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적 거리 만큼이나 잘 좁혀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라틴아메리카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고정된 시선일 것이다. 이른바 군부독재도 정당화하는 ‘개발’의 척도는 우리와 그들을 선 긋고 제1세계와 제3세계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만들어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는 소위 ‘우월’하다는 생각을 자리 잡게 한다. ‘저개발’ 국가로 통칭하여 부르는 라틴아메리카를 바라보는 우리의 의식적 기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으로 이 같은 인식은 미국을 위시한 제1세계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정’으로 나타나며, 광화문에 펄럭이는 성조기를 보는 것으로도 이를 충분히 입증하고 남음이다.
그래서 지금부터 라틴아메리카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 지역을 연구하는 이들에게나 익숙하고 흥미로운 대륙으로만 남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며, 세계화의 여파로 넘쳐나는 정보들이 종종 특정 정치 집단에 의해 악의적으로 이용되며 심지어 왜곡된 사실들이 버젓이 유통되고 있는 현실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최근 베네수엘라의 ‘위기’를 다루는 언론들의 태도를 보면 그 심각성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우리가 접하는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소식은 언론을 통해 선별되는 흥미 위주의 단신으로 제공되는 일이 다반사여서 언론이 쏟아붓는 뉴스나 소식들을 듣고 균형 잡힌 시각을 갖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지리적 거리는 물론 영어가 아닌 대부분 국가에서 우리에게 생소한 스페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도 큰 장벽임은 분명하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 생소하고 낯설 수 있는 라틴아메리카에 진지하게 말을 걸어보자는 제안을 해본다. 알면 알수록 우리와 다르지만, 그러나 제법 세상 돌아가는 닮은 모습에 흠칫 놀라기도 하는 그런 곳으로 살짝 발을 들여 놓아보는 것은 어떨까.
라틴아메리카 식민지 역사로부터 출발해보자. 결론적으로 현재 라틴아메리카는 15세기 말 이후 약 300여 년간 유럽 제국주의 식민지 통치를 받았고, 이후 20세기에는 미국의 경제 식민지로 완벽하게 귀속되면서 직·간접적인 통제하에 놓였다. 소위 미국의 ‘뒷마당’이 된 것이다. 1492년 콜롬버스의 신대륙 발견이 유럽인들에게는 아메리카 진출이라는 세계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유럽 ‘영광’의 역사라면, 현재 미국 이남 멕시코를 시작으로 남미의 칠레, 아르헨티나까지 아우르는 라틴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에게는 고단한 식민지 역사의 시작이었을 뿐이다.
수천만 명에 달했던 원주민들은 피정복민이자 노예로 강제노역과 착취, 굶주림, 학살로부터 시달리며 정복 초기 이미 주민의 약 90% 이상이 전염병과 노역을 견디다 못해 사망했다는 기록들이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대부분 우리에게 익숙한 안데스 산맥의 잉카문명, 과테말라와 유카탄 반도의 마야문명, 혹은 멕시코의 아스테까 문명을 이루고 살던 주민들이었다. 이들은 현재 라틴아메리카의 최하층을 이루며 가장 낮은 임금의 노동력을 제공하고 빈곤의 악순환으로부터 헤어나올 수 없는 현실의 구조적 모순들에 직면해 있는 대표적인 계층이다.
심지어 백인 우월주의 이데올로기는 과거 베링 해협으로 건너갔을 것으로 추정되는 아시아계에 속하는 대륙의 원주민들에 대한 끊임없는 차별과 배제를 정당화한 그들의 확고한 ‘신념’이었다. 특히 소수 백인 중심의 지배층이 강력한 곳에서는 이 같은 현실은 더욱 극단적으로 나타난다. 한 예로 중미 국가인 과테말라는 마야계 원주민이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도 여전히 소수 백인의 독점적인 지배체제를 바꾸지 못하고 있다. 사회로부터 체계적인 차별을 받으며, 동등한 기회는 고사하고 사회적 혜택으로부터 철저히 고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소수의 원주민들이 있는 국가의 상황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원주민들을 사회적으로 ‘열등한’ 인종으로 만들어 백인의 지배를 당연한 것으로 정당화하는 유럽 식민지 지배의 잔재는 놀랍게도 20세기가 끝나가는 1990년대에도 버젓이 존재한 현실이었다. 멕시코 사파티스타 원주민 운동이 일어나는 1994년 이전까지 “백인들이 사는 도심에서는 원주민들은 ‘감히’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었다”는 증언들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유럽의 지배는 원주민들을 수적으로는 거의 전멸에 이르게 하였고, 그들이 수천 년간 구축한 잉카와 마양문명과 같은 과거의 흔적들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주요 문화 상품이 되었다. 과거 유럽 봉건시대에나 보았음 직한 메이드(하녀) 복장을 한 마야 원주민 여성을 저임금 가정부로 고용하고, 그들의 시중을 받으며 마야문명을 자국 문화 상품화하는 일에 핏대를 세우는 과테말라 백인 지배계층의 ‘선별적’ 국익 수호는 씁쓸한 일면이다.
유럽 식민지 역사는 한편으로는 원주민과 아프리카의 흑인 노예로 구성된 다양한 인종의 계급적 계층화를 공고히 하였다면, 독립 이후에는 다문화 존중이라는 그럴듯한 외피로 이 같은 계급적 차별과 배제를 교묘히 은폐하였다.
마야 원주민 학살이라는 제노사이가 자행된 과테말라 36년 내전의 끝은 이후 리고베르타 멘츄라는 원주민 최초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을 뿐이다. 10만에 이르는 원주민 희생자들이 요구한 토지와 기본 권리는 철저히 무시되었음은 물론이다. 멘츄 개인의 ‘영광’으로 끝나버린 전쟁의 허무한 결과였다. 또한, 인구 절반이 흑인이며 다문화의 헌법적 권리를 인정하지만, 여전히 흑인 여성이라면 동일 교육과정을 밟아도 평균 백인 노동자에 비해 40% 이상 낮은 임금을 받는 것이 현재 브라질의 현실이다.
백인 우월주의 이데올로기는 식민지 지배를 위해 필요했던 통치수단이었고, ‘우월한’ 유전자라는 세례를 받고 유럽으로부터 건너온 백인들의 지배는 현재 라틴아메리카의 인종 카스트가 만들어지는 출발점이었다. 즉 유럽 식민지 시기에 고착된 인종에 따른 사회적 계급과 신분이 만들어진 바탕이 된 셈이다.
한편 1820년대 이후 유럽으로부터 독립하는 대부분의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이제 유럽이 아닌 미국에 의해 새로운 지배체제로 재편되기 시작했다. 바로 이 시점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라틴아메리카를 이야기해보자는 것이 나의 제안이다.
라틴아메리카 근현대사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경제위기, 군부 쿠데타, 민란, 무장투쟁, 그리고 혁명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역사적 사건들을 보이는 현상이 아닌 총체적으로 파악해보자는 것이다. 그래야만 비로소 문제의 본질들이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라틴아메리카의 끊이지 않는 정치경제 위기와 거듭되는 사회적 혼란은 단순히 일국 차원의 정치 의지의 부재 혹은 정책 실패로만 치부된 것이 사실이다. 즉 라틴아메리카 ‘저개발’의 문제를 오롯이 내적 요인으로만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이후 약 200여 년에 가깝게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자본주의 질서에 포섭된 이 대륙의 객관적 조건, 즉 외적 조건들을 배제한 채 이야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따라서 노암 촘스키가 언급한 500년 정복의 역사는 바로 지금의 라틴아메리카를 이해하는 시작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현재 36년 일제 식민지 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해 한국사회가 몸살을 크게 앓고 있는 것처럼, 수백 년 식민지 역사를 지나온 라틴아메리카의 경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제 조금 더 구체적인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유럽 지배의 역사를 청산하고 더는 미국 제국주의 식민지가 되는 것을 거부했던 쿠바의 선택해 대해 이야기해 보는 것은 어떨까. 다음과 같은 가제로 시작해 보자: 사회주의 쿠바 의료시스템의 ‘비밀’. 즉 현재 쿠바 의료시스템을 가능하게 하는 쿠바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