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새미 : 제주 용천수 물 절약 시스템의 전형

◆ 위치 : 제주시 봉개동 산 2, 안세미오름 북쪽 산자락

제주의 용천수는 제주민들의 물 절약의 지혜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다. 물을 칸을 나누어 사용하면서 현재의 ‘중수도’개념을 이미 수백년전에 실천했고 마을 향약을 통해 철저하게 물을 보호하고 있었다. 명도암의 조리새미는 이러한 제주용천수의 특징을 잘 볼 수 있는 곳이다.

명도암은 이익(1629~1690)의 제자인 ’명도암(明道庵) 김진용’이 조리새미와 가까운 곳에 집을 지어 살았던 곳이다. 명도암 선생은 제주 교육 기관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장수당을 세워 영재육성에 평생을 바친 분이다. 마을의 이름을 김진용 선생의 호를 따서 지은 것이다.

명도암물이라고도 하는 조리새미는 명도암 마을의 설촌 내력이 담겨 있는 산물이다. 샘은 안(內)새미와 밧(外)새미라는 두 개의 오름으로 형성된 형제오름 북측 기슭에 있다. 조리새미라는 이름은 샘물 모양이 ‘쌀을 이는 조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

조리새미는 4단계로 나뉘어져 있다. 첫 번째는 식수로 이용했던 용수구, 두 번째는 쌀, 채소 씻는 통인 목욕용 구역이다. 세 번째 칸은 빨래를 하는 세답통이며 마지막으로 우마가 마시는 연못이 있다. 제주 용천수의 전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산물은 인공적으로 만든 동굴 안에서 솟아나, 아래쪽 논으로 흘러들어 이 일대에서 벼농사를 할 수 있게 해 준 물이다. 인위적으로 동굴을 만들어 보호한 것은 그늘의 물은 여자물인 암물로서 양지에 있는 남자물인 숫물보다 맑고 달며, 물이 변하지 않고 항상 처음의 물맛을 유지한다는 평가 때문이다. 옛날부터 이 산물은 설사를 치유하는데 효험이 있는 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샘물 아래에 논은 없어졌지만 이 산물로 연못이 조성되어 있다. 이 연못은 수생 생태계가 잘 유지되고 있는 습지이다.

 

독승물 : 해안동을 있게 한 산물

◆ 위치 : 제주시 해안동 2520번지 일대

해안동 일대는 500여 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던 곳이다. 해발 200m 이상 중산간지대에 자리 잡고 있지만 오래전에 마을이 형성된 이유는 용천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중에 독숭물은 주민들이 지금도 직접 관리하는 용출수다. 이 물은 무수천 안에 있으며, 거리를 두고 윗물과 아랫물로 솟고 있는 하천가 용출수다. 물은 두 군데서 용출되는데. 윗물은 도로를 개설하면서 원형을 잃어버려 옛 돌담 일부와 물만 남아 있고 아랫물은 예전 그대로의 모습이다. 숨골 형태의 동굴 같은 돌구멍에서 물이 솟아나기 때문에 독숭굴물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 때, 해안동은 국영목장 10소장 중 4소장에 속했으며 과원(과수원)을 갖고 있었고 물이 11곳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제주읍지(1780)) 이로 보아 예전부터 산물이 풍부한 마을임을 알 수가 있다.

 

보금물과 구릉물 : 개발사업으로 가치를 잃은 해안동 산물

◆ 위치 : 제주시 해안동 블랙파인리조트 내

해안동에는 독승물 이외에도 보금물과 구릉물이 있다. 하지만 무수천 유원지 개발사업으로 인해 현재는 리조트 안에 위치해 있어 사유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사업계획 당시에 환경영향평가심의에서 현 상태를 유지하고 보존하기로 한 보금물과 구릉물은 예전의 원형을 잃어버렸다. 보금물은 공사과정에서 물이 고갈되어 용출량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 또한 보금물 아래에 용천수로 인한 습지가 형성되어 있었으나 시설물 조성으로 습지가 남아 있지 않다. 구릉물의 경우, 완충지역을 두지 않고 시설물이 너무 근접하여 설치되어 용천수는 나오고 있으나 용천수로서의 기능이 상실되었다.

유수암천 : 김통정 장군 가족이 찾았던 산물

◆ 위치 :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 1937 일대

유수암리. 말 그대로 물이 흐르는 마을이다. 고려원종 12년(1271년)에 삼별초군이 항파두리성에 있을 때 함께 따라온 어느 고승이 유수암 절동산 아래 용출하는 맑은 샘을 발견하였다. 이 언덕 아래 암자를 지어 ‘태암감당’이라고 하고 불사를 시작하였고 삼별초 김통정 장군의 가족과 부하들이 이곳으로 이사하여 마을이 시작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그래서 삼별초군이 항파두성을 근거지로 삼으면서 성 밖 지역의 식수로 사용했던 산물로 마을의 젖줄이어서 태암천(泰岩泉)이라고도 한다. 유수암천은 여럿 안되는 중산간 지대 용천수 중에서도 용출량이 많기로 유명한 곳이다. 원천(源泉)은 더럽혀지지 않도록 ‘몸’자 형태로 두 칸으로 나누어 식수와 저수조를 만들었다. 수로를 통해 20m 쯤 떨어진 곳에 다시 ‘몸’자 형태의 세 칸으로 나눈 빨래터를 만들어 놓았다. 빨래터에서 나온 물은 연못을 만들어 우마 급수용으로 사용하였다.

 

행중이물과 광령저수지 : 광령리의 산물

◆ 위치 : 제주시 무수천길 87-1 일대(행중이물)

광령리는 한라산의 정기가 뻗어 내린 산칠성(山七星)이란 일곱 개의 산봉우리와 수칠성(水七星)이란 일곱 곳의 맑은 산물과 조화를 이루었다는 마을이다. 곳곳에 맑게 솟는 물들과 무수천이 있기에 지금껏 마을 유지가 가능했다. 칠성은 수명장수와 길흉화복은 관장하는 하늘의 신인 칠원성군으로 북두칠성을 의미하며 칠성은 우물에 비친다고 한다. 광령리의 수칠성은 ‘거욱대물, 절물, 정연물, 자중동물, 독짓굴물, 행중이물, 샘이마를물’이다. 이 중의 하나가 행중이물이다.

행중이물은 광령1리사무소에서 500미터 떨어진 무수천길에 있는 산물이다. 산물이 있는 지경을 행중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사각 식수통 하나만 갖고 있는 작은 물이지만 귀한 식수로 옛 모습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 그런데 행중이물은 도로밑으로 흘러 인근 밭으로 흘러가 버려지고 있는 상태이다. 농업용수로도 이용이 안되고 있는 것이다. 이 물을 모으는 소규모 저수지를 만들어 농업용수로 충분히 사용할 수 있을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령리에는 광령저수지가 자리잡고 있다. 말젯자종물이 위치해 있었으나 도로 확장으로 없어지고 대신에 배한이 저수지라고 하는 광령저수지가 자리하고 있다.

광령저수지는 땅이 넓게 페인 움부리(굼부리)라고 하는 분지를 된 지대를 일제강점기 때 만든 소규모 저수지를 1954년에 확장한 저수지다. 한라산 어승생의 물을 끌어와 배한이드르(들판의 제주어)의 답에 벼를 경작했던 물로 연간 2000석의 쌀을 재배했다고 한다. 저수지 규모는 2만3000㎡에 5만1000톤의 물을 저장할 수 있는 제주에서 세 번째로 큰 저수지다. 저수지의 물을 농업용수로 농가에 무상 제공함에도 불구하고 평상시는 물론 가뭄에도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수산저수지처럼 면밀한 검토없이 토목사업을 벌여 예산낭비를 한 사례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