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 항공사 등에서 청소노동자 ‘직장 내 괴롭힘’ 극심

폭언, 고성, 퇴사와 힘든 업무 강요 등...‘노조파괴’하려고 수년 간 괴롭힘

윤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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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병원과 항공사 등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들이 극심한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고 나섰다. 이들은 지난 7월 16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됐음에도, 여전히 현장에서의 차별과 감시, 업무 배치전환 거부 등의 상시적 괴롭힘이 개선되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수년간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들을 표적으로 괴롭힘이 이어지는 등, 직장 내 괴롭힘이 ‘노조파괴’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노총 조합원만 ‘힘든 업무’, 순환배치 거부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서경지부) 소속 세브란스병원, 고대안암병원, 서울대병원 청소노동자들은 31일 오전 10시 30분,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용역업체 ‘태가비엠(주)’ 사업장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촉구하고 나섰다. 세 사업장 청소노동자들은 용역업체인 ‘태가비엠’ 소속으로, 이들은 수년간 해당 업체로부터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해왔다고 밝혔다. 

세브란스병원의 경우, 2016년 10월경부터 민주노총 조합원들만 힘든 업무에 배치하거나, 고정된 근무처를 주지 않는 등 차별행위를 이어왔다. 시말서 작성을 수차례 강요하고, 폭언 및 고성 등의 일상적 괴롭힘도 이어졌다. 조종수 세브란스병원 분회장은 “민주노총 조합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이 꺼리는 힘든 업무에 배치한다. 현재 병원에서 100~150kg에 달하는 감염박스와 쓰레기를 하루에 15~16회 수거하고 있다며”며 “조합원 1명이 30개월을 일한 뒤 어때가 아파 순환배치를 요구해도 이를 무시하고 무조건 민주노총 조합원만 이 일에 배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또한 민주노총 조합원에게만 임금차이가 발생하는 업무를 주거나, 아예 업무 배치를 하지 않고 대체 근무자로 활용하기도 한다. 이를 거부하면 퇴사를 종용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불만이 많고 투덜거린다’는 이유로, 혹은 근무 시작 전 음식을 먹었다는 이유로 소장실로 불려가 시말서를 강요받기도 했다. 2016년부터 이어진 원청과 용역의 노조탄압으로, 당시 136명이었던 조합원은 20여 명으로 줄었다. 

고대안암병원 역시 2015년, 현장관리자들을 앞세운 복수노조가 설립되며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들에 대한 직장 내 괴롭힘이 이어졌다. 안수빈 고대병원 분회장은 “태가비엠은 2015년 소장과 반장 두 명이 주도해 어용노조를 만들고 노골적인 노조탄압을 이어왔다”며 “1년에 한 번 업무 배치를 하도록 했지만, 언제나 힘든 업무는 민주노총 조합원 차지였다”며 “심지어 민주노총 조합원에게 폭력을 휘두른 복수노조 조합원은 감독으로 승진하고, 민주노총 조합원은 밥 먹으러 1분만 일찍 가도, 먼지만 조금 보여도 무조건 시말서를 쓰게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대병원도 태가비엠이 용역업체로 들어온 후인 2018년 10월부터 업무 전환배치가 중단됐다. 2년 동안 힘든 업무는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들이 떠맡았다. 이연순 의료연대 서울지부 민들레분회장은 “태가비엠이 들어오기 전에는 1년에 한 번 배치전환을 했지만, 지금은 2년 째 민주노총 조합원만 힘든 업무를 하고 있다. 태가비엠에 배치전환을 요구해도 ‘이전 회사 가서 이야기하라’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만 한다”며 “고용노동부는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해 태가비엠의 직장 내 괴롭힘으로 고통 받는 조합원들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조파괴하려고 ‘직장 내 괴롭힘’ 수년 간 이어져

사실 태가비엠 사업장의 ‘직장 내 괴롭힘’ 문제는 수년전부터 논란이 돼 왔다. 지난 2018년 한국노동연구원이 서울지역 23개 기관 용역노동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에서, 태가비엠과 용역을 체결한 세브란스병원, 고대안암병원의 직장 내 괴롭힘 수준은 평균의 2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가 올해 6월 17일~7월 5일까지 조합원 176명을 대상으로 재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태가비엠 사업장에서의 직장 내 괴롭힘 실태는 그대로였다. 

류한승 서경지부 조직부장은 “이번 설문에서 주목할 만 한 점은, 교섭권을 박탈당한 소수노조일수록 직장 내 괴롭힘 수준이 높다는 것”이라며 “1년 전 한국노동연구원 설문조사에서 문제가 됐던 타 사업장의 경우 1년이 지난 현재 직장 내 괴롭힘이 거의 사라지기도 했지만, 용역업체가 태가비엠인 세브란스, 고대안암병원 등을 괴롭힘이 사라지기는커녕 더욱 높은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용역업체는 원청과 공모해 민주노총을 소수노조로 파괴하기 위해 악질적 직장 내 괴롭힘을 수행해 왔다”며 “또한 고용노동부의 방조와 묵인 아래 지속적 괴롭힘이 이어지고 있어 조합원들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이 위협받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혜인 직장갑질119 노무사 역시 “태가비엠은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과 폭언, 고성, 퇴사종용 등 일상적, 반복적으로 노동자들을 괴롭혀 왔고, 이는 근로기준법 위반 가능성이 높다”며 “3년 이상의 반복적인 괴롭힘으로 퇴사자와 노조 탈퇴자가 발생했고, 괴롭힘 정도도 심각하기 때문에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경지부는 이날 기자회견 직후,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태가비엠에 대한 특별근로감독 청원을 접수했다. 장성기 서경지부 지부장은 “지난 3년간 노동청 앞에서 태가비엠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며 수많은 기자회견, 집회, 항의 방문 등을 이어왔지만, 노동부의 소극적 태도로 현장은 바뀌지 않았다”며 “이제라도 제대로 된 수사와 근로감독을 하지 않는다면 노동부를 상대로 투쟁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대한항공 청소노동자 75% 괴롭힘 겪어...54%는 스트레스로 진료 또는 상담

대한항공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들도 폭언과 모욕, 노조파괴에 따른 차별 등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리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이들 중 다수는 직장 내 괴롭힘 스트레스로 진료나 상담을 받는 등 건강권도 침해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공공운수노조 한국공항비정규직지부는 31일 오전 11시, 중부지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한항공 청소노동자에 대한 직장 내 괴롭힘을 실태를 고발했다. 노조에 따르면, 지난 7월 29일 조합원 82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조합원 87%가 현재 직장 내 괴롭힘 수준이 ‘매우 심각한 상태’라고 답변했다. 지난 1년간 직장 내 괴롭힘을 직접 겪은 조합원도 75%에 달했다. 노조는 “직장갑질119가 실태조사 한 경제생활인구 1000인 표본에서는 19%만이 괴롭힘을 당했다고 한 것에 비춰 일반적인 직장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조합원 54%는 직장 내 괴롭힘 때문에 정신적, 신체적 의료 진료 또는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72.8%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해 신체적, 정신적 건강이 악화됐다고 밝혔다. 이 또한 1000인 표본조사 대비 3.5배에 달하는 수치다. 괴롭힘의 유형은 성과급 및 승진에서의 불이익(50.9%), 녹취 등 일상적 감시(53.4%), 회사 측의 고소고발(52.1%) 등으로 나타났다. 복수노조와 임금 및 업무배치 등에서 차별을 경험한 비율도 82.9%에 달했다. 

또한 관리자가 노조 여성 간부에게 “딸 같아서 그렇다”며 계속 반말을 사용하거나, 이에 항의하자 “싸가지 없는 것들”이라는 폭언과 모욕을 하는 괴롭힘도 있었다. 노조탈퇴를 종용하고, 왕따 분위기를 조성하고,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들에게 불이익한 업무편성을 지속하는 등의 괴롭힘도 이어졌다. 노조를 상대로 1억 2천여만 원에 달하는 손배가압류를 청구하며 압박을 하기도 했다. 현재 공공운수노조는 한국공한 대표이사와 행위당사자, 용역업체 EK맨파워 대표이사 및 소장, 이사 등을 부당노동행위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위반 등으로 중부고용노동청에 고발조치 한 상태다. 

한편 한국공항비정규직지부는 지난 7월 23일부터 △손배가압류에 대한 즉각적인 철회 및 책임조치 △노동부의 공정한 부당노동행위 수사 촉구 △남녀차별, 통상임금 등 노동부체불금 확정금원에 대한 지급 △올해 임금요구 성실교섭 등을 내걸고 전면파업을 이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