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6년 9월 삼성전자의 반도체 기술을 유출하려 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전 임원 이 모 전무가 2년 9개월에 걸친 재판 끝에 기술 유출혐의에 대해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이 전무는 한국 기업에 남아 국내 반도체 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는 본인의 당초 희망과 달리, 결국 해외 반도체 업체에 재취업하게 되었다.
뉴스타파는 지난해 5월, 이 전 전무에 대해 덧씌워진 기술 유출 혐의가 사실상 누명이라는 것과 그에 대한 경찰과 검찰의 수사가 매우 부실하고 자의적이었다는 것, 그리고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삼성이 전현직 직원들에게 위증을 강요하고 증인 출석을 방해한 정황이 있다는 것을 보도한 바 있다. (관련기사 : 기술 유출 누명...삼성 이 전무의 달콤한 인생)
대법원, 기술 유출 최종 무죄 확정
대법원 제3부 (재판장 : 민유숙, 주심 : 조희대 김동원 이동원 대법관)는 지난 5월 30일, 2심 재판에서 기술유출혐의에 대해 무죄를 받은 삼성전자 전 임원 이 모 전무에 대한 검찰의 상고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원심의 판단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여 자유 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산업기술의 유출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의 ‘부정한 이익을 얻거나 그 대상 기관에 손해를 가할 목적’, 업무상 배임죄의 고의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검사의 상고를 기각했다.
이로써 이 전 전무는 자신에게 씌워진 기술 유출 혐의에 대해 최종적으로 무죄를 확정받았다. 이 전 전무는 2016년 9월 기술유출 혐의와 업무추진비 유용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그러나 2018년 1월에 선고된 1심 재판과 2018년 10월 선고된 2심 재판에서 잇따라 기술 유출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검찰은 2심 판결에 대해 상고했으나 대법원이 검찰의 상고를 기각함으로써 이 전 전무는 마침내 2년 9개월 만에 누명을 벗게된 것이다.
8년 간 7천8백만 원의 업무추진비를 유용한 혐의에 대해서는 1심 판결에서 내려진 징역 6월에 집행 유예 1년 판결이 최종심에서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다만, 뉴스타파가 지난해 보도한 바와 같이 업무 추진비 유용 혐의는 삼성이 이 전 전무를 압박하기 위해 별건으로 고소를 한 정황이 짙다.
결국 해외에 빼앗긴 반도체 핵심 인재
이 전 전무는 한국에서 연세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MIT에서 석사, 스탠포드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세계 최고의 반도체 업체인 인텔에서 일하다 지난 2008년 45살의 나이에 삼성으로부터 임원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가족들의 반대에도 삼성의 스카웃 제의를 받아들인 이유에 대해 그는 “국내 반도체 산업에 기여하고 싶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스카웃 제의를 받아들이고 7년 동안 삼성에서 몸바친 대가는 기술 유출 누명이라는 대가로 돌아왔다.
이 전 전무가 삼성에서 버림받자, 많은 해외 업체들이 그에게 접촉을 해왔다. 특히 우리나라의 반도체 기술을 따라잡으려는 중국 업체 가운데는 실제로 구체적인 제안을 한 곳도 있다. 그러나 그는 이 제안을 거절해 왔다. 이 전 전무는 뉴스타파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가족들이 국내에 있다는 점과 더불어, 국내 반도체 산업에 아직 더 기여할 게 남아 있다는 생각 때문에 외국 기업들의 입사제의를 거절했다”고 말했다.
외국 기업의 제안을 거절한 뒤 국내 기업으로의 재취업을 타진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그를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제 사건이 삼성과 얽힌 것이고 우리나라 반도체 업체들이 대부분 삼성과 직간접으로 연결되어 삼성에서 자유로운 곳이 드물다 보니 제가 억울한 누명을 썼음이 밝혀졌음에도 국내의 기업들은 삼성과의 관계를 생각하며 저의 채용을 대부분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는 게 이 전무의 주장이다.
결국 이 전 전무는 최근 해외 반도체 업체로의 취업을 결정했다. 그는 “구속 기소된 이후 경제활동을 전혀 못했고 그래서 사건이 2심에서 종결되길 무척 바랐지만… 검찰의 상고로 기어이 3심까지 올라가 재판이 한없이 길어지면서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어느 나라의 어떤 업체에 재취업했는지에 대해서는 “삼성이 또다시 영향력을 행사할까 두렵다”며 밝히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지금도 풀리지 않는 의문... “삼성은 대체 왜?”
지난해 5월 삼성 이 전무 사건에 대한 뉴스타파 보도 영상은 유튜브에서만 51만여 건의 조회수를 기록했고, 천 5백여 개의 댓글이 달렸다. 그 댓글 가운데 상당수는 삼성이 대체 왜 이런 일을 벌였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당시 보도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이 사건을 오랫동안 변론해온 이 전 전무의 변호인들은 이렇게 추정했었다.
삼성 전자는 2015년경부터 중국 정부의 반도체 굴기에 심각한 위기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중국 업체들은 2016년경 중국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삼성전자는 반도체 분야의 전문 인력이 외부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내부 단속을 할 필요성이 매우 컸습니다. 그리하여 삼성전자는 피고인을 타겟으로 삼아 수사기관에 무리하게 고발하였고 이로 인해 삼성전자는 내부 인력을 단속할 수 있었습니다.
변호인들의 추정이 사실이라면, 삼성의 무리한 누명 씌우기는 의도한 것과 반대의 결과를 초래한 셈이다. 그토록 애써서 데려온 반도체 분야의 핵심 인력이 결국 다시 해외로 나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그가 삼성에서 익히고 배운 지식과 경험 역시 해외의 경쟁업체로 유출될 가능성이 높다.
삼성이 잃은 것은 이뿐만 아니다. 이 전 전무의 사례가 널리 알려지면서 삼성이 해외의 인재들을 영입하는 데에도 차질을 빚게 되었다. 실리콘밸리에서 활동중인 한 한국 출신 엔지니어는 뉴스타파 취재진에게 “이 전 전무에 대한 뉴스타파의 보도가 실리콘밸리의 한국인 엔지니어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그로 인해 삼성의 스카웃 제의를 받더라도 꺼리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은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이 전무 역시 뉴스타파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제대로 된 사실과 진실을 밝히는 게 아니라 자신들에 불리한 사실들을 은폐해 가면서 객관의무를 도외시하고 편파수사를 한 수사기관, 그리고 그들의 일방적인 주장을 사실확인도 없이 무차별 보도해버린 언론들, 내 나라에 와서 이런 것들을 보고 경험한 저로서는 지금 어느 후배가 저와 비슷한 마음을 가지고 한국에 들어오려 하는 것을 본다면 선뜻 권하고 격려해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변호인들의 추정대로 삼성이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한 본보기로 이 전무에게 누명을 씌웠는지, 아니면 삼성 내부에서 누군가 다른 어떤 의도를 위해 이 전 전무를 희생양으로 삼은 것인지, 그도 아니면 처음에는 오해에서 비롯된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 오해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 끝까지 이 전 전무를 표적으로 삼아 괴롭힌 것인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어떤 의도로 벌인 일이든 삼성은 이 전무에 대한 자신들의 ‘작전’으로 스스로에게 큰 손해를 입히게 됐다.
취재 : 심인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