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물사태를 계기로 본 물인프라와 환경정의 :

분산형 시스템을 생각한다

최동진 (환경정의 집행위원, 국토환경연구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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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을 하는 사람들이면 한번 쯤은 도시를 벗어나 자연과 함께하며, 자급자족으로 평화롭게 행복을 일구는 삶을 살다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는 스콧 니어링과 같은 삶을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아니면, 조금 현대적으로 패시브 하우스를 짓고, 태양광으로 발전을 하고, 빗물을 이용하며, 먹거리를 직접 가꾸어 자립하며 사는 삶을 계획해본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도시화된 산업사회 속에서 복잡하게 얽히며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는 지나치게 집중화된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현대 도시와 산업을 발전시키고 지탱해 온 것은 중앙집중형 사회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체제부터 경제시스템, 산업, 전기와 상하수도와 같은 기반시설까지 모든 분야가 중앙집중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짧은 기간 동안 도시와 산업이 빠르게 성장한 우리나라의 경우는 특히 더 그렇다.

 

좁은 땅에 많은 인구가 밀집해 있는 도시의 경우 중앙집중형 인프라가 효율적이고 환경적이었다. 필요한 물과 전기를 개인이나 마을단위로 각각 조달해야 한다면 얼마나 비효율적이겠는가? 중앙집중형 시스템은 환경을 위해서도 필요했다. 도시의 오수와 분뇨를 한꺼번에 처리해서 내보내는 하수도가 없었을 때, 사람들이 각자 내버리는 분뇨와 오수로 도시와 하천은 심각하게 오염되었었다. 상하수도 때문에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15년에서 20년 늘어났다고 한다.

 

이렇게 성장해온 사회 속에서 분산형 시스템을 얘기하면 비현실적인 생태주의자 취급 받기 쉽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중앙집중형 시스템이 더 이상 효율적이지도, 환경적이지 않다는 주장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정치체제에서는 지방자치와 분권이 논의가 되고, 금융시스템에서는 블록체인과 암호화폐가 분산형시스템을 얘기하고 있다. 에너지 분야도 재생에너지의 보급이 확대되면서 독립분산형 시스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중앙집중형 시스템의 문제는 몇가지 측면에서 제기되고 있다. 첫 번째는 4차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기술의 발전이다. IT와 센서 등의 기술의 발전이 중앙집중형 시스템에서만 가능했던 일들을 아주 작은 규모와 적은 비용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 상하수도로 예로 들면 수처리기술의 발달이 한꺼번에 대량으로 처리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신화를 깨뜨려 버렸다. 가정용 작은 정수장치로도 얼마든지 원하는 수질의 물을 얻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오히려 대량으로 생산하여 일률적으로 공급하는 방식으로는 다양해져가는 소비자들의 수요를 더 이상 만족시킬 수 없게 되었다.

 

두 번째는 인구감소와 성장의 정체로 인한 시설의 과잉과 노후화이다. 급속한 인구정체와 경제성장의 정체가 맞물려서 기존의 대규모 중앙집중형 시스템의 유지관리를 어렵게 하고 있다. 특히 농촌지역의 상수도가 심각하다. 10만명까지 인구가 성장했던 도시가 2~3만명의 지역으로 축소되어 때, 도시형 중앙집중방식의 인프라는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된다. 노후시설을 교체할 재원을 감당할 수 없게 되고, 시설의 가동률은 현저하게 떨어지게 된다. 기존의 중앙집중형 인프라를 소규모 독립분산형 시스템으로 교체해야만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세 번째로는 물공급의 탄소발자국이다. 중앙집중형 물인프라는 대부분 멀리 있는 수원으로부터 물을 끌어와서 공급한다. 멀리서 가져오는 처리한 후에 다시 멀리로 내보내는 방식의 중앙집중형 상하수도 시스템은 가까운 곳에 수원이 없는 인구밀집 지역에 적합한 시스템이다. 그러나 우리는 도시와 농촌을 가리지 않고 거의 모든 시스템을 이와 같은 방식으로 통일시켜 버렸다. 오히려 주변의 가까운 수원을 폐쇄하고 멀리서 편하게 광역상수도의 물을 공급받는 것을 더 선호하고 있다. 환경에 부담이 가고, 온실가스 배출을 많이 하는 방식이다.

 

네 번째는 기후변화로 인한 취약성의 증가이다. 기후변화로 강우 패턴이 바뀌고 홍수와 가뭄이 잦아졌고, 지역별 편차도 커졌다. 무엇보다도 불확실성이 높아졌다. 기존의 인프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물재해를 경험할 가능성이 커졌다. 시스템의 중단되거나 망가질 가능성이 점점 커진다는 점이다.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사고가 발생할 것이라는 것을 가정하고 이에 대해 준비를 하는 것이다. 중앙집중형 시스템은 어느 한 곳이 문제가 되면, 전체 시스템이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중앙집중형 시스템의 이러한 문제점이나 취약성을 보완하기 위해서 전체 시스템을 분산형으로 바꾸는 것은 현명한 방법이 아니다. 적절하게 중앙집중형 시스템과 분산형시스템을 함께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8:2의 법칙과 같이 정해진 원칙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최대한 분산형 시스템의 비율을 높여야 한다.

 

인천 수돗물 사태는 극단적인 중앙집중형 시스템이 얼마나 취약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녹물 사고가 날 때까지 그것을 몰랐다. 도시의 상하수도 시스템은 참 편리하다. 수도꼭지만 틀면 먹는 물이 바로 나오고, 쓰고 난 물은 하수도로 자동으로 흘러간다. 우리는 그냥 사용하고 버리면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니 다른 대안이 없었다. 학교는 급식을 할 수가 없었고, 시민들은 식수를 병물에 의존해야 했다. 학교에 상수도를 보완할 수 있는 지하수나 빗물을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 있었으면, 아파트나 마을에 현재의 수원 말로 다른 수원을 이용할 수 있는 대안이 있었으면 혼란은 그렇게 심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항상 위기와 위험 속에서 살아간다. 인천의 녹물사태와 같은 비상상황은 언제나 발생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사고나 위기가 발생했을 때, 얼마나 이를 적절하게 잘 극복하고 안정성을 되찾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를 흔히 “회복력(resilience)” 혹은 “회복탄력성”이라고 한다. 회복력을 높이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적절하게 분산화시키는 것이다. 상하수도 분야에서의 분산형 시스템은 빗물과 물재이용 시스템, 소규모 독립형 물공급과 처리 시스템과 같은 형태가 될 것이다.

 

분산형 시스템의 도입과 관련해서는 여전히 많은 우려가 있다. 그러나 일률적은 중앙집중시스템은 사회경제적인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환경적인 측면에서도 정의롭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제 물인프라에서 환경정의를 고려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의 일률적인 중앙집중형 시스템의 구조적 변화와 분산형 시스템의 적극적인 도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