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2019년 아홉 번째 희망편지를 드립니다.

풍성한 한가위 보내셨는지요. 가족과 친지들을 만나 이야기꽃을 피우셨기를 바랍니다. 돌아보면 이번 한가위를 보내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지난달 10일 개각 발표 이후 한 달간 벌어진 조국 법무부 장관 관련 논란 때문입니다. 한국 사회는 마치 조국 장관 찬반 전쟁을 치르는듯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조국 대전’이라고 불릴만한 법무부 장관 후보지명과 청문회 등 일련의 임명과정에서 민주주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야당 주도로 인사청문회의 수용과 번복을 거듭하며 불투명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집권 여당의 요구를 모조리 거부하는 거부권 민주주의, 비토크라시(Vetocracy)가 여전합니다. 무조건 상대 정파와 정책을 반대해야 다음 정권을 잡을 수 있다는 비토크라시는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문제를 악화시켰습니다.

검찰이 전면에 나선 점도 충격적입니다. 그간 검찰은 수사를 하거나 하지 않는 방식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왔습니다. 이번에 검찰은 직접 발 벗고 나섰습니다. 국민이 인사청문회를 통해 후보자의 적격 여부를 판단해야 할 때, 검찰은 조국 후보자의 가족을 둘러싼 전방위적 수사에 돌입하며 대통령의 인사권과 국민의 결정권에 도전한다는 의구심을 키웠습니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대해 국민이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 대안이 모색돼야 합니다.

언론의 과잉된 보도 행태도 입길에 올랐습니다. 언론은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번 과정에서 언론은 후보자와 가족에 대한 공세에 매몰된 과잉보도뿐 아니라 사실관계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논란을 키우는 데 급급했습니다. 후보자의 정책검증을 회피하는 대신 가족에 대한 ‘먼지떨이’식 의혹을 제기했고, 결국 진영대결로 격화시켰습니다.

국민을 대리하는 정치권에서는 무엇 하나 해결하지 못하는데 선출되지 않은 권력과 언론은 과도하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실이 오늘의 한국입니다.

우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더 우울했던 까닭은 청년세대의 절망입니다. 일부 대학생들은 조국반대촛불집회를 열며 진보세력도 기득권이 되었다고 규탄했습니다. 기득권의 네트워크가 공고하게 작동하는 현실에 좌절했습니다. 학내 노동자 차별에 대해 분노하지 않고 촛불을 드는 것을 두고 ‘미시적 공정성에 집착하고, 오히려 구조적 불공정과 불평등에 관해 소홀한 게 아닌가’라는 염려가 일었지만, 청년세대의 박탈감은 전혀 근거 없는 게 아니었습니다.

청년들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자리를 잡은 듯하지만, 그 이면에 숨어있는 계급 문제, 계층별 격차가 구조화된 상황에 분노했습니다. 이러한 분노를 표현할 수 있는 게 바로 민주주의의 근간입니다. 개개인이 어떤 문제를 향해 분노를 표할 수 없을 때 우리 사회는 우울과 무기력에 빠지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합법적인 불평등’, ‘기득권의 재생산 네트워크’를 향한 규탄과 분노의 목소리가 가슴을 울립니다.

이는 단순히 조국 장관 찬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학벌 사회로 진입하는 장벽과 불공정성에 관한 문제 제기는 한국 사회의 질적 전환에 대한 요청이 담겨 있습니다. 정치적 민주주의, 다원성, 자기표현의 가치라는 트렌드를 넘어서 문제 제기가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조국 논쟁 속에서 한국 민주주의가 가야할 새로운 길은 사회적 불평등이 고질적인 일상이 되어버린 현실을 고치는 일이 돼야함을 보여줬습니다. 민주주의가 딛고 있는 허약한 기반을 어떻게 바로 잡아야 할지 절감하며, 기성세대의 일원으로서 부끄러운 책임을 느낍니다.

먼저 당사자의 참여에 기초한 대안을 만들어야 합니다. 공정한 입시제도를 예를 들면 또다시 관료와 전문가, 정치권이 정의하고, 선택하는 방식에서 탈피해야 합니다. 청년 스스로 느끼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아래로부터 듣고 제안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학벌에 구애받지 않고 인간답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삶의 조건을 청년이 말해야 합니다. 이러한 흐름을 뒷받침하기 위해 희망제작소는 부천시청년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있습니다만, 여러 지역의 자치정부에서 청년과 함께 만든 혁신적 대안이 중앙정부의 비협조와 제도의 미비로 실천이 늦어지고 있기도 합니다.

청년세대가 실업자, 하도급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로서 불안정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바꿔야 합니다. 무엇보다 사회적·경제적 토대의 변화를 위한 노력이 수반돼야 합니다. 앞으로도 희망제작소는 청년이 말하는 불평등에 관해 좀 더 경청하고 연대하겠습니다. 희망제작소와 함께 하는 여러분들도 사회적 성찰에 함께 해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내내 강녕하시길 빕니다.

희망제작소 소장
김제선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