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1일 문재인 정부(외교부)는 호르무즈해협 파병을 시사했다. “관련해서 미국 측과 수시로 소통하고 있”다는 것으로 보아, 미국의 공식 요청이 오면 공식적으로 수락할 것 같다.
최근 미국은 호르무즈해협의 긴장 고조에 대응해 상선을 호위하는 다국적 함대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이란 압박을 강화하면서 전쟁 가능성도 불사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5월부터 크고 작은 충돌이 이어지며 긴장이 고조돼 온 이 지역에 다국적 함대가 파견되면 충돌 가능성은 매우 높아질 것이다. 7월 10일 영국 해군 구축함이 이란 혁명수비대 소속으로 추정되는 무장 함정에 조준 사격을 위협하며 교전 직전까지 가는 등 역내 긴장은 이미 한껏 고조돼 있다.
문재인 정부는 개혁 염원을 줄곧 배신해 대중의 환멸을 샀지만 평화를 추구한다는 환상만큼은 애써 유지하려 해 왔다. 그러나 이제 문재인 정부는 파병을 위한 군불을 때고 있다. 트럼프를 “피스메이커”로 칭송하고, 미국의 핵심 전략인 ‘인도·태평양 전략’에 적극 협력하겠다고 하더니, 급기야 이제는 전쟁에 휘말릴 수도 있는 중동에서의 힘겨루기에 동참하려는 것이다.
문재인은 호르무즈해협 파병이 한반도 평화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똑같은 명분을 대며 노무현도 이라크 파병을 정당화한 바 있다. “어려울 때 미국을 도와주고 한미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게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라크 파병은 한반도 평화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파병 이후 한반도 정세는 미국의 강경한 대북 압박으로 오히려 악화됐고, 결국 북한은 핵무기를 만들었다. 미국이 자신의 이해득실에 따라 동아시아 정책을 편 결과다.
최근 남·북·미 판문점 만남을 계기로 문재인은 한반도에 “적대 종식과 새로운 평화 시대가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불안정을 일으킨 갈등이 근본적으로 해소될 전망은 밝지 않다.
동아시아에서 제국주의 갈등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최근 미국과 중국은 무역전쟁에서 잠시 휴전을 합의했지만, 양국의 제국주의 갈등은 앞으로도 점증할 공산이 크다.
호르무즈해협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크게 의존하는 중동산 석유의 약 3분의 1이 지나간다. 그런 위상 때문에, 이란산 석유의 최대 수입국인 중국도 해협의 운항 통제권을 둘러싼 갈등을 예민하게 주시할 것이다. 이 사실도 동아시아와 한반도 주변 정세에 영향을 줄 것이다.
노무현 당시 이라크 파병보다 이번 호르무즈해협 파병이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2008년 세계경제 공황 이래 강대국 간 갈등이 매우 악화돼 왔고, 미국의 이라크 전쟁 패배 이래 중동 정세도 더한층 불안정해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박근혜 퇴진 촛불 이후 대중의 진보 염원이 여전히 확고한 지금, 문재인 정부는 지지층의 격한 반발을 초래할지도 모를 중대한 배신을 저지르려 한다.
사실, 문재인 정부는 최근의 한·일 갈등 국면에서 미국이 한국 편을 들어 주길 바랐다. 그러나 이런 발상은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 무능의 소치다. 일본은 미국의 대중국 봉쇄 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파트너다. 게다가 미국은 이미 일본에 호르무즈해협 파병을 요청했다. 미국은 한·일 갈등의 중재를 요청한 한국에 파병이라는 청구서부터 들이밀었다. 그래서 미국은 한·일 관계에서도 한국에 양보 압력을 가할 가능성이 훨씬 크다. 이 와중에 호르무즈해협에서는 한국 군함이 욱일기를 단 일본 군함과 나란히 작전을 펼치게 될지 모를 판이다.
이처럼, 미국의 제국주의적 패권 유지에 협력하는 것은 한반도 평화와 동아시아 정세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쩌면 문재인 정부는 여론을 의식해 “파병”이라는 표현을 피하면서 파병을 추진하려 애쓸 수도 있다. 그러나 충돌이 벌어질 것이 불 보듯 뻔한 곳에 파병을 한다는 사실은 아무리 그럴싸한 말로 포장해도 달라지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는 파병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 호르무즈해협에 파병 말라!
2019년 7월 12일
노동자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