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청이 HDC신라면세점 전 대표 등이 연루된 명품 밀수 혐의를 포착하고 압수수색 등 수사에 나선 가운데, 면세점 측이 사건 은폐를 위해 밀수 가담 직원을 회유하고 협박한 정황이 담긴 녹취파일을 뉴스타파가 확보했다.
녹취파일에는 면세점 팀장 A씨가 부하 직원 B씨에게 관세청 조사관에게 거짓진술을 하도록 회유, 강요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피아제 시계는 빼자, 안 그러면 큰일 난다”, “관세청 조사 무시해라", “너 때문에 다른 직원들도 이 사건에 엮였다”는 등 부하 직원을 압박하는 내용이 주로 담겨 있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녹음파일은 총 6개로 모두 2시간 42분 분량이다. 확인 결과 이 음성 파일은 관세청 압수수색이 진행된 지난 19일 녹음된 것으로 나타났다. 녹음파일에 등장하는 면세점 팀장 A씨와 부하 직원 B씨는 모두 지난 2016년 HDC신라면세점 당시 대표 이 모 씨(현재 신세계면세점 임원)의 지시를 받아 명품시계를 국내로 반입했던 인물이다. 직원 B씨는 압수수색 직후 진행된 관세청 조사에서 최고급 명품시계 2개(롤렉스, 피아제)를 불법 반입한 사실을 인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관세청은 HDC신라면세점 전 대표 이 씨가 2016년부터 수차례에 걸쳐 부하직원과 중국인 중간책들을 동원해 신라면세점에서 구매한 명품시계를 홍콩에서 다시 받아 국내로 밀반입하는 수법으로 고가품을 밀수한 혐의를 포착,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관련기사: 관세청, '명품 밀수 혐의' 신라아이파크면세점 대표 수사)
팀장 A씨 “너 하나 불어서 다 엮였다", “관세청 조사 때 모른다고 해라"
뉴스타파가 입수한 녹음파일에는 팀장인 A씨가 부하직원인 B 씨에게 집요하게 허위진술을 강요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A씨는 동시에 “나는 모르쇠로 일관하겠다”며 허위진술 계획을 밝혔다.
너 하나 불어서 다 엮여 갈 수 있다. 너도 고민이 많을 것으로 안다. 진실을 있는 대로 얘기할 생각인 거야? 나는 모르쇠로 갈 것이다. ‘시계는 모르겠다. (밀수를) 한 적도 없다. 생각해 보니까, 시계는 들고 온 적이 없다. 시계 케이스는 하나 받아온 적이 있다. 예뻐서 케이스만 받았다’고 관세청에 진술할 생각이다.
팀장인 A씨는 부하직원인 B씨에게 구체적인 내용까지 불러주며 허위진술을 요구, 강요했다.
명품시계 2개가 아니라 1개만 밀수했다고 할래? 관세청에 ‘생각해보니까 롤렉스인 것 같다. 만 불도 안 되는 시계같다. 그 다음은 잘 모르겠다. 소문과 달리 피아제는 밀수한 사실이 없다. 국내로 반입한 것은 시계가 아니고 술이었다’고 진술하면 좋겠다. ‘피아제가 아니고 술인 것같다’고...
팀장 A씨의 회유는 수차례 이어졌다.
솔직하게 다 불면 금액이 너무 커진다. 그러면 큰 일 난다. 벌금이 수천만 원 나온다. 잘못하면 형사입건 될수도 있다. 그러니 시계 하나 몰래 들여온 것으로 마무리하면 좋겠다. 관세청은 계속 파고들어 수사할 것으로 보인다. 무조건 모른다고 했으면 좋겠다. 특히 피아제 시계가 나오면 큰일 난다.
집요한 회유.. “차라리 없다고 우겨서 무혐의 받자”
팀장인 A 씨는 심지어, 관세청의 수사가 잘 안 될 것이라며 아예 없던 일로 하자는 말까지 꺼냈다.
관세청이 제보자에게 받은 내역을 가지고 수사하는건데, 다른 증거가 없기 때문에 수사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밀수행위는 있었지만, 그걸 입증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런 상황이니 차라리 우겨서 무혐의 받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관세청이 앞으로 귀찮게 할 것이다. 힘들더라도 얼굴에 철판 깔고 ‘밀수사실이 없다’고 주장하자.
A 씨는 부하직원 B 씨가 원하는 답을 내놓지 않자, 이번엔 면세점 밀수사건의 제보자를 한참동안 원망했다.
제보한 사람이 제일 괘씸하다. 그 사람 때문에 다들 죽게 생겼다.
취재: 강민수
촬영: 이상찬 신영철
편집: 박서영
CG: 정동우
디자인: 이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