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14%를 넘어 고령사회에 접어든 한국 사회. 연간 5.4조 원 이상의 공적 재원을 투입하지만, 정작 수혜자인 노인들은 손사래치는 사회복지시설이 있다. 전국 5,000여 개, 수용 인원 20만 명에 이르는 노인요양원 얘기다.
고령사회를 맞은 노인요양원 현장의 풍경은 황량하다. 장기요양 보험제도 시행 이후 시설의 수는 급격히 늘어났지만, 서비스의 질은 여전히 '격리와 통제' 수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법과 감시의 사각지대에서는 노인을 돈벌이 대상으로 삼는 부정과 비리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뉴스타파는 노인요양원의 실태를 점검하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시리즈를 연재한다. 노인들의 삶과 인권을 위협하는 우리 사회의 제도적·구조적 문제점을 분석하고 개선 방향을 모색해나갈 예정이다. ① 요양원에서 사라진 노인들(링크) |
#인계일지
‘인계일지’란 요양원에서 교대근무를 하는 요양보호사들이 다음 근무자에게 전달하는 일종의 업무 일지를 말한다. 환자의 상태와 시간 대별 특이사항이 상세하게 적혀있다.
#최승심 요양보호사 (60세)
요양보호사로 11년째 일하고 있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강원도 원주의 00요양원에서 근무했다. 1일 2교대 근무, 하루 12시간씩 일했다. 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이었다. 근로계약서에 적혀있는 휴게시간은 의미가 없었다. 인력을 더 뽑아달라고 요구했다.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연장수당이라도 더 달라고 했다.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다. 2015년 00요양원을 쫓겨나듯 떠났다. 소송과정에서 본인이 작성한 인계일지를 일일이 사진을 찍어 확보했다. 아래는 2011년부터 2014년까지 00요양원에서 기록된 인계일지의 주요 내용이다.
#요양보호사의 일과
요양원의 아침은 노인들의 식사로 시작한다. 35명의 식사를 5명이 챙겨야 한다. 직접 떠먹여 드려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매끼 1-2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아침을 먹고 기저귀와 패드를 교체한다. 기저귀 관리대장을 보면 하루에 19번까지 기저귀를 바꿔야 하는 경우도 있다. 5명이 하루 수백 번 기저귀와 패드를 갈아야한다. 욕창을 예방하려면 노인들이 누워있는 자세를 2시간에 1번씩 계속 바꿔줘야한다.
노인을 돌보는 틈틈이 청소도 했다. 신발장과 계단, 탕비실, 목욕실도 쓸고 닦았고, 앞치마와 걸레도 빨아야했다. 간호사가 해야할 가래 제거(석션), 인슐린 투여, 혈압체크도 요양보호사의 몫이었다.
야간 12시간 근무 때는 휴게시간이 4시간으로 규정돼 있었다. 밤에는 요양보호사가 2명이었다. 한 명이 16-17명의 환자를 수발해야 했다. 도저히 쉴 시간이 없었다.
#요양원의 밤
밤 근무는 응급상황이 끊이지 않았다. 아래는 2011년 2월 8일과 2월 9일 인계일지 내용 중 야간 상황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최승심 씨는 인계일지에는 특이한 사건만 기록한다고 말했다. ‘일상적인 이상행동’은 기록도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상행동은 일상이 됐고, 일상은 반복이 됐다.
#자살, 탈출
소리를 지르고, 요양원을 배회하고, 대소변 때문에 벌어지는 소동은 견딜 수 있는 수준이었다. 노인들은 끝없이 자살을 시도하고 탈출을 감행했다. 그 이유를 모르는 경우도 많았다.
#외로움
가족과 헤어진 노인들은 본능적으로 가족을 찾는다. 최승심 보호사는 마침 자신의 어머니를 다른 요양원에 모신 상태였다. 일을 하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노인들은 보호사들에게 “집에 가야 한다고 돈을 꿔 달라”고 했다. 잠시 한눈을 팔 때 보따리를 싸서 탈출한 노인도 있었다. 밖에 나가서 넘어져 피투성이가 된 노인을 행인이 신고해서 찾은 적도 있다. 최 씨가 근무하기 전 00요양원에서는 창문으로 뛰어내린 노인이 숨진 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후 방범창이 설치됐다. 매일 밤 최 씨의 가슴은 무너졌다.
집에 가야된다고 신발 찾고, 아들 찾고 밥해줘야 된다 그러고. 한 어르신은 저녁 때만 되면 벌써 현관문 앞에서 매달려요. 시어머니한테 혼난다고 밥하러 가야 된다 그러고. 어떤 어르신은 밥을 꼭 남기는 분이 있었어요. 아들 밥 줘야 된다고.
#약물, 결박
턱없이 부족한 인력. 휴게 시간도 없는 밤샘 근무. 끝없는 반복 노동. 감당할 수 없는 돌발 상황. 불가항력이었다. 요양보호사는 결박과 약물에 일정 부분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밤에 배회하는 노인을 막기 위해 침상을 붕대로 묶어 일어나지 못하게 했다. 간호사도 없이 잠이 깬 노인에게 임의로 수면제와 신경안정제를 먹였다. 요양원은 요양보호사가 임의로 투약할 수 있도록 따로 약상자를 마련해 놓았다. 다른 위험을 막기 위해 약물 투약의 위험 쯤은 감수해야 했다.
약을 12시 전에 드리면 그나마 다음날 움직임이 조금 괜찮고. 어르신이 중간에 깨서 12시 넘어 약 드리면 다음날은 그냥 하루 종일 졸아요. 인원 부족이 제일 크죠. 저희 같은 경우는 35명을 두 사람이서 돌보니까 (한 분이) 시끄러워져 버리면 주위 어르신들이 다 못 주무시게 되거든요. 그러면 사고가 날 위험이 더 높죠. 그러니까 약을 사용하고…
#죽음, 트라우마
노인들이 조용하면 보호사들은 확인한다. 숨을 쉬고 있는지. 요양원의 노인들은 하나둘 계속 사라진다. 노인들은 고통 속에 사라지고, 이 과정은 보호사에게도 그대로 고통으로 남는다. 고통은 반복되지만 결코 무뎌지지 않는다. 하지만 최저임금을 받는 1년 짜리 계약직 요양보호사의 트라우마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172만 2천 원
최승심 씨는 00요양원을 2015년 퇴사했다. 그리고 다른 요양원에 취업했다. 11년 째 요양보호사를 하고 있지만 “바뀐 것은 없다”고 최 씨는 말했다. 최 씨의 월급은 172만 2천 원이다.
취재: 김새봄
촬영: 최형석 정형민 이상찬 오준식
편집: 김은
음성대역/ 성우: 이현