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시리즈> 제주의 용천수 이야기

제주의 용천수는 산물이라고도 불린다. 한라산에서 내려온 물이라는 뜻도 있을 수 있지만 살아있는 물이라는 말이 더 설득력이 있다. 제주의 선조들은 용천수를 죽어 있는 물이 아닌 살아 숨 쉬는 물로 보았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제주의 용천수마다 선조들이 소원을 빌었던 곳이 많고 지금도 남아있는 곳이 여럿 있다. 이러한 용천수가 1000개가 넘어갔지만 각종 개발로 사라져 현재는 700개도 남지 않았다. 그래서 제주환경운동연합에서는 작년부터 도내 용천수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4월부터 소식지와 뉴스레터를 통해 제주도의 용천수를 소개하고 있다.

제주시 동부지역 용천수

(행원리에서 종달리까지의 산물)

 

지서물과 말렝이물 : 광해군과 행원리의 산물

◆ 위치 : 제주시 구좌읍 행원리 651-2


말렝이물(가운데 병품담이 보인다)

 

예부터 행원리는 해산물 채취와 식수 관계로 해변 지대로 이주한 마을이다. 제주에서도 청정하기로 소문난 행원리 바닷가 밧소의 말렝이혹에 말렝이물(말랭이물, 몰렝이물)과 지서물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말렝이’는 ‘마루’의 제주어로 산처럼 길게 등성이가 진 곳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 지서물은 말렝이물을 지키는 서쪽에 있는 산물이란 뜻을 내포한다. 이 산물들은 해안도로에서 마을 쪽으로 막 들어오면 길모퉁이에 있다. 이 산물들이 개수되었으며, 특징은 식수통이 없다는 것이다.

말렝이물은 남자용으로 주변이 매립되면서 주변 지면이 산물보다 높게 되어 원형으로 쌓은 옛 돌담 위에 콘크리트 옹벽을 덧씌운 형태이다. 석축을 높여서 산물을 보전하고 목욕을 할 수 있도록 재정비 되었다. 남자물인 말렝이물은 출입구가 길에서 정면으로 보이기 때문에 차단벽인 병풍(막)을 설치하여 안을 들여다 볼 수 없도록 하였다.

여자용인 지서물은 말렝이물 서측 곁에 타원형의 통을 갖고 있는 산물로 여자용이다. 이 산물은 식수로 여자들이 목욕하고 생활용수로 썼던 물이지만, 제사 때는 이른 새벽에 이 물을 길어 사용하기도 한 귀한 제수였다.

역사적으로 행원리는 조선 제15대 임금인 광해군의 제주 귀양의 첫 기착지이며, 유배지의 시작이었다. 광해군은 인조반정으로 인해 개혁 군주에서 유배인으로 한 많은 삶을 제주에서 마감했다.

 

웃물과 큰물 : 매립에서 살아남은 평대리의 산물

◆ 위치 :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 3351-1 일대


웃물

웃물은 궤와 그 주변이 모습은 예전 그대로로 평대리 마을 안 언덕배기에 자리한 산물로, 궤(동굴)에서 물이 솟아나오고 있다. 옛날에 이 산물은 식수용 이외는 전혀 허용하지 않았다고한다. 그래서 산물 전체가 식수통으로 여자들만 사용했다. 빨래나 목욕 등은 바로 밑에 산물을 받는 큰물통을 사용했다. 큰물통은 따로 산물이 용출하는 곳이 있는 것이 아니라 웃물에서 내린 물을 받아 사용한 물통으로, 받은 양이 많은 통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 이 산물은 웃물만 옛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 산물들은 북제주군 구좌읍 세화 공유수면 매립사업이 한창일 때 매립 위기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마을주민들은 평대리 설촌의 맥을 같이 하는 산물로 마을의 근간이 되는 설촌 유적의 보존 차원에서 매립해서는 안 된다고 강력하게 반대했고 결국 보전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그런데 산물이 솟는 양은 예전만 못하다. 왜냐하면 공유수면 매립사업의 과정에서 물이 흘러갈 수 있는 기울기를 평지처럼 최소한의 기울기로 공사를 해 버려 물 흐름이 정체되기 때문이다. 큰물통은 돌 계단식으로 개수 했었는데, 최근에 돌담으로 산물을 감싸고 내부를 옛스럽게 복구하였다.

펄갯산물 : 갯벌에서 솟는 산물

◆ 위치 :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53-41 부근

하도리 창흥동이 오조리와 더불어 도내 최대 철새도래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풍부한 용천수로 인해 바닷물과 담수가 섞이면서 기수역이 형성된 이유가 크다. 기수역에는 많은 생물들이 살기에 새들이 이들을 먹으러 날아오는 것이다. 펄갯물은 조수가 드나드는 바닷가의 펄에 있는 물이란 뜻이다. 창흥동의 옛 이름이 펄개다. 즉, 진흙이 쌓여서 형성된 갯벌을 뜻한다. 새들이 많이 날아오는 이유는 갯벌에 있는 먹이를 먹이 위해서이다. 하지만 도로를 넓히면서 펄갯물 예전의 원형을 많이 잃었고 물도 거의 나오지 않고 있는 상태이다. 펄갯물도 남탕과 여탕이 나뉘어져 있다. 여자통은 알물이라 하며 바다 쪽인 북측에 있다. 웃물은 남측의 남자통과 20m 정도 떨어져 있다. 펄갯물은 마을과 근접해 있어 수도가 보급되기 전에는 주민들의 식수와 생활용수로 사용된 귀한 물이다.

 

서느렁물 : 철새도래지에 방치된 산물

◆ 위치 :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976-7 부근

하도리 철새도래지 안쪽으로 옛 양어장과 갈대밭이 있는 곳으로 깊이 들어가면 서느렁물을 만나게 된다. ‘서느렁’은 ‘서늘하다’의 제주어다. 이 산물은 한 때 이 지역의 상수도 공급용 원수로 사용하기도 했다.  전에는 이 일대 마을 주민의 피서지로 사람들이 몰려왔었던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은 정수장의 저장탱크인 원형시멘트 통에서 용출하고 있으나 방치된 상태이다. 귀한 용천수가 그냥 바다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이를 리모델링하여 철새도래지의 귀중한 자원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탕탕물 : 하도리 철새도래지의 귀한 산물

◆ 위치 : 구좌읍 하도리 947-34 부근

하도리 철새도래지 안쪽으로 들어가면 탕탕물을 만나게 된다. 탕탕물은 30여년 전에 도로를 정비하기 위해 돌을 파내다가 발견된 산물이다. 탕탕물이라 했던 것은 산물이 동산 밑에 있어, 물을 끌어 올리는 기계(양수기)를 설치했는데 탕탕거리는 기계 소리가 유난히 커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렇게 끌어올린 물로 물맞이를 했다고 한다. 지금도 용출량이 풍부하여 이를 아는 주민이나 시민이 찾아 더운 몸을 식히고 있다. 이 산물에는 검정망둑이 살고 있어서 발을 물에 담그면 닥터피쉬처럼 발을 쪼기도 한다. 하지만 주변에 건축물이 계속 들어서고 있어 철새 서식과 경관에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들렁물 : 하도리 별방진성에 있는 산물

◆ 위치 : 구좌읍 하도리 3354 별방진성 내

이 산물은 별방진포구 안에서 조석의 차에 의해 산물이 ‘나왔다 들어갔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해수침입의 영향으로 목욕이나 빨래용인 생활용수로 사용하였다. 해안도로에 복원된 별방진성 입구 동측 통은 여자용으로 빨래용이며 서측 통은 남자용으로 목욕물이다. 성(城)의 식수는 바다물의 영향을 받지 않는 성안 통물인 우물을 파 사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통물은 매립되어 찾을 수가 없다. 이 산물이 자리한 별방진은 철저한 고증에 의해 복원되지않다보니 옛 모습을 찾기 어렵다. 이 산물도 마찬가지이다.

 

엉물 : 궤에서 솟는 산물

◆ 위치 :구좌읍 종달논길 84 청강사 앞


청강사옆 엉물

청강사 입구에 ‘엉덕’에서 나는 물이라는 데서 연유한 물이다. 이 산물은 엉물 동네의 귀한 식수로, 빨래를 하고 남녀가 공간을 나눠서 목욕을 했던 물이다. 엉은 바위그늘을 의미하는 제주어다. 청강사 입구 좌측에 연못같이 보이는 곳에 아직도 바위그늘집인 궤가 남아 있고 거기서 산물이 솟는다. 이 산물 일대는 소금을 생산하는 염전이 있던 곳으로 종달 염전의 생산량은 도내 최고였다고 한다. 염전은 한국전쟁 후에 수답 사업으로 사라지고 논을 조성하여 벼를 수확했으나, 지금은 염전 일부가 습지로 남아 조류 등 많은 생물의 서식처가 되고 있다.제주환경운동연합 조사팀이 올해 1월에 갔을 때, 이들 습지에서 수많은 새들을 관찰할 수 있었고 천연기념물인 큰고니 1마리도 발견하였다. 하지만 이 습지대는 지금도 농지 등으로 계속 매립되고 있어 보전대책이 요구된다.


엉물에서 흘러내린 물이 큰 습지대를 만들었다. 여기에 많은 새들이 날아온다. 제주환경운동연합 조사팀이 1월 조사갔을 때, 멸종위기종인 큰고니 1마리를 발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