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교과 수업시간에 성인지 교육용 영화를 보여 줬다는 이유로 광주시교육청에 의해 부당하게 직위 해제된 배이상헌 교사가 결국 기소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광주 남부경찰서는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배이상헌 교사의 수업 내용을 조사한 지 며칠 안 돼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수업시간에 상영된 영화 〈억압받는 다수〉가 미성년자인 중학생이 관람하기 부적절하며 정서 발달에 위해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성적 장면이 포함된 해당 영상을 남녀 혼합반에서 공개적으로 상영해 학생들이 수치심을 느끼게 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프랑스의 여성 감독 엘레오노르 푸리아가 성별 역할을 뒤바꾸는 방식으로 여성 차별의 현실을 고발하고자 만들었다. 전교조 여성위를 포함해 국내의 많은 여성단체들이 이 영화를 성평등 교육 자료로 추천했다.
이 영화를 보고 일부 학생들이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해서 이 수업이 곧 성희롱이 될 수는 없다. 자본주의 사회가 온갖 보수적이고 모순된 성 관념을 유포하므로 청소년들은 성에 대한 여러 혼란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성(평등) 교육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간 진보적 교육운동과 여성운동에서는 성과 성차별적 현실에 대해 진솔하고 개방적으로 토론하고 교육할 수 있어야 한다고 요구해 왔다. 이런 일이 국가의 억압기구인 경찰의 검열에 좌지우지돼선 안 된다.
배이상헌 교사의 수업에 대해서도 경찰은 명백히 보수적인 잣대로 교사 노동자의 정당한 업무를 탄압하고 있다. 경찰이 수업 교재의 적절성 여부를 판단하는 꼴은 황당하고 경악스런 일이다. 교재와 교육 방식은 국가 탄압이 아니라 교사를 포함한 교육자들의 토론이나 교사-학생 간 대화를 통해 다뤄야 할 문제다.
경찰은 배이상헌 교사가 이 영상을 학교 측에 동의를 구하거나 통지하지 않고 사용한 것을 문제삼는다. 학교 측에 교사의 수업을 더 단단히 통제하라고 주문하는 것이다. 이 사안을 교육 내용에 대한 통제 강화의 기회로 삼고 있음이 여실히 드러난다.
배이상헌 교사에 어떤 소명 기회도 주지 않고 성평등 수업을 경찰에 넘긴 광주시교육청은 여전히 자기 정당화에 급급하다. 이러고도 장휘국 교육감이 진보 교육감을 자처할 수 있는지, 아니 교육을 말할 자격이나 있는지 심히 의심스럽다.
검찰이 배이상헌 교사를 기소할 공산은 크다. 부패와 비리로 대중의 불신을 받는 국가기관이 마치 자신의 존재가 정당한 양 생색내기 좋은 쟁점이다. 더군다나 배이상헌 교사는 국가가 법외노조로 만들어 버린 전교조 소속 교사 아닌가.
경제 위기로 자본주의 체제가 위기에 빠져 있다. 지배자들은 성평등을 말하지만 성차별적 사회구조를 지탱하는 주범이다. 보수적인 가족 가치관을 퍼뜨리며 노동계급과 서민층 사람들을 위축시키고 이간질하며 통제를 강화하려 한다.
입시 위주의 교육 정책으로 학생들을 비인간적인 경쟁으로 내몰고 특권학교 양성으로 노동계급과 서민층 학생들을 소외와 좌절에 빠뜨려 온 게 자본주의 국가다. 이런 국가기관이 일부 학생들의 불쾌함을 내세워 진보 교사의 성평등 수업 내용을 엉뚱하게 성범죄로 처벌하려는 것은 비열한 책임 전가일 뿐이다.
성평등과 진보적 교육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모두 배이상헌 교사 탄압에 반대해야 한다. 국가기구의 애먼 교사 탄압이 성공한다면, 가뜩이나 위축된 성(평등) 교육이 학교에서 더욱 위축될 것이다. 이것은 교사뿐 아니라 청소년들에게도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무엇보다, 전교조는 지금이라도 자기 조합원인 배이상헌 교사 방어에 나서야 한다. 전교조 대의원의 압도다수가 배이상헌 교사 탄압에 반대하는 서명에 동참했다. 전교조 지도부는 배이상헌 교사 처벌 시도에 경악하고 이런 일이 확산될 것을 우려하는 대의원들의 정당한 정서를 직시하고, 교사 노동조합으로서의 책무를 다해야 한다.
일부 학생의 불쾌감만으로 수업의 실제 내용이나 취지와 무관하게 성평등 교육을 곧장 성범죄 취급할 수 있는 현재의 교육청 매뉴얼은 물론 개선돼야 한다. 하지만 당면 국가 탄압에 맞서 진보 교사를 방어하지도 않으면서 매뉴얼 개선 타령만 하는 것은 책임 회피일 뿐이다. 그런 식으로는 매뉴얼도 제대로 개선하기 힘들다.
배이상헌 교사 방어 운동을 더 확대하자.
2019년 9월 11일
노동자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