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규모의 경제공동체 창설이 눈앞에 다가왔다. 태국 RCEP(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 정상회의에서 아세안 10개국과 한·중·일·호주·뉴질랜드·인도 6개국(인도는 추후 참여)이 참여하는 자유무역 경제공동체 공동성명을 채택한 것이다.
2012년 11월 동아시아 정상회의를 계기로 협상개시를 선언하고, 28차례 공식협상과 16차례의 장관회의, 3차례 정상회의를 개최한 지 7년 만이다. 향후 시장개방 등 미세 협상을 마무리해, 2020년 최종 타결 후 공동서명을 추진키로 했다. 아울러 수준 높은 상호호혜적 협정을 통한 포괄적이고 개방적인 무역시스템 조성, 공평한 경제발전과 아시아 경제통합 심화에 대한 기여 등 RCEP의 지향점을 재확인했다. 바야흐로 하나의 아시아, 공영의 아시아를 향한 꿈, ‘아시안 드림’은 현실의 실천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정상회의 모두발언에서 “새들은 바람이 강하게 부는 날 집을 짓는다”고 말했다. 새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로 “강한 바람에도 견딜 수 있는 튼튼한 집을 짓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이는 아세안+3 정상회의 자체가 1997년 동아시아 금융위기를 이기기 위해 창설됐음을 짚은 것이자, 현재 범람하는 배타적 국가주의,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기도 하다. 아시아를 덮친 IMF 외환위기가 ‘바람부는 날’이었고, 현재 보호무역주의가 ‘바람부는 날’이며, 한반도 전쟁의 종식과 한반도의 평화번영이 달려있는 현 정세가 ‘바람부는 날’이기도 하다.
아시아의 집을 짓는 것이 순탄하진 않았다. 제국주의 열강들의 식민지에서 벗어나도 냉전체제가 짓눌렀다. 냉전이 해체되는 1980년대 말에 아시아경제공동체가 제안된 적이 있으나, 미국과 유럽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1998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개최된 아세안+3 정상회의에 참석한 김대중 대통령은 동아시아 13개국 간 포괄적인 협력을 위한 비전을 도출하기 위해 각국의 민간전문가로 구성된 ‘동아시아비전그룹’을 제안했다. ‘동아시아비전그룹’의 최종보고서, ‘평화·번영·발전(3P:Peace, Prosperity and Progress)을 추구하는 동아시아 공동체’는 다음 해 채택됐다. 2001년 부르나이 아세안+3 정상회의에서는 동아시아 자유무역지대 설치 타당성과 방안을 검토하도록 산하 각료회의에 지시하기에 이르렀다.
아시아는 아시아를 자각했다. CMI(치앙마이 이니셔티브)를 출범시키며 동아시아 통합운동의 물꼬를 트게 된다. EU와 달리 금융협력부터 시작한 것이 중요하다. 동아시아에서 금융협력이 일어나고 TPP, RCEP, CJK(한중일) FTA, AIIB 등 거대자유무역협정(Mega Free Trade Deal) 협상 및 개발금융기구 창설 등이 이어지면서 오늘날에 이르게 된 것이다.
동남아시아의 주체적인 통합노력에 비해 동북아시아의 그것은 참으로 부족했다. 미국과 일본의 태도 때문이었지만, 한반도의 냉전이 통합을 가로막는 구조물이었다. 이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경제통합은 요원하다.
다행히 3차 북미정상회담이 가시권에 들어오고 있다. 금번 북미정상회담이 성과적으로 열린다면, 이는 세계사적인 회담으로 기록될 것이다. 중간수준의 실질적 합의 즉, 핵동결과 종전선언 그리고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가 교환될 수 있고, 더불어 완전한 북핵폐기와 대북제재 해제를 최종목표로 천명할 것이라는 점에서다. 지구상의 마지막 냉전지대를, 이념과 체제의 대결장이었던 한반도를, 평화지대로 경제협력지대로 전환하기 때문이다.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는 벌크달러 북한반입을 허용하면서 대북제재 해제의 신호탄 역할을 할 것이다. 미래는 분명히 밝다.
무엇보다도, 동아시아의 거대한 통합운동에 북한이 참여토록 해야 한다. 북한 역시 이에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마땅하다.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와 본격적 개방이 북한경제 회생의 지름길이며,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함께 동아시아 경제통합에 기여하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가령 버클리대 로버트 스칼라피노 교수는 북한 나진·선봉과 중국 창지투 그리고 러시아 연해주를 묶는 동북아자연경제권(Natural Economic Territory:NET) 이론을 주장한 바 있다. 부존 자원상태와 지리적 근접성으로 볼 때 하나의 경제권으로 개발된다면 상호발전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비핵화와 대북제재 해제의 교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북한 경제발전을 위한 국제적·다자간·남북한 경제협력이 필요하다. ‘동북아시아개발은행’ 설립을 통해 공적자금과 민간자본을 통크게 결집하고, 북한을 포함한 동북아 전체의 발전을 경영하는, 빅 픽쳐가 준비될 때이다.
중기이코노미, 2019년 11월 5일자와 동시 게재된 글입니다.
최민식
중기이코노미 객원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정책위원장·동아시아신경제이니셔티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