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에서 각광받는 수학자들

분명,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다. 수학 전공자는 원래 미국에서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번듯한 취직은커녕 우리나라처럼 수학 과외라도 해서 먹고 살 수 있는 나라도 아니니 더더군다나 그러했다. 그러나 지금 수학전공자가 때 아닌 특수다. 왜냐하면 고액 연봉을 주는 월가에서 수학 전공자들을 대거 빨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Wilmott and Orrell의 『The Money Formula』참조). 그 대표적 예를 보자. 르네상스 테크놀로지(Renaissance Technologies)라는 헤지 펀드 회사가 있다. 그 회사의 대표는 사이먼스(James Simons)로 유명한 수학자인데, 그는 또한 세계에서 가장 부자인 수학자로도 알려져 있다. 순자산은 무려 100억 달러(약 12조 원). 200여 명의 사원 중 약 3분의 1이 박사학위 소지자이다. 그런데 전공은 재무·금융에서가 아닌 수학·통계학·물리학 학위다. 그래서 그 회사를 일컬어 “세계 최강의 물리학·수학과”라고도 한다. 이 회사 이외에도 지금 월가에는 약 1000여 명의 수학자들이 맹활약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수학자들이 헤지 펀드와 월가에서 왜 이토록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일까? 그들이 복잡한 알고리듬(연산)을 통해 상품을 개발하여 높은 수익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월가의 파생금융상품(financial derivatives)이다. 수학으로 보통의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상품을 만들어내고 세상의 모든 돈을 진공청소기처럼 파생상품으로 빨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고수익 올려주마! 자세히 알려고도 하지 말고 닥치고 투자!” 그들을 고용한 월가의 슬로건이다.


세계 최고의 부자 수학자, 제임스 사이먼스 <출처: AP>

 

수학자가 개발한 대량살상 무기: 불투명성의 화신 파생금융상품

그러나 이들의 혁혁한 공(?)으로 미증유의 부동산 거품이 일어났고, 그 결과 2008년 금융위기가 터졌다. 그리고 미국은 물론, 전 세계가 그 충격의 여파에서 아직도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유명한 헤지 펀드 디이 쇼(D.E. Shaw)에서 분석가로 일했던 하버드대 수학박사 출신의 오닐(Cathy O’neil)같은 이는 금융위기 발발에 치명적으로 일조한 수학을 가리켜 ‘대량살상 수학무기’(weapons of math destruction: 이 말은 ‘대량살상 무기’weapons of mass destruction에서 따왔다)라 부르며 자신의 과오를 깊이 반성하고 있다.

파생금융상품에서 수학자들이 만든 공식의 요지는 무엇일까? 고수익은 당연히 고위험을 동반한다. 그런데 그들이 복잡한 수식을 통해 개발한 파생금융상품은 구매자로 하여금 고위험의 가능성을 간과하고 안전 상품으로 보이게 교묘히 속인다. 예를 들면, 불량채권과 우량채권을 섞는 식이다. 그러면 위험이 없는 것처럼 위장된다. 월가는 훤히 아는데 대중은 모르는 불투명성. 그 와중 월가의 판매자는 수수료를 챙기고 돈 방석에 앉는다. 그리고 거품이 꺼지면 고위험의 폐해는 고스란히 구매자와 일반 시민이 떠안는다. 왜냐하면 거품이 꺼질 때 판매자가 망하면 미국이 망한다는 협박으로 구제금융을 받아내고 구제금융은 결국 그 판에 끼어들지 않은 순진무구한 시민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거품이 일게 할 때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전략, 그게 바로 불투명성 전략이다. 탐욕에 눈 먼 자들이 취하는 전략 중 하나가 바로 그것이다. 그들은 늘 경쟁과 시장의 투명성을 입에 달고 산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경쟁은 자신들만 모든 열매를 독식할 수 있는 기울어진 운동장 내에서의 특혜를 말한다. 또한 그들이 내세우는 투명성은 실은 자신들한테만 투명하고 타인(대중)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불투명성을 의미한다. 불투명성 전략이 일단 채택되면 게임은 해 보나마나. 서민은 백전백패, 탐욕에 절은 극소수는 승승장구! 이 때문에 샌더스(Bernie Sanders)는 월가의 사업 비법이 사기로 시작해서 사기로 끝난다고 일갈했던 것이다. 확실히, 제국질에 이력이 난 이들이 택하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이 불투명성의 전략이다.

 

제국질의 수단으로 전락된 불투명한 미국의 대입시스템

이 불투명성 전략이 단지 월가에만 통용될까?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탐욕에 눈 먼 제국은 사회 요소요소에서 발군의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그 중 여기서 눈여겨볼 것이 하나있다. 월가가 불투명성 전략으로 승승장구하며 미국의 인재들을 월가로 빨아들이면서, 거기에 입성하고 싶어 안달하는 젊은이들과 부모들이 악용한 것이 바로 미국의 불투명한 입시시스템이다.

미국은 표준시험 점수로만 대학에 들어가지 않는다. 소위 다면적 평가를 한다는 것인데, 그런 면에서 매우 불투명하다. 쉽게 말해 왜 대학에 붙었는지 혹은 떨어졌는지 당사자는 그 분명한 이유를 모른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성공에 눈이 먼 학생과 학부모들이 어찌 보면 이상적 시스템으로 보이는 대입 시스템을 지금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다. 갖은 탈법, 위법, 편법을 동원해서. 그 결과 미국이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학벌 사회로 변모하고 있다. 학벌사회로의 변모는 월가에서 소위 아이비리그를 포함한 명문대 출신을 뽑아간다는 것을 알고 나서 더 팽배해진 현상이다. 월가는 이제 입성하기만 하면 일반 직장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돈 방석에 앉을 확률이 높은 곳으로 인식되어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률적 잣대(즉, 시험 하나로)로 줄 세워 신입생을 뽑지 않는다는 미국의 대입시스템(즉, 수시로 불리는)이 돈 많고 권세가 있는 부모들을 둔 자식들이 과거보다 더 수월하게 소위 명문대학에 갈 수 있는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매우 당연한 수순이다. 생각해 보라. 입학사정관을 통한 정성적 평가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이의 불투명성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벌사회로의 변모는 미국이란 특수한 상황(땅 덩어리의 넓음, 교육과정의 비표준화, 그리고 낮은 대학진학률 등) 때문에 애초에 그런대로 문제없이 굴러가는 듯 보이던 기존의 대입제도를 확실히 변질시켰다. 가진 자와 권세 있는 자들의 탐욕이 공정해야 할 대입시에 제국질을 가미해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제국질은 이상적인 제도조차 제국에 일조하는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시궁창으로 만들어 버린다. 왜냐하면 불투명성을 투명하게 해주는 것은 바로 돈이며, 그 돈을 통해 갖은 정보와 기회가 가진 자들에게만 유통되고 돌아가기 때문이다. 결국 있는 자들에게만 대입시의 불투명성이 투명성으로 바뀐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다음 회에 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다음 이야기 하나를 소개한다.

 

504 플랜

‘504 플랜’이라는 것이 있다. 1973년의 재활법 제 504조에서 이름을 딴 이것은 신체적 혹은 정신적 한계(substantially limits)를 지닌 학생들을 위해 제정됐다. 즉 학습장애자들을 위한 제도이다. 여기에 선정되면 교실의 맨 앞자리라든가 시험을 볼 때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도록 개인 공간을 제공받는다. 또 내신뿐 아니라 수능(SAT나 ACT)에서 더 많은 초과 시간이 허용된다. 이 얼마나 이상적인가? 소위 정상인들과의 경쟁에서 약자에게 편의 제공 및 특혜를 줌으로써 십중팔구 벌어질 수 있는 격차를 감소시켜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런 이상적인 제도를 이른바 제국이 가증스럽게 가로채고 있다. 어떻게? 먼저, 이런 플랜이 있다는 정보를 일반 서민의 부모를 둔 학생들은 접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런 정보의 빠꼼이들은 고액의 수업료를 내는 사립학교, 과외교사, 입시컨설턴트 등이다. 그들은 서민들이 접근 불가능한 존재들이다. 둘째, 설사 공립학교에서 이런 정보를 들었다 해도 ‘504 학생’으로 되기 위해서는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ADHD) 같은 학습장애 판정을 정신과 의사에게 받아야 하는데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런 진료를 받을 돈이 없다. 그 돈은 7천~1만 달러(약 8백만 원~1천 2백만 원)가 들어간다. 독자들은 현재 미국에서 위급한 일이 있을 때 쓸 돈 50만 원을 마련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미국 성인의 거의 절반에 가깝다는 사실만 상기하길 바란다. 이런 마당에 무슨 사립학교며, 과외며, 입시컨설팅이며, 정신과 의사를 찾아갈 수 있겠는가? 그 틈을 누군가가 파고 들어가 분탕질을 치고 있는 것이다.

 

돈으로 따낸 학습장애판정

그럼 과연 누가 ‘504 학생’이 되는가? 2015년~2016년 한 해 동안 미국 전체 11,000개 공립 고등학교를 전수 조사한 결과 그 수치는 예상 그대로다. 즉 제국질이 ‘504 학생’이 되는데도 매우 유효하다. 부유층이 거주하는 학군의 고등학교에서 많은 수의 학생이 선정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군별 미국 공립 고등학교에서의 ‘504 학생’ 선정 분포 <출처: 뉴욕타임스>

인구조사소득 데이터에 의해 측정된 상위 1%의 가장 부유한 학군의 고등학교에서 ‘504 학생’은 5.8%이다. 전국 평균 2.7%의 두 배가 넘는 수치다. 소득 60% 아래로는 전국 평균값에도 턱없이 모자란다. 일부 부유한 학군의 고등학교에서의 비율은 18%에 이르기도 한다. 코네티컷 주 웨스턴(Weston)의 중간 가계소득은 220,000 달러(약 2억 6천 4백 만 원)인데 여기가 18%에 달한다. 거기서 30분 떨어진 댄버리(Danbury)란 학군 보다 8배 높다. 이처럼 공립학교마저도 부유한 지역과 빈곤한 지역의 차이가 극심한 미국이란 점을 감안해 보면, 그 보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부모를 둔 학생들이 다니는 사립학교와 특목고 그리고 전국에서 학생을 유치하는 자사고에서 어떠한 일이 벌어질 지가 충분히 그려질 것이다. 아쉽게도 이것들의 통계치는 알려진 바가 없다. 개 중 진짜도 있겠지만 대개는 돈 주고 산 거짓 학습장애 판정서이다.

뉴욕타임스는 캘리포니아 고등학교의 한 진로교사의 한탄을 소개했다. “돈 1만 달러로 당신이 원하는 그것을 가질 수 있는 게 지금 입시다. 완전 개판, 엉망진창이다.” 이런 틈을 타 돈 있는 자들은 남들 보다 앞서 나가고 이른바 소위 명문대로 진격한다. 그리고 학벌사회로 급격히 변모되고 있는 이 때 그 학벌로 월가를 포함해 좋은 직장으로 입성할 길이 활짝 열린다. 남들보다 내신 및 수능에서 시간을 더 갖고 시험을 치른다면 높은 성적을 얻는 것은 자명한 이치. 돈 주고 산 것이 어디 수능 시험 초과 시간뿐이랴. 어쨌든 이 와중 정작 학습장애를 진짜로 갖고 있지만 돈이 없는 서민층 학생들은 이 제도의 수혜를 전혀 입지 못한다. 제국질에 능한 이들은 정상 학생은 물론 이들 학습장애자들의 것까지 탈취해 경쟁에서 앞서 나아간다. 그리고 그들의 수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물론 관련 제도 적용기준이 과거에 비해 엄격해지긴 했으나 그러면 그럴수록 그것을 뚫고 나갈 여력은 소위 제국들에게 더 많다. 따라서 역설적이게도 앞으로도 이들의 선정 수치는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 뻔하다.

이상적 제도마저 자신들의 탐욕을 위해 철저하게 이용하는 그 치밀함! 그러니 이들을 제국이라 일컫지 않을 수 없다. 비록 그들이 앞서 다룬 클린턴과 같은 제국적 엘리트의 반열에는 미치지 못한다할지라도 충분히 제국질에 이력이 난 이들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리브스(Richard Reeves)같은 이는 미국의 상위 20%를 “야망축적자”(Dream Hoarders)라고 부르며 그들이 나머지 서민들의 꿈과 기회까지 박탈해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는데 매진하고 있음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Reeves, Dream Hoarders, 2017 참조). 그는 이들 상위계층의 이런 행태를 “기회축적질”(opportunity hoarding)이라고 부른다. 그것을 나는 제국질이라 부른다.

단언컨대 이 시대 걸신들린 탐욕주의자들은 모두 제국이다. 월가란 제국이 불투명성을 십분 활용해 그들의 배를 잔뜩 불린 결과는 미국 사회의 극심한 양극화다. 그리고 그것은 교육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대입시의 불투명 속에서 가진 자들이 득세한 결과 양극화는 심화되고 있다. 부와 지위의 대물림을 통해.

다음은 학벌주의로 질주하는 미국사회에서 벌어지는 입시와 관련된 각종 탈법, 편법, 위법의 요지경과 그것들을 우리나라 수시와 관련시켜 다루어 보겠다.

 

<참고>

“Paying For Disability Diagnosis To Gain Time on College Boards”, New York Times, 2002. September 26.

“Accommodation Angst,” New York Times, November 19, 2010.

“Need Extra Time on Tests? It Helps to Have Cash,” New York Times, July 30, 2019.

“Nearly 40% of Americans can’t cover a surprise $400 expense,” CBSNews, May 23, 2019.

“Quants: the maths geniuses running Wall Street,” Telegraph, July 23, 2013.

 

Wilmott, Paul and David Orrell. The Money Formula: Dodgy Finance, Pseudo Science, and How Mathematicians Took Over the Market. (Hoboken, NJ: John Wiley & Sons Inc, 2017)

O’neil, Cathy, Weapons of Math Destruction: How Big Data Increases Inequality and Threatens Democracy, (New York, NY: Crown Publishers, 2016). 캐시 오닐, (김정혜 역), 『대량살상 수학무기』, (서울: 흐름출판, 2017).

Reeves, Richard V., Dream Hoarders: How the American Upper Middle Class Is Leaving Everyone Else in the Dust, Why That Is a Problem, and What to Do About It, (Washington, D.C.: Brookings Institution Press,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