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 논평]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 취지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디엔에이법 개정 규탄한다

 

1. 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디엔에이법’)의 개정안이 지난 1월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2018년 헌법재판소는 이 법률 제 8조가 디엔에이감식시료채취영장을 발부하면서 채취대상자에게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절차적으로 보장하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영장발부에 불복할 수 있는 기회나 채취행위의 위법성 확인을 청구할 수 있는 구제절차를 마련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헌법불합치를 결정한 바 있다.

이번 개정에서 디엔에이 채취영장에 대한 의견진술 및 불복절차가 마련된 것은 헌법재판소는 물론 학계에서도 지적해 온 디엔에이법의 인권침해 요소의 개선이라는 점에서 분명 나아진 측면이 있다. 이는 용산 철거민, 쌍차 노동자, 노점상 활동가, KEC 파업노동자 등 부당한 디엔에이 채취와 신원확인정보 보관에 항의해 온 이들의 싸움이 이루어낸 성과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번 디엔에이법 개정이 헌법재판소의 결정 취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점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

2. 입법 당시부터 과도한 인권침해 논란이 있었던 디엔에이법의 개정인 만큼, 입법자인 국회는 해당 법안의 인권침해 요소를 일소할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개정이 진행되었다. 특히 이 법은 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데이터베이스에 대한 법률로서 일반 용의자에 대한 디엔에이 채취와 무관하고 이 법에 따른 채취 또한 대부분 영장에 의하지 않고 대상자의 동의를 강요하고 있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언론과 국회가 “DNA 채취 올스톱”이라는 경찰의 호들갑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인 점을 이해할 수 없다.

결국 국회는 이번 개정에서 철거민, 노동자, 노점상에 대해 부당한 디엔에이 채취가 또다시 발생할 수 있는 조항들을 개선하지 못하고 헌법불합치 인권침해 가능성을 그대로 남겨두고 말았다.

3.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이번에 디엔에이법 제8조에 추가된 의견진술 기회와 불복절차마저 개인의 권리를 온전히 보장한다고 볼 수 없다. 당사자의 의견진술 기회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서는 ‘구술’을 원칙으로 하되 불가피한 경우 ‘서면’으로 제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함에도, 이번 개정은 ‘서면’을 원칙으로 하며 그마저도 수사기관의 ‘소명자료’로 대체 할 수 있게 하였다. 이는 사실상 영장발부 과정에서의 법원의 통제를 형해화 함은 물론 당사자의 의견진술 기회도 실질적으로 보장하지 못한다.

또한 개정 디엔에이법은 채취가 이루어진 후 불복절차를 7일 이내에 진행하도록 한정하였으나, 그 기간이 매우 짧아 당사자가 실제 불복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고 보기 어렵다. 이번 개정은 디엔에이감식시료의 채취가 「형사소송법」상 압수・수색에 준하는 절차라는 관점을 취하고 있는데, 디엔에이감식시료의 채취영장은 압수・수색과 달리 채취 뿐만 아니라 감식, 데이터베이스 수록까지 포괄해서 영향을 미친다. 당사자는 물론 디엔에이를 공유하는 모든 가족들이 당사자 사망시까지 검색대상이 된다는 점에서도 압수・수색과 크게 다르다.

무엇보다 디엔에이법의 제정 취지를 생각해 보았을 때 디엔에이감식시료채취영장에 대한 검사의 청구 및 지방법원 판사의 발부 심사에서 아무런 요건을 규정하고 있지 않은 점은 큰 문제이다. 지금에서처럼 재범 가능성이 없는 이들에 대해서도 마구잡이로 디엔에이를 채취할 것이 아니라 ‘재범의 위험성’을 채취 요건으로 규정했어야 했다. 또 재범 위험성이 없는 경우 대상자 사망시까지 반영구적으로 보관할 것이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와 마찬가지로 보관과 삭제 기한을 정하는 것이 바람직했다. 헌법재판소가 이미 소수의견에서 채취 요건 및 보관 기간의 문제를 지적했었지만 국회는 이를 모두 외면했다.

4. 애시당초 디엔에이법은 2010년 중범죄자의 재범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되었지만 그동안 노동조합 활동이나 집회시위 과정에서 농성에 참여했던 노동자와 활동가들의 디엔에이를 국가가 강제로 채취하고 보관하는 문제로 비판받아 왔다. 이와 같은 부당한 디엔에이 채취는 국가가 인권·시민사회 활동은 물론 헌법에 보장된 노동권의 실현과 생존권 투쟁에 나서 사회 부조리를 비판했던 활동가들과 노동자들을 중범죄자로 취급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활동가들에 대한 국가의 무차별적 디엔에이 채취는 사회 부조리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활동을 위축시켜 우리 사회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어렵게 만든다.

국회는이처럼 헌법불합치 결정까지 받은 디엔에이법을 수사기관의 요구에 따라 형식적으로 개정하는 데 그쳤다. 이는 국회가 채취 당사자는 물론 그 가족의 민감한 디엔에이 정보를 수사기관이 채취하여 분석하고 장기간 데이터베이스에 수록하여 관리할 때 인권침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이다.

5. 부당한 디엔에이감식시료 채취 및 디엔에이 신원확인정보의 데이터베이스 수록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해 온 우리 인권·시민사회 단체들은 이번 디엔에이법 개정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 지금도 국가는 헌법불합치 결정의 청구인이었던 노동자의 디엔에이 정보 삭제를 거부하며 고통을 주고 있다. 앞으로 국가가 또다시 철거민, 노동자, 노점상, 집회시위 참여자에 대해 디엔에이 채취를 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우리는 경찰과 검찰이 부당한 디엔에이 채취와 보관을 즉각 중단하고 부당하게 보관 중인 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를 삭제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국회는 수사기관들의 일방적인 주장에 굴하지 않고 디엔에이법을 적극 재검토하여인권침해 조항들을 개정할 의무를 여전히 지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20년 1월 15일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금속노조 KEC 지회, 민주노점상전국연합,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단법인 정보인권연구소, 용산참사 진상규명 및 재개발제도개선위원회, 인권운동공간 활, 전국금속노동조합,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법률원, 진보네트워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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