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ICIJ 공동기획
인체이식 의료기기의 비밀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지난해 11월 26일부터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 ICIJ 주관으로 36개국, 59개 언론기관과 함께 글로벌 의료기기 산업의 문제점을 파헤치는 프로젝트(인체이식 의료기기의 비밀, Implant Files)를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시리즈 기사는 뉴스타파 ‘인체이식 의료기기의 비밀' 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가 지난해 11월부터 집중 보도해온 글로벌 의료기기업체 존슨앤드존슨 자회사 드퓨의 리콜 인공고관절 제품 피해 보상 문제 해결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피해 환자들이 국민권익위에 낸 민원이 식품의약품안전처와 국민건강보험공단 등 담당 기관으로 이첩돼 결국 셀프조사에 그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5월 22일 드퓨 ASR 인공고관절 피해 환자들이 국민권익위원회 서울종합민원사무소에 식약처의 적극적인 행정을 촉구하는 집단 민원을 접수했다.

뉴스타파 드퓨 인공관절 연속보도 이후, 문제의 리콜 제품을 몸 속에 이식한 피해 환자 6명은 지난 5월 22일 서울 국민권익위원회를 찾아 식약처를 상대로 제조, 판매 업체인 드퓨와 존슨앤존슨에 감독 기능을 제대로 행사하도록 촉구하는 집단 민원을 제기했다. 또, 건강보험공단에는 리콜 인공고관절의 부작용 때문에 발생하는 재수술과 부대 진료 비용에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돼 국민 세금이 낭비되고 있다며, 공단의 보험료 환수를 촉구하는 민원을 제기했다.

권익위 “리콜 관절 민원, 전문적인 내용이라 각 부처로 이첩 결론"

그러나 권익위의 민원 처리는 피해 환자들이 바라던 방향과는 달리 진행됐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권익위는 해당 민원을 직권조사하지 않고 지난 6월 4일 세부 분야로 나눠 식약처, 건강보험공단 등에 이첩했다. 사실상 조사 대상이 돼야 할 기관에 셀프 조사를 맡긴 셈이다.

취재진은 해당 민원을 받았던 권익위 복지노동민원과에 직권조사 대신 담당 부처에 이첩한 이유를 질의했지만, 담당 조사관은 답변을 거절했다. 다만, 피해 환자 대표 역할을 하는 정상호 씨는 해당 조사관에게서 “권익위에서 직접 조사하기에는 민원 내용이 전문적이라 각 부처로 이첩하게 됐다"는 전화 통보를 받았다고 전해왔다.

▲국민권익위는 피해 환자들의 민원을 직권조사하지 않고 지난 6월 4일 분야별 담당 기관에 이첩했다.

권익위는 이와 함께 감사원에 식약처와 리콜 시행회사 간 유착관계 감사와 리콜 프로그램 개선명령, 리콜 관절 부작용 분석·대책마련 등의 적정성 여부 관련 감사를 의뢰한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 홍보담당관실은 “해당 민원 접수를 받은 것은 사실이나, 실제 감사 진행여부를 아직 결정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식약처와 업체 간 관계의 적절성 문제는 뉴스타파가 지난 4월 식약처 의료기기안전평가과 담당 사무관이 환자 대표인 정 씨와 한국존슨앤드존슨메디칼 측의 합의를 중재한다는 명목으로 비공식 회동을 추진한 사실을 보도해 불거졌다.

식약처·건보공단 ‘셀프 민원처리’...이전과 동일한 답변만 내놔

권익위의 이 같은 민원 처리에 따라 식약처를 대상으로 드퓨에게 보상 이행과 리콜에 대한 보상기간 연장을 촉구하도록 제기한 환자들의 민원은 식약처로 되돌아갔다. 식약처 의료기기안전평가과는 해당 민원 관련 답변서에서 “국내 환자가 원활하고 합리적인 피해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여러 차례 간담회·공문·유선 등을 통해 적극 협조”하도록 요구했고, “부작용에 따른 재수술은 이식기간에 관계없이 보상을 할 수 있도록 요구한 바 있다"며 지금까지 환자들에게 전달했던 내용과 동일한 답변만을 보내왔다.

▲식약처가 국민권익위에서 지난 6월 11일 민원을 이첩받은 후 피해환자 대표 정상호 씨에게 보낸 답변

드퓨 리콜 인공고관절의 주요 부작용 중 하나인 높은 혈중 중금속 농도가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한 환자들의 질의에 대해서는 혈중 금속 농도를 환자 사망과 직접적으로 연관을 지을 수 없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식약처는 국내외 안전성 정보와 지난 5월 31일 진행한 정형외과, 독성학, 병리학, 진단검사의학 분야 전문가 대면 자문을 취합해 “혈중 금속(크롬, 코발트) 농도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과학적으로 정립되어있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답변해왔다.

한편 건보공단 측은 드퓨의 리콜 관절로 인해 발생한 부작용 재수술과 제반 진료비용으로 관련건강보험 재정에서 나간 금액은 2017년 4월에 환수를 진행했다고 답변했다. 피해 환자들은 불량 제품으로 인해 발생한 수술비와 진료비는 국민건강보험 혜택 없이 해당 제품을 판매·리콜한 수입사인 한국존슨앤드존슨메디칼이 전액 부담해야 한다는 취지로 해당 민원을 제기했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측은 당시 존슨앤드존슨 측이 도의적인 책임에서 환수액을 납부했다고 주장했지만 당시 환수액의 규모, 발생 기간 등은 전혀 공개하지 않고 있다.

건보공단 급여관리실 급여사후관리부 문승수 대리는 “해당 수입품목의 위법성이 식약처의 역학조사 등을 통해 증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환수의무 여부와 환수시효 자체가 불분명하다"며 “존슨앤드존슨에서 예상한 부작용 수치보다 조금 더 높게 나와서 리콜을 진행했고, 이에 대해 환자들과 언론에서 문제제기가 있어 존슨앤존슨에서 도의적 책임에서 배상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문제의 인공고관절 제품은 지난 2006년부터 4년간 전국 19개 의료기관에서 시술됐다. 제조사인 드퓨는 지난 2010년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해당 제품을 자발적으로 리콜했다. 그러나 재고 제품에 대한 리콜만 진행하고 300명이 넘는 국내 이식 환자에게는 리콜 안내를 소홀히 하고, 이미 이식된 불량 제품으로 이한 피해 보상과 사후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미국 등 다른 나라 피해자들은 한 명당 우리 돈 2억 원 가량의 피해 합의금을 받은 반면, 국내 피해 환자들은 보상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 또 제조업체나 보상프로그램을 대행하는 업체도 피해 환자들의 연락을 제대로 받지 않는 등 차별 대우를 받고 있다.

취재 : 김지윤, 홍우람, 연다혜
디자인 : 이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