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14%를 넘어 고령사회에 접어든 한국 사회. 연간 5.4조 원 이상의 공적 재원을 투입하지만, 정작 수혜자인 노인들은 손사래치는 사회복지시설이 있다. 전국 5,000여 개, 수용 인원 20만 명에 이르는 노인요양원 얘기다.

고령사회를 맞은 노인요양원 현장의 풍경은 황량하다. 장기요양 보험제도 시행 이후 시설의 수는 급격히 늘어났지만, 서비스의 질은 여전히 '격리와 통제' 수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법과 감시의 사각지대에서는 노인을 돈벌이 대상으로 삼는 부정과 비리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뉴스타파는 노인요양원의 실태를 점검하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시리즈를 연재한다. 노인들의 삶과 인권을 위협하는 우리 사회의 제도적·구조적 문제점을 분석하고 개선 방향을 모색해나갈 예정이다.

요양원에서 사라진 노인들
700개의 알약...산송장으로 돌아온 엄마
요양원 비리, 유치원보다 심하다
- 장기요양 급여 154억 원 줄줄 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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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1등 요양왕국의 비밀
- 요양원은 적발되지 않는다
요양원의 밤 - 죽음의 인계일지
⑤ 노인의 밥상을 노리는 자들, 식자재 리베이트

요양원에서 제일 빼먹기 좋은 것이 식비입니다. 고깃국 줄 것을 콩나물국 주면 됩니다. 콩나물도 좋은 슈퍼마켓에서 사느냐, 썩어 빠진 콩나물을 사느냐 천지차이거든요. 그러면 결국 입소자나 직원들에게 그만큼 피해가 돌아가는 거예요.

취재진이 만난 한 전직 노인 요양원 직원의 말이다. 그에 따르면, 노인 요양원에서 돈을 빼돌릴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인건비. 두 번째는 식자재비. (인건비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시리즈 세 번째, 에서 보도한 바 있다.) 식자재비는 요양원을 돈벌이로 삼는 일부 시설주에게 손쉬운 먹잇감이 된다. 정가보다 부실한 밥상을 차려도 이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 노인은 없다. 감독 당국이 일일이 밥상의 반찬을 따지며 비용을 정산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다.

뉴스타파는 노인 요양원 관련 형사 판결문 114건 전수 분석(관련기사)을 통해 확인된 사례를 통해 노인 요양원 식자재 비리의 실태를 들여다봤다.

국립요양원 ‘노인의 밥상’에서 5년간 빼돌려진 1억 6천만 원

지난해 4월, 서울북부지방법원은 경기도의 한 공립 노인 요양원에서 발생한 식자재 리베이트 비리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렸다. 이 시설 원장과 사무국장, 그리고 식자재 납품업자는 사기와 배임수재 등의 혐의로 징역(집행유예)과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 시설 원장는 위탁 운영을 시작한 2008년 8월 곧바로 식자재 납품업자와 리베이트 계약을 맺었다. 요양원 측이 실제 납품한 식자재 비용 보다 부풀려서 대금을 지급하고, 그 차액을 현금으로 돌려받는 방식이었다. 매달 돌려받기로 약속한 금액은 250~300만 원,  2011년 1월 초부터 2016년 4월까지 총 64차례에 걸쳐 1억 6350만 원을 빼돌렸다. 한 달 식자재 비용은 2천만 원 내외이므로, 리베이트 비율은 10%가 넘었다.

▲ 이 요양원은 64차례에 걸쳐 1억 6350만 원의 식자재비를 빼돌렸다.

5년 넘게 이 같은 불법 거래가 계속됐지만 감독 당국인 지자체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현행 사회복지시설 회계 규칙은 식자재 비용을 별도 통장으로 관리하게 하고 있다. 식자재 비용이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방지할 뿐, 요양원과 식자재 납품업자가 손잡은 이 같은 리베이트 거래는 적발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비리가 드러난 것은 수당 미지급 등으로 불만이 있었던 요양원 직원들의 내부고발 때문이었다. 요양원 관계자에 따르면, 요양원 측은 질 낮은 식자재에 대한 직원들의 문제 제기가 수차례 있었음에도 이에 대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 요양원의 경우 인건비를 이용한 ‘기본적인’ 부정 청구 행위도 역시 적발됐다. 조리사로 일하는 직원을 요양보호사로 일한 것처럼 허위 등록해 장기 요양 보험 급여를 받는 방식이었다. 식자재 리베이트와 부정청구로 이 시설이 10여 년간 취한 불법 수익은 모두 7억 원이 넘는다.

‘노인 기저귀 패드’까지 리베이트

뉴스타파 취재 결과, 이 요양원의 원장은 대한성공회 사제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리베이트 거래를 공모한 사무국장, 식자재 납품업자도 이 교회의 신도였다.

요양원 직원들의 내부고발로 식자재 리베이트 비리 사실이 교회에 알려진 것은 2016년 6월이었다. 당시 대한성공회 사제와 신도들은 진상조사 위원회를 꾸리고 사태 파악에 나섰다. 취재진이 입수한 당시 조사 결과서에 따르면, 실제 확인된 횡령 비리의 규모는 3억 원이다. 1억 6천만 원 상당의 식자재 리베이트 이외에도 시설 공사, 해외 연수, 장애인 직원 임금, 노인 기저귀 패드 대금 등에까지 리베이트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대한성공회 자체조사 결과, 장애인 직원 인건비, 노인 기저귀 패드 대금 등에서도 리베이트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3억 원의 횡령액 가운데 사용처가 분명한 것은 1억 원 정도다. 지자체와 요양원 위탁 운영 계약할 때 약속했던 법인전입금을 납부하는 데 쓰였다. 본래 위탁 계약을 맺은 법인(성공회유지재단)에서 납입해야 할 돈이지만, 해당 시설(요양원)에서 만들어낸 불법자금으로 이를 충당한 것이다. 나머지 2억 원에 대해선 원장과 사무국장의 진술이 엇갈렸다. 보고서는 원장 개인이 횡령액 대부분을 사용했다는 사무국장 측의 진술을 인용했다.

"성공회 주교에게 리베이트 일부 상납” 폭로

개인 비리로 마무리되는 듯 했지만, 요양원장이었던 박 모 씨(당시 대한성공회 사제)의 폭로로 국면이 달라졌다. 박 씨는 2016년 10월 자필 진술서를 공개하고 횡령액 가운데 일부가 김근상 당시 대한성공회 서울교구장 주교에게 전달됐다고 주장했다.

▲요양원장 박 모 씨의 자필 진술서. 김근상 당시 성공회 주교에게 3차례에 걸쳐 현금을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박 씨는 진술서에서 2010년부터 2014년까지 3차례에 걸쳐 200~300만 원의 현금을 김 전 주교에게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박 씨는 이후에도 요양원 사무국장이 상납을 요구했지만 거절했다고 적었다. 그는 교구 행사 비용 등을 사회복지시설에서 충당하는 것이 관행이었으며, 법인 전입금 등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사실상 불법 행위가 불가피했다고 밝혔다.

요양원 비리에 교단이 깊숙이 개입돼 있다는 박 씨의 폭로는 진상조사 보고서에서 누락됐다. 결국 박 씨는 합의금 명목으로 2억 원 전액을 지불하고 교단을 떠났다. 취재진은 박 씨에게 수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그는 답변을 거부했다.

"30년 된 교회의 폐단, 이제는 결단해야"

박 씨의 폭로 이후 김근상 주교의 퇴진을 요구하는 사제들과 신자들의 성명이 이어졌다. 김 전 주교는 사건 직후인 2016년 11월 피정(종교적 수련생활) 강연에서는 도의적 책임이 있지만 법적 책임은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일부 사제와 신도들은 이 자리에서 그가 현금 상납 사실도 시인했다고 주장했다. 서울교구 성직자원은 이듬해 2월  '김근상 주교께 드리는 글'을 발표하고 김 주교의 퇴진을 촉구했다.

작년 11월 제주도 성직자 연피정 강의 중에 김근상 주교님이 직접 구리 요양원으로부터 돈을 받은 것을 말씀하셨지만 사과가 아니었습니다. 주교님의 그 말씀에 성직자들은 충격을 받았고 그 내용보다 태도에 더욱 실망했습니다. 교회에 떠돌던 의혹이 사실로 밝혀졌으나 공적인 해명과 사과, 그에 따른 책임을 지지 않은 주교님의 피정 강의는 하느님을 욕되게 하는 일이었으며 그 시간을 오용하신 것이었습니다.

서울교구 성직자원, 2017.2.23

2017년 4월 김 전 주교는 조기 퇴임 형식으로 주교직을 내려놨다. 이후에는 CBS 이사장에 선임됐다가 신도들과 CBS 노조의 반발로 사임했다.

▲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취재진과 만난 성공회의 신도들은 교회가 지금이라도 자정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1991년 대한성공회가 처음으로 위탁받은 사회복지관에서 일했다는 김미령 씨는 30년 전 당시에도 불법 자금 조성의 문제가 있었다고 했다. 직접 교구 의회에 나서 이 문제를 지적했지만 지금까지 개선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제는 결단할 때입니다. 그때그때 위기가 있을 때마다 조금만 교회가 정신차리고 회개했다면 여기까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성공회 교회가 이번에 좋은 십자가 사례를 맞았다고 생각합니다. 성공회가 다시 살아야 하고 이 척결의 기회에 모범적으로 정리하는 것이 성공회 교회로서 큰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개혁에 앞장선다면, 그나마 용서받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김근상 전 주교는 뉴스타파와의 통화에서 요양원의 리베이트 비리는 알 지 못했고, 박 씨로부터 현금을 받은 일도 없다고 말했다. 2016년 피정 강연에서 현금 수수를 시인했다는 일부 사제·신도들의 주장은 발언의 취지를 오인한 것이라고 밝혔다.

성공회 측은 뼈아프게 반성하고 있으며 문제 재발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박 씨의 폭로 당시 내부 조사 과정에서는 그의 발언을 뒷받침할 증거는 나오지 않았으며, 요양원 리베이트 사건은 교단이 아닌 요양원 직원 개인의 문제였다고 밝혔다.

취재: 오대양
촬영: 이상찬
편집: 박서영
CG: 정동우
디자인: 이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