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국에 앞서 인천공항에서

▲ 중국 심양공항에 도착한 답사단

▲ 신흥강습소 터를 찾아서(길림성 유하현 삼원포조선족진 추가촌)

▲ 추가가(추가촌) 신흥강습소 터는 이 상점 건너편에 있다

▲ 1911.6.10 중국관헌과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당시 옥수수 창고를 빌려 ‘신흥강습소’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신흥무관학교

▲ 애국지사들은 1911년 4월 추가가 대고산(사진)에서 노천군중대회를 열고 경학사를 설립했다

▲ 신흥강습소 터는 현재는 벽돌공장이다

▲ 신흥강습소 터는 현재는 벽돌공장이다

▲ ‘대한의 청년동지 여러분! 지금 우리는 나라를 뺏겼습니다. 우리가 추운 땅 만주에서 무관학교를 세우고 소정의 교육을 받는 것은 조국을 되찾겠다는 군인정신의 총화라고 생각합니다. 참고 견디는 고된 훈련을 통해 강인한 체력과 인내심을 길러 무관으로서의 기백과 담력을 키우자는 겁니다.’ 신흥무관학교 초대 교장 이동녕의 당시 조회사를 낭독하는 윤경로 대표

▲ 신흥무관학교는 서간도로 몰려드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1912.7 길림성 통화현 광화진 합니하(사진)로 이전했다.

▲ 합니하 신흥무관학교 터에서 설명하는 이준식 독립기념관장

▲ 신흥무관학교는 합니하에서 1912년부터 1919년까지 가장 오랫동안 지냈다

▲ 합니하 신흥무관학교는 앞으로는 합니하 강물이 뒤로는 산들이 있어 외부에 잘 노출되지 않는 지형이다

▲ 경희대 방송국 기자 동행 취재

▲ 합니하에서는 신흥무관학교 동창회 격인 신흥(교육)학우단도 만들어지면 이들은 신흥교우보를 발행하기도 했다

▲ 1919. 3.1운동 이후 신흥무관학교 본교가 있던 고산자진 대두자(본교 터는 현재 대두자촌민위원회 부근)

▲ 대두자촌 본교 터를 찾는 답사단

▲ 대두자촌 본교 터는 옥수수밭 한가운데 있다

▲ 대두자촌 본교 터는 옥수수밭 한가운데 있다

▲ 대두자촌 본교 터는 옥수수밭 한가운데 있다

▲ 대두자촌 본교 터는 옥수수밭 한가운데 있다

▲ 대두자촌 본교 터는 옥수수밭 한가운데 있다

▲ 가장 높은 언덕에는 깃발을 게양했던 석대가 있었지만 현재는 흔적을 찾을 수 없다

▲ 1919년 신흥무관학교의 교세가 확대되면서 설치된 통화현 쾌대모자 분교 터는 현재 통화현 유아원이 들어섰다

▲ 통화현 분교 터에서 설명하는 이준식 독립기념관장

▲ 통화현 분교 터에서 설명하는 이준식 독립기념관장


▲ 서파로 오르는 백두산

▲ 1442 계단

▲ 1442 계단

▲ 정재환 박사, 김수빈 단국대생, 정준호 은평구의원(왼쪽부터)

▲ 압록강 단교

▲ 하루빨리 우리 땅으로 오르고 싶은 백두산

▲ 유튜브 ‘정재환의 역사기행’을 위해 촬영 중인 정재환 박사

▲ 압록강 배 위에서 북녘을 바라보는 답사단

▲ 압록강 배 위에서 북녘을 바라보는 답사단

▲ 답사단을 향해 손을 흔드는 북녘 아이들

▲ 답사단을 향해 손을 흔드는 북녘 아이들

▲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수풍댐

▲ 우리의 소원을 합창하는 답사단

▲ ‘통일합시다’

▲ 1931년 ‘만주사변’이 시작된 심양에 들어선 9.18기념관은 항상 많은 중국인들이 찾아온다

▲ ‘勿忘 9.18′(9.18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