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11월호(626호) 소식지 내용입니다.

부여 참벗공동체 임연빈·이건용 생산자

2011년 한살림과 인연을 맺은 임연빈·이건용 생산자는 유기재배한 대파를 일일채소와 김장용으로 공급합니다. 그 외에도 쪽파, 양상추, 양배추, 브로콜리, 감자 등 한살림 채소류를 생산합니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집집마다 김장 채비를 한다. 산지도 마찬가지다. 주재료인 배추와 무는 물론 갓, 마늘, 대파, 쪽파, 생강 등 부재료까지. 전국 각지의 생산자들이 한 해 동안 정성껏 키운 농산물을 보낼 준비에 한창이다.
여름내 벌레를 이기고 가을 추위를 견디며 자라는 대파를 미리 만나고 왔다. 수확을 한 달 앞두고 있어 아직은 굵기가 충분하지 않지만, 높게 쌓아둔 흙 위로 대파가 쑥쑥 자라고 있었다.

 

질기고 질긴 생명력의 대파

“가을 추위에 벌레들이 죽고 나면 안에서 예쁜 놈들이 얼굴을 내밀고 나와요.” 희끗희끗하고 누런 겉잎 속에는 초록빛 생기를 머금은 새순이 자라고 있다. 임연빈·이건용 생산자 부부는 풀을 뽑고 벌레를 잡느라 쉴 틈이 없으면서도 그 예쁜 놈들을 바라보며 미소짓는다.
생산자의 대파 농사는 5월 육묘부터 시작된다. 6월 말경 밭에 옮겨 심은 뒤 무사히 여름을 보내고 나면 11월부터 수확해 일일채소와 김장용 대파로 공급한다. 유기재배를 원칙으로 하는 한살림 농사에서 여름은 유독 고단하다. 무더위 속에서도 줄기를 밀어 올리며 열심히 성장하는 대파만큼이나 생산자도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먼저 이 시기에는 흙을 모아 뿌리와 줄기에 두두룩하게 덮어 주는 북주기를 한다. 대파에서 주로 이용되는 흰 연백부위를 길게 생산하기 위해서다. 대파가 마르지 않도록 수분도 일주일에 최소 두 번 충분히 공급한다. 그러다 보니 풀이 잘 자라는 환경이 될 수밖에 없다.
“올해는 병충해가 정말 심해요. 지난 겨울이 따뜻했던 터라 벌레들이 죽지 않고 여태 살아있거든요. 기후위기를 실감하는 중이죠. 유기자재를 써도 잘 통하지 않으니 결국은 손으로 잡아야 하는데, 끝이 없어요. 그래도 참새가 들어와 일손을 돕기도 해요. 독한 약을 치면 냄새 때문에라도 안 올 텐데, 우리 밭에는 자주 들락거리며 벌레를 잡아먹더라고요.”
대파는 벌레가 워낙 많은 작물이라 관행농사에선 ‘농약에 절인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임연빈·이건용 생산자는 유기자재로 방제를 하는데, 들끓는 벌레 앞에서는 큰 효과가 없다. 하지만 안달복달하지는 않는다. 그저 대파를 믿고 기다린다. 희끗희끗한 잎을 보면 이대로 죽는 건가 싶다가도 어느새 초록 잎이 다시 자라고. 대파는 그렇게 수확까지 버티고 또 버텨내는, 질기고 질긴 생명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화학비료를 한 번 주면 대파가 확 올라오는 데다 줄기도 굵어지고 색이 훨씬 진해지죠. 하지만 유기농사는 그럴 수 없으니 아무리 잘 키워도 굵기나 색깔이 요만큼밖에 안 나와요. 대파는 질소가 많이 필요한 작물인데 유기자재 대부분이 질소가 적거든요.”
굵고 곧게 뻗은 시중 대파에 비해 한살림 대파 생김새가 얇고 투박한 이유다. 다소 볼품없는 생김새 때문에 상품성이 떨어지고 조합원의 항의를 듣기도 하지만, 친환경농사를 짓는 농부로서 기꺼이 감수해야 할 몫이라고 말한다.


자부심으로 짓는 친환경농사

한살림 농사 8년차인 임연빈·이건용 생산자지만, 친환경농사는 여전히 어렵기만 하다. 무엇보다 나 혼자 잘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우리 밭 옆에서는 일반 농사를 지어요. 그분이 오면 약을 치나 안 치나 항시 비상이죠. 그래서 농지 사이에 제초제 뿌리지 말라고 비닐도 깔아드렸어요. 양배추 같은 농산물도 수확하면 가장 먼저 갖다 드리고요. 이제는 관계가 상당히 돈독해져서 우리를 많이 이해해주세요.”
지금은 비산 걱정에 이웃 밭까지 신경 쓰는 한살림 생산자지만, 처음부터 친환경농사를 지었던 건 아니다. 부여읍에서 관행농사를 하다가 2011년 옥산면으로 오면서 한살림과 함께하게 됐다.
“그땐 약을 치고 나면 머리가 아프고 구토 증세에 시달렸어요. 친환경농사를 지으면서 그런 게 싹 사라졌죠. 작물도 건강해서 좋지만 내 몸에서부터 느껴지니까.”
한살림 생산자가 되고 나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전에는 부여 특산물인 수박, 멜론을 주로 재배했으나 지금은 대파, 쪽파, 양상추, 양배추, 브로콜리 등 작물이 12여 가지로 늘었다. 조금씩 농사지으니 둘이 할 만하지만 1년 내내 농사를 이어가야 한다. 편리한 화학비료나 농약을 두고도 맨손으로 매일같이 풀이나 벌레들과 씨름을 해야 한다. 훨씬 많은 수고와 노력이 들지만 몸과 마음만큼은 어느 때보다 건강하다.
“사실 기후위기는 기업의 폐기물인 셈이에요. 매 순간 녹고 있는 빙하를 농부들이 농사지으면서 조금이라도 방지하고 있는 거예요. 논이 주는 담수효과는 또 어떻고요. 그러니 친환경농사를 짓는 것이 지구를 살리는 일이죠. 그래서 환경운동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있어요.”
자연을 지키고 생명을 살리고자 짓는 친환경농사는 환경운동과 많이 닮아 있다. 그의 농사가 미치는 선한 영향력이 우리 밥상을 넘어 지구에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맘때 수육을 최고로 많이 먹어요. 하하” 김장철이 되면 임연빈·이건용 생산자가 있는 참벗공동체에서는 매일 잔치가 벌어진다. 공동체 회원 집집마다 김장날에 한데 모여 서로 일손을 돕고 음식을 나누기 때문. 이렇듯 김장은 옛날부터 축제고 잔치였다. 언제든 김치를 사 먹을 수 있는 편리한 시대라지만, 빨간 대야 안에 김칫소를 버무리고 돼지수육을 삶아 함께 먹는 왁자지껄한 김장 날의 잔치가 그립기도 하다. 올겨울엔 직접 집에서 김치를 담가 이웃과 넉넉한 정을 나눠봄이 어떨까.


일일채소도 김장용도 한살림 대파

대파는 보통 10월 중순부터 이듬해 3월 초까지 공급하는데, 11월경 김장철에는 김장용으로도 만날 수 있습니다. 한살림 채소는 국가 친환경인증과 관계 없이 모두 유기재배를 원칙으로 합니다. 화학농약과 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생산한 한살림 대파에는 대파 본연의 맛과 향이 살아 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대파를 생산하는 만큼 생산지별로 재배 기간과 방식은 다를 수 있으나, 대파에 담긴 생산자의 정성은 한결같습니다.

 

글 국명희 / 사진, 영상 윤연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