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서라 할 수도 없는 휴가

한반도의 여름은 만만치 않다. 그 이유는 고온보다도 높은 습도 때문이다. 물이 공기보다 열용량이 커서 더 덥다. 같은 온도라도 습식 사우나가 건식 사우나보다 견디기 힘든 것과 같은 이유다. 한반도의 여름을 지배하는 기단은 바다에서 온 북태평양고기압으로, 이 기단이 머금고 있는 습기 때문에 한반도의 여름은 기본적으로 꿉꿉하고 후텁지근해 쾌적한 생활을 하기에는 힘들다. 대륙의 건조한 기단이 내려오는 가을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후텁지근한 여름을 나는 것이 한반도를 떠나지 않는 한 이 땅에 사는 우리의 숙명이기에, 숨을 턱턱 막는 여름을 나는 나름의 방법을 찾아냈다. 먼저 시원한 여름 음식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높은 온도와 습도로 음식이 쉬이 상할 수 있음을 항상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금은 여름에 얼음 구하기가 너무 쉽지만, 냉장고가 나오기 전에는 쉽게 구할 수 없었고 얼음 공장이 없을 때는 석빙고 정도 가지고 있어야 먹을 수 있었다. 따라서 얼음이 들어간 음식은 전통적인 여름 음식이라 할 수 없다. 지금은 여름 음식이 되어버린 냉면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여름 요리하면 콩국수, 깨로 갈아 만든 임자수탕, 오이와 호박 여름 채소를 이용한 여름 만두 편수 정도가 떠오르고, 땀을 많이 흘리니 체력 보충으로 왕이 먹었다는 제호탕, 서민들의 개장국, 천렵 매운탕, 닭백숙 혹은 삼계탕, 그리고 시원한 오이 냉국, 우무 냉국, 보리수단 등이 생각난다.

그리고 시원하게 여름을 보내는 방법으로 대밭에서 쉬기. 대가 자라는 남쪽에 해당하는 얘기지만, 쭉쭉 뻗은 푸른 대나무는 시각적으로도 시원하지만 재질 상으로도 시원하고, 음이온이 더 많이 나와 맑고 시원한 느낌을 준다. 게다가 바람에 흔들리면서 나는 댓잎 소리는 머릿속까지 맑게 해준다. 하지만 뱀을 조심해야 할지도 모른다. 등골까지 오싹하다. 대밭에 자리를 깔고 누워 쭉쭉 뻗은 푸른 대나무 잎 사이로 보이는 하늘과 흘러가는 구름을 봤다면 이미 더위는 거기에 없을지도 모른다. 대나무가 나왔으니 더운 도시의 아파트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죽부인과 대나무로 만든 부채다. 여름 하면 부채였는데, 이제는 손풍기를 들고 다닌다. 손풍기보다 부채가 여러모로 좋다고 본다. 햇빛도 가리고, 벌레도 쫓고, 바람도 일으키고. 같이 앉아 있을 때는 주위 사람도 한 번씩 부쳐주면 더욱 시원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기가 필요 없고, 폐기물이라 할 것도 없다. 대나무에 닥나무로 만든 한지가 전부다. 죽부인도 끈적하고 더운 잠자리에 안고 자면 시원한 촉감과 죽부인 사이로 드다드는 통풍에 숙면을 취할 수도 있다.

그래도 덥다면 동네를 떠나 계곡으로 나가 시원한 물에 탁족하면서 책을 읽는 것도, 시원한 물속에서 천렵을 해보는 것도 피서의 한 방법이었는데, 이제는 대부분 물고기잡이 도구들이 불법이어서 천렵은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지금 우리는 이미 지나친 섭취가 문제인 시대에 살고 있으니, 물고기는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자. 그리고 물고기가 맑은 물속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기만 해도, 아니 상상만으로도 시원하지 않은가? 그리고 피서의 절정은 할머니 집 대청마루에서 수박이나 하지감자, 삶은 옥수수를 먹으면서 읽고 싶은 책을 읽다 처마 끝에서 솔솔 불어오는 바람에 낮잠을 즐기는 것이다.

그러나 소비문화가 우리 삶을 지배하고, 계절에 따라 농사를 짓고 삶을 주체적으로 꾸려갔던 농촌의 할머니집과 달리, 계절의 제약을 극복한 산업사회의 노동 사회에서는 이 모두가 쉽지 않다. 출퇴근 시간은 정해져 있고, 일상의 공간범위도 제약적인 현대 도시의 삶에서 과거처럼 여름을 나는 것은 불가능하고 조건상 맞지도 않다. 지금은 그 시간이 여름 휴가라는 이름으로 있는데, 길어야 일주일 정도다. 이 자유시간의 ‘자유’는 주로 소비의 자유이다. 내가 누릴 수 있는 자유, 피서도 이제는 돈을 내고 구매해야 하는 상품이다. 그래서 휴가도 구매의사가 있어도 구매 능력이 없으면 사라지고, 더위는 피할 수 없게 된다. 오늘과 과거의 더위가 같은 것 같지만, 더위를 피하는 방식과 그 내용은 과거와 완전히 다르다. 그러다 보니 더위의 본질도 달라졌다. 산업사회와 소비사회의 더위는 지구온난화와 기상이변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신동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