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이 말한 6411번 버스, 버스기사 야간노동을 늘리라는 말이었을까?
최성화 공인노무사(서울시 버스정책과)
▲ 최성화 공인노무사(서울시 버스정책과) |
지하철도 다니지 않는 새벽 4시에 아침을 준비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바로 청소·경비 노동자들이다. 이들의 발이 돼 주는 교통편은 버스다. 노회찬은 “6411 버스를 아십니까?”라는 질문으로 우리 사회에서 열악한 처지에 있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말해 줬다. 차를 탄 지 15분이 채 되지 않아 버스는 만석이 되고 좌석은 물론 복도까지 꽉 차 버리는 6411번 버스.
얼마 전 서울시는 새벽 4시께 출발하는 4개 노선버스 배차간격을 줄여 버스를 이용하는 노동자들의 불편함을 줄이려 했다. 노회찬의 명연설을 언급하며 첫차 혼잡도를 완화하기 위한 대책을 발표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언론 반응은 생각과 다르게 흘러갔다. 언론은 첫차 배차간격을 줄여서 될 문제가 아니라 첫차 시간을 앞당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버스가 너무 천천히 가서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할까 봐 발을 동동거린다는 노동자 인터뷰도 실었다. 그리고 이 정도로는 혼잡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 더 많은 증차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진보언론도 있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주장이 타당한지 되묻고 싶다. 서울시의 146번 버스 증차는 버스 노동자의 야간노동이 늘어난다는 걸 의미한다. 단순 증차도 그러할진대 첫차 시간을 앞당기라는 주장은 노골적으로 버스 노동자에게 야간노동을 강요하는 것이다. 우리 언론은 왜 청소·경비 노동자의 새벽 출근을 당연하게 생각하는지, 그들의 새벽노동이 정말로 불가피한 일인지 되묻기보다 이들의 새벽 출근길이 불편하니 버스노동자의 야간노동도 늘어야 한다고 당연하게 주장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 시행을 앞두고 비슷하게 벌어지고 있다.
노선버스업종은 오랜 기간 근로시간 특례업종으로 근로기준법에 따른 근로시간과 휴게시간을 준수하지 않아도 되는 업종이었다. 업계 특성상 무분별한 연장·야간 노동과 휴게시간 미준수 등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던 상황이다.
서울시의 경우 선도적인 2교대제 시행으로 주 52시간 구애를 크게 받지 않는다. 문제는 주 52시간제 시행에 따라 간헐적으로 52시간을 넘기는 노선에서 발생하고 있다. 노조는 교통체증과 운행계통이 원인이기에 필연적으로 주 52시간을 넘기는 노선은 거리를 단축하거나 운행 횟수를 줄여 달라고 주장한다. 그것도 되지 않는다면 주 5일제 시행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고 한다. 사측은 재정지원 부담이 없으니 꽃놀이패다.
서울시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운행횟수를 줄이거나 노선거리를 줄이는 건 필연적으로 시민불편을 야기한다. 주 5일제 시행을 통해 인건비 부담을 늘리는 건 시 재정부담 결과를 낳는다. 버스·지하철과 같은 공공재들은 필연적으로 수익구조를 남기기 어렵다. 특히 버스 요금은 4년 넘게 동결 중이다.
버스 이용객들을 보면 취약계층이나 저소득층의 이용률이 지하철보다 높은 편이기에 쉽사리 요금을 인상하기 어렵다. 사실 서울 시내버스 기사들의 노동조건은 다른 지자체에 비해 나쁘지 않다. 실제 올해 임금인상률은 3.6%, 정년은 만 63세로 연장돼 운전직 인건비만 1조원 시대를 맞이했다. 서울시 입장에서 요금동결을 유지한 상태에서 1조원의 인건비는 부담이 가는 재정규모다.
그러면 남은 건 무엇일까. 바로 탄력근로제다. 탄력근로제 도입을 통해 현 인원으로도 52시간을 넘길 경우 발생하는 문제를 일정 정도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노동자의 일방적 양보를 강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단순히 내가 운행하는 노선이 장거리 노선이라는 이유만으로 남들보다 더 많이 일하면서 임금은 적게 가져가라는 말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대시민 서비스’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얼마 전 여야 간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를 둘러싼 공방을 보며 간절한 마음으로 단위기간 확대가 무산되기를 빌었다. 정부 정책이 입안·시행되면 그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노동자들은 공공기관 노동자들과 공공재를 다루는 노동자들이다. 서울 시내버스 기사들은 민간회사 노동자들이지만 공공재를 다루는 노동자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취약계층이 이용하는 버스, 1인당 평균연봉 5천만원의 버스 기사들에게 이와 같은 논의 흐름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한편으로는 두렵기까지 하다.
공공기관 노동자와 공공재를 다루는 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은 정부재정에 직접적인 수치로 영향을 준다. 그러다 보니 일방적인 양보를 강요받거나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언론과 시민사회, 정치권의 공세를 받는다.
이들의 노동조건이 좋을 경우 이는 비난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공세의 대상이 되지 않더라도 정해진 재정규모에서 무작정 노동조건 개선만을 주장하기도 어렵다. 노동자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지 않으면서 현재의 문제를 풀어 갈 해결안이 무엇인지, 노무사로서 나는 어떤 방안을 내놓을 수 있을지 갈림길에 서 있다. 새벽노동을 하는 노동자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 버스노동자 희생을 강요하는 결과로 나타난 사례가 주 52시간제를 적용하는 과정에서 반복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최성화 laborto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