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칩과 함께 봄의 기운을 물씬 내뿜는 날씨였다. 대전의 원도심은 미세먼지로 인해 여느 때와 크게 다르지 않게 약간 흐렸고 며칠 째 단단히 착용한 마스크에 숨도 마음 놓고 쉴 수 없었지만 이에 적응된 지는 오래였다.  마냥 들뜨고 설레는 마음으로 도심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금강 고마나루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무의식적으로 올려다 볼 수밖에 없을 정도로 하늘은 쾌청하기 그지없었고 탁 트인 경관에 나도 모르게 마스크를 벗고 크게 숨을 쉬어 보았다. 연신 “우와-.” 감탄사를 내뱉으며 호미와 장갑이 들어 있는 바구니, 낫과 삽을 나눠 들고 소나무 숲을 통해 금강 모래사장으로 내려갔다. 제초작업을 이끌어 주실 존경스러운 선생님들과 인사를 나눈 뒤 마음만 앞선 서투른 일꾼으로 변신했다.

모래사장으로의 왕래를 편하게 해줄 초입부분의 제초작업은 생각한 만큼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다. 워낙에 면적이 방대하고 비교적 단단한 흙 밭과는 다르게 말 그대로 모래사장 이였기 때문이다. 야무지지 않은 손과 급한 마음의 불협화음이란……. 2시간을 파헤쳤지만 큰 진전이 없어 보이는 잡초 모래사장이 아직도 눈에 밟힌다.

그도 그럴 것이 작년부터, 혹은 훨씬 이전인 내가 이 곳을 알기 전부터 외래종, 유해야생식물인 가시박, 환삼덩굴, 단풍잎되지풀을 계속해서 제거해준 사람들의 땀과 마음이 피부로 와 닿았기 때문이다. 역사 깊고 멋진 경치의 나루터지만 ‘언젠가부터’ 무성한 덤불, 잡초로 덮여 그냥 지나가고만 말았을 사람들, 그저 금강과 금강에 터를 잡고 있는 생물들에 대한 애정과 옛 모습을 되찾아주고 싶어 기꺼이 두 팔 걷어붙이고 넓고도 넓은 모래사장의 제초작업을 시작했을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기 시작하면 지금까지도 마음이 묵직해지고 복잡해진다.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부디 조만간 깨끗해진 고마나루라는 결과물을 보고 싶은 생각이 더 많이 떠올랐다. 겨울이라 바싹 마른 덤불들을 다 쳐내버리며 모습이 아주 멀리 있는 점처럼 보일 때까지 작업을 이어나가셨던 남자 작업반장님들께서 복귀하시면서 고마나루의 제초 작업이 마무리되었다. 뽑아낸 풀들과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들을 정리했다.

여자들끼리 기념사진을 찍자는 열정적인 오진숙 선생님의 제안에 우린 마치 아이들처럼 웃으며 포토타임을 가졌고 이어서 고마나루와 곰 사당의 유래, 제사단 밑에 살고 있는 뱀 이야기, 솔밭 이야기에 시간이 가는 줄을 몰랐다.

정겨운 공주 산성시장의 매력에 취해 (혹은 시장을 가득 채우는 알밤막걸리의 달달한 향에 취한 것 일수도 있다.) 점심시간을 갖고 본격적인 오후 활동이 시작되었다.

고마나루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공주보가 위치해 있다. 김종술 기자님의 강의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4대강 사업이 실시되기 전의 금강의 모습, 불과 1시간 전에 우리가 열심히 잡초를 제거하던 자리. 하지만 사진속에선 하얀 모래사장만이 존재했고 맑은 물이 잘 ‘흐르고’ 있었다. 시민들과 정부, 여러 연대와 단체의 이견으로 대립중이라는 설명 후에 아직도 굳건히 해체되지 않고 서있는 금강보에 직접 내려가 보았다.

일반 사람들은 손사래를 치며 가까이 하기 싫어했을 모습이 상상될 정도로 둑과 수로는 오염되어 있었다. 아직 쌀쌀한 초봄인 것을 감안하면 기온이 더 올라갔을 때는 더욱 심각할 것이다. 부패해서 수면에 떠오른 검은 녹조류 덩어리와 부패하면서 생기는 메탄가스 방울을 너무나 많이 봐오셨던 기자님의 담담하지만 속으로는 화가 난 표정이 생생하다. 도심의 하천이나 강가에서부터 떠내려 온 각종 쓰레기들을 보고 받은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채로 둑에 올라가 백제보로 이어지는 금강을 내려다보았다. 기자님께서 설명하셨던 수많은 오염현상으로 집단 폐사한다는 물고기들. 바로 그 죽은 물고기 한 마리가 금강을 내려다 본 시선 바로 아래에 있었다.

이어서 30분이 걸리지 않는 세종보로 이동했다. 세종특별자치시는 역시 계획도시라는 이름에 걸맞게 빌딩들과 공사현장, 신축 건물들이 각 맞추어 잘 들어서고 있다. 바로 근처에 위치한 호수공원에 비해 사람들의 인적이 비교적 적은 어느 작은 공원과 산책로를 따라 세종보의 입구로 들어섰다.  시내와 한참 떨어져 있으며 관리 되지 않고 방치된 이런 수변공원은 현재 몇 백개에 다다르고 약 3조원이 투자되었다고 한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의 내막과 실정은 알면 알 수록 감정이 격해지게 된다. 세종보는 전부터 수문을 전면 개방한 상태이다. 하지만 보 시설이 해체되지는 않은 탓에 한쪽으로만 치우친 채로 강이 흐르고 있다. 금강의 회복을 위한 적절한 유속을 만들어주고 새들의 쉼터가 될 모래톱이 적당하게 형성되려면 보의 해체 작업은 필수불가결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경제적인 부분과 여러 이해관계를 쉽게 만족시키기는 어려운 것이다. 한글의 자음이 콘크리트로 꾸며졌다는(세종대왕님께서 자랑스러워 하실 지는 잘 모르겠다.) 세종보 주변에서 너구리와 고라니뿐만 아니라 무려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인 수달의 흔적을 변과 발자국으로 확인할 수 있다. 비록 완전한 회복이 아니고 사람들의 속죄가 얼마나 걸릴지는 모를지언정 세종보는 수문 개방 이후 이 만큼이나 자연 생태계의 회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고라니 보러 가시죠!” 기자님의 말씀에 마지막 답사 장소인 장남평야에 도착했다. 장남평야 역시 한 켠엔 고속도로, 다른 편엔 세종시의 신축 건물 구역을 볼 수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장남평야는 묵은 논과 갈대밭, 개울로 이루어져 20만평 이상 남아있다. 이도 얼마가지 않아 도시공사와 주택공사의 개발, 중앙공원 개발로 규모가 대거 감축되고 공원화 예정이라고 한다. 멸종위기 야생동물 보호구역인 장남평야에는 큰고니, 흑두루미, 금개구리, 대모잠자리등 희귀한 야생동물의 보금자리와 휴게소 역할을 맡고 있다. 당장 바로 인근 대도시에 거주하는 시민들도 이런 사실을 감사하고 소중하게 여겨야 할 따름이다. 장남평야의 금개구리는 세종시, 이익을 추구하는 투자자들 또는 사람들의 입장과 그렇지 않은 입장으로 큰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의 대명사이다. 장남평야를 보존하는 일의 의미는 무엇일까? 장남평야가 아닌 필요 이상으로 과도한 도시화와 개발로 사라지는 다른 어딘가의 생태구역, 옛 모습을 계속해서 간직하고 수 많은 생물들의 터전을 지켜주려는 사람들의 노력을 상징한다고 느낀다. 한 번 개발되면 복구할 수 없다.

저 먼 발치에서 언제까지 사람들은 이를 못 본 척할 것인가. 보았어도 해결방안이 마땅하지 않다며 얽혀있는 갈등 때문에 조치를 미루는 현재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현대인은 공감 능력이 많이 결여되었다고 한다. 다른 고등생물에게 무자비하게 삶의 터전을 잃고 멸절하게 되는 다른 생물에게 감정 이입이 쉽지 않은 것이다.  환경의 파괴는 결국 인간 삶의 파괴이며 그 피해는 후손들에게, 어쩌면 수 년 안에 당장 자기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과 인과관계를 이해하려 하지 않거나 당장의 이익에만 고집하려는 현대인들에겐 어려운 과제일 수도 있겠다. 여러모로 많은 의문을 남기게 한 답사와 견학이었으나 그 동안 머릿속에 모호한 모습으로만 존재하던 금강의 모습을 제대로 보고 만지고 올 수 있었기에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이 감사한 경험이었다. 활동가라는 직책이 민망할 만큼 서투르기만 했던 나를 너무나도 따뜻하게 이해해주시고 열정적으로 교육해주셨던 김종술 기자님, 오진숙 선생님, 손장희 선생님, 장남평야 관리자님께도 무한한 감사와 존경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