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9월호(624호) 소식지 내용입니다

자연이 키우고 사람의 손길이 더해져

천 년을 이어온 차(茶)의 향기

 

김원영 생산자(좌)와 김영기 생산자(우)는 각각 도재명차와 수월산방이라는 다원을 운영하고 있다. 경남 하동 지역에서 야생에 가깝게 키운 찻잎을 전통 수제 방식으로 덖은 녹차를 생산하며, 한살림에는 ‘우리차살림’이라는 공동의 이름으로 첫물차, 두물차, 발효황차 등 녹차류를 공급하고 있다.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가파른 산길을 따라 올라갔다. 이런 곳에 차밭이 있을까 싶었지만, 이내 지리산 골짜기에 소담스레 자리 잡은 짙푸른 차밭이 나타났다. ‘녹차 밭’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드넓은 평지에 잘 정돈된 차밭’의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산과 산 사이 바위틈에 야생으로 자란 차나무들이 군락을 이룬 모습이 밭이라기보단 자연 그대로에 가까웠다. 경남 하동군 화개면, 한살림에 녹차를 공급하는 우리차살림 생산지를 다녀왔다.

차 시배지이자 야생차의 고장, 하동

‘명산(名山)에 명차(名茶) 난다’라는 말이 있듯 지리산에 자리한 하동 화개 지역은 따뜻한 기후, 양달과 응달이 적절한 일조량, 바위 사이 빠른 배수 등 차 성장에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기계화된 대량 생산 농가가 적고 직접 운영하는 소규모 다원에서 수작업으로 고급 잎차를 주로 생산한다. 농민 한 명 한 명이 곧 장인이 되어 차를 만드는데 우리차살림 김원영·김영기 생산자도 그러하다.

“TV에서 보던 것과 많이 다르죠? 하동에는 골짜기와 산비탈에 위치한 야생차밭이 대부분이에요. 우리나라 차 시배지인 만큼 수십, 수백 년을 이어온 야생차밭을 근간으로 손수 찻잎을 따고 덖어 차를 만들어요.”

하동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차 농사가 시작된 곳이다. 에 따르면 신라시대 흥덕왕(828년) 때 당나라 사신으로 다녀온 대렴공이 차 씨를 가져와 왕명으로 지리산 쌍계사 주변에 심었다고 한다.

“지금이야 교통이 발달해서 아프면 병원에 갈 수 있지만, 옛날에는 시내도 쉽게 나갈 수가 없었어요. 대신 찻잎을 주전자에 끓여서 마신 후 땀 흘리고 나면 금세 고뿔이 낫곤 했어요.”

이 골에서 나고 자란 김원영 생산자의 어린 시절엔 집집마다 비상시 약재로 쓸 차를 준비해뒀고, 봄이면 찻잎 덖는 향이 온 마을에 가득했다. 그렇게 차는 1,200여 년 동안 하동의 역사와 그곳을 일구고 살아온 사람들의 삶 속에 공존해왔다.

차 수확부터 가공까지 모두 수작업

한살림 녹차에는 곡우 즈음 수확한 새순을 덖은 ‘첫물차’, 곡우 이후 두 번째로 수확한 잎을 덖은 ‘두물차’, 5월경 수확한 찻잎을 발효시킨 ‘발효황차’가 있다. 보통 차는 채취 시기나 잎 크기에 따라 분류하는데, 지대가 높아 평지에 비해 시기가 늦은 편이다. 찻잎 수확 기간은 1년에 4~5월경 20~30일 정도. 이 시기를 놓치면 잎이 너무 자라 두꺼워져 떫고 쓴맛이 강해지며 품질이 떨어진다. 게다가 최근에는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날씨 변덕이 무척 심하다고. 한정된 기간에 최대한 채취해야 하니 채엽기를 쓰면 수확량도 늘고 편하겠지만 야생차밭의 특성상 일일이 손으로 따야만한다.

녹차를 만들 때는 차를 덖는 과정이 가장 중요하다. 찻잎을 250~300℃ 가량의 가마솥에서 덖어내는데 생산자의 숙련된 손놀림을 요구한다. “찻잎을 증기로 찌는 증제법도 있는데, 이는 화산토가 많아 독성을 날려야 하는 일본에서 주로 쓰는 방식이에요. 우리나라는 땅과 물이 좋으니 그럴 필요가 없죠. 특히 하동은 예부터 수제 덖음 방식을 고집해왔어요. 그래서 맛과 향이 깊고 부드러워 먹기가 훨씬 편해요. 덜 익히면 비린내나 풋내가 나고 너무 익히면 품질이 떨어지기 때문에 굉장한 집중이 필요한 작업이에요.” 사그락사그락 찻잎이 익는 소리와 함께 부지런히 손을 움직여 덖어 내는 김원영 생산자의 얼굴에 굵은 땀방울이 가득하다.

막 덖은 뜨거운 찻잎은 비비고 풀어주면서 열을 식히고 건조한다. 이 과정에선 균일한 작업을 위해 기계의 도움을 받는다. 그리고 햇차의 맛과 향을 느낄 수 있도록 미리 가향작업을 하지 않고 보관해뒀다가, 주문이 들어오면 그 양만큼 작업해서 공급한다.

“차나무는 병충해가 거의 없어 농약은 치지 않아요. 문제는 제초인데, 그야말로 풀과의 전쟁이죠. 특히 차나무를 휘감는 넝쿨을 제거할 때면 예초기 날이 바위에 부딪쳐 불이 번쩍번쩍 나곤 해요. 그래서 바위틈에 있는 풀은 손으로 일일이 제거해요.”

5월까지 차 수확이 끝나면 가지를 잘라주는 전정작업을 한 후 손이나 예초기로 풀을 제거한다. 경사가 가파르고 바위도 많아 어렵고 위험한 일이지만 김영기 생산자는 내가 조금만 더 수고로우면 된단다. 차밭을 관리하고 찻잎을 수확해 가공하는 모든 과정에서 그들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 자연의 좋은 물, 공기, 바람이 키운 차를 조합원에게 그대로 전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오랜 세월 우리 곁에 있었지만 마실거리가 다양해진 요즘은 차를 마시는 사람이 줄고 있다. 한살림 녹차 또한 공급량이 매년 10%씩 감소하고 있다. 생산지에서도 고령화로 인력이 부족해 찻잎을 다 수확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차를 키우는 건 자연이지만 살아 숨 쉬게 하는 건 결국 사람의 몫이 아닐까. 천 년의 차 향기가 오래 이어질 수 있도록 오늘은 커피가 아닌 녹차 한 잔 마시면 좋겠다.

 


한살림 녹차가 우리에게 오기까지 

 

 

국명희 사진 윤연진 영상 이슬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