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재해, 묻지도 따지지도 않아야 한다

정문식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시선)

▲ 정문식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시선)

어린이집 보육교사로 근무하던 A씨는 중등도 우울장애 진단을 받았다. 원인은 과중한 업무와 어린이집 원장과의 갈등 때문이었다. 원장은 A씨가 다른 지역으로 근무지를 옮기기를 희망해 내부이동을 신청하자 이를 탐탁지 않게 여겼고 유독 그에게만 가혹하게 대했다. 원장은 수개월 전에 발생한 비위사실(보육일지 지연 제출 및 지각)을 문제 삼아 시말서를 작성하도록 수차례 요구했다. CCTV로 과실을 찾아내 공개적으로 지적하기도 했다. 원장과 갈등이 자주 발생하자 다른 교사들과의 관계도 나빠졌고 A씨가 보육을 위해 신청한 교재나 교구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자 보육교사로서 자존감마저 무너졌다. 그는 견디지 못해 정신건강의학과에 내원했고 중등도 우울장애 판정을 받았다.

A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를 신청했고 올해 초 불승인 판정을 받았다. 그가 겪었던 상황을 녹음한 기록을 들어 보면서 이런 것을 경험한다면 누구라도 정신상병에 걸리겠다고 생각했던 사건이라 불승인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불승인 사유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정보공개청구로 심의에 참석한 위원들의 의견을 살펴보던 중 황당한 의견을 발견했다.

“불승인 사유 :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발생한 상병이나 귀책사유는 재해자 본인 요인이 더 크다.”

불승인 사유는 다른 위원들도 비슷했다. A씨의 근무태도에 문제가 있으니 개인적 취약성으로 상병이 발병했다고 판단했다. 판정문을 확인하면서 내가 읽은 것이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서 작성한 것인지 노동위원회 것인지 구별되지 않았다. 질병판정위는 업무상재해 여부를 심의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누구의 잘잘못을 판가름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재해자에게 잘못이 있으니 업무상재해로 볼 수 없다는 것은 더욱 문제다. 이는 산업재해보상보험의 존재이유와도 배치된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재해자의 고의나 범죄행위에서 발생한 사고가 아니고 업무와 상당인과관계가 있다면 업무상재해로 인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재해자에게 귀책사유가 존재하더라도 업무상재해 여부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예를 들어 일하다가 넘어져서 다쳤다면 그 원인이 실수인지, 시설결함인지 따지지 않고 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사회보장적 성격을 지니고 있으므로 사용자와 노동자의 귀책사유를 묻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다른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버스운전기사로 근무한 B씨는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를 치는 사고를 냈다가 징계해고를 당했고 버스회사는 B씨에게 구상금까지 청구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불안장애 및 우울장애를 겪었고 근로복지공단은 이를 산업재해로 인정했다. 해고와 구상금 청구가 그의 귀책으로 발생했지만 산업재해 여부를 판단하는 데 고려 대상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후 버스회사는 B씨의 과실로 사고가 발생했으므로 산재를 취소해 달라고 행정소송을 제기했으나 행정법원은 해고가 발생한 원인과 관계없이 해고와 소송으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점을 인정해 청구를 기각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취지를 고려한다면 외상성 사건 그 자체가 상병에 미친 영향을 따져야 하는데도 A씨 사건에서 근로복지공단은 귀책사유를 이유로 업무상재해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A씨 상병이 업무상 스트레스로 발생했다는 것 외에 다른 요인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은 입법취지를 명백히 벗어난 것이다.

또한 객관적 근거도 없이 상병이 ‘개인적 취약성’에서 기인했다고 결론짓는 것도 문제다. 근로복지공단은 우울증 같은 정신상병의 경우 업무상 스트레스 요인이 명백하게 확인되지 않거나 상병이 발생할 정도가 아니라면 ‘개인적 취약성’에서 기인했다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명백한 근거는 없다. 외부요인이 확인되지 않으니 단순히 개인적 요인으로 발생했다고 추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산재보험의 목적이 사회적으로 노동자 재해를 예방하고 재해자의 일상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것임을 고려한다면 다른 방식으로 추정이 이뤄져야 한다. 즉 ‘개인적 취약성’으로 상병이 발생했다는 명백한 증거가 없다면 업무에서 기인한 상병으로 추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또한 ‘개인적 취약성’이 존재하더라도 업무상재해가 아니라는 근거가 돼서는 안 된다. 법원 역시 개인적 취약성을 이유로 공단에서 산재를 부정하는 것에 제동을 걸고 있다. 최근 법원은 “우울증 등에 개인적인 요인이 영향을 미쳤다고 하더라도 업무상 과로나 스트레스가 겹쳐서 우울증이 유발 또는 악화했다면 업무와 우울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하기도 했다. 따라서 뚜렷한 근거도 없이 정신상병이 ‘개인적 취약성’으로 발생했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법리적으로도 타당하지 않다.

현재 A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심사청구를 제기한 상황이다. 심사청구 과정을 통해 공단이 스스로 최초요양 신청 단계에서 발생한 문제점을 인정하고 A씨 상병을 산업재해로 승인하길 기대한다. 산업재해는 누구의 잘못인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기 때문이다.

정문식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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