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국인이든, 탈북인이든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 – 시민연구자 김명애 님
북한에 관심이 많아 탈북청소년의 한국 적응을 돕고자 꾸준히 만나왔다. 이번 연구를 진행하려고 만난 탈북 청소년 중 한 명은 3년 전에 수줍게 인사만 나누던 학생이었다. 당시 나와 이야기를 나눌 때 눈도 전혀 못 마주치고, 핏기없는 낯빛에 머리가 아프다며 힘들어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만나니 까르르 웃어댈 정도로 어찌나 밝아졌는지, 너무나 달라진 모습에 믿기지 않아 어리둥절했다.
“무엇이 널 이렇게 웃게끔 했니?” 어쩌면 내가 하려는 연구인 탈북청소년의 한국사회 적응에 미치는 긍정요소에 대한 직접적인 답이 될 수 있는 질문을 조심스럽게 던져봤다. 그의 대답은 이러했다. 전문상담사에게 여러 번 상담을 받았는데 그런 과정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를 찾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난 누구? 여긴 어디?” 아마 누구나 이런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복잡한 상황에 놓인 적이 한 번쯤은 있었을 것 같다. 이 친구도 목숨을 걸고 탈북을 시도해 어렵사리 한국에 왔지만, 모두가 바쁘게 살아가는 현 사회에서 북한에서 힘들게 왔다고 해서 특별히 따뜻한 눈빛이나 손길을 내미는 것 같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인이라고 하기에 뭔가 이상하고, 그렇다고 북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은 더욱 겁나는 상황에서 ‘나는 누구인가’에 관한 고민이 가장 컸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고민에 대한 답을 찾게 된 것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점차 알면서 한국에서의 생활이 점차 편안해졌다고 한다.
자아정체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내가 누군지를 알지 못하면 북한 사람이든 한국 사람이든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모습과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아~ 이게 나지. 맞아! 이 모습이 나야.”라고 하면서 심리적, 사회적 안정을 찾게 된다.
흔히 사춘기를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부르지 않는가. 이리저리 흔들리는 자신을 바라보며 어린이도 아니고 성인도 아닌 어중간한 신체적 변화와 함께 남성과 여성이 되어 가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정체성을 혼란을 느꼈는지 되짚어 보면 그때의 심적 고통이 떠오를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을까 싶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고려해 나를 포장하기보다는 상황 그대로의 나를 있는 그대로 오롯이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사회라는 곳에 적응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음을 알았다. 또 주위에 자신을 돕는 사람이 있다는 게 이들에게 얼마나 큰 소속감과 안정감을 주는지 알 수 있었다.
언제든지 기댈 수 있는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고 감사하는 탈북청소년을 바라보는 내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있음을 느꼈다. 앞서 말했던 그 친구는 한국에서든 북한에서든 바다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 친구의 말에 함께 바다 여행을 떠나자고 약속했다. 기대감이 가득 찬 눈빛과 너무 행복한 모습에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는 걸 다시 깨달았다.
탈북청소년의 한국 문화 적응을 위한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간호의 긍정적 요인을 연구하면서 어찌 보면 한국, 북한 나눌 것 없이 바쁘고 정신없이 돌아가는 현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긍정 요인을 연구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청소년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쓴 현실 앞에서 탈북청소년에 관한 연구를 발판으로 아파하는 한국의 청소년과 나아가 전 세계 청소년에게 가장 필요한 긍정 요인을 찾아주고 싶다. 그들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서 나아갈 수 있는 요인을 알아가는 연구로 점차 확장되길 기대한다.
[칼럼] 남한 사회에 적응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야 – 시민연구자 백성희 님
청소년 시기는 자아 정체감을 형성하고 성인기를 준비하는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탈북한 청소년은 북한에서 태어나 북한의 교육을 받다가 중국 등 제3국을 거쳐 또 다른 적응 시기를 보낸 후 남한으로 들어온다.
남한 사회라는 세 번째 다른 세상에 놓이며 자신의 역할에 많은 혼돈을 겪는다. 기본적인 지지체계인 가족은 해체되거나 상실된 상태이다. 지지체계의 상실과 함께 남한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연결된 교육을 받지 못해 학력이 결손 난 상황에 놓인다.
하나원을 통한 교육 이후에는 학교에 다니지만, 학업을 따라가지 못하거나 교사나 친구들과 원만한 인간관계를 형성하지 못해 중도 탈락률이 일반 중고등학교와 비교해 매우 높은 수준이다.
청소년 시기는 곁으로 보이는 자신의 신체상이 매우 중요하다. 남한으로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청소년은 외모와 말투가 확연히 다름으로 드러나지 않은 낙인을 경험한다. 여러 과정을 거쳤기에 또래보다 나이가 많은 경우도 흔하다.
북한에서 왔다고 특별하게 인식되면서 겪는 불편함도 있다. 많은 탈북청소년이 일상생활에서 겉으로는 남한 사회에 적응을 잘하는가 싶어도 우울과 불안과 같은 내면화된 정서 반응을 보인다. 남한 사람에 의해 드러난 낙인과 스스로 지닌 숨겨진 낙인으로 낮은 자존감, 수치심을 겪는다.
탈북청소년이 남한 사회에서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건강을 이루는 긍정적인 요인이 무엇일까. 많은 연구에서 사회적 지지수준이 높을수록 심리·사회적인 적응과 일상생활의 적응수준이 높은 결과를 보였다. 지지체계를 만들고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남한 사람들이 모르고 있어서 갖는 편견을 극복할 수 있었다.
남한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교육과 사회에서 제공된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남한으로 오기까지 극심한 스트레스를 경험한 이후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잠재적인 심리적 문제들은 공식적인 지지체계보다는 비공식적인 소집단에 참여하고, 여기에서 상호작용하면서 정보를 나누기도 하고, 정서적인 문제를 스스로 극복하기도 하는 경우를 봤다.
그만큼 소집단이 활성화되고 지지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청소년 시기에 맞는 교육, 각각의 상황에 맞는 맞춤 교육을 하면서 한국사회의 심리·사회·문화적 적응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새터민은 우리 사회의 편견으로 인해 신분이 노출되었을 때 받게 되는 불이익에 대한 우려로 대부분 자신을 숨긴다. 그러나 이번 연구를 하면서 모든 편견에 맞서서 곳곳에서 사회인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는 새터민을 만났다.
청소년기에 탈북해 남한 사회의 여러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성인에 이른 한 새터민은 남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다른 사람들을 돕고 자신이 어떻게 극복했는지에 대한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직접 경험하고, 극복했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정서적인 지지체계를 형성할 수 있으리라 본다.
탈북청소년에게 남한에 와서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이냐고 질문했을 때 자유를 얻은 것이라고 했다. 꿈에 부풀어 바다에 가고 싶다고도 했다. 남한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곳이라는 마음이 들어서 좋았다고 한다.
‘자유’라는 단어를 다시 떠올렸다. 스스로 옭아매거나 다른 사람에 의해 구분될 때 자신이 자신의 자유를 빼앗아 버릴 수 있다. 지키고자 하는 자유가 단단히 지켜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나는 누구이고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를 발견하는 청소년기에 남한 사회에서 정체성을 확립하고 자기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적응에 성공해 안정을 찾길 바란다.
[칼럼] 탈북인 그들이 가진 고유의 강점을 최대한 살리는 것 – 시민연구자 정란 님
이번 연구를 진행하며 공동체 의식에 관해 생각했다. 공동체란 소속감과 안정을 대표하는 사회적 구성에 기본 관념이다. 이와 관련해 인간의 기본욕구 중 소속과 안정의 욕구에 대한 결핍은 상위욕구를 향하는 열정마저 사그라지게 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제3국을 통해 남한으로 넘어오려는 욕구는 생존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들이 남한에 정착하는 데 필요한 두 번째 욕구는 소속과 안정감이다. 그렇기에 하나원에서 사회화를 위한 교화 교육을 받고, 세상에 나오게 되었을 때 얼마나 큰 벅참과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을지 탈북청소년과의 대화에서 알 수 있었다.
간접적으로 겪은 경험담으로는 그들의 감정을 고스란히 글로 옮겨쓸 수 없을 듯하다. 그간 탈북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거리감은 청소년기 탈북민과 교류하면서 나에게도 그들을 향한 선입견이 있었음을 깨닫게 했다.
또 그들은 유학생과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가깝고도 먼 북한 땅에서 다른 문화와 교육을 받았기에 사상과 가치관이 우리와는 완전히 다를 것 같았는데 실제 만난 탈북청소년은 새로운 문화를 동경하고 또 받아들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은 한국문화에 하루빨리 적응하고 싶지만, 방법을 몰라 헤매는 여느 유학생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어쭙잖은 나의 섣부른 통찰력과 무분별한 조언은 그들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행에 신중함을 기하고, 젊은 연구자의 장점으로 실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과 관련해 정보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했다.
그러나 이것 또한 나의 자만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난 왜 그들이 우물 안 개구리와 같다는 여기며 정보를 주어야 하는 대상으로 느꼈을까. 정작 우물 속에 있던 사람은 연구자 나 자신이었음을 알게 되어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든다.
탈북청소년은 나보다 더 많은 경험을 하고 확고한 자아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과 만난 모임에서, 그리고 나눈 대화에서 자아 성찰을 하며 발전을 꾀했고, 그들에게 소속의 안정감을 주려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지 고민하고 접근하기로 했다.
탈북청소년이기에 최신 추세에 민감하고 빠르게 흡수할 수 있을 거라고 본 것은 나만의 착각이었다. 처지를 바꿔 생각하면 나 역시 외국에 나가서 그곳의 경향과 유행을 따라가기엔 분명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강점을 찾아주는 것으로 방향성을 잡았다.
빨갛게 머리를 물들인 남자 탈북청소년은 탈북한 지 갓 1년이 지났을 때였다. 북한식 말투와 억양이 강해 나서서 말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듯 보였다. 그래서 그가 관심을 가질만한 정보를 공유하며 자연스럽게 대화의 폭을 넓혀나가다 보니 교우관계에 문제가 있어 한국에 온 이후 학교를 여러 번 옮길 수밖에 없던 사연을 자연스럽게 털어놓았다.
이를 통해 탈북청소년과 정감 어린 교감을 했고, 탈북청소년이 아닌 평범하게 청소년기를 겪고 있는 고등학생의 멘토가 되어 편안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대화를 통해 “우리”, “함께”라는 소속감을 심을 수 있었다.
또 다른 친구는 같은 여성이라는 성별을 앞세워 진학과 결혼, 육아에 대해 소탈하게 이야기를 나눴고, 미래에 대한 생각과 가치관을 공유하며 연대감을 가질 수 있었다. 이외에 꿈과 관련해 현재의 불안함과 이를 해소하는 방법을 나눴고, 탈북이 약점이 아닌 강점이 될 수 있다며 힘을 북돋웠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거창하게 생각했던 연구과제는 생각 외로 단순한 문제로 다가왔다. 소속감과 안정은 협회나 단체를 통해서만 충족되는 게 아니라는 걸 새롭게 발견했다. 개인적으로 연구라는 거창한 단어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막연함이 있었다. 나의 관심과 호기심에서 시작된 문제점이지만 풀어내기엔 너무 큰 과제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과제를 수행하면서 위대한 발명은 대부분 호기심이 계기가 되어 시작되었음을 다시 깨달았다. 그러한 호기심으로 연구를 시작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무척 감사함을 느낀다. 연구주제가 포괄적이지만 대상자를 선정함에는 어려움이 큰 연구다.
탈북이라는 특성상 가명을 사용하는 사람도 많고, 특히 청소년기를 겪는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데 어려움이 컸다. 이번 연구로 즉각적인 변화를 도모할 수는 없겠지만 분명한 건 그들의 삶에 있어서 소속과 안정은 다음 욕구와 자아 성찰에는 도움이 될 것이라 자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