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비상행동

대통령의 유엔 총회 참석 발표에 대한 논평

항구적인 평화를 원한다면, 지금 당장 기후위기부터 인정하라

2019년 9월 13일 -- 한가위를 맞은 오늘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이 9월22-26일 유엔총회에 참석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문대통령은 P4G(녹색 성장 및 글로벌 목표 2030을 위한 연대) 정상회의 준비행사를 공동주관하고 기후행동 정상회의에도 참석할 계획으로 알려지고 있다.

‘기후위기비상행동’은 지난 9월4일 출범 기자회견을 통해서, 정부를 향해 기후위기를 인정하고 비상상황을 선언하라는 등의 3가지 요구 사항을 발표하였다. 이와 더불어 문재인 대통령이 9월23일 열리는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담에 참석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이를 위해 9월 1일부터 청와대 앞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또한 지난 9월 9일에는 청와대에 발송한 공문을 통해 다시 대통령의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담 참석을 요구하였다.

우리는 문대통령의 기후행동 정상회담 참석 결정을 환영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기후행동정상회담에서 대통령이 국제사회에 기후위기에 대해 무엇을 이야기할지는 아직 알려진 바가 없다. 또한 정상회담 이후 국내 기후정책이 위기 상황에 부합하게 비상한 변화를 보여줄지도 알 수 없다. 기후행동 정상회담에 참석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후위기를 인정하고 배출 제로 목표를 국제사회에 약속하는 것이 핵심이다.

세계 각국이 기후위기를 비상상황으로 받아들이고 긴급한 대응책을 계획하거나 실행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정부와 국회, 언론 어디서도 기후위기는 진지하게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가히 기후 침묵이라 부를 만하다. 문 대통령이 기후변화에 대해 언급한 것은 대부분이 해외순방 또는 국제 회의장에서였을 뿐, 실제 국내에서 국정과제의 중심으로 다룬 적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후행동 정상회담에 참석한다는 것이 대통령의 사진 찍기 성과로만 끝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과도한 우려가 아니다. 문대통령은 2018년 1.5도 특별보고서를 채택한 인천 송도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IPCC) 총회 개회사에서 “기후변화는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과제로 전 세계의 결단과 행동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2018년 10월 덴마크에서 열린 P4G 회의에서는 “탄소 배출을 늘리지 않으면서 인류의 공동 번영에 동참할 수 있는 방법이 모색되길 기대”한다고 연설했다. 그러나 당시에 한국은 여전히 국제사회로부터 ‘기후악당’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었다.

게다가 P4G회의에서 대통령은 한국이 “지난 10년간 녹색성장정책을 통해 성장을 유지하면서도 온실가스 배출강도를 줄이는 성과까지 다양한 성공을 거뒀”다고 자평하였다. 이것은 대통령의 인식이 크게 왜곡되어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국이 온실가스 배출 감축에서 ‘다양한 성공’을 거뒀다는 주장의 근거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이 말을 믿을 국제사회의 전문가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국제사회의 냉소를 받지 않을까 우려되는 내용이다.

그럼, 매해 이산화탄소 배출량 순위를 갱신하며, 올해 독일을 제치고 6위로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한국이 거둔 성공은 무엇인가? 2007년 이후 한국의 온실가스는 2014년을 제외하고는 해마다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 때문인지 이전 정부가 세웠던 2020년 중기 감축 목표는 합당한 설명도 없이 은근슬쩍 폐기했다. 또한 에너지전환을 추진한다는 현 정부의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는 2010년 대비 18.5%에 불과하다. 이것은 1.5도 제한을 위해 IPCC가 권고하는 2010년 대비 45% 감축 목표와는 한참 거리가 멀다. “탄소 배출 증가 없이 공동번영할 수 있는 길”은 한국 스스로도 실천하고 있지 못하다. ‘결단과 행동이 필요’한 것은 바로 현재의 한국정부다. 부끄러운 일이다.

이번 유엔 기후행동정상회담에는, 세계적인 청소년 학교 파업운동을 촉발한 스웨덴의 그레타 툰베리가 참석한다. 전 세계의 청소년 대표들이 모여 직접 기후위기에 대한 회의(Youth Summit)를 진행한다. 자신들의 미래가 사라져버릴지 모른다는 절망감에 짓눌린 이들의 호소를 문대통령이 직접 듣기 바란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나, 안토니오 구테레쉬 유엔 사무총장을 만나는 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다. 그들을 통해서 기후위기의 진실을 직접 마주하기를 요청한다.

이번 문대통령의 뉴욕 행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논의가 주된 목적인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그동안 문대통령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새로운 상상력과 담대한 행동을 강조했고, 그런 노력으로 한반도 평화를 조금씩 진전시켜왔다. 고되지만 위대한 길을 걷고 있다. 그러나 그 길은 한반도 안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트럼트 대통령과 대화할 주제는 북미회담만이 아니라, 기후위기의 진실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눠야 한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문대통령의 관심과 노력이 기후위기에 대한 실질적인 관심과 과감한 행동으로 확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기후위기는 한반도를 넘어서 전 세계의 평화와 모든 인류의 생존에 대한 실질적인 위협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유엔총회 참석이, 한국정부가 기후위기에 대응하고자 하는 전 지구적 노력에 실질적으로 참여하겠다고 공표하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 이를 통해서 한국이 과감한 온실가스 감축 정책에 나서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다시 강조하는 바이다.

기후위기 비상행동

<문의>
이지언 총괄간사 (010-9963-9818)
황인철 정책언론팀장 (070-7438-8511)


참고. 9월4일 기후위기 비상행동 출범 기자회견문

기후위기, 지금 말하고 당장 행동하라
- <기후위기비상행동>을 시작하며

지금 우리는 기후위기에 맞선 비상행동을 시작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기후위기’입니다. 다 아는 이야기라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정말 진실을 제대로 알고 있는 걸까요? 폭염과 혹한의 기상이변, 태풍과 산불의 자연재난, 해수면 상승과 생태계 붕괴, 전염병의 확산, 식량부족과 기후난민의 증가. 이 모든 위기는 과학자들의 예측보다 훨씬 더 빠르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더 이상 흔히 쓰던 ‘기후변화’, ‘지구온난화’라는 안이한 단어로 담아낼 수 없는 현실입니다.

생존의 위기입니다. 밀어닥치는 재난이 수많은 이들의 삶터를 앗아가고 있습니다. 바다물이 높아져 나라를 통째로 잃어버리는 섬나라, 멸종되는 동물과 식물은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이 땅에서도 아스팔트 위의 노동자, 논밭 위의 농민들이 폭염으로 쓰러집니다. 세계 곳곳의 가뭄과 물부족은, 절반도 안되는 식량자급률의 한국에 언제든 치명타를 입힐 수 있습니다. 위기는 불평등하고, 가난하고 약한 이들에게 더욱 가혹합니다. 생존의 위기이고, 정의와 평등의 위기입니다.
0.5도 남았습니다. 지난 100년간 산업문명은 지구의 온도를 1도 상승시켰습니다. 무분별한 화석연료 사용이 낳은 온실가스 때문입니다. 그 속도는 인류 출현 후 유래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1.5도가 마지노선이라고 말합니다. 1.5도를 넘어설 때, 지구의 평형은 다시 회복될 수 없고, 인류 문명을 지탱해온 조건이 붕괴한다고 말합니다. 이제 남은 온도는 0.5도입니다.

고작 10년 남았습니다. 1.5도를 넘지 않으려면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현재 추세대로면 불과 10년동안 이 한계치를 다 사용하고 맙니다. 인류의 운명을 좌우할 시간은 10년에 불과합니다. 일부 급진주의자들의 주장이 아닙니다. 전 세계 수백 명의 과학자들이 모인 유엔 IPCC가 내린 결론입니다.

앞으로 1년 4개월이 중요합니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의 절반을 줄이고, 2050년까지 배출순제로를 달성해야만 1.5도의 한계를 지킬 수 있습니다. 세계 각국은 얼마나 온실가스를 줄일지 그 계획을 내년 말까지 유엔에 제출해야 합니다. 2020년이면 이 지구와 인류의 운명이 어디로 갈지 사실상 결정됩니다.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거리로 나서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을 시작으로 위기감을 느낀 이들이 절박하게 외치고 있습니다. 스웨덴에서 시작한 학교파업, 영국의 멸종저항, 독일의 토지의종말 등 기후정의 운동이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들의 행동이 급진적인 것이 아니라, 기후위기 상황이 급진적이기 때문입니다. 국가도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미 영국, 프랑스, 아일랜드 등 10여개 국가와 뉴욕을 비롯한 900여개의 지방정부가 비상상황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멸종위기종이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이 자신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청소년인데도 거리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이라서 거리로 나가고 있습니다. 기후위기의 진실을 마주한 두려움에 남모르게 눈물을 흘렸던 이들이 낸 용기입니다. 이 슬프고도 절박한 호소에 동료시민인 우리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그들만의 일이 아니고 우리 모두가 위기 앞에 놓인 당사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침묵은 차갑습니다. 세계 7위의 온실가스 배출국가 한국은 무책임하고 게으릅니다. 2030년 온실가스 감축계획도 파국을 막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왜 국회와 거대정당, 정부와 언론은 이토록 조용하기만 합니까? 기후위기에 대해서 어쩌면 이토록 침묵하고 외면하는 겁니까? 2015년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모든 국가가 서명한 파리협정문, 그리고 2018년 인천에서 채택된 1.5도 특별보고서. 이것들은 도대체 어디에 내팽개쳐 있는 겁니까?
이제 응답할 때입니다. 어린이와 청소년의 외침에 응답하고자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단체들이 모였습니다. 현재의 이윤을 위해 내일의 안전 따위는 무시하는 탄소중독의 시스템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개인의 실천’을 넘어 ‘함께 하는 행동’이 필요합니다. 이제 책임있는 이들이 응답할 때입니다. 지금 당장, 기후위기에 맞서기 위해 행동하라고,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구합니다.

첫째, 정부는 기후위기를 인정하고 비상선언을 실시해야 합니다. 이제 1.5도를 지키기 위한 시한이 10년 밖에 남지 않았고, 이를 위해 사회 각 부문의 과감한 전환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 공동의 집이 불타고 있습니다. 지금은 시급히 불을 꺼야 하는 비상상황입니다.

둘째, 정부는 온실가스 배출 제로 계획을 수립하고, 기후정의에 입각한 대응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정부는 2020년 초까지 온실가스 배출제로 목표를 수립해야 합니다. 아울러 기후정의에 입각한 대응방안을 실행해야 합니다.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이들에게 더 많은 책임을 부여하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길은 더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것과 함께 갑니다.

셋째, 정부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독립적인 범국가기구를 설치해야 합니다. 현재 정부 각 부처는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기후위기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또한 국회는 정치적 이해득실과 정쟁에 매몰되어, 장기적인 비전과 정책마련에 무능합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서는 개방적이며 독립적인 범국가기구가 필요합니다. 이 기구는 참된 민주주의에 기반하여 비상상황에 걸맞는 계획들을 수립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대통령에게 요구합니다. 9월23일 뉴욕에서 열리는 ‘기후정상회담’에 대통령이 직접 참석하기 바랍니다. 등교거부운동을 시작한 스웨덴의 그레타 툰베리는 2주동안 대서양을 가로질렀습니다. 힘겨운 항해를 거쳐 뉴욕에 도착했습니다. 바로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각국의 정상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멸종위기에 처한 전 세계 청소년을 대신하여 그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직접 그들을 만나서 기후위기의 진실을 듣기 바랍니다.

이제 행동합니다. 전 세계의 시민들은 기후정상회담에 맞춰 기후파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시민들도 9월21일과 27일, 기후위기에 맞선 행동을 실행합니다. 이번 행동은 진실을 외면해온 정부와 기업에게 기후정의를 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우리의 행동은, 화석연료의 무분별한 소비와 무한성장을 강요하는 시스템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또한 인류의 생존과 생태계의 안녕, 이 공동의 목표를 향한 전 세계 시민들의 다짐과 결의이기도 합니다. 지금 말하고 당장 행동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살아갈 곳은, 이 지구라는 행성 외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 기후위기 진실을 직시하라
- 기후위기 비상상황 선포하라
- 온실가스 배출제로 추진하라
- 독립적인 범국가기구 설치하라
- 대통령은 기후정상회담 참석하라

2019. 9. 4
기후위기비상행동
www.climate-strik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