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그 후] 일제강점기 기록물 ‘사적조서’ 발굴 관련 … ‘모범’ ‘공적’ 등 표현 없애

0711-1-1

▲ 1932년 옛 김해군이 작성했던 “사적조서” 문서 표지.ⓒ 김해시청

경남 김해시가 일제강점기 기록물을 소개하는 보도자료를 ‘조선총독부의 시각’에서 냈다는 의 보도가 나간 후 김해시가 문제가 된 표현을 없앤 후 다시 보도자료를 냈다(관련기사: 김해시 일제강점기 기록물, 조선총독부 입장에서 썼다? ).

김해시는 지난 9일 오전 이란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다.

이 사적조서는 1932년 김해군의 ‘면장’과 ‘근농공제조합 보도(지도)위원’의 행적이 담긴 문서다. 그런데 김해시가 이를 소개하면서 ‘업적이 뛰어난 인물’이라거나 ‘마을의 공적’, ‘모범’, ‘귀감’, ‘칭찬’ 등이라는 표현을 쓰자 논란이 일었다.

이 같은 표현에 대해 “당시는 일제가 만주를 침략하면서 조선을 후방기지로 삼던 때로 면장 등이 수탈을 독려하는 역할을 했다”며 “업적이 뛰어난 인물, 모범, 귀감 같은 표현은 조선총독부 입장에서 쓴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이에 김해시 공보실은 수정 보도자료를 냈다. 하지만 “현재 공직자의 업무 처리에 귀감이 되는 내용도 포함돼 직무교육 자료로 참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실용적인 가치도 지니고 있다”는 문장만 삭제하고 나머지 표현은 그대로 두었다.

결국 이날 늦은 오후 보도가 나가자 김해시 공보실은 긴급하게 정정 보도자료를 냈다.

이 정정 보도자료에는 문제가 된 표현을 삭제했고, ‘면장’과 ‘근농공제조합 보도위원’의 이름도 성씨만 밝혀 놓았다. 그러면서 김해시는 “김해 사람들의 일제강점기 생활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기록물로 희귀성이 높다. 일제강점기 김해지역 실상을 전해주는 사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은 현실에 비추어 볼 때, 김해 지방사 연구 기초자료로 사료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김해시 공보실 관계자는 “ 보도를 보고 긴급하게 수정 자료를 냈다”고 밝혔다.

강호광 민족문제연구소 진주지회장은 “늦게라도 보도자료를 수정해 다행이나, 기록물을 누구의 시각으로 볼 것이냐는 매우 중요하다. 이번 기회에 김해시의 일제강점기 관련 자료들에 대해 추가로 살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광희 김해시의원도 “수정된 보도자료를 봤다. 처음부터 그랬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편찬 과정이 제대로 되는지에 대해서도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김해시가 낸 ‘수정 보도자료’ 전문이다.

일제강점기 김해 기록물 사적조서(事績調書) 발굴

김해시사편찬 기초자료 조사 중 일제강점기 김해의 행정과 사회사, 김해 사람들의 모습을 기록한 문서 『사적조서』가 발굴되었다. 부산대학교 전 사학과 최원규 교수(현대사 전공)가 소장하고 있던 문서로 현재 대성동고분박물관(시사편찬실)에 기증, 보관중이다.

이 문서는 김해군이 일제강점기인 1932년에 작성한 등사인쇄본 문서철로 32면 분량으로 되어 있다. 김해군 녹산면 ○○리(마을), 진례면장 송○○과 진례면 김○○, 가락면 이○○의 행적을 상세하게 기록했다.

문서 32면 중 20면에 걸쳐 진례면장 송○○의 행적인 출납, 호적, 재산관리, 토목사업 등에 대해 서술하였다.

이번에 발굴된 사적조서는 개인이 아닌 한 마을의 기록이 첨부되어 있는 점이 특이하다. 마을의 시설 사항과 연혁, 교육회, 청년회, 경로회, 금주회, 교풍회 창립 등의 활동 사항을 기록했다.

이 문서는 당시 지역 정치, 경제, 행정, 교육 등 통치정책과 실상뿐만 아니라, 김해 사람들의 일제강점기 생활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기록물로 희귀성이 높다. 일제강점기 김해지역 실상을 전해주는 사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은 현실에 비추어 볼 때, 김해 지방사 연구 기초자료로 사료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윤성효 기자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김해시, ‘조선총독부 식 시각’ 보도자료 냈다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