외에 입증했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피해자 중심주의와 2차가해론의 피해자가 자기변호를 하는 것조차 2차가해로 낙인찍어 집단따돌림 시키는 풍조 속에서는 위선적인 도덕주의와 회피, 침묵만이 자랄 뿐, 성평등 관념이 진정으로 각인되기 어렵다. 민주노총 중집은 자기중심적 아집과 불합리한 편견에 기초해 사실관계의 조사도 하지 않은 채 피해자 중심주의와 2차가해를 무기로 타 단체를 멋대로 재단하고 배척을 주도하는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 이런 행위는 민주노총이 스스로 표방해 온 연대와 평등 가치를 훼손할 뿐이다.
2020년 4월 21일
노동자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