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보공개 청구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판결이 나왔습니다. 한 청소년이 자신과 관련된 선도위원회 회의록에 대해 학교에 정보공개 청구를 했지만, 학교는 이를 정해진 기일이 넘도록 처리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 해당 청소년이 학교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학교가 정보공개법이 정하는 응답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위법을 저질렀다고 판결했습니다. (관련기사)

정보공개법에 따라 정보공개 청구를 처리해야 할 학교가 이를 처리하지 않은 것은 당연히 위법한 것이기에 판결 자체는 당연한 것이지만, 그동안 일선 학교에서 청소년의 정보공개청구권을 얼마나 무시하고 있었는지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정보공개센터는 [2019 청소년 알 권리 학교]를 준비하면서 청소년들이 얼마나 정보공개제도를 활용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많이 정보공개 청구의 창구로 쓰이고 있는 정보공개포털의 경우에도 따로 연령별 이용자 통계 자료를 보유하고 있지 않은 상황입니다. 최근 '알 권리' 관련 기획 연재 보도를 하면서 정보공개제도를 얼마나 알고 있는지, 청구 경험이 있는지 설문조사를 진행한 세계일보 역시 19세 이상을 설문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청소년들의 정보공개 활용에 대해서는 확인할만한 데이터가 없었습니다.

지난 3월 세계일보가 진행한 정보공개제도 인지, 정보공개 제도 경험에 대한 설문조사. 청소년과 가까운 19세 ~ 20대 군에서도 인지율이 높게 나타나진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역으로, 청소년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인 중고등학교에서 정보공개제도를 제대로 안내하고 있는지, 정보공개 청구는 얼마나 들어오고 있는지 확인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2019 청소년 알 권리 학교] 사업의 일환으로 인권재단 사람의 지원을 받아, 752개에 달하는 서울 시내 전체 중고등학교(특수학교, 각종학교, 고등기술학교 등 포함) 홈페이지를 하나 하나 확인하여 정보공개제도를 제대로 안내하고 있는지 조사해보았습니다. 

조사 대상인 학교는 서울시교육청 홈페이지에서 공개하고 있는 자료를 바탕으로,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에 해당하는 학교 752개교입니다. (2018.04.01 기준 자료) 

2019년 4월 7일 부터 5월 17일까지,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385개 중학교, 320개 고등학교, 30개 특수학교, 15개 각종학교(예술/관광/정보 등), 2개 고등기술학교 홈페이지를 조사하였습니다. 

조사 결과, 홈페이지를 통해 정보공개제도를 안내하고 있는 학교는 7개교에 불과했습니다. 중학교의 경우 구로중학교, 신정여자중학교, 성암여자중학교 세 곳이었고, 고등학교의 경우 배화여자고등학교, 국립국악고등학교,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로 세 곳이었습니다. 각종학교에서는 국립국악중학교가 유일하게 정보공개제도를 안내하고 있었으며, 특수학교나 고등기술학교의 경우 정보공개제도를 안내하는 곳은 한 곳도 없었습니다.


홈페이지에 '정보공개방' 메뉴를 두어 정보공개제도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 종로구 배화여고 홈페이지

마찬가지로 종로구에 위치한 덕성여고 행정정보공개 홈페이지. 대부분의 학교들이 덕성여고와 마찬가지로, 공개가 의무화된 행정정보공개 자료들은 공개하고 있으나, 정보공개제도 자체나 청구 방법에 대해서는 안내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보공개법 제6조 제2항에서는 공공기관이 정보통신망을 활용한 정보공개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행정안전부는 「행정·공공 웹사이트 구축 운영 가이드」를 만들면서, 공공기관 홈페이지에서 정보공개제도를 소개하고, 청구가 가능한 메뉴를 운영하도록 안내하고 있습니다.

학교 역시 정보공개 청구 대상인 공공기관인 만큼, 정보공개제도를 소개하고 청구 방법을 안내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보공개센터의 조사에서 드러난 것처럼 학교 대다수가 홈페이지에서 정보공개제도에 대해 안내하고 있지 않으며, 정보공개법 상 공표 의무가 있는 행정정보들을 공개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렇게 학교에서 정보공개제도를 안내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청소년들이 정보공개제도에 대해 배우고, 직접 학교에 정보공개 청구를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긴 어려울 것입니다. 이처럼 공교육 과정에서 정보공개제도를 접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시민들이 정보공개청구권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 역시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이는 일차적으로 서울시교육청이 제대로 지침을 내리지 않아서 생긴 문제라 볼 수 있습니다. 서울시교육청 행정정보공개조례와 그 시행규칙에 따르면, 학교는 시민들의 접근이 가능한 정보공개 청구 접수 창구를 두고, 정보공개가 용이하도록 각종 서류나 컴퓨터를 비치해야 합니다. 온라인 정보통신망을 통한 정보공개 청구가 아니라, 직접 학교에 방문하여 정보공개 청구를 접수하는 사항에 대해서만 규정하고 있는 셈입니다. 


또, 서울시교육청이 내린 [서울특별시 교육청 학교 홈페이지 운영 안내](2019.03)에서는 홈페이지를 통해 학교가 의무 공개해야 할 정보들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으나, 정작 정보공개제도 자체에 대해 안내해야 한다는 내용은 빠져있는 상황입니다.



행정안전부 웹사이트 가이드에 들어있는 정보공개 관련 내용이 서울교육청 홈페이지 운영 안내 문서에서는 빠져있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서울시교육청 [학교 홈페이지 운영 가이드]에서 학교 홈페이지 첫 화면의 예시를 들면서, 그 내용을 행정안전부의 [행정공공 웹사이트 구축 운영 가이드]를 참고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런데, 행정안전부 가이드에 분명히 명시되어 있는 정보공개에 대한 내용만 쏙 빼놓고 있습니다. 학교 홈페이지 운영 가이드 자체가 행정안전부 가이드를 많이 참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보공개제도를 소개하라는 메뉴에 대한 내용만 쏙 빠져 있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전시교육청 정보공개 운영 매뉴얼 26~27페이지. 학교 홈페이지 구성할 때 별도의 정보공개 메뉴를 설치하고, 정보공개제도를 안내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대전시교육청의 경우, [정보공개 운영 매뉴얼](2018)에서 '학교 홈페이지에서 정보공개 메뉴를 따로 만들고, 제도 소개 및 청구 절차 등을 안내'하도록 명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대전 지역 학교 홈페이지 대다수는 모두 동일한 내용으로 정보공개제도와 청구 절차를 소개하고 있고, 정보공개포털을 링크하여 누구나 쉽게 정보공개 청구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대전 지역 청소년들은 학교 홈페이지만 들어가봐도 정보공개제도를 알 수 있고, 정보공개 청구를 할 수 있지만, 서울 지역 청소년들은 정보공개제도에 대해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셈입니다.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15조 3항에서는 학생들이 학교에 대해 정보공개청구권을 가진다고 명시되어 있지만, 정보공개제도 자체가 안내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 청구권이 제대로 보장된다고 보기 어렵겠죠. 정보공개청구권의 보장이라는 측면에서만 보면, 서울의 청소년들은 어쩌면 학생인권조례가 아직 제정되지도 못한 대전보다도 못한 상황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행정정보공개 메뉴가 아예 없는 대원외고 홈페이지

선화예고의 경우 행정정보공개 링크가 잘못되어 업무추진비 내역 등을 학교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없는 상황

이번 전수 조사 작업을 통해 학교들이 의무적으로 공표하게 되어 있는 사전공개 정보들이 제대로 올라와 있지 않거나, 상당 기간 동안 자료를 누락하는 등의 사례들도 다수 발견했습니다. 이러한 학교들에 대해서 서울시 교육청이 철저히 관리 감독에 나서길 바랍니다.

정보공개센터는 이번 주 토요일부터 [2019 청소년 알 권리 학교]를 통해, 이처럼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는 청소년의 정보공개청구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큰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 정보공개센터가 조사한 학교 홈페이지 정보공개 현황 내역에 대한 자료를 공유합니다. 조사 작업을 지원해주신 인권재단 사람, 그리고 조사 작업을 도와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서울 지역 각급학교 정보공개 현황.xls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