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과 국회 공무원

소위원장 〇〇〇 아니, 〇〇〇 위원님 말씀하신 그것…….

수석전문위원 〇〇〇 그것은 우리가 자료 받은 게 없잖아.

소위원장 〇〇〇 전자문서로 뽑을 수 있는 것 아니예요?

수석전문위원 〇〇〇 그것 뽑는 것밖에 없는 거지…….

소위원장 〇〇〇 그러니까 공문 보낸 것을 달라고요.

17대 국회의 어느 상임위 소위원회 회의록에서 발췌한 기록이다.

잘 알다시피 수석전문위원은 국회 공무원이고 소위원장은 국회의원이다. 그런데 위의 속기록을 보면, 수석전문위원은 약간 반말 투다. 이 속기록의 상황을 일반적 시각으로 본다면, 수석전문위원의 ‘위상’이 더 높아 보이고, 최소한 동등한 위상이다.

한편 다음의 또 다른 소위원회 회의록에서도 수석전문위원의 위상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 만든다.

OOO 위원 지금 수정안대로 하게 되면 기재부의 의견을 충분히 참작하는 것 아니예요? 그래서 수정안대로 하면 기재부에서…….

수석전문위원 OOO 기재부 의견은 저희가 여기 비고에 적시한 것처럼 이걸 적극적으로 다 수용한다 그런 정도의 입장은 아니고요. 교육부에서 이 부분에 대해서 한번 기재부하고 협의한 사항이 있으면 말씀을 해주시지요.

OOO 위원 저도 잠깐만 말씀…….

OOO 위원 아니, 저도 질문 다 안 끝났는데요.

수석전문위원은 회의를 주재하다시피하며 의원의 발언을 중간에 끊기도 하고, 심지어 교육부와 기재부 등 정부 부처들까지 아우르고 있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국회 전문위원은 비단 법안에 대한 검토보고만 하는 것이 아니다. 예산과 결산에 대한 ‘검토보고’도 수행한다. 예·결산에 대한 국회 전문위원의 이 검토보고는 법안에 대한 검토보고보다 그 위력이 보다 강하게 발휘된다. 그런 이유로 위의 사례처럼 거의 독주하는 경향이 발견된다. 관련 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행정부처 피심사기관들은 대체로 ‘전문위원의 검토보고를 수용’하는 자세로 심사에 응한다.

 

전두환에 의해 명문화된 검토보고, ‘국회 무력화의 의도

이렇듯 국회 입법공무원의 권한을 강화시키고 그 위상을 높게 만든 것은 바로 ‘검토보고’라는 제도 때문이다.

다른 나라 의회에서 결코 발견할 수 없는 이 ‘검토보고’ 제도는 도대체 어떻게 우리 국회에 출현하게 되었을까?

국회 공무원인 ‘전문위원’이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안을 ‘검토’하는 이 제도가 처음부터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원래의 국회법 규정에는 “위원회는 회부안건을 심사함에 있어서 먼저 그 취지의 설명을 듣고”라고 하여 검토보고의 주체에 대하여 규정하고 있지 않았다.

그 조항이 지금 국회처럼 완전히 국회공무원의 권한으로 공식화된 것은 바로 1980년 전두환 국보위(국가보위입법회의) 때였다. 전두환 군사정권은 권력을 장악한 뒤 이른바 국보위의 ‘선거법등 정치관계법 특별위원회’를 조직하였고, 이 조직은 1981년 1월 22일에 회의를 개최하고는 국회법을 전면 개정했다. 여기에서 국회법 제56조 (위원회의 심사) 조항은 “위원회는 회부안건을 심사함에 있어서 먼저 그 취지의 설명과 전문위원의 검토보고를 듣고”라고 둔갑했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국회 전문위원의 검토보고 제도는 명문 규정으로 전환되었다.

당시의 회의록을 보면, 국회법개정의 목표와 기본방향에 대하여 “비리와 선동과 당리당략을 일삼는 정치폐습에서 탈피하여”라고 되어 있고, 개정의 ‘주요 골자’에서는 “직업정치인의 독무대화 현상을 배제하고 전문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유능 신인의 국정참여 기회를 부여할 수 있도록”이라고 밝히고 있다.

전두환 군사정권이 이 제도를 추진한 목적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국회의 무력화와 순치(馴致)’였다. 즉, ‘구 정치질서’를 극도로 혐오한 전두환 신군부 측이 관료를 수단으로 하여 자신들의 의도대로 국회를 허수아비로 만들고 통제하려는 명백한 의도를 가지고 추진한 것이었다.

 

유신에 의해 국회의원의 전문위원 선발권 뺏겨

현재 국회 전문위원은 국회 사무총장이 사실상 임명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본래 국회 전문위원은 상임위원회에서 의원들이 선발했었다. 하지만 그러한 제도는 박정희 유신 정권에 의하여 완전히 뒤바뀌었다.

1972년 12월 27일, 이른바 유신헌법으로 장기집권 체제의 근거를 만든 유신 정권은 곧이어 1973년 2월 7일, 국회법을 개정하였다. 이 개정에서 “전문위원은 당해 상임위원회의 제청으로 의장이 임명한다.”는 국회법 제42조 제2항 규정을 “전문위원은 사무총장의 제청으로 의장이 임명한다.”는 규정으로 바꿔놓았다.

이로써 상임위원회 활동에 필요한 ‘전문적인’ 인물을 상임위원회에서 의원들이 논의하여 선임하던 제도를 여당 임명직인 국회 사무총장이 임명하도록 되었다. 이는 국회 전문위원에 대한 상임위원회 의원의 선출권을 없애고 독재 권력에 의한 입법권 장악을 제도화한 것이었으며, 동시에 전문위원으로는 거의 행정부 관료로 충원함으로써 국회에 대한 통제를 확실하게 강화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조치는 뒷날 1981년 전두환의 국보위에 의한 전문위원 검토보고제 규정의 명문화와 결합되어 전문위원에 대한 국회의 통제권을 상실하게 만들고, 관료를 매개로 하여 의원들의 입법권을 사실상 무력화했다는 점에서 우리 국회 운영을 근본적으로 왜곡시킨 결정적 장면이었다.

 

검토보고제가 있는 한, 정상적 국회를 기대하기 어렵다

세계 어느 나라 의회에도 우리 국회처럼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 반드시 국회 공무원의 검토를 받아야 한다는 ‘본말전도된’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나라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충실하게’ 모방하고 있는 일본 국회에서도 전혀 그렇지 않다. 일본 국회는 상임위 법률 심의에서 가장 먼저 법률안 취지에 대한 설명을 청취하게 된다. 이때 의원이 발의한 법률안은 발의자 혹은 제출자의 취지설명으로부터 시작되며, 이 과정에서 증인의 증언, 참고인의 의견 청취가 가능하고 보고서 및 기록 등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 그 뒤 그 의원과 1문 1답의 질의를 진행하고, 질의가 끝나면 토론에 들어가는데, 1인이라도 수정동의를 제출할 수 있다.

또 흔히 우리가 쉽게 정치 후진국이라고 과소평가하고 있는 타이완에서도 입법원의 제8조(제1독회 절차)는 “입법위원이 제출한 의안은 제안자가 취지를 설명한 뒤 대체토론을 거쳐 심사 혹은 제2독으로 넘기거나 혹은 기각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단 한번이라도 눈을 감고서 진지하게 성찰해봐야 한다. 도대체 왜 의원이 제출한 법안에 의원이 아닌 다른 사람의 ‘검토’가 필요한 것인가?

본래 입법권이라는 직책은 당연히 국회의원들의 필수 임무다. 그리고 국회의원은 바로 그 일을 수행하기 위하여 국민들이 선출한 것이며, 국회의 존재 이유다. 그것은 의사가 본인이 아니라 사무장이나 다른 사람에게 치료를 시키는 것과 같고, 판사가 다른 사람에게 재판을 맡기는 것과 같다. 이래서는 언필칭 의사라고 할 수 없고 판사라 부를 수 없으며, 그야말로 ‘가짜 병원’이고 ‘가짜 재판’이다.

이와 전적으로 동일한 논리로 자기의 일, 즉, 본업을 하지 않는 국회의원을 국회의원이라고 부르기 어렵고 의회라 칭하기 민망하다. 국회가 국회답지 못하고 정당이 정당답지 못하며, 이러한 조건에서는 결코 의회다운 의회, 정치다운 정치가 존재할 수 없다.

 

변이(變異)된 국회, 변종(變種)된 국회의원

실제 어느 나라 의회든 의원이라면 너무도 당연하게 입법 활동과 그와 관련된 토론과 논의 그리고 연구, 조사 등에 대부분의 시간을 투여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입법이 곧 의원의 ‘본업’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 국회의 경우에는 전혀 이와 다르다. 입법 과정의 대부분을 공무원이 ‘대리’한다. 겉모양만 의회이고 무늬만 의원이라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변이(變異)된 국회, 변종(變種)된 국회의원이다.

필자에게 한 의원은 사석에서 자신이 유럽 국가들의 의회를 방문했을 때 그곳 의원들이 모두 소형차를 사용하고 있었으며, 평소 법안과 정책 연구 조사에 몰두하지 않으면 매일같이 이어지는 상임위원회 회의에서 의원들 간의 토론이 진행될 때 크게 망신당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니 우리 의원들처럼 지역구 관리에 몰두할 시간도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 의원은 그럼에도 연봉은 우리 국회가 몇 배나 많다고 실토하였다.

정의당 김종대 의원도 2018년 5월 폴란드에서 열린 나토(NATO) 의원 총회 참석했을 때 크게 놀랐다고 증언하고 있다. “300명에 달하는 미국과 유럽 의원들의 진지함과 박식함에 놀랐다. 외국의 국회의원들은 보좌관 없이 그 전문적인 내용을 실무자처럼 토론했다.”(“배지 달고 2년만 지나면 국회의원이 멍청해지는 이유”, 「오마이뉴스」 2018년 7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