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한석·정미숙 거제 삶은죽순 생산자

대숲은 성글었다. 빽빽하게 자리한 대나무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는 여느 대숲과는 확연히 달랐다. 대나무간 거리는 사람이 양팔을 벌려도 닿지 않을 만큼 멀었으나 땅속에서 서로를 향해 내뻗은 뿌리 마디마다 죽순이 솟았다. 헤벌어진 어미대들 사이로 빼꼼히 고개를 내민 어린 죽순들의 모습이 마치 아이를 함께 키우는 마을 공동체처럼 느껴졌다.

“대숲은 꾸준히 관리해줘야 해요. 가만히 놔두면 대나무들이 너무 빽빽하게 자라서 죽순이 날 자리가 없어져요.” 그러고 보니 옆에 위치한 다른 대숲은 오래도록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듯 깊고 울창했다. 보기에는 좋았지만 그 촘촘함에 죽순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반면, 듬성한 대나무 사이로 하늘이 그대로 보이는 반한석 생산자의 대숲은 수 헤아리기를 포기해야 할 만큼 죽순 천지였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특성상 대숲 여기저기 솟은 죽순도 크기가 제각각이었다. 어떤 것은 초록색 싹이 보일락 말락할 정도로 작은가 하면 어떤 것은 남자 어른허벅지만큼 굵고 길었다. 높이가 25cm 이상 자라고 초록색 싹이 넓게 벌어진 죽순만 캐는데 그 과정이 만만찮다.

곡괭이로 죽순 주변의 흙을 살살 걷어낸 뒤 밑동을 찍어서 한 방에 들어 올리면 쩍 소리와 함께 죽순이 따라 올라온다. 하나, 둘, 셋. 그 동작이 몹시도 재서 어렵지 않겠거니 하고 따라해 봤으나 생각과는 달랐다. 매번 허리를 양껏 굽혀야 함은 물론 찍어야 할 곳을 단박에 찍지 않으면 죽순이 못쓰게 될 수도 있다. 죽순 하나의 무게도 적지 않아 옮기는 과정도 수월찮았다. 반한석 정미숙 생산자 부부가 하루에 캐는 죽순은 약 400개, 무게로는 1톤 이상이 된다. 때를 놓치면 금세 대나무가 되니 일정 크기 이상의 죽순은 무조건 그날 소화해야 한다. 허리에 팽팽하게 동인 복대가 그 고생을 짐작케 했다.

“그래도 죽순 농사는 할 만해요. 제가 벼농사도 함께 짓는데 죽순은 그 수월하다는 벼보다 더 쉬워요. 대숲 관리가 중요하지만 또 그것만 잘 해주면 되니까요.”

죽순은 처음 대숲을 만들 때 이외에는 따로 심을 필요가 없다. 매년 봄 뿌리 마디마다 올라오는 죽순을 수확하고, 가늘게 자라난 세죽순을 잘라주며, 대나무 사이의 공간만 잘 확보해주면 알아서 자란다. 높게 자라 그늘이 깊게 지는 대나무상 특성상 따로 풀을 매지 않아도 되고, 병충해가 거의 없어 농약을 칠 필요도 없다. 늙어서 힘을 쓰지 못하는 대나무를 잘라 내고, 새로 어미대가 될 것을 키우는데 잘라낸 대나무를 파쇄해서 뿌려주는 것이 비료의 전부이니 ‘할 만하다’는 그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처럼 효자 같은 죽순 농사를 시작한 지는 벌써 50년이 훌쩍 넘었다. “동생이 고등학생 시절에 윗마을에서 죽순 하시던 분이 준 종죽을 받아 심었어요. 산비탈에 한 20주 심었는데 금세 번져서 몇 년 되지 않아 지금 밭 크기가 되었죠.” 반한석 생산자의 대숲 크기는 어림잡아 5,000평. 제 스스로의 힘으로 몇 년 만에 이만한 밭을 이루었다니 대나무의 생명력이 새삼 크게 와닿는다. 그리고 그 생명력을 모두어 담은 죽순이 대견하게 느껴졌다.

한살림의 삶은죽순은 연간 8,000봉 가까이 공급된다. 한 봉당 보통 2개의 죽순이 들어있으니 그가 한살림에 내는 죽순은 16,000개에 이르는 셈이다. “처음에는 수산물 경매장에 죽순을 가져갔어요. 사람들이 ‘어디서 소뿔을 이렇게 많이 빼왔냐’고 묻더라고요. 그만큼 낯선 식재료였던 거죠. 지금은 수입 죽순도 많고, 값도 헐해져서 10년 전부터 가공해서 팔기 시작했어요. 이제는 한살림에 안정적으로 내게 됐으니 더 좋은 죽순을 내는 데만 집중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조합원에게 하고픈 말을 묻자 반한석 생산자는 “맹종죽은 거제”라고 몇 번이고 강조했다. 기온과 강수량이 죽순 생장에 적합한 거제에 대한 자부심이 읽혔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먹는 맹종죽의 80% 이상이 거제, 그것도 우리 하청면에서 나요. 대나무나 죽순으로 유명한 다른 지역에서도 죽순 축제를 할 때면 우리 것을 사가서 가공해 판다니까요. 한살림 조합원들도 삶은죽순이 거제 것이라는 것을 알고 드시면 좋겠어요.”

죽순을 세로로 가르면 수많은 마디가 보이는데 이는 대나무로 자랐을 때의 마디수와 같다. 작은 죽순 안에 높고 곧고 단단하게 뻗을 수 있는 형질이 그대로 담긴 셈이다. 모든 초목이 앞다퉈 푸르름을 채워가는 이때, 죽순 반찬으로 내 안에 언제나 푸른 대나무의 생기를 채워보면 어떨까.

 

삶은죽순 수확 현장, 영상으로 만나요!

글 김현준 사진 윤연진 영상 이슬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