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6일, 제주환경운동연합 회원생태기행은 오랫만에 오름기행을 다녀왔습니다.  올해는 오름보전의 바이블 역할을 했던 고 김종철 선생님의 ‘오름나그네’가 절판되었다가  얼마전 개정증보판이 나오기도 한터라 오름을 다시 생각해보자는 의미에서 잡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990년대 후반부터 제주환경운동연합에서 오름기행을 시작한 현원학 제주생태교육연구소 소장님(전 제주환경운동연합 의장)의 안내로 안돌오름과 거슨새미오름을 다녀왔습니다. 그 자세한 내용을 제주환경운동연합 박빛나 신입활동가의 글로 소개합니다.

 

 

“모양새는 같지만 차림새가 다르다”

(회원생태기행 후기)

                                                                                                                           박빛나 제주환경운동연합 활동가

 

제주라는 작은 섬, 이 곳에는 대락 368개의 오름이 분포하고 있다. 얼핏보기에는 비슷하게 생긴 이 오름들을 보고 현원학 소장님께서는 “모양새는 같지만 차림새가 다르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 표현을 듣고는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의 얼굴을 보면, 깊게 패인 주름과 눈꼬리, 입모양새 등을 통해 그가 살아온 삶을 짐작 할 수 있다고들 한다. 각각의 오름들도 그렇다. 오름들은 그 지역의 역사와 신화의 터전으로서, 그곳에 살아가는 주민들의 모습들을 보고 자랐다.

그 모든 것들과 어울리고 섞여 유구한 시간 동안 자신만이 간직하고 키워온 오름의 생을 보여주는 차림새를 갖추고 있다. 18명의 회원들과 함께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에 위치한 안돌오름과 거슨새미오름의 차림새는 어떤지, 그 오름의 생은 어떠했을지 함께 짐작하고 그 삶을 엿보기 위해 기행을 떠났다. 오름기행에 앞서 현원학 소장님께서 제주 오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오름은 간단히 정리하여 화산 경관 지형, 촌락 형성의 모태, 신들의 고향, 목축을 할 수 있는 장소, 제주 역사가 담겨 있는 곳, 생태의 터전이라고 정리해 주셨다. 회원분들과 함께 그 이야기들을 되새기며 함께 오름을 올랐다. 제법 기행을 시작해 가려는 무렵 소장님께서는 돌오름을 가는 길목을 걷다 멈춰 서서 우리가 걸었던 이 길이 조선 시대 정의현에서 제주목으로 가는 길인 것 같다는 말을 해주셨다.

한 회원분께서는 미리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가는 길이 더 뜻깊게 느껴졌을 것 같다고 아쉬움에 말을 하기도 하셨다. 아무 생각 없이 여유를 즐기며 걷던 이 길이 조선 시대부터 대대로 사람들이 걷고 또 걸으며 자연스레 생겨난 길이었다는 생각이 드니 확실히 감회가 달라졌다. 길을 안내해주는 기계도 없던 시절, 오로지 지도 한 장 들고 제주목으로 가던 사람들에게 길을 내어주고 그들의 곁에서 바람과 풍경을 통해 여유와 휴식을 선물해주던 돌오름의 차림새가 서서히 눈앞에 그려졌다.

안돌오름의 정상에 올랐을 때 강한 바람으로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 하지만 회원분들은 정산 한쪽에 모여 앉아 바람에 몸을 맞긴 채 눈을 감고 이 순간을 맘껏 즐기는 모습들이었다. 내심 ‘오늘은 날이 안 좋구나’하고 생각했던 내가 회원분들의 편안한 표정을 보며 바람이 좀 불어도 그것을 판단하는 건 순전히 나의 몫이었음을 깨닫고 나도 그 순간을 편히 받아들였다. 기행 중간에는 퀴즈 시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제주 오름에 대한 퀴즈를 서로 맞추고 웃으며 나름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오름 아래 들판에서도 소장님께서 여러 이야기들을 해주셨다. 오름 근처에서 나오는 샘들은 제주목으로 가는 행인들이 목을 축이는 곳이 되어 주기도 한다는 이야기, 제주의 이런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한 방법을 모색할 필요성, 오름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 등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은 후, 회원분들과 오름 아래 들판에서 각자 준비해간 도시락을 먹고 쓰레기는 모두 수거해갔다.

춥고 흐린 날씨였지만 그날 나를 포함하여 그곳에 있던 모든사람들의 표정은 다들 환하고, 즐거워 보였다. 다음으로 우리가 간 곳은 거슨새미오름이었다. 많지는 않지만 어릴 적부터 아빠와 함께 이곳저곳 오름을 다녀 봤지만, 거슨새미 오름은 특히나 아름다웠다.

지금 이 순간에도 거슨새미 오름의 신비로운 샘의 모습이 눈 앞에 조용히 나타나 마음속에 고요하게 그려지고 있다. 거슨새미 오름의 샘이 모여있는 곳 뒷쪽에 샘물이 흐르고 있는데, 참 맑은 그 모습에 발 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거슨새미오름을 끝으로 생태기행은 끝이 났다. 제주 곳곳에서 살아 숨 쉬는 오름들을 회원분들과 함께 다녀왔던 건 참 묘한 감동을 나에게 전달해 주었다.

회원 분들이야말로 제주 곳곳, 대한민국 곳곳에서 살아가고 성장하며 제주를 지키고 지탱해주는 든든한 주춧돌이며, 386개의 오름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이런 기회가 더 많이 찾아왔으면 하는 바람이며, 회원분들께 이런 경험과 추억을 선물할 수 있는 기회가 더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