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영희’와 ‘철수’가 더불어 사는 사회를 위한
작은 출판사의 꿈 – 출판사 박정훈 대표

 

지난 10월 11일,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출판사 박정훈 대표를 만났다. 박 대표는 월간 , 등에서 10여 년 동안 근무하다 2006년 사회과학 출판사 를 차렸다. 2013년에 도서 『10대와 통하는 독립운동가 이야기』(김삼웅 엮음)을 제작하며 연구소 회원으로 가입하여 지금껏 후원하고 있다. 매달 연구소에 박 대표가 출판한 책을 한 권씩 기증한다.


 

문 : ‘철수와 영희’라는 이름이 인상적입니다. 어떤 책을 만드는 출판사인가요.

답 : 는 어린이 ‘영희’와 ‘철수’, 어른 ‘철수’와 ‘영희’가 건강하게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도움이 되는 책을 펴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2006년 8월 15일 출판사를 설립하여 현재까지 130여 종의 어린이, 청소년, 성인을 위한 인문, 사회, 생태 도서를 펴냈습니다. 대표 도서로는 (최종규 저), (노정임 저), (이철수, 하종강, 배경내, 송승훈 저), (이유미 저) 등이 있습니다.

저는 특별히 어린이, 청소년 도서에 애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인에게 사회과학책은 생각을 강화할 뿐 바꾸기는 어려운데 어린이와 청소년은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시기라 책의 영향력이 더욱 큽니다. 그래서 저희 출판사의 청소년 책들은 한국의 청소년들이 꼭 알아야 할 정치, 역사, 사회, 종교, 환경 등의 주제로 여러 시리즈를 펴내고 있으며 모두 국내 저자로만 구성되어 있습니다. 한국의 현실을 잘 담기 위해서는 국내 저자가 집필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문 : 요즘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는 소리가 많이 들리는데요. 2014년부터 ‘도서정가제’가 시행되었습니다. 현재 출판계 상황이 어떤가요.

답 : 중학교, 고등학교에서는 교과과정과 연계한 독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요. 의무적으로 한 학기에 책한 권을 읽도록 권장합니다. 성인의 독서량이 정확하게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는 없지만 초중고생의 독서량이 없는 편은 아닙니다.
또 저희 출판사는 도서정가제의 혜택을 많이 받았습니다. 도서정가제 이전에 어린이 책 같은 경우 보통 책 가격의 절반을 유통 도매상에서 떼어갔는데요. 이밖에 학부모회 같은 곳에 도서 가격의 몇 프로를 기부하거나, 학교 같은 곳에서 도서를 할인해 달라는 요청도 많았어요. 소비자는 가능하면 책을 싸게 구매하려고 하죠. 그럼 자연스럽게 업체들 사이에서는 할인율 싸움이 생기는 거예요. 이 할인율 싸움에서 유리한 건 대형출판사입니다. 대형출판사는 책을 많이 찍는 만큼 권당 제작비가 적게 들어요. 작은 출판사가 대형출판사를 가격경쟁에서 이기기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도서정가제가 시행되면서 할인 폭을 규제하니까 저희 입장에서는 가격 경쟁에서 한층 자유로워져 서적 공급가를 높일 수 있어요. 서점에게 할인하지 않으니 수익률이 높아지고, 공급가를 높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죠. 이렇게 가격보다 책의 질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지면서 저희 출판사는 오히려 혜택을 보았습니다.

문 : 출판업계에 더 필요한 제도가 있을까요

답 : 아직 도서 유통 도매상에서는 어음을 지급하는 관행이 있습니다. 처음 출판사를 시작 하시는 분들이 도매상과 거래하면 어음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공급가를 낮춰서 현금으로 받을 수도 있겠지만 어렵죠. 각 지역으로 분산된 모든 서점과 직접 거래할 수 없기에 도매상의 역할은 필수적입니다. 이런 구조에서 출판사가 도매상에게 어음을 받으면 저자분들과 기타 거래처에 돈을 지급할 수 없어요. 게다가 어음으로 거래하면 다른 책을 새로 제작하는데에도 문제가 생깁니다. 기본적으로 저는 더불어 사는 사회에 가치를 두며 책을 만들고 있는데 이 어음 관행은 그것을 불가능하게 합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더는 어음을 받지 않습니다. 도매상에게 거래 정지를 당하고 정상화되는 등의 과정을 견디며 중간 협상을 했
습니다.
다른 하나는 도서관을 늘리고 사서를 정규직화 하는 것입니다. 괜찮은 책을 만들면 도서관에 납품
됩니다. 도서관 콘텐츠는 그곳 사서가 고르고요. 특히 어린이 책은 아이가 스스로 책을 사지 않고, 가이드가 필요해서 학교나 도서관에서 선정한 책을 부모가 구매합니다. 도서관 선정 도서의 중요성이 큰데
사서는 비정규직이 많습니다. 사서가 정규직이 되면 양질의 도서를 판단하고 도서관 구성 콘텐츠를 고민할 수 있는 여건이 나아집니다. 그러면 출판사는 책의 질로 경쟁하게 되어 도서 질이 높아지고 도서관은 좋은 책을 소장할 수 있어 서로가 좋은 상황이 될 수 있습니다.

문 : 출판사를 운영하며 어려운 상황도 있었나요

답 : 저희 책들이 좌편향 불온도서로 선정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2013년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한창이던 때 조선일보에서 사회면 전체를 할애해 “어린이 역사책도 좌편향 심각”이라는 타이틀로 대문짝만한 기사를 실었습니다. 이 기사에서 우리 출판사 책과 함께 9종의 어린이 역사책을 소개하며 어린이 역사서 상당수가 이승만과 박정희를 폄하했다는 등의 이유로 사실을 심각하게 왜곡하거나 좌편향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판매 부수와 관련한 출판사 인터뷰를 인용해 이렇게 많이 팔린 책들이 좌편향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래도 이 기사는 큰 반향이 없었어요. 2015년 상황이 더욱 심각했죠.
2015년 문화일보에서 우리 도서 (이임하 저)에 대한 기사를 실었어요. 이 도서는 부산시 교육청이 지정한 청소년 추천도서로 선정되어 있었는데 문화일보에서 책의 좌편향이 의심된다고 보도하자 청소년 추천도서 선정이 취소되었어요. 그게 문제를 더 촉발해서 문화일보 3회, 조선일보 3회, 동아일보 2회, 중앙일보 1회, 세계일보 1회 등 일주일 동안 수십 건의 기사가 신문과 방송에 나왔습니다.
문화일보는 우리 책이 6.25가 남침이라는 점을 외면하고 있다고 보도했는데, 남침을 언급하고 있는 구절이 본문에서 세 차례나 나옵니다. 이들 언론은 사실과 다르거나 앞뒤 문맥을 자르고 짜깁기하는 등의 왜곡 보도를 했습니다.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 문화일보에서는 저자인 이임화 선생의 교수직에 의문을 품는 기사까지 썼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저자를 위협하는 일까지 생길 것 같아 반박 자료를 만들어 한겨레와 경향에 들고 갔어요. 왜곡 보도를 계속하면 법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기사를 내면서 상황이 조금 누그러들었죠.

그해에 다시 ‘스토리케이’라는 보수단체가 우리 출판사 책 3종을 또 좌편향으로 규정하여 역시 조선, 동아, 문화일보 등에 의해 기사화된 일이 있었습니다. 이때 우리 책이 좌편향으로 분류된 이유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악수하는 장면이 삽화로 들어갔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장면은 TV 등을 통해 전 국민이 보았던 장면이고, 중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사진으로 실려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어쨌든 언론 보도에 놀란 경기도교육청은 관내 초, 중, 고등학교에 공문을 보내 관련 도서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면 학교별로 폐기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실제 관련 도서들이 경기도 관내 도서관에서 폐기되고 빠지는 일이 발생했지만 이후 도서관 사서들과 독서운동단체의 문제 제기로 다행히 이 공문은 철회되었습니다.

문 : 국정화 교과서 논란 속에서 고비가 많았군요. 이들 논란은 종식되었지만, 현재 출판사에서 ‘국방부
불온서적’ 관련 소송을 진행 중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답 : 2008년 국방부가 23종의 도서를 불온서적으로 지정했던 사건이 유명했습니다. 국방부는 북한 찬양, 반정부‧반미, 반자본주의라는 이유를 들어 21군데 출판사의 23종 도서를 ‘불온서적’으로 지정해 군내 반입을 금지했는데, 이것이 한겨레 보도를 통해 알려지면서 사회적 파문을 불러왔었죠. 결국 해당 도서를 펴낸 출판사 중 11군데 출판사와 11명의 저자가 2008년 10월 국방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며 법적 대응에 나섰습니다.
우리 출판사에서는 (정태인, 하종강, 이임하 저)가 불온서적 리스트에 들어있었고 소송에 참여했습니다. 이 소송은 1심과 2심에서 “국방부장관의 불온서적 지정이 헌법상의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패소 판결을 받았습니다. 1, 2심까지 패소한 후 4군데의 출판사가 상고를 포기해 대법원까지 상고한 출판사는 이제 7군데만 남았습니다. 그리고 저자 한 분이 돌아가셔서 10명의 저자가 상고한 상태입니다. 지난해 대법원에서는 원심법원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못하였다고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이 사건을 다시 심리하도록 서울고등법원으로 사건을 환송했습니다. 기나긴 법정 싸움이 여전히진행 중입니다.

 

문 : 2008년의 불온서적 재판이 여태껏 종결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래도 꾸준히 책을 내
고 계시고 출판사는 안정적으로 운영하시고 계신 것 같습니다. 앞으로 계획은 어떻습니까.

답 : 같은 지향점을 가진 분들과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작업하여 오래도록 사랑받는 책을 제작하고 싶습니다. 에서 책 출간 아이템을 정하고 책을 만드는 과정은 끊임없이 편집자가 스스로를 믿지 않는 과정입니다. 나를 내세우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어야 한다는 것을 책을 만드는 과정마다 배우게 됩니다. 신인 저자들을 발굴해 여러가지 기획을 하는 과정에서 특히 그렇습니다.
(노을이 저)과 (박성규 저)는 신인 작가인 부부의 책입니다. 노을이 씨가 먼저 쓰시고 반응이 좋아 남편분인 박성규 씨께도 집필을 부탁드려 다음 책이 나오는 데 4년 걸렸습니다. 신인 저자들은 느리더라도 부분 부분을 주의 깊게 제작합니다. 이런 책들을 더 많이 내고 싶어요.
처음 출판사를 차렸을 때 10년 이상 가는 책을 2, 3권이라도 건지는 게 소망이었습니다.
이제는 그 소망이 몇 배 이상 이루어졌어요. 모두 를 성원해준 독자들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펴내는 책들도 10년 이상 갈 수 있도록 더 새롭고 참신한 기획으로 책을 펴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희 출판사 책을 믿고 격려해주시는 독자들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