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는 지난해 12월 현대중공업을 시작으로 대기업 갑질 사례를 '갑질타파'라는 시리즈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공정위 등 감독 당국들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짚어볼 예정입니다. 현대중공업, 롯데그룹에 이은 갑질타파 세 번째 기업은 현대자동차그룹입니다. 일반적인 대기업 갑질뿐 아니라, 현대자동차 ‘포인트 보증수리 갑질’에 관한 블루핸즈 점주분들의 제보도 기다립니다. [email protected]

부산시 금정구에서 21년째 자동차 정비업소를 운영하고 있는 윤사열(63) 씨. 1984년 현대자동차서비스 사원으로 입사해 외환위기 시절인 1998년 3월 퇴사했다. 형식적으론 스스로 퇴사를 한 거였지만 등 떠밀리다시피 회사를 나왔다. 윤 씨는 그 해 부산에 현대자동차 정비 협력업체인 현대자동차카클리닉(현 블루핸즈의 전신)을 오픈했다.

20여 년 간 현대차 협력업체를 운영하던 2016년 12월, 윤 씨는 날벼락 같은 소식을 듣게 된다. 더 이상 계약을 갱신할 수 없다는 현대차의 일방적인 통보였다. 계약을 갱신할 수 없는 구체적인 이유는 알려주지 않았다.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가맹점주들은 10년까지만 계약 갱신을 요구할 수 있다. 즉 현행법 상으로는 가맹 계약기간이 10년이 지나면 계약 갱신을 거부당해도 어디 가서 하소연할 데도 없다.

1억 원 들여 매장 리모델링 후 5년 만에 계약 갱신 거부돼

윤 씨는 2012년 현대차가 요구하는 대로 정비소를 리모델링 했다. 1억 원 가까운 자금이 들어갔다. 자영업자에게는 큰돈이었다. 임차한 건물이어서 언제 계약이 끝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이었지만 윤 씨는 은행 대출까지 받아 리모델링을 마쳤다. 5년 동안 은행 빚을 갚았다. 은행 대출금을 모두 갚은 지 한 달 만인 2017년 4월 1일 자로 계약 갱신을 거부당했다.  

▲2012년 윤사열 대표가 정비소를 리모델링하면서 들여놓은 리바트 가구 가죽소파. 이 소파와 테이블, 고객PC의자를 구입하는데만 198만 원이 들어갔다.

2012년 당시 인테리어 업체가 윤 씨에게 제공한 견적서 규격란에는 실리콘이나 판넬 같은 자재에서부터 자동문, 벽면 타일과 문틀, 문짝 심지어 대변기와 소변기까지 ‘현대지정자재’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접수처의 직원용 의자와 고객쉼터의 의자는 현대지정가구로 ‘리바트가구’가 명시돼 있다. 리바트가구는 현대백화점그룹의 계열사이다. 윤 씨의 당시 카드 명세서를 보면 고객쉼터에 있는 가죽 소파 5개와 고객PC의자 2개, 협탁 테이블을 사는데 198만 원이 들어갔다.

윤 씨는 1년이라도 계약 기간을 연장하게 해달라고 하소연했지만 현대차는 거부했다. 오히려  윤 씨에게 ‘자진 포기 의향서’라는 것을 작성하도록 종용했다. “개인 사유로 블루핸즈 운영을 유지할 의사가 없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었다. 현대차 측은 각서를 써주면 3년 뒤 다시 가맹점 인가를 검토할 수도 있다는 말을 전했다. 희망고문이었다. 윤 씨는 결국 각서에 서명했다.  “만약에 법적인 문제가 시비가 되면 자진 반납했는데 뭐가 문제 될 게 있냐는 논리를 만들기 위해 각서를 받았을 것”이라고 윤 씨는 말했다.

▲2017년 3월 윤사열 대표가 작성한 ‘블루핸즈 자진 포기 의향서’. 윤 대표는 본인 의사에 반해 계약 갱신을 거부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차 측의 요구로 자진해서 블루핸즈 운영을 포기한다는 내용의 의향서를 작성했다.

일방적으로 갱신 거절하고, ‘자진포기 의향서’  종용

윤 씨처럼 2017년 4월 1일 자로 계약 갱신이 거절된 블루핸즈 가맹점은 29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중 취재진과 연락이 닿은 전 블루핸즈 가맹점주는 총 4명이었다. 이들 중 윤 씨를 제외한 3명은 모두 현대차가 요구하는 리모델링을 하지 못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서울에서 20여 년 간 현대차 협력업체를 운영해온 A정비소 대표는 정비소가 재개발 지역에 묶여 있어 수억 원이 들어가는 리모델링을 하지 못했다. 2016년 말 계약 갱신 불가 통보를 받고 부랴부랴 인테리어 업체로부터 리모델링 견적서를 받았다. 현대차가 요구하는 규격에 맞춘 결과 최대 5억 원, 최소 3억 원이나 필요했다. A정비소 대표는 매장을 이전하면 리모델링을 하겠다고까지 하소연했다. 하지만 현대차 측은 별다른 거절 사유를 말해주지 않고 계약 갱신을 거절했다.

지방에 있는 전 블루핸즈 가맹점 B업체 대표는 해당 지역권에서 다른 업체 한 곳과 함께 계약 갱신 불가 통보를 받았다. 다른 업체는 현대차가 요구하는 대로 리모델링을 한 후 다시 계약을 갱신했지만 B업체는 포기했다. 1~2억 원 정도 예상되는 리모델링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2012년 블루핸즈 리모델링 강요로 시정명령받은 현대차

현대차는 2012년 블루핸즈 가맹점에 ‘시설 표준화’ 즉 리모델링을 강요했다는 사실이 불거져 문제가 된 바 있다. 블루핸즈 가맹점은 전국적으로 1,400여 개에 이른다. 공정위는 그해 11월 고객편의시설처럼 자동차정비 가맹사업 경영에 필수적이라고 인정하기 어려운 시설에 대해 시설 환경 표준화를 요구하면서 불이익을 주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시정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뉴스타파가 입수한 ‘2018년 블루핸즈 시설, 환경평가표’에 따르면 고객쉼터는 총면적이 14제곱 미터 이상이어야 2점, 정수기와 자판기가 있어야 1점, 4인 규모 이상 고객 전용 소파가 있어야 1점, 서적 진열대가 있어야 1점 등 가맹점들의 시시콜콜한 고객 편의시설까지 점수화해서 평가에 반영하고 있었다.

이러한 평가 결과는 가맹점의 등급을 매기는 데 이용된다. 블루핸즈 등급에 따라 현대차는 가맹점에 지급하는 보증수리(고객은 부담하지 않고 현대차가 비용을 부담하는 AS 등의 수리)의 공임(작업 비용)을 차등화해 지급한다. 공정위의 시정명령에 따르면 고객 편의시설 등에 대해 표준화 설비의 기본 사양이나 수량을 구비하지 않았다고 서비스 역량평가에서 감점하는 것은 금지돼 있지만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2018년 블루핸즈 시설, 환경평가표’. 고객쉼터의 면적, 정수기와 자판기 구비 여부, 소파의 수량, 서적 진열대 여부 등 가맹점의 시시콜콜한 고객편의시설까지 점수화해서 평가에 반영한다는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다.

공정위에 잠자고 있는 ‘현대차 시정명령 불이행’ 고발사건

블루핸즈 가맹점들에 무더기 계약 갱신 거부 통보가 이뤄진 2017년, 황의종(56) 씨는 현대차가 공정위의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2007년 블루핸즈 가맹점주들의 최초 사업자 단체를 만들어 초대 회장을 지냈다가 계약을 거부당한 황 씨가 본사 정책에 대놓고 반대할 수 없는 가맹점주들을 대신해 공정위에 신고한 것이다.

황 씨는 자료도 제출하고 공정위에 직접 피해자도 연결해줬지만 신고 사건은 1년 7개월째 제자리걸음이다. 담당 조사관만 계속 바뀌어 벌써 세 명째다. 2012년 공정위가 현대차를 조사할 당시에도 공정위에 도움을 줬던 황 씨는 2012년과 현재 공정위가 조사에 임하는 태도가 너무 달라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황 대표는 “2012년에는 조사 과정이 누출될까봐 공정위 조사관이 저녁 11시에도 조사를 하러 나왔다”며 “공무원이 그렇게까지 열정적인지 몰랐다”고 회상했다.

▲블루핸즈 가맹점주들을 대신해 2017년 현대차를 공정위에 신고한 황의종 대표. 황 대표는 2007년 블루핸즈 가맹점주들의 최초 사업자 단체를 만들어 초대 회장을 지냈다가 가맹 계약을 거부당했다.

지난달 공정위는 가맹 계약 기간이 10년이 지난 가맹점이라 하더라도 가맹점주가 실정법을 위반하는 등 법정 갱신 거절 사유에 해당하지 않으면 원칙적으로 갱신을 허용해야 한다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하지만 2017년 4월 자로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계약 갱신을 거부당한 전 블루핸즈 가맹점주들은 공정위의 지지부진한 조사 속에 아무런 구제를 받지 못하고 있다.  

뉴스타파는 현대차에 △가맹 계약 갱신 불가 통보 사유 △점포 환경개선 비용 지원 사례 △자진 포기 의향서 작성 요구 이유 등에 대해 질의했지만 현대차는 “공정위 조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라며 “조사에 충실히 임하고 있고, 조사 중인 사안에 대한 설명 및 인터뷰는 어렵다”는 문자 답변만 보내왔다.

취재: 조현미
촬영: 신영철
편집: 박서영
그래픽: 정동우
디자인: 이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