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콘] 기획기사
3.8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31회 한국여성대회
‘올해의 여성운동상’ 수상 ‘전국가정관리사협회’



“가사노동자도 노동자다”



가사노동자의 사회적 인식 개선 성과
법적지위 확보해 노동자성 인정 시급
‘업무 매뉴얼’ ‘계약서 작성’ 등 전문성 확보


“정부는 가사노동자 보호입법 즉각 추진하라!”

초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던 지난 6월 16일 정오를 막 넘긴 시간, 서울 국회 앞에서는 수 십 명의 여성들이 앞치마에 머리두건까지 쓰고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이들은 전국가정관리사협회(이하 전가협), (사)한국YWCA연합회, 한국가사노동자협회 회원들로 ‘국제노동기구(ILO) 가사노동자협약 채택 4주년 및 제3회 국제가사노동자의 날 기념’ 캠페인을 펼치는 중이었다. 이들은 가사노동자의 노동권 인정을 위한 입법 추진과 함께 직업에 대한 사회적 존중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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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6일 국제가사노동자의 날을 맞아 전국가정관리사협회, (사)한국YWCA연합회, 한국가사노동자협회 회원들이 서울 국회 앞에서 ‘ILO 가사노동자협약 채택 4주년 및 제3회 국제가사노동자의 날 기념’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사진:한국YWCA연합회>



6월 16일은 국제노동기구가 정한 ‘국제가사노동자의 날’이다. ILO(국제노동기구)는 2010년 총회에서 가사노동자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Decent work for Domestic Workers)를 주요 의제로 채택하고, 2011년 가사노동자협약(Domestic Workers Convention)(No.189)과 권고안(No.201)을 채택했다. 공식적인 집계로만 전 세계적으로 117개국, 5천2백60만 명에 이르는 가사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약 30여만 명으로 추정되고 있는 국내의 가사노동자는 아직도 법적인 ‘노동자’가 아니다. 1953년 제정된 ‘근로기준법’에서 가사사용인이 제외되면서 지금까지도 가사노동자는 법적인 보호 바깥에 존재하고 있어 고용불안과 산업재해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집 안’에서 여성이 주로 담당해왔던 무급노동에 대한 저평가가 가사노동자의 노동에 대한 가치폄하로 이어진 것이다.


“일터는 전쟁터”

가사서비스노동은 7대 영역의 70가지 세부 업무를 단 4시간 안에 끝내야 하는 전문적인 노동이다. 한 업무를 수행하는데 허락된 시간은 고작 3분 정도. 화장실 갈 시간까지 아껴가며 부지런히 움직여야 시간 내에 업무를 마칠 수 있다. 숙련된 전문 기술이 뒷받침 되어도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고객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아무런 보상도 없이 업무 시간을 초과해 일하기도 다반사다. 고되고 반복되는 노동에 근골격계 질환 발생이 빈번하지만 어디에도 하소연할 데가 없다. 심지어 일하다 다치는 경우에도 법적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보상받을 길도 요원하다.


오랜 시간 이처럼 ‘그림자 노동’으로 저평가되던 가사노동자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11년 전 전가협이 창립됐다. 2004년 한국여성노동자회 부설로 만들어진 전가협은 당사자 조직으로 지난 10년 동안 가사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 향상과 노동자성 확보를 위해 노력해왔다. IMF 이후 여성 실업자들을 위한 지속가능한 일자리 창출을 위해 만들어진 전가협은 노동권의 사각지대에 있던 가사노동자들의 권리확보에 주목했다. 2004년 11월 한국여성노동자회의 5개 지부에서 시작된 전가협은 당사자들이 스스로 조직, 운영하고 스스로의 권리를 확보해 가며 경제공동체조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전가협은 업무매뉴얼과 교육 시스템을 갖춰 가정관리사가 직업교육과 인성교육을 이수하도록 했다. 가사서비스의 노동 기준을 제대로 세우기 위해 ‘계약서 쓰기’ 캠페인도 진행중이다. 고객과의 주먹구구식 관계 속에서 하던 일에 기준을 세우고 기본업무와 추가업무 등으로 구분했다. 가사서비스 이용계약서는 노동자의 노동권과 건강권이 보장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고객과의 관계에서도 업무에 대해 상호 근거가 되기 때문에 양자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 이러한 전가협의 업무에 대한 체계화는 가사노동의 전문성을 드러내는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    
뿐만 아니라 전가협은 몇 년 전 ‘식모들’ ‘수상한 가정부’ 등 가사노동자를 폄하하는 지상파 방송사의 드라마 제목에 대해 변경을 요구하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드라마 ‘식모들’은 ‘로맨스 타운’으로 제목이 변경됐고, ‘수상한 가정부’의 경우 제목이 변경되지는 않았지만 동일한 방송국에서 최근 방영하는 드라마에서 ‘가정관리사’라는 이름과 더불어 고객과의 관계에서 당당한 목소리를 내는 전문 직업인으로 가정관리사가 그려지고 있다. 파출부나 가정부 등으로 불리며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하던 가사노동자들의 모습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윤현미 전가협 협회장은 “그 드라마를 회원들과 돌려보았다”며 “조금은 (인식이) 달라지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뿌듯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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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가협 수원지부 사무실에 만난 윤현미 전가협 협회장. 윤 협회장은 당사자로서는 처음으로 올해 초 협회장이 됐다.>



“올해의 여성운동상 수상으로 인정받은 것 같았어요”

가사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을 위한 전가협의 이러한 노력은 올해 3.8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31회 한국여성대회에서 제27회 올해의 여성운동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선정이유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전가협은 ‘출범 이후 10년 동안 가사노동자의 권리보장과 사회적 관심 촉구를 통해 가사노동자의 현실을 드러내고 법적으로 노동자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정부 대책이 발표되는데 기여’했다. 윤현미 협회장은 “협회원들이 많이 좋아했다”며 “수상으로 모두가 고무됐다”고 늦은 소감을 이야기했다.
“좀 지칠 때였어요. ‘이걸 계속 해야 하나’, ‘계속 하면 될까’, ‘뭐가 바뀌긴 하나’ 이런 생각들이 들었었어요. 그런데 이번에 상을 받으면서 ‘우리만의 목소리가 아니었구나’, ‘좀 더 하면 되겠구나’, ‘계속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굉장히 뿌듯했습니다.”


가사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을 위한 제도 마련도 진행중이다. 고용노동부는 올해 2월 24일 ‘가정내 돌봄서비스 가운데 가사관리서비스에 관한 제도화방안’을 발표했다. 정부가 인정하는 정식 업체를 통해 가사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특별법 형식으로 제도화가 마련될 경우 가사노동자도 4대 보험 가입과 퇴직금, 실업급여 등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된다. 한국 정부는 2011년 국제노동기구에서 통과된 가사노동자협약에 찬성표를 던졌으나 아직 비준하지는 않고 있다. 같은 해 국회는 정부를 상대로 국제노동기구 협약 비준 촉구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다음해인 2012년에는 노사정위원회에서 오랜 논의 끝에 가사노동자의 노동권 보장을 요구했다.
지난 6월 16일 국제가사노동자의 날 성명서를 통해 전가협과 (사)한국YWCA연합회, 한국가사노동자협회는 “제도화 발표 이후 입법예고 등 정부의 가시적인 움직임이 없다”며 가사노동자 고용개선에 관한 법을 즉각 발의하고 국제노동기구 협약 비준을 위한 사회적 대화기구 구성할 것 등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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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가협 수원지부 사무실 곳곳에는 회원들의 활동 사진(위)과 시낭송 소모임에서 회원들이 함께 나눈 시가 전시되어 있었다.>



자부심 넘치는 당사자 조직

전가협의 전국 지부에는 다양한 소모임이 있다. 등산 소모임을 비롯해 양초 등 생활 소품 만들기, 오카리나 배우기, 건강을 위해 함께 운동하는 모임 등 다양한 모임들이 활발하게 활동중이다. 가사노동은 개별화된 노동이라 조직원들이 교감할 수 있는 기회가 없어 소속감을 느끼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이 소모임 시작의 이유다.
윤현미 협회장은 “서로를 좀 알자는 게 제일 컸다”며 소모임에 대해 소개했다. “일하면서 힘든 부분을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과 나누고 공감하는 자리죠. 일 끝내고 저녁에 모여야 하지만 지속적으로 참가하는 분들은 협회 소속이라는 것에 굉장한 자부심이 있어요. 내가 주인이라는 생각 때문인 것 같아요.”
수원지부에서 처음 시(詩)모임을 시작했을 때 협회원들 다수가 싫어했다. 5,60대 여성들이 대부분인 협회원들에게 시 낭송은 익숙치 않아 그리 달갑지 않은 것이었다고. 윤 협회장은 간부회의에서 반 강제적으로 각자 마음에 드는 시를 골라와 낭송하고 느낀 점을 말하게 했더니 처음에는 다들 어색해하더니 나중에는 모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됐다고 한다. “잠재되어 있는 감정들이 올라오는 거에요. 이제는 미리 준비도 많이 하고, 외우기도 잘해요. 처음엔 강제적이었지만 나중엔 자발적이 됐죠. 지하철이나 버스정류장에 붙어있는 시도 다시 한번 보게 되더라고요.”

2008년 4월에 전가협 수원지부에 입사해 그 해 수원지부장이 되고 올해 전가협 협회장이 된 윤현미 협회장은 첫 당사자 협회장이다. 당사자 조직에서의 당사자 리더로서 협회원들과 가장 밀접하게 소통할 수 있는 이유다. 정문자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는 “전가협 지부장들의 90%가 당사자”라며 “여성들이 리더로 성장하는 여성운동의 실천 현장”이라고 평가했다.

“당장은 가사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을 위해 특별법 만들어서 통과시키는게 목표에요. 법 통과하는 것보다 어떤 내용이 담기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간담회나 토론회 등에 부지런히 다니면서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어요. 여러 어려운 점이 있지만 노동자 입장에서 꼭 법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겁니다.”(윤현미 협회장)


참조 : 한국여성노동자회ㆍ전국가정관리사협회, 『가사서비스 노동기준을 세우자 계약서를 씁시다!』


글/사진 : 김수희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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