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가 무리하게 공사를 실시하면서 물의를 빚고 있는 제주 비자림로 확장 공사의 소규모 환경영향평가서가 졸속으로 작성되고, 부실 조사가 의심되는 데다 조작된 내용까지 포함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최근 제주도청이 막히지도 않는 2차선 도로를 4차선으로 확장하면서 불필요한 논란을 빚고 있는 비자림로에 대해 제주도의 환경단체들을 포함해 비자림로의 숲을 지키려는 이들이 주장한 내용입니다. 제주도청이 환경부 내 담당기관인 영산강유역환경청에 제출한 환경영향평가서에 멸종위기종이나 천연기념물 등의 서식 사실이 누락된 것으로 미루어 충분한 생물상 조사 없이 형식적인 조사만 실시한 뒤 환경영향평가서를 작성했을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환경단체들이 이런 주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환경단체, 전문가들이 비자림로를 며칠이라는 매우 짧은 시간 동안 조사해보니 천연기념물 팔색조, 멸종위기종 애기뿔쇠똥구리를 비롯해 법정보호종으로 지정돼 있는 다수의 생물들이 확인되었기 때문입니다. 새와생명의터 대표인 나일 무어스 박사가 조류 모니터링을 맡아 며칠 간 조사한 결과 전 세계에 600~1,700마리만 남아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국제적 멸종위기종이자 희귀조류인 붉은해오라기까지 발견되었고, 이 새는 비자림로 주변 숲을 번식 장소로 삼고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주도청이 영산강유역환경청에 제출한 환경영향평가서에는 이런 사실이 전혀 기재되어 있지 않습니다. 즉, 환경영향평가서 작성을 위한 생물상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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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위기 조류 붉은해오라기. 한라산국립공원 자료사진

이미 비자림로 주변 숲의 일부가 제주도청의 공사 추진으로 훼손되긴 했지만 다행히 영산강유역환경청은 비자림로 확장 공사를 중단하도록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6월 28일까지 소규모 환경영향평가와 관련된 환경보전대책을 수립·제출하도록 제주도에 요구해 제주도와 시민단체들이 추천한 각각 4명씩의 전문가들이 생물상 조사를 마친 상태입니다.

여러 언론에서 보도된 탓에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 비자림로 사례를 요약해서 소개한 것은 졸속, 부실, 조작이라는 세 단어로 요약되는 비자림로 확장 공사에 대한 소규모 환경영향평가서 사례가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까이는 경남 창녕군 대봉늪의 제방 공사부터 멀리는 강원 양양군의 설악산 케이블카나 충남 서산과 태안에 걸친 가로림만까지, 시기나 규모에 상관없이 환경영향평가서로 인해 불거진 논란들에는 항상 졸속, 부실, 조작이라는 단어들이 따라다니기 십상입니다. 한반도가 생긴 이래 가장 큰 환경재앙을 꼽는다면 반드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4대강사업의 환경영향평가서야 말할 필요도 없다는 것은 많은 분들이 잘 아실 것입니다.

람사르습지인 우포늪과 멀지 않은 창녕군 대봉늪의 경우 환경부 내 담당기관인 낙동강유역환경청이 창녕군의 환경영향평가서에서 부실, 조작 등의 증거가 명백히 드러났음에도 이를 그대로 통과시켰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대봉늪 사례가 환경영향평가라는 제도의 운용에 있어 환경부와 지방청들의 능력 또는 의지를 의심케 하는 이유는 환경부가 올해 환경영향평가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한 거짓부실검토위원회까지 거쳤음에도 부실, 조작 사실을 걸러내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검토위원회에 참가했던 한 전문가에 따르면 회의 과정에서 다른 지역 환경영향평가서에서 복사해 온 내용, 대봉늪에서 확인된 수달·삵 등이 서식하지 않는다는 거짓 내용, 조사를 실시하지 않고도 조사했다고 기재한 내용 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낙동강유역환경청은 그대로 환경영향평가 절차를 마무리했고, 창녕군이 원한 제방 공사는 일단 시작돼 버렸습니다. 환경영향평가서를 작성한 업체조차도 조작과 부실 등의 내용을 상당수 시인한 상태임에도 말입니다. 해당 업체는 환경영향평가서를 작성하면서 용역비 150만원을 받았다고 고백했고, 아마도 이처럼 저렴하게 책정된 비용은 이 업체가 현장이 아닌 사무실에서 조사를 실시한 이유가 됐을 수도 있습니다. 이 적은 금액은 환경영향평가와 환경영향평가가 상징하는 생태계의 중요성에 대해 창녕군이 얼마나 저렴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를 말해주는 상징적 숫자일지도 모릅니다.

실제 창녕군의 환경영향평가서를 살펴보면 대봉늪을 뒤덮고 있어 누구라도 한눈에 볼 수 있는 왕버들 군락조차도 식물 목록에서 누락돼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삵이나 수달처럼 배설물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동물들도 누락돼 있습니다. 4계절 조사가 필요하지만 두 차례에 걸쳐 단 3일 동안만 조사했다고 기재된 것 역시 해당 환경영향평가서를 그대로 통과시킨 낙동강유역환경청의 저의가 의심되는 대목입니다.

사실 해당 지역에 버젓이 서식하고 있는 멸종위기종이나 천연기념물 등을 누락시키는 것은 환경영향평가가 졸속으로 이뤄지고, 큰 문제없이 통과되길 원하는 이들이 즐겨 사용해온 수법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강원 양양군이 환경부 원주지방환경청이 설악산 케이블카 관련 환경영향평가서에서 축소, 누락시켰던 천연기념물 산양과 가로림조력발전, 서부발전이 가로림만조력발전 관련 환경영향평가서에서 누락시켰던 점박이물범입니다. 이 두 가지 사례는 대표적인 부실 조사 및 조작 사례임과 동시에 개발 주체들이 환경영향평가를 얼마나 업신여기고, 요식행위로 여기는지를 알려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설악산은 국내에 얼마 남지 않은 산양의 최대 서식지로, 관련 전문가들이 설악산 전체가 산양의 서식 영역이라고 여기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또 가로림만은 점박이물범이 왔다갔다 한다는 사실을 주변 지역 어민들 다수가 알고 있는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즉,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을 개발 주체들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거짓 서류를 작성해 속이고, 이를 모를 리 없는 환경부 본청이나 지방환경청 들이 모른 척 눈감아주는 것이라는 ‘합리적 의혹’이 제기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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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림만 모래톱 위의 점박이물범. 경향신문 자료사진

개발 주체들로서는 시민들이 관심을 보이고, 정부 당국이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멸종위기종, 천연기념물의 서식 사실을 숨기고 싶을 수밖에 없을 거라는 것은 누구나 능히 짐작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환경단체나 전문가들이 개발행위에 반대할 때 특정한 종을 내세워 해당 지역의 상징적인 존재로 삼는 경우가 많은 것 역시 시민들의 감정에 호소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결국 개발 주체들은 환경영향평가에서 이런 동식물 종이 서식한다는 사실을 최대한 감추려 하게 되고, 이들로부터 용역을 받은 업체들은 ‘갑’의 직접적 또는 묵시적 요구에 응하게 되기 마련입니다. 설악산이나 가로림만, 비자림로, 대봉늪처럼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는 곳에서는 이런 사실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채, 막무가내식으로 진행된 개발로 인해 훼손되고, 법정보호종들이 사라진 곳도 부지기수일 것입니다.

물론 환경영향평가라는 제도가 이렇게 항상 개발 세력에게 면죄부를 주거나 허점투성이인 제도만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점박이물범으로 대표되는 가로림만은 환경영향평가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환경부는 2014년 10월 6일 가로림조력발전의 가로림만 개발 계획에 대한 환경영향평가서를 반려한 바 있습니다. 당시 가로림조력발전이 제출한 환경영향평가서에 대해 환경단체는 물론 해양수산부·국책연구기관·지방자치단체들이 반대 의사를 표명했고, 무엇보다도 다수 어민들이 반대했기 때문에 당연한 조치이기도 했지만 가로림만 개발 무산은 한국 환경사에 남을 사건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비자림로, 대봉늪, 설악산, 가로림만의 사례들은 사실 개발행위의 타당성과 자연환경에 대한 영향을 평가하기 위한 환경영향평가 제도는 그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이 제도를 운용하는 이들의 철학과 자세가 문제임을 의미합니다. 물론 환경영향평가 제도 자체에 보완할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현행 제도로도 운용하는 이들이 올바른 자세를 견지한다면 누구나 반대할 수밖에 없는 수준의 개발사업은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환경당국이 그런 자세를 취하도록 만들어내는 것은 시민사회와 올바른 전문가들의 쉬지 않는 감시망 말고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 감시망이 확대, 강화되면서 제2, 제3, 제4의 가로림만이 잇따라 나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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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기범(경향신문사 환경담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