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3년 아펜젤로-이네르호덴Appenzello-Innerrhoden칸톤 주민들은 매년 4월의 마지막 일요일에 군도로 무장하고 모여서 칸톤의 새로운 법률을 결정했다. 1990년이 되어서야 모든 칸톤에서 여성들도 선거의 참여가 허용되었고, 일반 남자들의 경우에도 1971년부터 보통 투표가 시작되었다. 글라로나Glarona 칸톤에도 아직 전통적인 “란트스게마인더Landsgemeinde”가 존재하는데, 이는 야외에서 열리는 칸톤 시민들의 입법회의다. 그러나 이런 형태의 중세 스위스 특유의 민주적 회의는 다른 모든 칸톤에서는 투표소에서나 우편으로 하는 레퍼렌덤 투표로 대체되었다. 많은 스위스 기초자치단체에서 매년 총회가 열려서 시민들은 기초자치단체에서 정치적으로 필수 현안들에 대해 직접 투표한다.

 

150년 동안 지속된 전통

스위스는 전 세계에서 민주적인 많은 기관들과 국책 사업에서 큰 모범이 되고 있다. 리히텐슈타인을 제외하고 어떤 다른 나라보다 레퍼렌덤 권한이 매우 잘 발달되어 있다. 스위스의 정치 생활에서 직접 민주주의는 특히 칸톤과 기초자치단체 차원에서 사실상 특별한 역할을 담당한다.

의회에서 바라는 헌법 개정에 대한 의무적 실행 레퍼렌덤이 있는 직접 민주주의의 첫 제도들이 1848년 현대 스위스의 첫 헌법에 이미 포함되었다. 처음에 의원들은 오늘날 주변 국가의 많은 정치인들이 계속해서 그러듯이 직접 민주주의의 도입에 반대했다. 1870년대에는 의회를 장악했던 자유-자본주의적 과두정치에 대항하여 장인匠人, 소작농, 노동자 및 지식인 층 시민들의 강력한 국민 운동이 펼쳐졌다. 이 국민운동은 정당의 지나친 권력에 대항하여 더 큰 통제권과 더 큰 직접 참여를 주장했으며, 1874년에는 선택적 실행 레퍼렌덤을 법제화하는데 성공했다. 이 국민 거부권은 오늘날 스위스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는 레퍼렌덤 도구이지만, 이탈리아에서는 헌법 제138조에 따른 헌법적 레퍼렌덤을 제외하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스위스 사람들은 국민발안으로 헌법을 개정하여 새로운 규정을 도입할 수 있는데, 몇몇 칸톤에서는 1840년 대부터 이미 정치적 권리가 존재했다. 당시에도 금융과 상업의 중심지였던 취리히 칸톤은 1869년 국민발안을 마련했다. 이 도구는 1891년 연방 차원에서 도입되어 1921년 국제 조약에 대한 선택적 레퍼렌덤이 추가된다. 1949년에는 연방정부의 긴급하고 법적 구속력 있는 심의를 위한 의무적 레퍼렌덤이 제정된다. 1977년 UN 등의 국제 기구에 대한 가입 결정에 대해서, 그리고 2003년에는 곧 연방법 채택을 의미하는 국제 조약에 대한 승인 결정에 대한 레퍼렌덤 권리가 뒤따른다.

연방 일반법ordinary law에 대한 입법 국민발안(제안적 레퍼렌덤)은 2003년 도입되어야 했는데 입법자들의 거부로 가로막혔다. 기초자치단체와 칸톤에는 그 밖의 직접 민주주의 권리들도 있는데, 그중 재정 관련 레퍼렌덤도 있다. 만일 기초자치단체의 지출에 관한 어떤 결정이 규정된 최소한의 문턱을 넘으면 이 결정은 시민들의 요청에 따라 혹은 법적 의무 상으로도 레퍼렌덤 투표에 부쳐져야 한다.

 

스위스 시민은 어떤 레퍼렌덤 권리를 이용할 수 있는가?

연방차원에서 유권자인 시민들은 (2018년 현재 약 5백만 명) 세 가지 주요 레퍼렌덤 도구들을 이용할 수 있다. 이 모든 권리들은 칸톤 차원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며, 모든 레퍼렌덤 투표는 법적 구속력이 있다.

1. 헌법상 의무 레퍼렌덤(1848년부터): 모든 헌법 개정이 발효되려면 시민들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스위스의 몇몇 국제 기구 가입 또한 의무 레퍼렌덤의 대상이 된다.
2. 선택적 실행 레퍼렌덤(1874년부터): 5만 명의 시민들(유권자들의 약 1.1%)은 의회에서 승인되었지만 아직 발효되지 않은 법률에 대해 레퍼렌덤 투표를 요청할 수 있다. 서명을 모으기 위해 유효한 시간은 법률 반포로부터 100일 동안이다.
3. 국민발안(1891년부터): 10만 명의 시민들(현재 유권자의 약 2%)이 특정 헌법 조항의 개정, 연장 혹은 폐지를 요청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헌법상의 발안”이라고도 한다). 여기서 주안점은 특정 주제에 대해 정치적 토론을 불러일으키거나 촉진시키는 것이다. 서명을 모으기 위해 유효한 시간은 18개월이다. 의회는 레퍼렌덤 투표에 대한 반대 제안을 제출할 수 있다.

국민발안을 통해 스위스 사람들은 거의 모든 정치적 사안에 대해 레퍼렌덤 투표를 요청할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처럼 직접 민주주의에서 배제되는 사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탈리아에서는 세금이나 관세, 국제 협정에 대해서는 투표가 허락되지 않지만, 스위스에서는 어떤 정치적 의제라고 하더라도 모두 시민 투표에 부쳐진다. 직접 민주주의에서 배제된 유일한 주제는 스위스에서 비준된 국제 권리의 규정들이다. 이렇게 모든 정치적 사안에 개입할 수 있는 주권자의 보편적 권리는 스위스 정치체제에서 레퍼렌덤 현상의 중요성을 잘 반영해 준다.

국민발안은 형식과 내용의 일치라는 전제 조건을 존중해야 한다. 이는 국민발안의 법 제안에서 두 가지 이상의 주제를 다룰 수 없음을 뜻한다. 현행 법은 결국 실행 불가능한 제안들은 직권상 기각될 수 있음을 분명히 규정하지만, 그런 상황은 매우 드문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어떤 법 제안이 레퍼렌덤 투표에 부쳐지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면 그것은 예전에 투표에 대해 공공 지출로 그렇게 규정했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스위스에서는 여전히 세금, 공공 지출, 군사 및 방위 문제, 심지어 정부 형태에 대한 법 제안들이 거듭되고 있다.

국민발안으로 시민들이 능동적으로 정치적 의제를 결정할 수 있고, 그러므로 연방의회와 함께 일하여 법률을 제정할 수 있는 한편으로, 스위스 사람들은 선택적 실행 레퍼렌덤으로 의회에서 승인된 법률에 반응하여 그것을 가로 막거나 확정할 수 있다. 칸톤의회에서 승인된 모든 법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스위스에서는 제도권 기관에서 선포하는, 곧 의회나 정부 측에서 요청하는 레퍼렌덤 투표가 없다. 그것은 자문적 성격이건 심의적 성격이건 마찬가지이며, 앞서 말했듯이 플레시비트 또한 그러하다. 레퍼렌덤 도구는 의무적인 것이거나, 다시 말해 특정한 경우 헌법으로 엄격히 규정되었거나 서명을 모아 시민들이 주도한다.

이런 국민발안의 제안은 형식적 기준에 정확하게 부합되어야 하며, 내용 면에서도 그렇다. 제안을 제출한 후 칸톤의회와 발안위원회 간의 협상이 시작된다. 발안 위원회는 항상 자신들의 제안을 철회할 권한이 있다. 합의에 도달하지 않으면, 시민들의 제안은 레퍼렌덤 투표로 넘어간다. 그러나 의회는 그에 대한 입장을 다수결로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 제안을 투표에 부칠 권한이 있다.

국민발안권의 경우 스위스 사람들은 칸톤 헌법의 완전 개정이나 부분 개정, 또 법 의사나 법 조항 제안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칸톤 중 약 2/3 가량에서 시민들은 국민투표를 통해 칸톤 정부의 법령 또한 수정 할 수 있다. 몇몇 칸톤에서는 선출된 정치인들의 소환투표권이 제정되었다. 소환투표의 요청은 국민발안을 통해 개시되지만, 어쨌듯 이 권한은 거의 활용되지 않는다.

확정적 레퍼렌덤의 경우, 선택의 폭이 더 넓은데, 법률에 대한 레퍼렌덤이나 헌법 개정에 대한 레퍼렌덤, 의무 혹은 선택적 레퍼렌덤, 재정 혹은 행정 관련 레퍼렌덤, 연방에서 규정한 국제 협정에 관한 레퍼렌덤 등이 있다. 국민발안이 시민 위원회에서 바라는 입법 절차가 시작되는 것을 알리는 반면, 레퍼렌덤은 입법 절차의 마지막 단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항상 그 요청에 대한 다른 시민 청원자들의 숫자가 충분하다는 조건으로 국민투표에 이른다. 최소 서명 인원은 유권자들의 0.8%(취리히)에서 5%(티치노) 사이이다. 레퍼렌덤 요청 후에 발안 위원회는 필요한 서명을 매우 짧은 시간 안에 모아야 한다.

 

150여 년간 지켜 온 민주주의 관행

스위스의 이 모든 직접 민주주의 형식들의 특징이 되는 네 가지 기본 원칙이 있다. 첫째, 항상 참여 정족수 없이 찬반을 결정한다. 둘째, 모든 레퍼렌덤 요청이나 국민발안 요청에는 단 하나의 사안을 담을 수 있다. 셋째, 레퍼렌덤 캠페인은 열려 있어서, 누구나 개입하고 찬반을 표명할 수 있다. 넷째, 시민들과 선출된 대의원들, 그리고 행정부 관리들을 포함시키는 민주적 절차이다. 연방이나 칸톤의회를 무시하고 투표에 착수하는 것이 아니다. 연방 차원의 서명 기준점으로 실행적 레퍼렌덤을 위해서는 5만 명, 국민발안에는 10만 명의 서명이 필요하다. 참여 정족수는 스위스에서 토론의 대상이 되었던 적이 없다. 투표하는 사람이 결정하며, 그 이상 이론異論은 없다.

시민들의 제안이나 선출된 대의원들이 제출한 법안에 대해 국민투표를 요청하기 위한 절차에서 서명의 보증, 확인 및 공증 의무를 부과하지 않는다. 이탈리아에서는 발안 위원회에 이런 것들을 요청한다. 또한 서명 운동을 펼치기 위한 공공 장소 사용의 문제처럼 재정적 측면에서도 서명 모으기 작업을 방해하거나 번거롭게 만드는 관료적 올가미 없이, 자유롭게 서명 운동을 펼치고 정치적 권리를 행사한다. 스위스의 관청에서는 투표 때마다 지지자들과 반대자들의 논점을 모아 설명하는 정보를 담은 소책자 형태의 안내서를 발행한다.

가장 많이 활용되는 레퍼렌덤 권리는 확정적 레퍼렌덤 권한으로서 발안한 시민들의 높은 성공률을 자랑한다. 레퍼렌덤은 단순히 경고하는 효과도 있다. 그러므로 레퍼렌덤을 시작할 역량을 갖춘 시민 조직은 부득이 입법 절차에 참여하게 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스위스는 수십 년 전부터 독특한 공적 조사 및 공청회 양식을 마련했다. 현재 무엇보다 인터넷을 통해 실시하는 이런 형태의 공청회 덕분에 연방 국회나 칸톤의회는 모든 정당과 조직 및 기업들을 초대하여 각자의 입장을 밝히게 할 수 있으며, 이렇게 견지된 입장은 공식 사이트에서 모두가 볼 수 있도록 공개되어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절차가 더욱 투명해지고, 입법 계획에 관심 있는 모든 사람들이 준비 단계에서부터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선택적 레퍼렌덤으로 모든 연방 법률이 국민투표에 부쳐질 수 있다. 국회는 대개 입법 과정에서 사실상 비판적인 입장을 수용함으로써 이런 종류의 레퍼렌덤을 피하려고 한다. 결과적으로 승인된 법률 중 일부 소수만이 국민투표에 부쳐졌다. 1874년부터 183차례 있었는데, 그외 34건의 경우 레퍼렌덤 위원회는 필요한 지지를 모아내지 못했다(DFAE, <현대의 직접 민주주의>, 2018).

국민발안은 레퍼렌덤에 비해 성공률이 확연히 낮다. 스위스의 역사상 2017년 2월까지 제출된 446건의 국민발안 중 324건이 10만 명 최소 서명 인원 요건에 도달하는 데 성공했으며, 209건은 연방 국민투표에 부쳐졌다. 투표자 다수결이나 26개 칸톤의 다수결로 단 22건만이 통과되었다. 114건의 경우, 발안자들이 필요한 서명을 모으는 데 성공하지 못한 반면, 96건의 경우 발안 위원회가 절차가 끝나기 전에 제안을 철수했다(DFAE, <현대 직접 민주주의>, 2018, 11). 1891년부터 2014년까지 연방 차원에서 189건의 연방 발안이 전개되었지만 국민 제안의 단 10%만이 투표 심사를 통과했다. 칸톤 차원에서 국민발안의 성공률은 좀 더 높은 23%이다. 분명 스위스 사람들은 직접 참여를 좋아하는 듯하지만 또 혁신적인 제안들에 대해서는 다소 보수적이기도 하다.

 

법의 속성

보통 스위스 사람들은 한 해 3차례 투표소로 가서 연방, 칸톤, 시군 차원의 사안들에 대해 한꺼번에 투표를 한다. 평균 참여율은 40%대를 맴돌지만, 유엔이나 유럽경제공간SEE 가입처럼 막중한 현안에 대한 투표들이 있어서, 선거에 비해 훨씬 더 높은 참여율을 보인다. 스위스에서도 99%의 결정이 선출된 정치인들의 몫으로 남겨지지만, 직접 민주주의는 칸톤과 연방의 정치적 결정 과정에 강력한 인장처럼 새겨져 있어 스위스 정치 문화의 특징을 잘 드러낸다.

대체로 1866년에서 2018년 3월 사이 스위스 사람들은 617건의 국가적 레퍼렌덤 투표에 참여할 수 있었으며, 그 취지들은 298건의 경우 받아들여졌으며, 333건의 경우 기각되었다. 이런 규칙적이고 집중적인 빈도의 자문은 국민발안이 통과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눈에 띄는 영향력을 미친다. 각각의 사안에 대한 공식 정보 전달 기능도 있는 레퍼렌덤 캠페인은 광범위한 공공 토론이 이루어지게 하며, 각계각층의 국민들이 그에 대한 지식과 비판 의식을 심어 준다. 국민발안의 약 2/3가량이 그저 다음 3가지 영역, 곧 환경과 에너지 보호, 사회 정치 및 제도적 법규와 시민권리의 주제에 관한 것이다.

스위스의 독특한 점 중 하나는 연방 레퍼렌덤 투표에서 이중 찬성이라는 필수조건이다. 어떤 확정적 레퍼렌덤이나 국민발안이 유효하려면 전국 모든 투표자들이 던진 표의 과반수뿐만 아니라 26개의 칸톤 중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이렇게 칸톤들 사이에서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하는 조건은, 현실적으로 이 나라의 연방주의를 지키기 위해 다소 골치아픈 문제이기 때문에 적어도 13개 칸톤에서 그 찬성을 얻어내어야 하는 것이다.

때로 학자들은 스위스의 체제를 “절반의 직접 민주주의”로 정의한다. 국회의 입법 절차를 시민들의 레퍼렌덤 권리나 투표를 통한 선거와 결합시킴으로써 정치인들과 시민 사회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대화하도록 압박하기 때문이다. 권리를 온전히 지닌 스위스인들은 그들의 민주주의 체제에서 자신들을 “주권자”라고 정의한다. 단지 정치인들을 뽑을 뿐만 아니라 언제라도 특정 현안이나 사안들에 대해 결정할 권한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칸톤과 연방 차원의 정치적 결정의 98%는 정치인들이 담당한다. 정치인들은 또 레퍼렌덤 투표의 결과를 적용해야만 한다. 직접 민주주의에서 정치인들은 천덕꾸러기가 아니라 주역으로 참여하며, 선거구 시민들과 더욱 직접적인 관계에 놓인다.

자주 이런 종류의 직접 민주주의는 입법 절차를 지나치게 지연시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오늘날 입법 생산성의 문제는 법의 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질에 있다. 이탈리아에서도 마찬가지다. 틀림없이 이탈리아 국회는 지나치게 많은 법률을 양산해 내고, 그것도 지나치게 많은 성공적이지 못한 법률들을 만들어 낸다. 스위스에서는 법률 생산량이 부족한 것을 불평하지 않으며, 입법 절차 상 시민 동의나 직접 관련된 모든 사회적 그룹들의 공적인 참여에 훨씬 더 주의를 집중한다. 행정부는 효율적이고, 경제는 번영하고, 시민 만족도는 높고, 공공 부채는 낮은 스위스는 인구 대비 GDP상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가운데 하나이다.

스위스에서도 체제의 개혁을 논한다. 예를 들어, 인구 통계학적 성장에 비례하여 레퍼렌덤 투표를 개시하기 위해 필요한 서명 인원을 늘리는 것이나 연방 차원의 재정적 레퍼렌덤 도입 등을 다룬다. 헌법을 지나치게 부풀리지 않기 위해 일반 법률 상의 연방 국민발안이 제안되었다. 이 도구는 입법자들을 설득해내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스위스는 국가에서 조인한 국제 협정에 대해 시민들이 투표할 권리를 훼손하지는 않으면서도 스위스가 지켜야 할 국제적 의무에 어긋나는 레퍼렌덤 투표를 막기 위한 헌법적 권한 행사에 대해 숙고하고 있다. 그러나 참여의 정족수 도입은 절대 있을 수 없다.

 

스위스의 시스템을 이탈리아로 옮겨올 수 있을까?

사람들은 종종 역사적 발전과 특수한 전통을 바탕으로 직접 민주주의는 오로지 스위스에서만 작동할 수 있으며, 유럽 다른 지역에서는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스위스에서 특정한 형태의 시스템이 발전했으며, 정치 문화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는 최고의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무엇보다 결과이다. 직접 민주주의가 잘 발달하면 시민들은 정기적으로 구체적인 현안에 대해 투표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그러한 전통이 없다는 것이 직접 민주주의가 확대되는 것에 반대할 논거가 될 수 없다. 오히려 그러한 문화가 발달할 수 있도록 레퍼렌덤 권한을 규정해야 할 것이다.

많은 경우 이탈리아에서는 이런 반대의 목소리를 듣는다. “우리는 스위스 사람이 아니니 이러한 모델을 이탈리아의 현실에 이전할 수 없다.” 직접 민주주의를 스위스에서만 적용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나라는 독특한 발전을 이루어 왔으며, 매우 특별한 정치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혹은 이론적으로 모든 의회 대의민주주의 체제를 보완할 수 있는 일련의 법률이나 도구가 있기 때문인가?

물론 스위스는 이탈리아나 이탈리아의 지방들에 비해 매우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스위스는 매우 독특한 연방정치를 발전시켰으며, 스위스 사람들은 자신의 칸톤에 대한 소속 의식이 매우 강하다. 게다가 스위스는 정부 구성에서 화합의 원칙을 실천한다. 어떤 “연금술”에 따르면, 연립 정부에도 늘 더 강력한 정당들이 존재한다. 스위스의 모든 정치 관련 조직들은 촘촘한 연결망으로 연결된 강력한 연합주의를 자랑하며, 스위스 사람들은 대개 자신들의 전통에 매우 큰 애착을 갖고 있다.

스위스의 또 다른 독특함도 있다. 국제 정치에서 절대적 중립을 지키고, 지역성을 원칙으로 여러 언어를 사용하며(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 모든 칸톤은 그들 특유의 공식 언어가 있다), 다양한 교파의 그리스도교가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고, 2017년 현재 이주민 비율이 25%를 넘는다.

연방 조직이 모두에게 공통되는 하나의 연방 국가라는 큰 틀을 유지하는 가운데, 26개 칸톤에 각자의 언어와 문화, 개성을 개발할 수 있게해 준 한편으로, “국민의 권리”, 곧 직접 민주주의 권리들은 시민들로 하여금 각자의 정치 시스템을 자기 자신과 완전히 동일시하게 한다.

연방주의와 직접 민주주의, 이 두 가지는 스위스에서 국가와 사회통합의 핵심적인 요소들이다. 아니, 이는 스위스인들 공통의 역사적 유산이 되었다. 결정 과정에서 민주주의 면모는 더 잘 드러난다. 즉 대의민주주의 기구들 말고도 시민들은 구체적인 단일 정치적 현안에 대해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런 시민 직접 참여의 노정이나 기회는 시민들에게 유리한 법규를 갖춘 명확한 권리에 기반을 둔다. 또한 스위스 시민들은 거의 모든 사안에 대해 레퍼렌덤 투표로 결정할 수 있으며, 의회 또한 그러한 사안들을 토론하고 심의한다. 요컨대, 스위스에서는 정치적 주권자인 시민들이 사실상 최후의 발언권을 지닌다. 이 모든 것이 다른 민주주의 체제, 특히 중부 유럽에서 그렇지만, 세계 다른 지역에서도 가능해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종종 스위스 사람들은 여러 다양한 레퍼렌덤 투표에서 용납할 수 없는 투표를 했다는 비난을 받곤 한다. 예를 들어, 1992년 스위스가 “유럽 경제 공간European Economic Space”에 가입하는 것을 거부했을 때 그랬고, 그 후 2001년 유럽연합EU 가입을 위한 협상에 들어가는 것을 거부했을 때도 그렇다. 최근에 이탈리아 언론을 떠들썩하게 한 새로운 이슬람교 사원의 건설 금지(2009년)와 솅겐Schengen(유럽연합에 속한 26개국들로 서로 여권 검사 없이 국경을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다)협정으로 합의한 사람들의 자유로운 왕래를 철회하기로 한 결정(2014년)도 있었다. 이 경우 일종의 “이데올로기적 필터”가 작동된다. 이런 몇몇 불쾌한 결정들은 다른 나라에서 늘 직접 민주주의의 적들의 이용을 당하는 반면, 그 밖의 수백 건에 달하는 다른 사안들에 대한 투표에 대해서는 전혀 주목하지 않고 언급도 하지 않는다. 스위스 사람들은 이민과 난민 관련 정치에서 원칙적으로 소수자 및 외국인들에게 개방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주관적인 이데올로기적 필터를 가동하여 스위스의 어떤 레퍼렌덤 투표의 결과에 대해 “잘못”되거나 “불의한” 것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투표 결과를 레퍼렌덤 도구 자체와 혼동하는 심각한 오해가 있는 듯하다. 직접 민주주의는 역사의 특정한 순간에 국민들 내부에 존재하는 입장을 반영하는 거울과 다름 없다. 비춰지는 모습이 싫다고 거울을 깨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외부에서 볼 때 정치적으로 주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때 스위스에서는 “긍정적” 결과와 “부정적” 결과가 교차한다. 스위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태도를 갖고 있지만, 세상과 사회 및 정치 개혁에 열려 있는 국민으로서
항상 최고의 전문가들도 깜짝 놀라게 만들 준비가 되어 있다.

스위스에서 실행된 직접 민주주의의 주춧돌은 이미 다른 많은 나라로 이전되었다. 1900년대 초 미국 서부의 연방 주들은 공공연히 스위스의 모범을 따라 주와 기초자치단체 차원에서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요소로서 국민발안와 헌법상의 레퍼렌덤을 시작했다. 일단 미국 연방 24개 주들이 이 권리를 적용한다. 세계적으로 37개국이 적어도 일부 이 참정권을 갖추고 있다. 또한 여러 대표단과 관료들도 매년 스위스를 방문하여 직접 민주주의 운영을 담당하는 기관들을 둘러보며 그 기능을 연구하고 있다.

직접 민주주의는 현대적인 개념이며, 성공적이고 수출에 적합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적어도 150여 년간의 경험으로 스위스는 레퍼렌덤 권한이 모든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 적용 가능함을 보여준다. 의심할 여지없이 스위스에 비해 이탈리아는 모든 차원의 레퍼렌덤 권리에서 매우 뒤쳐지고 있다는 것이 보고된다. 이탈리아에서 주 차원의 직접민주주의는 스위스의 칸톤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종종 직접 민주주의와 관련된 토론에서 스위스의 모델은 다른 곳으로 이전할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스위스의 모든 법령을 그대로 베껴 쓸 필요는 없더라도 이 시스템의 기반을 이루는 주춧돌은 참고로 하여 이탈리아 민주주의의 개혁을 실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스위스적 모델”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스위스에서 일관된 형태로 실행된 보편적 직접 민주주의의 모델이 존재할 뿐이다. 이 보편적 모델의 다양한 요소들이 이탈리아에서도 적어도 기초적인 형태로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확정적 (헌법상의) 레퍼렌덤, 정족수제로, 낮은 진입 장벽, 주 정부의 심의에 대한 레퍼렌덤, 몇몇 특별자치주에서 실시하는 제안적 레퍼렌덤 등이 그것이다. 어쨌든 이런 권리들은 대개 제대로 규범이 갖추어져 있지 않다. 그러니 이탈리아 사람을 스위스 사람들로 바꿔놓자는 것이 아니라 세계 모든 민주주의 체제에서 실행할 수 있는 법규를 이탈리아에서도 실시하자는 것이다. 이탈리아는 잘 법제화되고 시민들에게 유리한 직접 민주주의를 통해 더 스위스화 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더 민주적인 나라가 될 것이다.


편집자 주:

다른백년 출범 3주년을 기념하며 자축하는 책을 발간하였습니다.

더 많은 권력을 시민에게” 제목으로 21세기 새로운 흐름인 직접민주주의를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현재의 한국정치로는 미래의 희망이 없습니다. 1%의 소수를 위한 정치에서 99%의 시민을 위한 정치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비례성을 100% 강화하는 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하고 주권자인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비판하고 결정하고 통제하는 민치 – 시민권력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합니다. 이런 뜻에서 책의 내용을 격주를 통하여 약 10개월 간 연재하고자 합니다.  직접 구매를 원하시는 분들은 시중의 대형서점이나 온라인을 통하여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