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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과정에서 종종 환경보호 특히 자연환경을 보호하는 근본적 이유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예를 들어 새만금을 보호하는 이유가 자연 자원으로서 갯벌이 인간에게 주는 유익 때문인지 또는 자연 그 자체를 위한 것인지의 문제이다. 강의실에서 해당 문제를 토론할 때에 학생들의 의견은 인간도 생태계의 일원인 이상 자연 생태계가 파괴됨으로서 인간이 받을 수 있는 경제적, 심미적, 그리고 생존적 등 모든 이익이 파괴되기 때문에 보호하여야 한다는 결론으로 수렴된다. 토론 과정의 소재로 제시되는 것 중 하나는 죤 뮤어(John Muir)와 기포드 핀쵸(gifford pinchot) 간의 미국 헷 헷치 계곡(Hetch Hetchy Valley)에 관한 논쟁이다.

헷 헷치 계곡은 요세미티 공원 인근에 위치한 아름다운 풍광의 초지와 협곡으로 구성된 풍부한 생태계 보고 지역이다. 그런데 1900년대 초 샌 프란시스코의 상수원 공급을 위해 해당 지역에 댐 건설이 계획되었다. 캘리포니아 지역 주민들의 의견은 식수, 위생, 보건 등의 문제로 댐건설에 찬성하는 입장과 댐으로 사라질 계곡을 고려한 반대의 입장으로 양분되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창립된 시에라 클럽은 반대하는 시민들과 함께 댐 건설에 반대하는 청원을 주 및 연방의회에 제출하였다. 시에라 클럽의 설립자인 죤 무어는 헷 헷치 댐 건설 반대의 중심에 서서 반대 의견 공론화에 노력하였다. 그리고 그동안 서부 산림 보호에 힘을 같이하였던 당시 산림청장 핀쵸에게도 협조를 요청하였다. 그러나 죤 뮤어가 믿었던 핀쵸는 댐 건설 관련 죤 무어와 생각이 다르다며 선을 그었다. 나이차를 떠나 친구이자 환경보호의 동지로서 그동안 서부 국립공원의 형성에 어깨를 같이하며 활동하여 온 둘 간의 논쟁은 지상을 통해 이루어졌는데 이는 샌프란시스코 뿐 아니라 미국 전역에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논쟁 초기 뮤어는 댐건설로 발생하는 편익보다 자연 훼손 비용이 결코 적지 않다고 주장하였으나 핀쵸는 자연보호라는 대의에는 동의하지만 자연보호의 근본적 목적은 인간의 유익을 위함이기 때문에 댐건설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하였다. 이후 논쟁은 자연보호의 이유에 대한 논쟁으로 전개되었다. 자연을 보호하는 것은 자연 그 자체를 위한 것이지 인간의 유익 때문에 보호하는 것은 아니며 자연 보존(Preservation)을 통해 간접적, 반사적으로 인간의 유익은 지켜진다는 뮤어에 반해, 핀쵸는 자연 보전(Conservation)이란 인간의 유익을 위해 자연과 자연자원을 현명하게 관리사용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자연은 인간의 유익을 위해 존재하기에 인간의 권리 대상일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는 자연을 인간의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까지도 정화시키는 곳이자 신의 완전성이 가장 잘 드러난 곳으로 이해하고 접근했던 뮤어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이었다. 

자연의 가치에 대해서도 두 사람은 서로의 생각에 대한 간격을 줄이지 못하였다. 죤 뮤어는 자연의 가치는 우리가 자연을 통해 보호 받으며 자연 속에서 배우고 깨 닳음으로서 가장 자연에 가까운 아름다운 인간의 본성을 찾고 회복될 수 있다는데 중점을 두고 이러한 심미적 학습적 가치를 강조하였다. 그러나 핀쵸는 죤 무어가 느끼는 자연의 기능과 가치의 존재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이는 결국 여가의 공간으로서 자연일 뿐 이 역시 인간을 위한 것이란 사실 자체에는 변함이 없었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여가의 가치 외에 자연은 자연 자원으로서의 가치 등도 갖고 있음으로 자연의 가치는 여가 외에 사회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다른 가치들 역시 존중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랠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이 네이쳐(Nature)에서 밝힌 4가지 자연의 용도 중 뮤어가 학습과 심미적 공간으로서 자연을 우선하였다면 핀쵸는 자연자원(commodity)으로서 자연에 중점을 두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해당 논쟁 이후 미국 자연보호 사조는 뮤어의 주장을 preservation 핀쵸의 주장은 conservation으로 나누어 이야기된다. 

핀쵸의 사상은 제레미 벤담(Jeremy Bentham)의 공리주의에 입각하고 있다. 즉,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 가장 오랜 기간 이루어지는 것이 모든 정책이 목표이고 환경정책 특히 그가 루스벨트 정부에서 담당하였던 산림정책 역시 이와 같은 공리주의에 입각하여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핀쵸는 연방정부 소유의 산림의 경우 일반 국민의 여가 외에도 벌목업, 광산업, 과학연구 등 기타 여러 목적을 위해서도 사용되어야만 최대 다수의 최대행복을 충족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장시간 동안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벌목 등 산림을 개발할 때 충분한 시간을 갖고 철저한 계획을 통해 개발이 다음 세대가 누려야할 행복을 저해하지는 않는지 꼼꼼히 검토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지속가능한 소출(sustainable yield)이 가능한 산림정책이 그가 산림청의 초대 청장으로서 수립한 가장 제1의 정책이다. 따라서 핀쵸는 여가의 기능만을 강조하면서 보호를 요구하는 뮤어 외에도 상수원이 필요한 샌프란시스코 주민, 전기를 필요로 하는 산업계 등 여러 공동체 구성원들의 요구도 균형 있게 고려하여야만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충촉시킬수 있기에 댐 건설에 찬성한 것이다.

어찌보면 뮤어의 환경보호에 대한 사상 역시 공리주의에 입각한 것으로도 보인다. 단지 핀쵸가 벤담이 이야기한 최대다수의 개념을 현 세대가 아닌 다음 세대로 확대하였다면 뮤어는 최대다수의 개념에 사람뿐 아니라 자연 생태계까지 포함한 것이 차이라면 차이일 것이다. 이처럼 행복을 공유할 공동체의 개념을 현 세대, 미래 세대 그리고 자연까지 확대하는 것이 어색하게 들릴 수도 있다. 특히 핀쵸가 이야기한 것처럼 세상의 모든 자연은 다스리고 지배할 수 있는 권리의 대상일 뿐이라고 이해하는 기독교적 문화가 바탕인 서구사회에서는 말이다. 그러나 청교도 실용주의적 관점으로 무장한 미국에서도 소위 땅의 윤리(land ethics)을 주장한 알도 레오포드(Aldo Leopold)와 같은 사람이 오늘날에도 존경받는 환경윤리가로 인정받는 것은 아이러니하기까지 하다. 알도 레오포드는 모든 공동체에는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해서 필요한 윤리가 있고 이에 근거한 책임이 있는데 인간이 자연공동체의 한 일원으로서 자연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윤리가 바로 땅의 윤리이며 이에 근거하여 우리는 많은 책임이 있음을 주장하였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자연에 대해 부담하는 책임 중 하나는 자연의 정화능력 또는 환경용량을 초과하는 개발에 대해 자연을 대신한 목소리가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개발을 위한 목소리는 개발을 원하는 측에서 낼 수 있기 때문이니 말이다. 

1908년부터 시작한 논쟁은 1913년 의회가 공식적으로 댐을 건설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종지부를 찍었다. 그러나 해당 논쟁은 미국 전역에 환경보호 의식을 환기하였으며 정부 역시 댐 건설에 있어서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미래 세대의 이익과 또한 자연이 갖는 여가적 가치가 훼손되지 않도록 많은 주의를 기울이는 절차를 진행하였다. 이러한 논쟁과 정부의 접근방법이 미국 사회가 세계 최초로 환경영향평가라는 제도를 갖는 사회적 배경이 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뮤어도 평소에 개발에 대해 무조건적 반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개발에 대해 반대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밝혀왔다는 점에서 세심하고 철저한 환경영향평가를 통해 환경보호와 개발이 균형 있게 이루어진다면 preservation과 conservation 역시 접점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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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소병천(아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생태지평연구소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