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품

 

8월 주제는 ‘일회용품’ 안 쓰기이다. 지난주에 ‘소비사회’에 속에서 왜 물건을 소비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다뤘다. 일회용품은 그 소비사회의 첨단에 서 있고, 상품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이다. 이윤추구를 자신의 목적으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합리성은 경제적 합리성, 효율, 생산성, 성장의 가치로 표현된다. 이것을 가장 잘 구현하고 있는 물건, 상품이 일회용품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체제 안에서’ 일회용품 사용을 거부하는 것은 자본주의와 가장 앞부분에서 맞서는 것으로 쉽지 않은 싸움이고, 자기 모순적이기까지 하다.

물건을 만드는 목적은 쓰임이다. 물론 그 쓰임이 다하면 물건은 버려진다. 그래서 살림에서는 그 쓰임이 되도록 오래가도록 물건을 만든다. 자주 만드는 것은 에너지와 시간, 자원 낭비로 살림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살림은 반성장적이다. 그런데 자본주의에서 물건은 상품으로 달리 불리고, 상품은 물건과 다른 목적으로 만들어진다. 상품은 ‘돈’과 교환을 목적으로 만들어진다. 즉 팔리기 위해서 만들어진다. 이런 점에서 자본은 살림과 달리 근원적으로 성장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이 교환과정을 통해 자본은 이윤을 획득하고, 사는 사람은 살림의 필요에 충당하고자 상품 아닌 물건을 산 것이다. 여기서 생산자와 구매자의 의도가 ‘잠시’ 충돌하지만, 합리성, 효율의 가치가 새로운 필요를 창출하여 이 과정이 지속되도록 한다.

소비사회의 ‘소비’는 필요를 충족시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욕구를 만들어내 소비의 동력으로 작동하게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욕구는 충족되지 않아 소비를 계속하게 만들어 자본주의 체제 유지의 동력을 제공한다. 극단적인 소비형태인 ‘일회용품’은 초고도의 효율성을 추구하고 여기에서 둘 사이의 합리성이 만난다. 이 둘 간의 합의가 빚어낸 숫자들을 한번 보자. 우리나라 1일 플라스틱 폐기물 배출량은 2016년 5445톤이다. 연간 1인당 플라스틱 사용량(2016)은 135.41kg(환경부 통계, 98.2kg 통계청 통계, 왜 어떻게 이렇게 다른 수치가 나오게 되었는지 물론 더 확인할 필요가 있다. 미국 97.7, 프랑스 73, 일본 66.9kg)이다. 연간 1인당 포장 폐기물(2016)은 64.12kg이다. 대표적 일회용품으로 비닐봉지가 있는데, 이는 2003년 125억 개에서 2015년 216억 개로 늘었고, 연간(2015) 1인당 비닐봉지 사용량은 420개( 폴란드 460개, 그리스 250개, 스페인 120개, 프랑스 80개, 독일 70개, 아일랜드 20개, 핀란드 4개)이다. 종이컵은 257억 개(2015), 페트병은 27만 4000톤(2016)이다.

통계들을 나열했지만, 이 숫자들의 크기도 가늠이 안 될 뿐만 아니라, 그 모습도 상상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양과 그 배출량이 만들어낸 모습은 우리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쓰임을 목적으로 하는 삶은 버리는 것을 극도로 자제하기에 앞의 수치를 가늠하고 그 결과를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한 21세기 한국사회에서 성장이, 소비가, 경제적 가치가 사회, 정치, 교육, 문화, 의료 등 모든 부문을 장악한 지금에는 버리는 것이 일상이다. 어떻게 삶이 소비로 대체되고 쓰임 대신 버리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을까? 통계 수치를 보면 급격한 변화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일상에서는 변화가 급격하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그 변화 과정을 인식하기 쉽지 않다. ‘나는 다만 좀 편리함을 추구했다고는 하지만 사실 그다지 편한 것도 아니었는데, 저쪽에서 저렇게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을 줄은 우리 모두 꿈에도 몰랐다. 분리수거만 잘해도 문제가 없는 줄로 알고 열심히 분리해서 버렸는데, 내가 버린 플라스틱이 일 년에 100kg이 넘었다니 어이가 없을 뿐이다.’

 

자본이나 소비자 모두 일회용을 생산하고 사용할 조건과 명분은 충분하다. 자본은 성장을 통한 이윤증식을 위해 일회용처럼 상품의 빠른 회전 속도가 필요하고, 그것이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것이다. 소비자도 자본의 빠른 회전 속도에 의해 삶이 규정되기 때문에 작업현장 밖의 일상을 일회용품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일회용품을 중심으로 꾸리는 삶이 편리할 뿐만 아니라 경제적이다. 그러나 합리성과 경제성의 결과는 결국 돌고 돌아 자본과 소비자에게 다시 비용과 부담으로 돌아온다. 물론 최종적으로 누가 그 비용을 감당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지만, 결국 우리 사회가 감당해야 한다는 점에서 효율적이지도 경제적이지도 않다. 그리고 그것은 더욱 심각한 문제로 오기 때문에 사실 손해다. 그러나 이 비용은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따라 청구되기 때문에 사회적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보통 피해는 사회적 약자에 집중된다는 것이다. 결국 ‘생산과 소비’에만 초점을 맞춘 좁은 합리성에 의한 행동 결과는 자본 축적의 기초와 삶의 조건을 악화시키는 비합리적 결과의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통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런 역설적 결과는 필연적이지 않다. 같은 자본주의라고 해도 핀란드는 일 년에 2장으로 삶과 체제가 환경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자본들 간의 경쟁으로 인한 외부화의 피해와 노동시장의 높은 경쟁압력 아래 피곤한 삶으로 인한 과도한 일회용품 사용의 압력을 피할 수 있다는 반증이다. 이는 핀란드 사회나 그 사람들이 우리와 달라서 비닐봉투 2장으로 일 년을 난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잘못이다. 다르다면 일회용품 사용으로 인한 사회적 환경적 비용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우리보다 먼저 사회적으로 처리했다는 것이다. 우리도 또한 그런 사회적 노력을 기울여서 사회적 의식을 갖고 조건을 만들어간다면 한 장도 쓰지 않고 살 수 있다.

 

신동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