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기술원, 즉 카이스트 내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던 전문연구요원의 부실 복무 실태를 병무청에 신고했던 카이스트 학생이 자료유출자로 지목되면서 실험실 출입금지 등 학과에서 불이익 조치를 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소속 학과 교수들이 이 학생의 아버지를 불러 신고를 철회하지 않으면 제적을 당할 수도 있으며 국내에서 연구활동을 하기 힘들 것이란 협박성 발언을 한 사실도 드러났다.
병무청, 뉴스타파 보도 후 특별점검 42명 적발...2명 형사고발
뉴스타파는 지난 1월 한국과학기술원, 카이스트의 박사과정 학생들이 전문연구요원이란 제도로 병역특례 혜택을 누리면서 공공연하게 대리출근과 가짜출근을 하고 있는 실태를 보도했다.
이후 병무청은 특별점검을 실시해 42명을 적발했고, 뉴스타파 보도로 대리출석이 확인된 2명은 형사고발하고 24명에 대해서는 복무연장 조치, 나머지 16명은 무단지각 등으로 처리했다.
뉴스타파 보도로 병무청이 특별점검에 나서고 학교에서도 대책논의가 활발해지는 등 전문연 문제가 이슈가 되자 카이스트 학생 A 씨는 지난 1월 국가권익위원회와 지방병무청에 전문연 학생들의 복무규정 위반 문제를 신고했다.
A 씨 역시 카이스트 학부를 졸업한뒤 대학원에 진학해 전문연구요원으로 복무 중이었는데 전문연구요원들이 당연한 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대리출근을 하거나 허위로 출퇴근 체크를 하는 모습을 몇년에 걸쳐 지켜봐왔기 때문이었다.
공익신고자 A 씨, “규정대로면 전문연 절반은 현역 입대될 정도로 복무 엉망”
A 씨는 “규정대로 적용하면 카이스트 전문연구요원 천 명 가운데 절반정도는 편입이 취소돼 현역에 입대해야될 정도의 광범위하고 구조적인 문제였다”고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전문연구요원 복무기간은 3년인데 지정된 근무지 무단이탈시간이 총 8일을 넘어서면 편입이 취소되고 현역으로 입대해야한다.
특히 A씨는 지난해 1차 신고한 내용이 병무청에 의해 부실하게 마무리되는 것을 보고 2차 공익신고를 결심하게 됐다. 당시 수십회의 대리출석을 확인한 전문연구요원 4명에 대해 신고했는데 병무청은 1명에 대해서만 5일 복무연장조치 하는데 그쳤고 이후에도 학내 복무위반 실태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2차 신고 후 같은 과의 다른 학생들과 교수들은 A 씨를 신고자로 의심하며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10월 1차 신고 때 신고자료를 담아놓은 A씨의 외장하드디스크를 다른 학생이 열어보게 되면서 A씨가 1차 신고자인 것을 학과 사람들이 알게 된 것이다. 이 외장하드엔 다른 학생의 복무기록 파일과 개인자료, 병무청 신고내용이 담겨 있었다.
당시 지도교수는 A 씨로부터 타인자료 열람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는 서약서를 받고 문제를 마무리했는데 2차 신고로 인해 다른 학생들이 다시 병무청의 조사를 받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자 A씨를 의심하면서 지난해의 자료유출 사건을 다시 꺼내들어 압박을 가했다.
“신고철회 안하면 한국에서 연구하기 힘들 것”...학과 교수들 학생 아버지 압박
A 씨의 아버지는 지난 4월 18일 A씨의 지도교수와 학과장 등 교수 3명이 자신을 학교로 불러 “A씨가 제적까지 당할 수 있다면서 A씨가 신고를 철회하도록 하라”고 회유와 협박성 발언을 했다고 말했다. 또 “A씨가 타인의 자료를 무단열람한 행위로 인해 처벌되면 한국에서 연구활동을 하기 힘들 것”이란 말도 했다고 밝혔다.
지도교수는 또 A 씨가 다른 사람의 자료를 빼내어 갔는지 확인하겠다며 연구용으로 쓰던 A씨의 컴퓨터와 외장하드도 압수했다. 또 다른 학생들이 자료유출과 감시 등 A씨로 인한 고통이 극심하다는 민원을 제기하자 공동으로 사용하는 실험실에 대해 A씨의 출입도 금지시켰다.
타인자료 열람 빌미로 PC 압수, 실험실 출입금지...공익신고자, “보복이다"
압수 한달 만에 학교측의 중재로 압수됐던 컴퓨터 속 연구자료는 복사돼 A 씨에게 건네졌지만 실험실 출입 금지조치는 거의 2달째 지속되고 있다.
A 씨는 이런 조치가 자신의 공익신고에 대한 색출작업이자 보복조치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국가로부터 혜택을 받으면서 그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는 현실을 지적하기 위해 신고한 것인데 계속해서 책임을 지지않으려는 모습을 보이면서 신고자를 처벌하려는 방향으로만 일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A 씨의 지도교수 이 모 씨는 같은 동료들이 A 씨가 타인의 자료를 빼갈까봐 불안해하는 등 정상적인 연구활동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이를 확인해 타협점을 마련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또 A 씨 아버지가 협박이라고 말한 부분도 “A 씨의 처벌을 요구하는 다른 학생들을 설득하기 위해 A 씨도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신고행위가 있었다면 철회해달라고 말했던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공익신고자 피해사건을 많이 다뤄온 배영근 변호사는 “공익신고 내지 부패행위신고를 하기 위한 과정에서 자료를 입수하면서 벌어진 행위를 문제삼아서 학교내에서 불이익 조치를 하겠다는 것은 공익신고법 내지는 부패행위방지법 상 명백하게 금지되는 불이익조치”라고 지적했다.
현재 권익위는 공익신고자 A씨의 보호 조치 여부에 대한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또 카이스트의 학생정책처장은 외부법률전문가들로 이른바 ‘분쟁조정위원회’를 구성해 이번 사태를 공정하게 해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취재: 최기훈
촬영: 최형석 신영철 이상찬
삽화: 서정호
CG: 정동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