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공개센터 활동가는 최근 한 개발 사업과 관련한 문서를 철도시설공단에 정보공개 청구했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습니다. 공개를 청구한 세 개의 문서 모두가 비공개 처분을 받았는데, 여기까지는 늘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문제는 이의신청을 제기한 이후였습니다.

 

이의신청은 정보공개에 대해 비공개나 부분공개, 부존재 처분이 나왔을 경우 진행할 수 있는 불복절차입니다. 정보공개법 제182에서는 '국가기관 등은 이의신청이 있는 경우 정보공개심의회를 개최'하여 이의신청에 대해 심의하도록 되어있습니다. 정보공개센터 활동가 역시 비공개 처분에 대해 이의신청을 제기하면서, 정보공개심의회를 열어 다시 심의해달라는 문구를 포함했습니다.

 

정보공개심의회정보공개법 제 12에 따라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공기업에 의무적으로 설치하고 운영하도록 정해져있는 기구입니다. 정보공개심의회는 위원장 1명을 포함, 5명 이상 7명 이하의 위원으로 구성되며, 위원의 1/2은 해당 기관의 업무나 정보공개 업무에 대해 지식을 가진 외부 전문가를 위촉하도록 되어있습니다. 다만, 외교/안보/사법/경찰 등의 업무를 주로 하는 국가기관은 최소 1/3 이상으로 외부 전문가 참여 비율이 줄어들긴 합니다.

 

이렇게 정보공개법에서 정보공개심의회의 외부 전문가 비율을 규정해 둔 것은, 정보공개 여부를 판단할 때 공공기관 내부의 심의만으로는 공정성이 보장되기 어렵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조직 내부 사람들끼리 조직의 정보 공개 여부를 심의한다면, 아무래도 공개하지 않는 쪽으로 기울어지기 쉽겠죠?

 

문제는, 이러한 정보공개심의회의 의무 설치 대상 기관이 앞서 말했듯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공기업 등으로 한정되어있다는 점입니다. 지방공사/공단이나 준정부기관은 의무 설치 대상 기관에서 빠져 있기 때문에, 정보공개심의회를 구성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보공개센터는 오래 전부터 설치의무기관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행정안전부 역시 이러한 주장을 반영하여 201712월 정보공개법 개정안(정부안)을 마련, 정보공개심의회 의무 설치 기관을 준정부기관이나 지방공사/공단까지 확대하며, 외부전문가 비율 역시 2/3으로 늘리겠다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비록 해당 개정안은 국회 행안위에 계류 중이긴 하지만, 정보공개 정책의 주무 부처인 행정안전부가 정보공개심의회를 실질화 하기 위한 안을 내놓았다는 것 자체가 고무적인 일이었습니다.

 

문제의 철도시설공단은 준정부기관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정보공개심의회 의무 설치 기관은 아닙니다. 그러나 의무 설치 기관이 아니더라도 자발적으로 정보공개심의회를 구성할 수 있습니다. 철도시설공단 정보공개지침13조는 정보공개심의회에 대한 내용으로, 비록 법적으로 의무 설치 기관은 아니지만 정보공개심의회를 구성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위원장을 포함한 3명은 공단위원으로, 2명은 민간위원으로 구성한다는 내용입니다.


철도시설공단 정보공개지침 제13조



정보공개센터 활동가가 철도시설공단에 제기한 이의신청은 결국 기각 되었습니다. 그런데, 기각 사유가 좀 이상했습니다. '정보공개심의회를 개최하여 심의한 결과'에 따라 기각한 것이 아니라 '정보공개실무심의회를 개최하여 심의한 결과'에 따라 기각이 된 것입니다. 정보공개실무심의회라니, 정보공개 청구에 나름 잔뼈가 굵은 정보공개센터 활동가들도 처음 들어보는 기구였습니다. 정보공개심의회가 아니라, 정보공개실무심의회라고?



정보공개심의회를 통해 심의해달라고 요청했더니, 정보공개실무심의회를 열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철도시설공단이 정보공개심의회 이름을 그냥 그렇게 지었나 보다, 했는데 정보공개지침을 살펴보니 정말 정보공개실무심의회라는 기구가 따로 있었습니다. 철도시설공단에는 정보공개심의회도 있고, 정보공개실무심의회도 있다는 것이죠.


철도시설공단 정보공개지침 제18조가 바로 정보공개실무심의회에 대한 내용입니다. 정보공개실무심의회를 "정보공개심의회의 원활한 운영과 신속한 정보공개결정을 위하여 설치 운영"할 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정보공개 업무 주관부서의 장이 그 위원장이고, 법규담당, 주관부서 정보공개 담당, 처리부서 업무담당 등을 위원으로 하며, 필요시 외부전문가의 자문을 구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필요시' 외부전문가의 '자문'을 구한다니, 사실 상 공단 내부 인사들로만 이루어진 정보공개심의회인 셈이죠.


 

철도시설공단 정보공개지침의 정보공개실무심의회 관련 내용들

이 정보공개실무심의회에 대한 규정이 참 흥미로운데, 본디 정보공개와 관련, 이의신청이 들어오면 정보공개심의회가 이를 심의하게 되어 있지만, 실무심의회'필요시' 이 이의신청에 대해 심의할 수 있도록 되어있습니다. , 이의신청이 들어왔을 경우 해당 정보를 가지고 있는 처리부서의 장은 정보공개심의회에 심의를 요청해야 하나, "다만 그 사안이 경미한 경우에는" 정보공개실무심의회 심의를 요청할 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 규정만 잘 살펴봐도 이건 완전히 꼼수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듭니다. 철도시설공단은 정보공개법 상 정보공개심의회의 의무 설치 기관은 아니지만, 그래도 정보공개를 잘 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민간위원이 참여하는 정보공개심의회를 두겠다. 그러나, 실제로 이의신청이 들어오면 내부 인사들로만 구성된 정보공개실무심의회에서만 논의할 가능성이 높겠죠.

 

이러한 의심을 확인해보기 위해, 철도시설공단에 201811일 부터 2019531일까지, 1년 반 동안의 정보공개처리대장과 이의신청처리대장 내역에 대해 정보공개 청구해보았습니다. 1년 반 동안 철도시설공단에 제기된 정보공개 이의신청은 총 12건입니다. 인용된 건이 6, 기각된 건이 6건입니다. 정보공개법 시행령에 따르면 청구인 요구에 따라 처리 부서에서 정보를 공개할 경우 정보공개심의회를 열지 않아도 되니, 인용된 6건에 대해서 정보공개심의회는 미개최 되었습니다. 그럼 기각 된 6건에 대해서, 그 심의를 위해 정보공개심의회를 열었을까요?

 

2018625일부터 2019516일까지, 정보공개센터 활동가가 제기한 3건의 이의신청을 포함하여 총 6건의 이의신청이 기각되었지만 정보공개심의회를 열어 이를 심의한 경우는 단 한 건도 없었습니다. 6건 모두 정보공개실무심의회를 열어 심의하여 기각된 경우입니다. 결국 철도시설공단은 1년 반 동안 정보공개심의회를 통한 이의신청 심의를 한 차례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인용일 때는 심의회 미개최, 기각할 때는 실무심의회 개최. 결국 심의회를 통한 심의는 한번도 없었다는 것


 

물론, 철도시설공단 정보공개지침에서 이야기하는대로 6건의 이의신청 모두 '경미한 사안'이라 굳이 귀찮게 외부인사들까지 불러서 정보공개심의회를 열 필요가 없을 만한 사안이었을지도 모릅니다. , 어차피 철도시설공단은 정보공개심의회 의무 설치 기관이 아닌 이상 이의신청에 대해 정보공개심의회를 통해 심의하지 않았더라 하더라도 정보공개법을 어긴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이미 정보공개심의회를 구성하고, 민간위원을 포함시켜 '공정성'이라는 형식은 갖춰놓았으면서 실제로는 내부 인사들로 구성된 정보공개실무심의회 선에서 이의신청을 심의하고 있다면 이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민간위원이 포함된 심의 기구에서 심의를 받을 청구자의 권리가 침해된 것이니까요.


정보공개실무심의회 의결서를 보면, 이렇게 철도시설공단 내부 인사들로 구성된 회의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정보공개심의회를 구성하고 있으면서 정보공개실무심의회라는 또다른 심의 기구를 두고 있는 것 자체가 정보공개법에서 정보공개심의회의 역할을 규정한 취지를 무시한,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입니다. 철도시설공단은 앞으로 이의신청이 제기되면, 정보공개실무심의회가 아니라 제대로 정보공개심의회를 열길 바랍니다. '필요시', '경미한 경우'라는 지침 상의 말 장난으로 정보공개심의회를 회피하는 편법은 이제 그만 두길 바랍니다.

 

* 정보공개센터가 청구하여 받은 철도시설공단 정보공개처리대장과 이의신청처리대장의 내용을 공유합니다. 단, 개인정보 유출의 우려가 있어 청구인과 담당자의 이름을 삭제하고 공개합니다.

5708326_정보공개처리대장, 이의신청처리대장.x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